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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문화 원류 탐험기 ④

‘프런티어 맨’, 대니얼 분 신화의 무대 컴벌랜드 갭

숱한 문명의 행렬 거쳐간 서부 개척의 관문

  • 신문수 서울대 교수·미국문학 mshin@snu.ac.kr

‘프런티어 맨’, 대니얼 분 신화의 무대 컴벌랜드 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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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산문적인 약전(略傳)으로는 ‘숲 속의 콜럼버스(Columbus of the Woods)’가 미국 사회에 끼친 심원한 영향을 제대로 알 수 없다. 미국인의 의식에 각인된 대니얼 분은 실존한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시대의 이념과 소망으로 채색된, 신화가 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파악하려면 그 신화의 근원인 존 필슨(John Filson)의 ‘켄터키의 발견, 정착, 그리고 현황’(The Discovery, Settlement and Present State of Kentucke, 1794)이라는 책의 부록에 실린 ‘대니얼 분 대령의 모험’이라는 자서전을 얼마쯤 읽어봐야 한다.

가자, 서부로!

펜실베이니아 출신의 교사이자 측량사요 땅 투기꾼이었던 필슨은 이 짧은 자서전을 대니얼 분 자신이 썼다고 선전했지만 물론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사냥터에서 ‘걸리버 여행기’를 탐독한 것으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공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분은 글을 쓸 능력도 여유도 없었다. 그것은 필슨 자신이 켄터키 답사 여행시 안내자였던 분의 체험담을 듣고 재구성한 것이다.

우리는 이제 최근까지 바람이 울부짖는 황야요, 야만족과 야생 짐승의 서식처였던 이곳 켄터키가 풍요한 삶의 터전으로 바뀌는 것을 본다. 자연의 특별한 혜택을 받은 이 땅은, 이 유례없는 역사적 시기, 곧 끔찍한 전쟁의 와중에서, 또 나라의 정착지로부터 그처럼 먼 변방으로 떠나온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문명의 요람이 되고 있다. 폭력의 손이 무고한 피를 흘리게 만들고, 야만인들의 무시무시한 외침이 울려퍼지고,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가 귀에 쟁쟁했던 여기, 이곳에서 이제 우리는 우리 창조주를 찬미하고 숭앙하는 노래를 듣는다. 초라한 인디언의 초막, 야만인들의 보잘것없는 거주지였던 곳에서 우리는 이 지상의 그 어떤 훌륭한 도시의 찬란함과도 견줄 수 있는 도시의 기초가 닦이는 것을 보는 것이다.

이 첫머리를 읽고 서부로 달려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분은 켄터키는 더는 이교도 인디언들이 우글거리는 야만의 땅이 아니라, 목가적인 질서와 풍요를 누리는 땅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켄터키는 자손만대로 번성할 제국의 터전이요 찬란한 기독교 문명의 요람으로 약속된 땅이다. 그렇기에 ‘바람이 울부짖던 황야’를 지상의 낙원으로 가꾸는 것은 신의 소명이요, 미국인에게 부여된 역사적 사명인 것이다.



훗날 팽창주의자들이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라고 부를 제국주의적 팽창의 이데올로기가 여기에 이미 싹트고 있는 것이다. 서부 개척은 이제 사리사욕을 위한 땅 투기가 아니라 시대의 부름이요 책무로 승화된다. 필슨은 대니얼 분을 역경 속에서도 이 소명을 완벽하게 수행한 시대의 영웅으로 신화화함으로써 “가자 서부로, 젊은이여!”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독립전쟁 후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던 사람들과 정부로부터 급료 명목으로 현금 대신 실체 없는 토지문서를 받은 수많은 참전용사에게 이 부름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전시의 애국심이 서부 개척의 열기로 바뀌면서 수많은 대니얼 분이 켄터키로 몰려갔다. 그들은 신생 미합중국의 국민임을 자랑스러워하며 자유의 여신을 수호정령으로 삼아 서부 곳곳을 누비면서 길을 내고 통나무집을 지었다. 대니얼 분은 이들에게 분명한 자기 정체성과 사회적 책무를 일깨워준 길잡이요 모델이었다. 사정이 이러했으니, 대니얼 분이 설사 존재하지 않았더라도 시대는 필시 대니얼 분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대니얼 분 신화의 이면

1803년 제퍼슨 대통령의 루이지애나 매입은 서부에 대한 관심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필슨의 책은 판을 거듭해 팔렸고, 대니얼 분의 자서전 부분은 별도의 팸플릿으로 제작되어 전국적으로 배포됐다. 분의 무용담은 일반 대중이 즐겨 읽는 잡지에 되풀이해서 실렸고, 그중의 몇몇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삽화로 혹은 유명 화가의 그림으로 그려져 벽에 걸렸다.

대니얼 분의 신화화는 그가 사망한 1820년 이후에도 변함없이 지속됐고, 앤드루 잭슨 대통령의 인디언 이주 정책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서부 팽창 시대에 절정에 달했다. 텔레비전의 보급과 더불어 시작된 대중 미디어 시대의 몇몇 인기 있는 연예인과 스포츠맨을 제외하고는 미국사에서 대니얼 분만큼 생전에 이미 국민적인 우상으로 신화화한 인물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니얼 분 신화에서 그와 인디언의 관계는 특기할 만한 신화소이다. 그는 인디언에게 두 번이나 포로가 됐으나 죽지 않고 신출귀몰한 재주로 빠져나왔다. 그의 딸이 인디언에게 납치당했을 때도 그들의 뒤를 쫓아가 역시 뛰어난 솜씨로 인디언을 제압하고 딸을 구해왔다. 필슨이나 후세의 전기작가들은 특히 분의 용기,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할 임기응변의 재주, 세심하고 사려 깊은 행동을 강조함으로써 그를 미국적 성격의 전형으로 부각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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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수 서울대 교수·미국문학 mshi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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