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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버린 제2공화국, 나약하지도 무능하지도 않았다

  • 허동현 경희대 교수·사학 huhdh@khu.ac.kr

미국이 버린 제2공화국, 나약하지도 무능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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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버린 제2공화국, 나약하지도 무능하지도 않았다

1960년 10월18일, 장면 총리가 서울시내 대학생 대표 60여 명을 필동 ‘코리아하우스’에 초대해 의견을 듣고 있다.

1990년대 민주당 구파와 신파에 정치적 뿌리를 둔 김영삼 정권과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다원화의 기원을 제2공화국에서 찾아 그 역사적 의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견해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는 권위주의시대에 형성돼 고정관념이 된 뿌리 깊은 부정적인 이미지와 민주화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새로운 해석에 따른 긍정적 이미지가 충돌하는 평가의 아노미 현상 때문에 아직 제2공화국의 역사적 의의나 위상에 대해 정확하고 또렷한 이미지를 갖고 있지 못하다.

오늘 우리가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는지는 내일 우리의 삶이 어떨지와 직결된다. 제2공화국에 대한 기억은 우리의 미래를 비추는 등대다. 제2공화국은 정치적으로 국민참정권 보장과 다원적 민주사회 확립을 도모했으며, 최초로 관료의 공채제도를 시행함으로써 관료의 전문화와 효율화를 꾀한 바 있다. 또한 경제제일주의를 표방해 장기적인 경제개발 계획을 입안·실천함으로써 국민소득의 증대와 국부(國富)의 증강을 도모하되, 이를 관 주도형이 아닌 민간 자율의 방식으로 실천하려 했다.

사회적으로는 자유당 독재체제하에서 위축돼 있던 이익집단과 사회단체들의 분출하는 이익 추구 욕구에 접해 이를 권위주의적 방식으로 억누르지 않고 대화와 협력을 통한 자율적 해결을 종용하는 정책을 구사한 바 있다. 이 밖에도 제2공화국은 이승만 체제하의 반공주의적 무력통일론을 넘어서는 남북한의 화해와 협력을 통한 통일 기반 조성과 유엔 감시하의 남북한 자유선거를 통한 통일방식을 제기하는 등 합리적이면서도 국제적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분단 해소 노력을 전개함으로써 진정한 국민국가 수립을 모색했다. 나아가 제2공화국은 이승만 정권 때 왜곡된 한일관계 정상화를 시도하는 등 대화와 협력을 통해 외교관계를 재정립하려 했다.

이와 같이 제2공화국의 치세는 다원화된 시민사회의 확립, 민간 주도형 경제건설, 관용과 대화의 정신, 합리적 통일방향의 제시, 국제사회에서의 위상 제고 등을 보편적인 방향과 원칙하에서 실천하려 한 이상적·선각적 시대였다. 그러나 제2공화국의 이상과 꿈은 군부쿠데타에 의해 좌절됨으로써 이후 제2공화국에 대한 평가는 부패·무능한 정권으로 왜곡·선전됐다. 사실 제2공화국에 씌워진 부정적 이미지는 5·16군사정변 세력과 그 뒤를 이은 독재정권이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왜곡·선전한 결과다.

김대중 정권조차 연속성 부정



그렇다면 미처 실천되기도 전에 그 싹이 꺾인 제2공화국의 역사적 성격에 대한 평가는 그 척도를 어디에 두어야 할까. 오늘날 한국의 지향점이 진정한 의미의 근대 국민국가 수립에 있다면, 그 잣대는 정치적으로는 다원적 민주사회의 확립과 효율적 관료제도의 정착을,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 체제에 입각한 민간 자율의 경제 발전을 통한 국민소득의 증대를, 사회적으로는 평등주의적 사회체제의 확립과 대화와 관용의 정신 보급을, 문화적으로는 합리주의나 실용주의와 같은 가치관의 보편화를 지향했는지 여부에 두어야 한다. 또한 근대 국민국가는 민족 단위로 형성되는 것이 이상적이며, 나아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 속에서 다른 국민국가들과의 교류와 협력을 통해 국제적 지위를 확보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제2공화국을 이끌어낸 정당으로서 민주당의 치적과 정책이 한국의 근대 국민국가 수립과정에, 나아가 그 지향점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가 평가의 핵심이 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군부독재가 30여 년이나 계속되면서 5·16군사정변 세력과 그 뒤를 이은 신군부 정권이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왜곡·조작한 탓에 제2공화국은 ‘무능한 정권’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만이 우리의 뇌리 깊숙이 각인됐다. 심지어 정치적 인맥이나 정책면에서 장면 정권의 후계로 볼 수 있는 김대중 정권조차 ‘제2의 건국’을 표방하며 그 연속성을 간과할 만큼 부정적 이미지가 더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제2공화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형성된 이면에는 두 개의 신화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산업화가 결여되고 시민사회가 성숙하지 않은 후진국에서는 경제 발전단계를 뛰어넘는 민주주의 성장은 불가능하며 개발독재에 의한 경제의 도약(take-off), 즉 산업화 이후에야 민주주의 발전이 가능하다는 믿음이다. 다른 하나는, 이승만 정권의 문민독재와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의 군사독재를 넘어 민주화와 다원적 시민사회를 이룬 동력이 민중의 힘에 의한 것이라는 신념이다.

장면 정부가 과연 경제발전을 이끌 능력이 있었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이 정부가 추진한 주요 경제정책은 경제개발계획과 국토개발계획이었다. …이 정부는 경제제일주의를 표방했으면서도, 그것을 주도적으로 이끌 제도형성을 6개월 동안 이루지 못했다. 이것은 군부에 시간을 도난당해서라기보다 이 정부의 결단력과 추진력 부족 탓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군부는 장면 정부로부터 권력만 앗아간 것이 아니라 정책의 내용과 시간까지 절취했다는 것이 장면 정부에 우호적인 사람들의 주장이었다. 군부는 분명 민간정부로부터 권력을 찬탈했다. 그리고 이 정부가 세운 계획의 핵심 아이디어가 군부에 의해 실행에 옮겨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은 시간을 절취당한 것을 탓하기 전에 장면 정부의 능력부족을 탓해야 했다.(김일영, ‘건국과 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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