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전후, 조선인이 중국에 대거 이주하던 시점에 꼬리빵즈란 말을 자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중일간 연결고리로서의 막대’라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는다. 일본의 대륙 침략이 자행되던 시기 조선인의 중국 이주를 두고 중국인들은 ‘조선인을 따라 그 뒤에는 일본인이 쳐들어온다’는 생각으로 적대시했다. 이 때문에 독립투사들도 일본의 앞잡이라 오해받는 이중고를 겪기도 했다.
조선족을 가리키는 꼬리빵즈 외에 산둥지방 사람들을 가리키는 ‘산둥빵즈’란 말이 있다. 산둥 사람들 중에도 조선인처럼 일본말을 배워 일본인과 중국인의 통역에 나선 이가 많아서라는 견해와, 산둥 사람들의 처지가 조선족과 비슷한 데서 나왔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청나라 말기에 위하성이 쓴 ‘계림구문록’이란 책에 “혁철인(赫哲人) 집집마다 꼭 산둥빵즈를 고용해 집 재산과 가무를 돌보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산둥 사람들은 중국 전통의 병기인 막대기를 지팡이 삼아 가지고 다니며 위험할 때 자신을 보호하는 무기로 삼았는데, 특히 관자(管家·집안 관리해주는 사람)를 맡으며 몽둥이를 들고 무리지어 다녀 산둥빵즈로 불리게 됐다는 것이다.
고구려인의 기상
꼬리빵즈가 조선족이 물건을 어깨에 걸머져서 나를 때 즐겨 이용하던 멜대나 조선족 여인들이 사용하던 빨랫방망이에서 유래했다는 의견도 있다. 조선족 남자들은 멜대 외에도 지게막대기 등 막대기를 즐겨 들고 다녀 조선족 하면 으레 나무 막대기를 어깨에 걸치거나 지게막대기를 손에 잡고 일하는 모습이 연상됐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조선족을 가리켜 꼬리빵즈(고려막대기)라 불렀다는 것이다. 또 한족 여자들이 빨래할 때 빨래판을 쓰거나 비벼서 빠는데 조선족 여자들은 빨랫방망이를 사용한 데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다.
지린(吉林)성 투먼(圖們)시에 살았던 박영애씨는 “한족들은 풀 먹이는 옷감이 없었지만 우리는 옷에 풀을 먹여야 했다. 빨래가 마르고 난 뒤에도 밤낮없이 다듬잇방망이질을 했으니 중국인들 눈에도 별달라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빨랫방망이 때문에 꼬리빵즈란 말이 생겨났다”고 증언한다.
한편 일부 조선족은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이 중국(당시 수나라)과 마지막 전쟁을 할 때 여자들이 빨랫방망이까지 가지고 나가 싸운 데서 꼬리빵즈라는 말이 생겼다고 말한다.
중국에서 ‘방(幇)’이란 무리라는 뜻으로 주로 사람 패거리를 낮추어서 부르는 말인데, 꼬리빵즈는 고려패거리를 낮춰 부르는 말이라는 의견도 있다. 중국인은 못난 사람, 싫은 사람의 무리를 얕잡아 부를 때 ‘방’을 쓴다는 점에서 이 단어 도 비하의 뜻을 내포한다.
역사학을 전공한 랴오닝성 조선족사범대의 심모 교수는 이 표현이 고구려 때부터 사용되기 시작됐다고 한다. “중국은 고구려 병사들이 들이닥칠 때마다 놀라곤 했다. 고구려인은 강한 결집력으로 항상 무리지어 다녔고 힘도 세서 인접한 나라들 사이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였다. 여기서 ‘고구려 무리가 온다’는 표현이 생겨났다”는 것.
또 닉네임 ‘홍산도’라는 조선족 네티즌은 인터넷 사이트 모이자닷컴에 올린 글에서 “산둥 사람들과 조선족이 하나같이 잘 뭉친다는 의미에서 ‘빵즈’가 붙여진 것이 맞다”며 “‘고려패거리’라는 뜻에 더 가깝다”고 주장했다.
용맹한 고구려 병사의 몽둥이
실제로 꼬리빵즈라는 말을 모르는 한족에게 그 의미를 물었을 때 ‘방(幇)’의 의미를 떠올려 ‘고려패거리’로 생각는 사람이 많았다. 마오쩌둥(毛澤東)의 아내 장칭(江靑), 왕훙원(王洪文), 장춘차오(張春橋), 야오원위안(姚文元) 네 사람의 악질 중앙간부를 중국 ‘4인방(四人幇)’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탤런트 3인방’ ‘과학계 3인방’ ‘바둑 신예기사 4인방’ 같은 좋은 의미로 ‘방(幇)’을 쓰지만 중국에서는 주로 패거리라는 나쁜 의미로 쓴다.
꼬리빵즈가 용맹한 고구려 병사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드러나는 고구려몽둥이 혹은 고구려방망이(棒子)의 뜻을 담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용맹한 고구려 병사는 중국인에게 늘 공포의 대상이었는데, 실제 많은 한족이 “옛날 고구려는 대단했다”며 이 어원에 수긍했다.
모이자닷컴의 닉네임 ‘별찌’(지린성 안투현)는 “중학교 때 역사 선생님이 ‘고구려 때 중국과 변경을 두고 충돌이 잦았는데, 고구려 병사들이 육모방망이(방쯔)를 들고 싸우는 것이 무척 용맹하고 날렵해 중국 병사들이 고구려 병사를 부르는 대명사였다’고 가르쳤다”고 소개했다. 닉네임 ‘고려청년’(산둥성 옌타이시)도 “한족은 전의를 상실하면 오합지졸이 되곤 했지만 고구려인은 결집력이 대단해 꼬리빵즈라는 말은 한족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며 “한국에서 ‘당나라 군대’라는 말이 조롱의 뜻으로 쓰이는 사실도 이를 증명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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