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2월호

부사 잘못 쓰면 군더더기, 잘만 쓰면 보석

  • 이윤재 번역가, 칼럼니스트 yeeeyooon@hanmail.net

    입력2007-02-12 14: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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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상적인 대화에서 우리는 ‘너무’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 ‘너무 맛있다’ ‘너무 좋다’…. ‘너무’는 본래 ‘지나치다’는 의미로 부정적인 뉘앙스이니 ‘정말 맛있다’ ‘정말 좋다’로 바꿔야 어법에 맞다. 하지만 ‘맛있다’ ‘좋다’라고만 해도 의미는 충분히 통한다. 부사가 군더더기로 사용되는 경우는 영어에서도 흔하다. 작가 스티븐 킹은 “지옥에 이르는 길은 부사로 포장돼 있다”고 빈정댔다. 없어도 그만인 부사를 문장의 보석으로 만드는 방법을 알아보자.
    Tricks for Good Writing

    부사 잘못 쓰면 군더더기, 잘만 쓰면 보석
    작가에 따라서 ‘adverb-phobia’, 부사에 대한 병적 증오를 나타내기도 하고, ‘adverb-philia’ 병적 호감을 표시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adverb-hater’, 즉 부사 쓰기를 꺼리는 사람은 소설가 스티븐 킹(Stephen King)이다. 그의 공포소설은 드라마나 영화로 많이 제작됐다. 그가 쓴 작가지망생을 위한 매뉴얼 ‘On Writing(글쓰기에 관하여)’에는 ‘The road to hell is paved with adverbs(지옥에 이르는 길은 부사로 포장되어 있다)’라는 문장이 있다.

    또 다른 adverb-hater는 엘모어 레오나드(Elmore Leonard)이다. 그가 쓴 수십 권의 범죄소설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레오나드가 2001년 7월16일자 ‘뉴욕타임스’에 쓴 ‘10 tricks for good writing(좋은 글쓰기 10가지 비법)’ 중 몇 가지를 추려봤다.

    Never open a book with weather(날씨로 이야기를 시작하지 마라). Avoid prologues(사건의 발단을 쓰지 마라). Never use a verb other than “said” to carry dialogue(전달(傳達)문에 “말했다” 외에 다른 동사를 사용하지 마라). Never use an adverb to modify the verb “said”. To use an adverb this way is a mortal sin.(동사 “말했다”를 수식하는 부사를 사용하지 마라. 이런 식으로 부사를 사용하는 것은 큰 죄악이다.) Never use the words “suddenly”(“갑자기”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마라).

    대표적인 ‘adverb-lover(부사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는 레모니 스니켓(Lemony Snicket)이라는 필명(pseudonym, pen name)으로 잘 알려진 유대계 미국인 동화작가 대니얼 핸들러(Daniel Handler)다. 아동서적 시리즈인 ‘A Series of Unfortunate Events’가 핸들러의 대표작이다.



    시사주간지 ‘타임’이 발간한 ‘Entertainment Weekly’지가 선정한 ‘연예 오락 부문 가장 창조적인 인물 100인’ 중 한 명으로 뽑히기도 했다. ‘Reptile Room(파충류의 방)’은 72주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0위권을 고수해 ‘해리 포터’ 이후 어린이를 가장 열광시키는 책으로 호평받고 있다. 그런데 최근 핸들러가 ‘Adverbs(부사)’라는 간단한 제목의 성인 소설을 냈다. 이 소설은 이미 뉴욕의 영화·TV프로그램 제작사인 GreeneStreet Films에 팔렸다. 이 책은 ‘briefly(간단히)’ ‘madly(열광적으로)’ ‘deeply(교묘히)’ 같은 제목하에 여러 인물의 각기 다른 사랑 이야기를 담은 컬렉션이다.

    들러리가 아닌 주인공으로서의 부사

    부사가 군더더기로 사용된 경우가 많다. He was literally penniless when he went over to America.(그는 사실상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미국에 건너갔다.) The air in Seoul is arguably the dirtiest in Korea.(서울의 공기는 논쟁의 여지없이 한국에서 가장 오염되어 있다.)

    반면 표어는 부사 하나로 완벽하게 의미를 전달한다. Swiftly(신속히), Through(철저히)!, Faithfully(충실히)! 등. 이 경우 부사(副詞)는 부(副)가 아니라 정(正)이다.

    미국의 민주당은 2006년 중간선거 공식 구호(slogan)를 “Together, We Can Do Better”와 “Together, America Can Do Better”로 정했다. 전자는 Together with the people(국민과 함께하면)을, 후자는 Together with the democratic party(민주당과 함께하면)를 함축한다. 그런데 이 공식 구호보다 훨씬 빛을 발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Had Enough?”다. 이렇게 된 사정을 알아보기 전에 먼저 enough의 용법을 살펴보자.

    enough가 부사로 사용되면 어느 경우에나 그 의미는 긍정적이다. Quickly enough, if well enough(결과가 좋다면 늦지는 않다)라는 라틴 속담도 있다. 그래서 학습자는 ‘This book is easy enough for me to read’를 ‘This book is so easy that I can read it’으로 전환하는 연습을 한다.

    셰익스피어의 ‘Othello’ 3막3장에서 이아고(Iago)가 한 말을 보자.

    Poor and content is rich, and rich enough;

    But riches infinite is as poor as winter

    To him that ever fears he shall be poor.

    (비록 가난해도 마음이 편한 사람은 부자 중에서도 부자다;

    가난뱅이가 될까봐 늘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부를 가졌어도 엄동설한(嚴冬雪寒) 같으니라.)

    부사가 명사로 전용되면, 부정적인 상황에서는 뉘앙스가 달라진다. Enough of it(이젠 됐어)→No more(이젠 그만)→I’m sick and tired of it(지긋지긋해).

    [긍정적 상황]

    A: How about one more drink for the road? (헤어지기 아쉬우니 한 잔만 더하지?)

    B: I’ve had enough.(충분히 마셨어.)

    [부정적 상황 1]

    A: What are you trying to say? (하고 싶은 말이 뭐지?)

    B: You and I are through. I’ve had enough! (당신하고 난 끝났어. 지긋지긋해.)

    [부정적 상황 2]

    A: Did you practice the new tune? (새 곡은 연습해보았니?)

    B: Yes. Someone somewhere in my building shouted. “That’s more than enough, isn’t it? I’ve had enough of it!” (예. 저희 건물 어떤 사람이 소리를 질렀어요. “이제 충분하고도 남겠다. 지겹다 지겨워!”)

    ‘Had Enough?’의 힘

    걸프전에서 완승을 거둔 아버지 부시(George Herbert Walker Bush)의 공적에도 불구하고 미국 국민은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빌 클린턴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1994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절치부심 보수혁명의 기치 아래 40년 만에 상하 양원을 민주당으로부터 빼앗았다.

    당시 승리의 주역이 바로 네오콘(Neocon·신보수주의자)으로 유명한 뉴트 깅리치(Newt Gingrich)다. 그는 1등 공신으로 인정받아 58대 하원의장을 지냈다. 그러나 그 후 12년 만에 워싱턴 의회를 민주당에 고스란히 넘겨주게 되었다. 2006년 11월7일의 중간선거 결과가 그랬다.

    My party has so bungled the job of governing that the best campaign slogan for Democrats today could be boiled down to just two words: “Had enough?”(나의 당은 너무 엉망으로 집권하여 현재 민주당의 선거 슬로건은 단 두 마디 “Had enough?”로 압축될 수 있습니다.)

    2006년 3월 시사주간지 ‘타임’에 실린 깅리치의 말이다.

    Had Enough?는 Have you had enough?(지금까지 만족하셨습니까→질리지 않으셨습니까)의 생략형이다.

    1999년 은퇴한 깅리치는 공화당의 실정(失政)을 분명히 인정하면서 The Hill(의회)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My advice to Democrats rankled some of his Republican colleagues. But I am concerned that the GOP is not evolving. The reason why Democrats stayed in the majority for decades before 1994 was because they were constantly coming up with new ideas.(민주당에 대한 나의 충고는 공화당 동료들을 분노케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공화당이 지지부진한 데 대해 우려한다. 민주당이 1994년 이전 수십년 동안 다수당의 위치를 유지한 것은 그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기 때문이다.)

    그가 반대당인 민주당에 선거 슬로건까지 작명(?)해준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의 인물 됨됨이를 살펴보면 금세 수긍이 간다. 힐러리를 ‘a bitch(개 같은 년)’라고 불러 논란을 일으켰는가 하면, 공화당 의원이라도 자신의 마음에 안 들면 거침없이 독설을 퍼풋곤 했다. 1983년엔 상원 재무위원장인 밥 돌(Bob Dole)을 가리켜 “Bob Dole is the tax collector for the welfare state(복지국가를 위한 세금 징수원)”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말, 여성 최초로 하원의장에 오른 낸시 펠로시(Nancy Pelosi·민주)는 깅리치가 제안한 이 구절 Had Enough?를 사용한 연설로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펠로시가 ‘The Campaign for America’s Future’라는 단체에서 연설한 내용의 일부를 보자.

    Have you had enough of a war that has failed to make America more secure? Have you had enough of paying higher prices for gasoline and prescription drugs in order to increase the profits of pharmaceutical and oil companies? Have you had enough of seeing America led in the wrong direction? (미국을 보다 위험하게 한 전쟁에 진저리나지 않으세요? 유가(油價)와 약값을 더 많이 치러 석유회사와 제약회사의 이익을 늘리는 데 진저리나지 않으세요? 미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끌려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에 진저리나지 않으세요?)

    “Have you had enough?”라고 물을 때마다 청중은 “Yeah!”라고 대답했으며 그도 “I thought so(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라고 결론지었다.

    깅리치의 충고가 있고 한 달 후 민주당 하원의원을 지낸 팀 로에머(Tim Roemer)는 ‘Had Enough? Vote Democratic!(질리지 않습니까? 민주당에 찍으세요!)’라는 구호를 민주당에 제안하는 칼럼을 ‘뉴욕타임스’에 썼다. Democratic은 the Democratic Party나 the Democratic candidate의 약식 표현이다. 그런데 사실, 60년 전인 1946년에 공화당의 선전간부 칼 프로스트(Karl Frost)가 제안해 채택된 구호가 “Had Enough? Vote Republican!”이었다. 이 전략이 먹혀 그 해 공화당은 상하 양원을 지배했다. 여하튼 ‘Had Enough?’는 깅리치에 의해 민주당에 넘어왔고, 민주당 후보들이 이구동성으로 유권자에게 호소하는 내용은 이렇다.

    The administration said Iraqis would greet us with roses as liberators, yet our soldiers are attacked with homemade bombs and rocket-propelled grenades. Had Enough? Vote Democratic.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사람들이 장미꽃을 들고 우리를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지금도 우리의 군인들은 미국산 포탄과 RPG(로켓추진수류탄)로 공격받고 있습니다. 지긋지긋하지 않으세요? 민주당에 표를 주세요!)

    The administration said it was prepared for a hurricane in New Orleans, yet our government’s feeble response prompted Bangladesh to offer us $1 million in aid. Had Enough? Vote Democratic! (부시 행정부는 뉴올리언스 허리케인을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방글라데시에 100만달러를 원조해달라고 종용했으니 이 얼마나 맥없는 대응입니까? 만족하십니까? 민주당에 표를 주세요!)

    The administration said it would bring competency to our federal budget, yet our nation faces catastrophic deficits. Had Enough? Vote Democratic! (부시 행정부는 연방예산의 수지균형을 잘 맞추겠다고 말했지만 국민은 엄청난 적자 재정지출에 직면해 있습니다. 지긋지긋하지 않으세요? 민주당에 표를 주세요!)

    한국의 정치현실과 오버랩되어 묘한 여운이 남는다. 링컨이 150년 전에 한 말이 떠오른다. Public sentiment is everything, with public sentiment, nothing can fail; without it nothing can succeed.(국민의 정서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 국민의 정서에 순(順) 하면 성공하고, 거스르면 실패한다.)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라는 얘기다.

    So do I · So is it

    브루투스(Brutus)는 로마 공화정 말기의 내란 때 폼페이우스(Pompeius) 편에 가담하여 시저(Caesar)에게 대항했지만, 시저는 그를 사면하였을 뿐만 아니라 갈리아 키사르피나의 총독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그는 왕이 되고자 하는 시저의 야심을 알아채고 기원전 44년 3월15일 롱기누스(Longinus) 등과 함께 시저를 암살했다. 로마의 전기작가 수에토니우스(Suetonius)는 ‘the Lives of the Twelve Caesars(‘12황제의 전기’에서 그때 그 장면을 ‘Et tu, Brute’라고 묘사했다. 영어로는 ‘You too, Brutus!’나 ‘Even you, Brutus!’로 번역되며 Brutus의 동격어로 my son이나 my child를 넣기도 한다. 우리말로는 ‘브루투스 너마저!’라고 옮긴다.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이 배반했을 때 쓰는 말이 되었다.

    앞 문장과 연결할 때 쓰는 부사로 우리말의 ‘~도’에 해당하는 것이 ‘too’이다. 도치(倒置)구문에서는 ‘so’를 사용하고, 부정문에서는 either, neither(도치부정문)를 사용한다.

    A: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I like coffee.)

    B: 나도. (I like it, too. = Me, too. = So do I. = Same here.)

    [대화1]

    Clerk(관공서 직원): You kept a dog without a license. You know your old license expired on January 31st? Why do you refuse to renew the license? (선생님은 허가장 없이 개를 길렀어요. 전에 받은 허가장이 1월31일부로 만기된 것 아시지요? 왜 갱신하지 않으시죠?)

    Towner(주민): I know. And so did the dog.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의 개도 만기가 되었거든요(저의 개도 죽었거든요).)

    [대화2]

    Bride(신부): Dearest, now that we are married, I have a secret to tell you! My left eye is made of glass. (여보, 우리가 결혼한 이상, 당신에게 비밀 하나를 말할게요. 내 왼쪽 눈은 유리로 되어있답니다.)

    Bridegroom(신랑): Never mind. So are the diamonds in your engagement ring! (괜찮아요. 당신에게 준 약혼반지의 다이아도 유리로 된 걸요!)

    미국 전(前) 국무장관 콜린 파월(Colin Powell)의 말을 보자. I have lived in and risen in a white-dominated society and a white - dominated profession, but not by denying my race, not by seeing it as a chain holding me back or an obstacle to be overcome. Others may use my race against me, but I will never use it against myself. My blackness has been a source of pride, strength, and inspiration, and so has my being an American. (난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그리고 백인이 지배하는 전문직 종사자들 속에서 살고 성공했지만, 그것은 나의 인종을 나의 길을 막는 사슬로 보지 않음으로써 혹은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여기지 않음으로써 가능했다. 남들은 인종을 내 약점으로 삼을지 모르지만 난 결코 그렇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내가 흑인이라는 것은 자존심과 힘과 영감의 원천이었고, 내가 미국인이라는 것 또한 그랬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의 섬세한 서정시 ‘The Rainbow’를 보자.

    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볼 때면

    A rainbow in the sky:

    언제나 이 가슴은 두근거려요:

    So was it when my life began;

    나의 삶이 시작한 그때도 그러하였고;

    So is it now I am a man;

    어른이 된 지금 역시 그렇죠;

    So be it when I shall grow old.

    내가 늙어서도 그럴 테고요.

    leaps up은 일반 동사인데, 그것을 be동사(was, is, be)로 받고 있다. 동작개념(do동사)을 상태개념(be동사)화한 것이 특징적이다. 앞 문장에 공감을 표시할 때 So+동사+주어의 형태를 띠는 것이 보통이지만 앞말을 확인·강조하는 경우 ‘So+주어+동사’의 어순을 취한다.

    A: 로버트는 유능해. (Robert is capable.)

    B: 그렇고 말고. (Yes, he is that. = Yes, indeed. = Yes, he is. = So he is. = Ditto. = That’s what I want to say.)

    Bush의 ‘neither do we’

    [대화1]

    A: 나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아. (I don’t like coffee.)

    B: 나도 그래. (I don’t, either. = Nor I, either. = Neither do I. Me[Mine], neither.)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if any would not work, neither should he eat. = If any would not work, neither let him eat.) - 신약성경의 데살로니가(Thessalonians) 후서 3장10절.

    부시 대통령의 잦은 말실수는 ‘Bushism’과 ‘Bushlexia’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Bushism은 부시의 잘못 말하거나 글을 읽는 병적 증상을 경멸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Bushlexia는 부시(Bush)와 dyslexia(실독증·失讀症)의 합성(combination)이다. 2004년 8월5일 미 국방부에서 열린 베트남전 참전용사 모임에 참석한 부시는 테러와의 전쟁에 4170억달러(약 486조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겠다는 내용의 연설을 하며 간단한 영문법을 틀렸다. 문제가 된 대목은 다음과 같다. They never stop thinking about new ways to harm our country and our people, and neither do we(우리의 적들은 우리나라와 국민을 해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고, 우리 역시 그렇다). 여기서 neither do we는 ‘우리 역시 그렇다’, 즉 ‘미국 정부도 자국민과 자기 나라에 위협을 주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끊임없이 고안한다’는 뜻이 된다. 부시가 연설하는 동안 참전용사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부시의 말실수는 부전자전(父傳子傳)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사망한 여류 정치인 리처드(Dorothy Ann Willis Richards)는 대통령선거로 이어지는 1988년 민주당 전국대회의 기조연설(the keynote address)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당시 부통령이던 공화당의 부시에게 일격을 가한 유명한 구절 때문이다. “Poor George, he can’t help it. He was born with a silver foot in his mouth(한심한 조지, 그는 어쩔 수 없어요. 입에 은으로 된 발을 물고 태어났거든요).” 이 표현은 ‘be born with a silver[gold] spoon in one’s mouth(은[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다, 부유한 집안에 태어나다)’와 ‘put one’s foot in[into] one’s mouth(자기의 입에 자기의 발을 넣다, 부주의로 말을 실수하다)’를 혼합해서 만든 말이다.

    리처드는 여성 최초로 텍사스주지사(1991~1995)에 당선되었다. 그런데 1995년 주지사선거에서 아들 부시(George Walker Bush)에게 패했다. 아버지의 설움을 아들이 설욕한 셈이다.

    Already와 Yet의 용법

    any와 some의 용법(usage)과 마찬가지로 already는 긍정문에 yet은 부정문·의문문에 사용된다.

    A: Have you finished your breakfast yet? (아침식사를 벌써 한 거야?)

    B: Yes, I have already. (응, 이미 먹었지.) / No, I have not yet. (아니, 아직.)

    그러나 already가 의문문에 사용될 때도 있는데, 이때는 ‘thus early(이렇게 일찍이)’의 뜻으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해버린 일에 대한 놀라움(또는 미심쩍음)을 표시한다. Has he started yet?은 ‘그가 이미 출발했나?’라는 의미의 일반의문문이지만 Has he started already?는 ‘그가 벌써 출발했다고?(=He has started already!)’ 하며 놀라움을 표시하는 수사의문문이다. 그룹 ‘산울림’의 데뷔앨범에 실린 ‘아니 벌써’의 노랫말 ‘아니 벌써 해가 솟았나? 창문 밖이 훤하게 밝았네!’를 영어로 하면 ‘Has the sun risen already? It has grow light outside the window!’가 된다.

    ‘우리는 아직 식사를 하지 않았다’를 영어로 표현할 경우, We haven’t eaten yet이나 We still haven’t eaten이 된다. 그러나 이 두 문장에는 상당한 의미상의 차이가 있다. 전자는 부정(否定)의 중단을 내포하며 곧 식사를 하게 된다는 의미이고, 후자는 한동안 계속 식사를 하지 않아 속이 상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yet과 still의 위치에 주의해야 한다.

    You ain’t seen nothing yet

    You haven’t seen anything yet을 직역하면 ‘여러분은 아직 어떤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이다. 바꾸어 말하면 곧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가 진짜입니다’가 된다. 같은 의미의 상투(常套)어로 You ain’t seen nothing yet이 있다. ain’t는 am not, 또는 are[is] not, have[has] not의 단축형으로 일부에선 ‘교육을 못 받은 사람이 쓰는 말’ 또는 ‘사투리’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교양 있는 사람들도 두루 쓰는 표현이다. 문제는 ‘You ain’t seen nothing yet’이 어법에 맞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어나 영어를 막론하고 전달 효과를 증대하기 위해 이중부정(二重否定)을 많이 사용한다. 두 번 부정하면 긍정이 되고(Two nos makes a yes), 이중부정은 강한 긍정과 같기(Double negation is equal to strong affirmation) 때문이다. 그는 백방으로 노력했다(He left no stones unturned = He tried every means possible). Don’t open a shop unless you know how to smile(가게를 연다면 미소부터 배워라). Capacity never loses opportunity(재능은 반드시 기회를 얻게 마련이다).

    You ain’t seen nothing yet은 ‘여러분은 아직 어떤 것도 보지 못한 것이 아니다’로 번역된다. 현재 쓰이는 의미대로 ‘여러분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가 되려면 You haven’t seen anything yet이나 You have seen nothing yet이라고 해야 옳다. 문법상으로는 옳지 않지만 You ain’t seen nothing yet은 굳어진 표현(set phrase)으로 일상회화에서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비슷한 예가 또 있다. I have nothing(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이라고만 해도 되는데,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I don’t have nothing이라고 곧잘 쓴다. 우리가 ‘역전(驛前)앞’, ‘전선(電線)줄’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경우다. 1970년대에 활동한 바크만 터너 오버드라이브(Bachman Turner Overdrive· BTO)의 대표곡 중에 You ain’t seen nothing yet이 있다.

    아버지 부시의 1988년 선거구호는 ‘I will never break my pledge of no new taxes(세금인상은 없다는 약속을 꼭 지키겠다)’였다. 그러나 부시가 대통령이 된 뒤 미국 경제는 침체의 골이 더 깊어져 소득세율을 대폭 높이고, 휘발유·담배·주류에 대한 세금을 인상해야 했다. 레이건(Reagan) 전 대통령(재임기간 1981~1989)은 1992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부시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And let us all renew our commitment. Renew our pledge to day by day, person by person, make our country and the world a better place to live. Then when the nations of the world turn to us and say, “America, you are the model of freedom and prosperity.” We can turn to them and say, “you ain’t seen nothing, yet!” (우리 모두는 우리의 약속을 새롭게 합시다. 날마다 사람마다 우리의 맹세를 새롭게 합시다. 우리나라와 세계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듭시다. 전세계가 우리에게 “미국이여, 당신네는 자유와 번영의 귀감입니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들을 향하여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 부시는 1992년 재선에서 클린턴에게 패했다. 클린턴은 ‘It’s the Economy, Stupid(문제는 경제야, 뭘 몰라)’란 구호 한 방으로 부시를 날려버렸다. 8년 동안 클린턴-고어 행정부는 경제를 되살렸다. 2000년 선거 당시 민주당 대통령후보 앨 고어(Al Gore)의 주제가(theme song)는 ‘My pledge to you is you ain’t seen nothing yet(뭔가 보여드리겠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맹세합니다)’이었다.

    앨 고어에 맞선 아들 부시는 이렇게 대응했다. My opponent says you ain’t seen nothing yet. He’s right. I believe the reason our economy is so strong today is because of the Ronald Reagan tax cuts of the ‘80s. (저의 상대는 아직 어떤 것도 보여준 게 없다고 말합니다. 옳은 말입니다. 우리의 경제가 오늘날 이렇게 탄탄한 이유는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의 세금 삭감이라고 믿습니다.)

    You ain’t seen nothing yet은 잘못된 어법임에도 불구하고 대중문화에서나 정치현장에서 서슴없이 구사된다. ‘부정+부정=강한 긍정’이지만 ‘부정+부정=강한 부정’이 되기도 한다는 어법규정을 마련해야 할 판이다.

    UC 버클리대의 언어학자 지오프리 넌버그(Geoffrey Nunberg)는 “The eighteenth-century grammarians accepted the doctrine that usage was the final arbiter of correctness(18세기 문법학자들은 습관적 사용이 정확성을 결정한다는 원칙을 수용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미국의 ‘Merriam-Webster’s Dictionary’의 저자인 노아 웹스터(Noah Webster)도 ‘Grammar is formed on language, and not language on grammar(문법이 말을 기초로 하여 형성됐지, 문법을 기초로 하여 말이 형성된 것이 아니다)’라는 원칙에 따라 사전을 편찬했으며 지금도 그 원칙은 지켜지고 있다. 언어에서는 용법(Usage)이 규칙(Rule) 못지않게 중요하다.

    “대통령의 전 정책실장은 ‘신문에서는 종합부동산세 인상 때문에 ‘세금폭탄’이라고 하는데 아직 멀었다’고 어제 말했다.” 지난해 7월4일자 중앙 일간지에 보도된 기사의 한 대목이다. 전 정책실장이 했다는 말을 영어로 옮기면 “Newspapers call the new policy a ‘tax bomb’ because of the increase in comprehensive real estate taxes. But you ain’t seen nothing yet”이다. ‘아직 멀었다’는 ‘지금까지 보여준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앞으로 뭔가를 더 보여줄 것이다’는 엄포이다.

    The best is yet to be

    yet이 ‘be to’나 ‘have to’와 함께 쓰이면 미래를 예측하는 의미의 ‘이윽고’ ‘앞으로’ ‘언젠가는’ ‘이제부터’가 된다. The point is yet to come(이야기의 핵심은 이제부터다=아직 이야기의 핵심이 나오지 않았다). The worst is yet to come(최악의 사태가 이제 올 것이다=최악의 사태는 아직 오지 않았다). The time is yet to come(때는 이제 올 것이다=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Although there has been much public debate over these issues, the best solution has yet to be found.(이 문제에 관해 많은 공개토론이 있었지만, 최선의 해결책을 아직 찾지 못했다.) Whatever transpires, it is ever ‘the best is yet to be’(어떤 여건 속에서도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스코틀랜드 목사 오스왈드 챔버스(Oswald Chambers)가 한 말이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의 시 ‘Rabbi Ben Ezra’의 첫 연을 보자.

    Grow old along with me!

    The best is yet to be,

    The last of life, for which the first was made:

    Our times are in His hand

    Who saith “A whole I planned,

    Youth shows but half; trust God: see all, nor be afraid!’’

    (나와 함께 늙어가세!

    가장 좋은 부분은 이제부터네,

    인생의 말년 - 인생의 초년은 말년을 위해 만들어진 것:

    우리의 일생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네. 그분은 말씀하셨네.

    “모든 것은 내가 계획하였노라. 젊은 시절은 반절만을 보여줄 뿐;

    나를 믿어라: 전체를 보아라, 두려워하지 말라.”)

    이 시의 관점은 찰나(刹那·passing moment)를 추구하는 향락주의(Epicureanism)나 무신론(skepticism)과는 정반대이다. 시인의 기독교 신앙을 표현한 것이다.

    ‘Grow old along with me. The best is yet to be.’는 여러 음악가가 자신의 곡에 인용했다. 존 레논(John Lennon)은 ‘Grow Old with Me’를 제목으로 하는 곡을 만들기도 했다.

    Grow old along with me

    나와 함께 늙어가요

    The best is yet to be

    가장 좋은 때가 아직 남아 있어요

    When our time has come

    우리의 시간이 올 때,

    We will be as one

    우리는 하나가 될 거예요.

    God bless our love

    하나님! 우리의 사랑을 축복하여 주소서

    God bless our love

    하나님! 우리의 사랑을 축복하여 주소서

    So long이 작별인사가 된 사연

    작별 인사 goodbye(안녕히 계십시오[가십시오], 안녕)는 God be with ye(you)(하느님이 당신과 함께 하시기를)의 혼성(混成)이다. 이 말은 영국의 작가 가브리엘 하비(Gabriel Harvey)가 1575년 한 편지에서 최초로 사용하였다. god이 good으로 바뀐 것은 good day, good night, good morning 등으로 유추(類推·analogy)할 수 있다.

    오랫동안 헤어질 때 쓰는 Farewell(안녕!, 잘 가시오!)은 원래 ‘Fare well’이라는 명령문에서 생성된 말이다. fare는 ‘go(가다)’ ‘travel(여행하다)’에 해당하는 시어(詩語)다. He fared forth on his journey는 ‘그는 여행길을 떠났다’는 의미다. fare가 명사로 사용되면 (기차·전차·버스·배 등의) 운임을 뜻한다. a railway[taxi] fare: 철도 운임[택시 요금]. a single[double] fare: 편도[왕복] 요금.

    so long은 형용사구로 치면 ‘아주 긴’이란 의미이고, 부사구로 치면 ‘아주 길게’란 의미이다. Forgive me for taking so long to answer your letter.(답장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You have been saying that so long!(같은 말을 몇 번씩이나 되씹니!) The rice was kept in the warehouse so long that it got stale from the heat. (쌀을 창고에 너무 오래 두어 못쓰게 됐다.)

    So long에 느낌표(exclamation point)를 붙여 So long!이라고 하면 작별인사가 되어 ‘안녕! (Good-bye, Farewell, Adieu)’ ‘그럼 또!(See you later)’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에 대해 ‘The Dictionary of American Slang’은 “origin unknown(어원 알 수 없음)”이라고 했지만 ‘the Oxford English Dictionary’나 ‘The American Language’, 그리고 저명한 언어학자 위클리(Weekley) 등이 구명한 어원(etymology)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1)어원학자들이 우선하는 어원은 독일어 adieu so lange이다. adieu는 프랑스 말에서 차용한 작별인사이고, so lange는 영어의 so long as we’re apart(우리가 떨어져 있는 동안에)에서 밑줄부분이 생략된 접속사이다. 이는 노르웨이 말 ‘Farvel sa lenge(Farewell so long)’과 스웨덴 말(Swedish) ‘Hej sa lange(Good-bye for now)’와 같은 의미이다.

    (2)‘(it will seem) so long (till we meet again)(우리가 다시 만날 때까지 오래 걸릴 것 같다)’에서 괄호부분이 생략된 표현이라는 주장도 있다.

    (3)17세기에 ‘평안(peace)’이라는 의미의 아랍어 살람(Salaam)과 헤브루어 샬롬(Shalom)의 전와(轉訛·corruption: 어떤 말이 본래의 뜻과 달리 전해져 그릇되게 굳어짐)이다. 또는 회교도들이 만날 때마다 상투적으로 사용하는 인사말 ‘살라마리쿰(Assalamu alaikum)의 전와이다. Assalamu alaikum을 영어로 번역하면 Peace be upon you(당신에게 평화가 깃들기를)나 Wishing you peace가 된다.

    미국영어에서 ‘So long!’의 최초 사용으로 공인(attestation)된 것은 휘트먼(Walt Whitman)의 유명한 시집(1860년 판) ‘Leaves of Grass’의 마지막 시 제목 ‘So Long’과 본문에서다. 이 시는 죽음에 관한 시(Poetry of Death)로 모두 77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일부를 보자.

    I have pressed through in my own right,

    I have sung the body and the soul, war and peace have I sung,

    and the songs of life and death,

    And the songs of birth, and shown that there are many births.

    (나는 천성적으로 밀어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영(靈)과 육(肉)을 노래했고 전쟁과 평화를 노래했다,

    그리고 삶과 죽음의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탄생의 노래를, 그리고 많은 것들이 태어난다는 것을 말했다.)

    부사 잘못 쓰면 군더더기, 잘만 쓰면 보석
    이윤재

    1949년 전남 보성 출생

    중앙대 영문과 졸업

    현대건설 해외업무 담당

    중앙대, 숙명여대, 한양대, 동국대 강사

    現 한반도 영어공학연구원 원장


    I have offered my style to every one, I have journeyed with confident step;

    While my pleasure is yet at the full I whisper So long!

    And take the young woman’s hand and the young man’s hand

    for the last time.

    (나는 나의 방식을 모든 사람에게 권하였다, 나는 자신만만한 발걸음으로

    삶의 행로를 걸었다; 즐거움이 아직 한창일 때 나는 ‘안녕!’이라고 가만가만 말한다.

    그리고 젊은 남자와 젊은 여자의 손을 마지막으로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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