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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

이회창전 한나라당 총재

“호남은 이제 ‘김대중주의’ 끝내라” “킹? 킹메이커? 나라 위한 일이라면 뭐든 하겠지만…”

  •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이회창전 한나라당 총재

3/11
▼ 대통령 탄핵방송에 대해 언론학회 연구결과도 공정하지 않았다고 결론을 냈습니다. 그러나 어찌 됐든 헌법재판소가 다수 의견으로 탄핵소추를 기각하지 않았습니까. 결과론이지만 탄핵소추가 없었더라면 열린우리당이 약진해 다수 의석으로 무리한 법률을 만들어내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조순형 의원이 화려하게 복귀했지만, 박관용 최병렬 홍사덕 등 탄핵소추의 주역들은 정치적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비난을 살 만했습니다.

“방송이 그런 상황으로 몰고 가리라고 상상하기 힘들었겠지요. 우리 국민은 선거나 정치에 관해 두 가지 심리가 있습니다. 하나는 약자에 대한 동정입니다. 그래서 국회의원 출마한 사람들이 목에 힘주면 반드시 떨어집니다. 자세를 낮춰야죠. 힘 있는 자에 대한 견제 심리도 작용해요. 방송이 탄핵정국, 탄핵국회를 보도하면서 바로 이러한 국민심리를 자극했습니다. 다수당인 야당이 밀어붙인 것처럼 보였죠.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탄핵 투표 끝나고 나서 울부짖으니까 약자의 모습으로 비쳤죠. 방송이 그렇게 안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 헌재 결정에서 나왔다시피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지만 사안의 경중(輕重)을 따져볼 때 대통령직을 그만둬야 할 정도는 아니었지 않습니까.

“헌재 결정에 대해서는 헌법학자들이 비판론을 내놓았습니다. 헌법 위반사실을 전부 인정해놓고도 탄핵할 만큼 중대한 사유가 아니라고 빠져나갔는데, 이미 지적한 헌법 위반 사실 그 자체가 탄핵사유에 해당된다는 것이죠. 결론이 왜곡된 결정이라는 비판론이 많았지요. 저는 학문적으로 어떤 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말할 수 없지만 당시 탄핵사유가 약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봐요.”

국가를 먼저 생각하는 호남 유권자



필자는 인터뷰 전에 질문요지 10개를 간추려 이 전 총재측에 보냈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질문들이었다. 그중에는 ‘한나라당과 호남의 화해’에 관한 질문도 있었다. 필자가 인터뷰를 진행하며 뜬금없는 질문 같아서 빠뜨리고 넘어가자 그가 “그 질문은 안 하나요”라고 물었다. “준비됐으면 하시죠”라고 말하자 그는 직접 쓴 메모를 훑어보고 나서 말했다.

“전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한나라당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아부하는 태도로 호남 표를 얻으려고 하면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DJ가 광주에서 ‘무호남 무국가(無湖南 無國家)’라고 썼습니다. 원래는 이 충무공이 한 말이죠. 원문은 ‘若無湖南 是無國家’지요.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부산으로 쳐들어와 전국을 유린할 때 이 충무공이 호남마저 빼앗기면 안 된다는 취지에서 쓴 말입니다.

호남은 정말 그동안 김대중씨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 밀어줬습니다. 저는 그것을 일종의 ‘김대중주의’라고 봅니다. ‘무DJ 무호남’이었죠. 호남 대통령이 탄생함으로써 호남인의 긍지를 높인 점은 저도 인정하지만, 이제는 호남도 김대중 도그마에서 벗어나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때라고 봅니다. 김대중씨가 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옳다고 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됐습니다.

한나라당도 국가를 사랑하는 호남 민중에게 접근해 표를 얻어야지, 무조건 김대중주의에 영합해 표를 얻으려 하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저는 호남에서 진정으로 국가를 아끼는 민심이 확산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나라당이 호남과 가까워지려면 이런 추세를 잡아야 합니다. 햇볕정책에 대한 아첨은 정말 말도 안 됩니다.”

이 대목에서는 호남 민중의 반론도 들어봐야 할 것이다. 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한나라당의 5, 6공당(共黨) 이미지, 영남당(黨) 이미지 같은 것 말이다.

▼ 지금은 어떤 책을 읽고 있습니까.

“두 권을 한꺼번에 읽고 있습니다. 대만 출신 일본 작가가 쓴 세 권짜리 ‘일청(日淸) 전쟁’이라는 책이 있어요. 일본과 중국의 역사적인 관계가 잘 드러나 있죠. 그 책에 조선 조정이 아주 분통 터질 만큼 피눈물 나게 고생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러다 결국은 일본한테 먹히죠. 소설이지만 사료(史料)를 바탕으로 쓴 것이기 때문에 역사공부도 됩니다. 감명 깊게 읽었어요.”

이 대목에서 조인직 기자가 “혹시 문화일보 ‘강안 남자’ 읽습니까”라고 물었다.

“사무실에서 가끔 봅니다. 청와대에서 절독(絶讀)하니까 작가가 내용을 좀 톤다운시키지 않았나 싶던데 잘 모르겠어요. 며칠 못 봤어요. 유치한 얘기지요. 연재소설을 절독 핑계로 댄 거잖아요.”

▼ 술은 어느 정도나 합니까.

“거의 안 해요. 정치할 때야 기자단이나 당원들과 회식하는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마셨지요. 그때는 술자리 환담이 유용했던 것 같아요.”

▼ 건강해 보입니다. 평소 건강관리는 어떻게 합니까.

“아침에 일어나 스트레칭을 20~30분 하죠. 며칠에 한 번 한강 둔치에 가서 산보를 합니다. 게을러서 가끔 빼먹어요.”

신장 163cm. 인상은 말라 보이는데 체중은 64kg이라고 했다. 이 전 총재의 가계는 장수(長壽) 집안이다. 아버지는 97세, 어머니는 96세에 세상을 떴다. 부모는 90을 넘겨서도 당뇨 고혈압 같은 성인병 증상이 없었다고 한다. 건강과 수명은 집안 내력을 무시할 수 없다.

“무병장수라는 말을 하는데 인생의 마지막에는 무병장수도 힘들더라고요. 기력이 쇠잔해져 견디기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옆에서 보기가 안타까워요. 건강하게 살다가 갑자기 고통 없이 죽는 것이 인생의 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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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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