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을 지배하던 기간에 중국은 베트남을 한 개의 군(郡) 또는 주(州)로 복속시키고 중앙에서 직접 관리를 파견해 통치해왔다. 즉 고대부터 베트남은 한국보다 더 직접적으로, 더 오랫동안 중국의 통치를 받아온 것이다. 939년 오권의 투쟁으로 독립한 후에도 계속 중국의 영향권에 있다가 11세기 초 이조(李朝)에 이르러서야 중국의 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베트남은 완전히 독립한 이후에도 중국식 통치방법의 봉건적 합리성을 높이 평가해 중국의 간섭 없이 스스로 중국의 과거제도를 그대로 도입했다. 결국 이조는 과거제뿐 아니라 각종 중국 법률과 제도를 도입해 중국식 중앙집권형 전제 관료봉건 국가 형태를 구성하고, 중국의 위성국인 상태에서 조선과 같이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하면서 독립을 견지해왔다.
이런 역사를 가진 베트남은 유사 이래 한자를 문어(文語)로 사용해왔으며, 베트남어 낱말의 60%가 베트남식 독음으로 발음되는 한자 단어다. 베트남 한자음은 프랑스의 동양학자 앙리 마스페로(Henri Maspero·1883~1945)에 의하면 10세기 당(唐)대 장안(長安) 방언을 기초로 한 북방 독서음이라고 한다.
이런 베트남이, 혁명적으로 한자를 전폐하고 문자 생활을 일시에 로마자 표기방법으로 전환했는데, 이는 베트남인의 민족의식을 말살하고 중국의 문화적 영향력을 차단하려 한 프랑스 식민주의자의 한자 폐기 책동이 성공한 결과였다.
과거와 단절 부른 한자 폐기
1882년 프랑스 식민주의 군대가 하노이를 점령하고 베트남 식민화에 착수하자 프랑스는 베트남 지식인의 전통사상을 뿌리뽑고 베트남을 중국의 영향으로부터 분리하기 위한 정책을 단행한다. 당시 지배계급을 제외한 대부분의 베트남인이 문맹이었는데, 누구나 쉽게 깨칠 수 있는 문자를 쓰게 한다는 명목 아래 한자 폐기와 알파벳 전용에 나서 이를 성공시킨 것이다.
1885년 프랑스의 지배하에 있던 베트남에서는 당국이 베트남어의 표기를 한자 대신에 로마자로 한다고 선언하면서 그 로마자 표기방법을 ‘베트남어 정서법(正書法)’이라고 명명했다. 이 정서법은 17세기 프랑스 선교사 알렉산드 드 로드(Alexandre de Rhodes)가 이탈리아 로마에서 편찬한 ‘베트남·포르투갈·라틴어 사전’(1651)이라는 저술에서 쓴 표기법을 기본으로 제정된 것이다.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베트남어도 중국어와는 언어구조가 크게 달라, 정서법 이전에 이미 한자와 베트남어를 혼용하는 ‘추놈’이라는 고유문자가 있었다. 추놈은 13세기에 만들어졌는데, 처음 제정할 때의 한글과 마찬가지로 널리 보급되지 못하다가 프랑스 당국이 강권하는 정서법에 밀려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 결과 오늘날의 베트남인은 고등교육을 받은 지식인조차 최다수 종교인 불교 사원에 씌어진 한자 현판도 읽지 못하며, 선조들이 지은 시가(詩歌)나 민족 전통의 고전도 읽지 못한다. 심지어 호치민(胡志明), 시에트리쾅(釋智光), 리인탕(連勝)과 같은 동포 지도자 이름의 뜻도 모른다. 그저 Ho Chi Min, Sie Tree Kuang, Lien Tang과 같이 로마자로 기록하는 이른바 정서법으로 읽고 발음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