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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관리’ 국민훈장 받은 유영구 명지학원 이사장

“우리는 기록의 민족, 옛 지혜 살려 기록문화 선진국 돼야”

  • 이 설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기록관리’ 국민훈장 받은 유영구 명지학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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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니다” “모른다” “기억이 안 난다”…. 수많은 범죄자가 이 세 마디로 역사의 심판을 피해갔다. 우리는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어 답답한 상황을 참 많이도 보아왔다. 문서, 카세트테이프, 비디오테이프 등 이들의 행적을 증명할 무언가가 아쉽기만 했다. 그래서 “기록은 세상을 정화한다”는 유영구 명지학원 이사장의 말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고서 수집에서 시작해 우리 기록문화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유 이사장의 기록 사랑 이야기.
‘기록관리’ 국민훈장 받은 유영구 명지학원 이사장
기록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 소소한 일상부터 인생에 획을 긋는 대사까지 성실하게 적어 내려가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기록하지 않는 사람보다 정돈된 인생을 살아갈 가능성이 크다. 세월에 묻혀 잊혀갈 과거의 실패와 실수를 기록에 비춰 곱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기록의 힘’이다.

개인에서 사회로 범위를 확장시켜도 기록의 힘은 유효하다. 실미도 사건, 민청학련 사건, KAL기 폭파 사건…. 오랜 시간이 지나 비로소 공개된 당대 기록물을 통해 다시 씌어진 역사가 얼마나 많은가. 이런 의미에서 성실한 기록은 우리 사회를 투명하게 하고, 반성하게 한다. 개인도 조직도 사회도 기록이라는 거울에 비친 실패를 교훈 삼아 앞으로 나아간다.

기록관리에 기여한 공로로 11월1일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은 유영구(榮九·61) 명지학원 이사장은 재단이사장 외에도 세 가지 직책을 더 맡고 있다. 한국국가기록연구원과 한국문화유산신탁의 이사장이자 명지대·LG연암문고를 만든 주인공으로 문고를 총괄한다. 눈치 챘겠지만 그가 맡은 일들은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긴밀하다. 모두 ‘역사’ ‘기록’ ‘문화유산’이라는 단어와 관계가 깊다.

“우리나라는 김영삼 정부 때까지 기록과 관련된 법조차 마련돼 있지 않았습니다. 국가기록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기록의 가치에 눈 돌릴 틈 없이 바쁘게 달려왔기 때문이지요.”

유 이사장은 우리의 허술한 기록관리 실태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말문을 열었다. 1999년, 기록 전반에 대한 기록관리법이 제정됐다. 그전까지는 사무관리 규정에 기록과 관련된 내용이 일부 들어 있을 뿐이었다. 중요한 기록을 임의로 폐기한다 해도 규제할 근거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우리는 우수한 기록문화를 자랑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왕조의 일상을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촘촘한 구성으로 유명하다. 중국에도 왕조실록은 물론 사가(私家)의 혈통을 기록한 족보조차 없다. 한민족만이 가진 기록문화인 것이다. 기록을 기피하는 풍조가 생겨난 건 다사다난한 근·현대를 겪으면서부터다.

중요 자료 소각한 조선총독부

“일제 식민지 때 조선총독부는 부정을 은폐하기 위해 중요한 자료를 마구잡이로 소각했습니다. 이런 관행이 광복 뒤에도 이어졌지요. 그러다 6·25전쟁, 4·19혁명, 5·16군사정변을 겪으면서 ‘기록을 남겨서 득 본 사람 없다’는 잘못된 피해의식이 팽배해졌습니다.”

짧은 시간에 어지럽혀진 우리의 기록문화를 바로 세우자는 움직임이 일어난 건 불과 10년 전부터다. 변화와 성장만 좇다 그제야 뒤를 돌아볼 여유가 생긴 걸까. 기록문화 전반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한 이들이 1998년 6월에 사단법인 한국국가기록연구원을 설립했다.

연구원이 문을 연 지 10년. 국가기록연구원은 우리나라 기록관리 및 연구의 등뼈로 성장했다. 국가기록연구원이 하는 일은 크게 3가지. 기록에 대한 학문적 연구 기반을 다지고, 국가기록에 대한 정책을 마련하며, 기록을 중시하는 문화를 만들어 나간다. 이 가운데 가장 큰 수확은 기록관리법이 제정돼 국가 규모로 기록을 관리하는 큰 틀이 마련된 것.

“기록관리법이 제정된 뒤 정부 부처의 기록 실적도 크게 향상됐습니다. 특히 ‘참여정부’ 들어 대통령의 공사(公私) 기록은 모두 50만건으로 역대 대통령 전체 공사 기록(30만건)보다 훨씬 많습니다. 기록에 대한 교육도 벌이고 있고요.”

기록 관리 바람은 정부기관뿐 아니라 공·사기업으로도 확대됐다. 과거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기록 문서들이 기업이라는 큰 숲을 들여다보는 데 꼭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겨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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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설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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