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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관의 옛날 잡지를 보러가다 32

평양 중국인 배척 폭동 사건

사상 최악의 오보가 불러온 사상 최악의 참사

  • 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junbg@kaist.ac.kr

평양 중국인 배척 폭동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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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중국인 배척 폭동 사건

폭동을 피하기 위해 일본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평양역으로 몰려든 중국인들.

“중국인 목욕탕 영후탕에서 목욕하던 조선인 네 명이 칼에 맞아 죽었다!”

“시외 대치령리에서 조선인 서른 명이 중국인에게 몰살당했다!”

“서성리에서 중국인이 작당해 무기를 들고 조선인을 살해하며 시내로 진군하고 있다!”

“만주 창춘에서 동포 예순 명이 학살되었다!”

세 시간 동안 파괴와 약탈의 희열을 맛본 군중에겐 유언비어를 가려낼 분별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아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 말이 사실이기를 바랐다. 유언비어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때마다 한껏 부풀려졌다.



“중국인의 씨를 말리자!”

누군가가 외치자, 군중은 일순간 피에 주린 이리떼로 돌변했다. 피가 흥건히 묻은 곤봉을 든 장정 예닐곱 명을 앞세우고 무리를 지어 토끼몰이하듯 중국인을 찾아 헤맸다. 잿더미가 된 가게와 집을 정리하던 중국인들은 허겁지겁 피난길에 올랐다.

“저기 중국인이다!”

중국인이 발견되면 수백명이 함성을 지르며 쫓아가 기어이 때려눕혔다. 군중에게 발각된 중국인들은 채 10분이 못 돼 피투성이 시체가 돼 길가에 널브러졌다.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안면이 굳어버린 노인의 시체, 고사리 같은 두 주먹을 예쁘장하게 쥐고 두 눈을 뜬 채 땅바닥에 엎어진 영아의 시체, 젖먹이를 품에 안고 맞아죽은 여인의 시체, 온몸에 피멍이 든 임신부의 시체…. 거리에는 중국인들의 시체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평양 시내가 무정부 상태에 빠진 그날 밤, 경찰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날이 밝자 간밤의 참상이 숨김없이 드러났다. 길 위에는 부서진 상품과 가구가 산적해 보행조차 곤란했고, 전깃줄에는 찢어진 이불이 걸려 새벽바람에 흩날렸다. 평양 시내는 하룻밤 사이에 폐허로 전락했다. 온 도시가 쓰레기더미와 시체로 뒤덮였다. 서성리에 사는 중국인 조성암의 집에서만 한꺼번에 10구의 시체가 발견됐다.

밤새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던 경찰은 폭동의 기세가 한풀 꺾인 아침에야 중무장을 하고 출동했다. 뒤늦게 나타난 경찰은 밤새 공포에 떤 중국인들을 호위해 중국영사관으로 대피시켰다. 약탈과 살인은 경찰이 출동한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피난 가던 중국인 한 명이 대낮에 몰매를 맞고 살해됐고, 지하실에 숨어 있던 중국인 아홉 명이 갑자기 들이닥친 군중의 손에 몰살당했다.

그날 오후 1000여 명의 군중이 흰색 깃발을 휘날리며 기림리 중국인 피신처를 습격했다. 30여 명의 장정을 태운 트럭 한 대가 군중 사이를 오가며 폭동을 선동했다. 경찰이 중국인 보호를 명분으로 시위대에 발포해 조선인 한 명이 총에 맞아 사망하고 두 명은 중상을 입었다.

날이 저물자 폭동은 평양 시외와 진남포까지 번졌다. 중국인 상점과 가옥은 모조리 불탔고, 곳곳에서 폭행과 살육이 자행됐다. 불타는 중국인 상점과 가옥 때문에 그날 밤 평양 하늘은 유난히 밝았다.

총독부는 이틀 동안의 폭동으로 평양에서만 중국인 119명이 사망하고, 163명이 부상당하고, 63명이 실종됐으며, 방화 49건, 가옥 파괴 289건, 재산 손실 250만원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중국 국민당 정부의 조사 결과는 사망자 133명, 부상자 289명, 실종자 72명 등으로 피해 규모가 더 컸다. 뒤늦게 폭동 주동자 색출에 나선 경찰은 1200여 명의 조선인을 검거하는 기염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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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junbg@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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