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김맹녕의 그린 필드 ⑬

미국 캘리포니아 오크퀘리 골프클럽

악명 높은 파3 홀에서 30년 골프 인생 최대의 굴욕

  • 김맹녕 한진관광 상무, 골프 칼럼니스트 kalgolf@yahoo.co.kr

미국 캘리포니아 오크퀘리 골프클럽

3/3
‘여유 있고 부드러운 스윙을 해야지’ 마음먹고 한 클럽 크게 잡아 3번 우드를 빼들었다. 짧으면 공이 계곡 속으로 날아가 ‘안녕’을 고할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비행기를 함께 타고 온 공을 여기에 제물로 바칠 수는 없다’고 다짐하면서 티를 꽂았다. 계곡이나 워터해저드를 넘기는 홀에서 헤드업은 절대금물이다. 숨을 들이쉬며 ‘하나, 둘, 셋’을 외치면서 힘차게 샷을 날렸다. 공은 좁고 긴 골짜기를 가로지르며 화려하게 날아올랐지만 왼쪽으로 휘면서 연못 속으로 빠져버렸다. ‘힘을 빼고 천천히 휘두르라’는 골프 원칙을 지키지 않은 결과였다.

아쉬운 표정으로 돌아서자 멀리건(mulligan)을 선언하며 다시 한번 시도하라고 공을 던져준다. ‘이번에는 멋지게 그린 온을 시켜야지’ 하고 다짐하면서 4번 우드로 바꿔 잡고 힘차게 스윙을 했다. 웬걸, 이번에는 공이 오른쪽으로 슬라이스가 나면서 깊은 러프 쪽으로 OB가 났다. 해저드를 넘기는 홀에서는 어떤 것도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게 공략요령이다. 오직 공에 집중해야지 과욕을 부리면 긴장해 무리한 스윙을 하게 된다.

우리 일행을 따라온 이곳 마셜이 미국식 OB의 표현인 “오스카 브라보(Oscar Brabo)”를 연신 외쳐댄다. 한국 싱글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이 홀을 정복하기 위해 LA에서 자동차로 2시간30분이나 달려왔는데…. 아쉽지만 그린 옆에 설치된 특별 티에서 샷을 하고 투 퍼트도 아닌 스리 퍼트로 마무리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골프임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마셜이 눈치도 없이 이 홀에서 몇 타로 마무리했냐고 묻는다. ‘묻지마!’라고 쏘아주고 싶었으나 신사 체면에 그럴 수도 없고 해서 그냥 웃어 넘겼다. 화가 나 입이 나온 내 얼굴을 본 친구가 “이곳에서 파(par)를 잡으려면 티샷하기 전에 돼지머리에 명태를 놓고 막걸리를 부어야 한다”며 위로했다.

골프는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게임이어서 18홀을 돌고 나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 평상시 감춰져 있던 성격이 라운드를 하면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필자는 공이 잘 맞지 않으면 발끈 화를 내는 습관이 있어 같이 라운드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킬 때가 많다. 매너가 나쁘다고 소문나면 사람들에게 어울리기 싫은 상대로 낙인찍혀 외톨이가 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버릇을 고치려고 노력하지만, 오늘도 주위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어 미안했다.



골프 인생이 어느덧 30년 가까이 되지만 이렇게 어려운 파3홀은 처음이어서 우리는 그린과 백색 바위산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선인장 위스키에 쓰린 속 달래고…

이어지는 홀은 파5로 페어웨이가 넓고 해저드가 없어 마음이 편안했다. 바로 전 파3 홀의 아쉬움을 달래주려는 설계자의 넉넉한 마음이 엿보였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드라이버를 휘두르니 공이 하늘 위로 쭉쭉 뻗어나간다. 5번 우드로 세컨드 샷을 치자 야생화 꽃밭을 지나 페어웨이 정중앙으로 날아간다. 남은 거리 90야드를 샌드웨지로 치니 핀 옆 3m 지점에 온이 됐다. 쉽게 파를 잡으니 스트레스도 사라지고 속상했던 마음도 풀리며 갑자기 골프가 쉬워진 것 같다.

미스 샷에 좌절하지 않고 고통을 극복하는 용기를 배울 수 있는 골프는 인생의 도장이라 할 만하다. 트러블 샷 후에 새로운 국면이 전개되어 좋은 스코어를 냈을 때 골퍼들은 전 홀의 아픈 기억을 잊고 만족스러워한다. 골프는 이런 양면성에 큰 묘미가 있어 자주 우리 인생사와 비유되곤 한다.

마지막 홀의 그린을 떠나면서 정면에 버티고 선 주르파 산을 보니 석양이 깃들어 더없이 아름답다. 골프를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내가 미국의 이 외딴 광산촌까지 올 수 있었을까.

골프를 끝내고 보니 그 많던 공이 겨우 5개 남아 있었다. 같이 플레이한 동반자들이 공이 떨어지자 몰래 가져다 쓴 것이다.

이 골프장의 총지배인 행크 실러씨와 커피를 마시면서 이 골프장의 특성과 마케팅 성공사례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처음 오픈했을 때에는 찾는 이가 뜸했지만 개성 있는 14번 파3 홀의 전경사진과 난이도를 적극 홍보한 결과, 지금은 미국 동부와 중부는 물론 멀리 일본, 멕시코, 캐나다 등에서 골퍼들이 이 홀에 도전하기 위해 몰려온다고 한다.

골프가 끝난 후 또 한 가지 즐거움은 ‘19번 홀’에서 즐기는 대화와 뒤풀이다. 아깝게 날려버린 버디에 대해서는 낚시에서 손에 잡았다 놓친 물고기처럼 아쉬움을 토로한다. 깃대에 붙였다고 자랑하는 아이언 샷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깃대로부터의 거리가 점점 짧아진다. 아쉬운 OB 이야기, 어느 누구도 14번 홀에서 온 그린을 하지 못한 데 대한 후회, 코스의 난이도 등을 화제로 삼으며 들이켜는 캘리포니아의 독한 선인장 위스키는 쓰면서도 달콤했다.

신동아 2006년 10월호

3/3
김맹녕 한진관광 상무, 골프 칼럼니스트 kalgolf@yahoo.co.kr
목록 닫기

미국 캘리포니아 오크퀘리 골프클럽

댓글 창 닫기

2022/08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