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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으로 본 한·중·일 문화인류학 2

‘호루몬야키’와 ‘카오뤄’의 해체, 그리고 ‘한국음식’의 세계시민화

  •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민속학 duruju@aks.ac.kr

‘호루몬야키’와 ‘카오뤄’의 해체, 그리고 ‘한국음식’의 세계시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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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커머, 자이니카, 김근희

‘호루몬야키’와 ‘카오뤄’의 해체, 그리고 ‘한국음식’의 세계시민화

도쿄 신오쿠보의 한 한국식당. ‘7월15일 초복’이라는 한글 안내문이 선명하다.

일본에 사는 한국인이나 조선인의 시각에서 보면 도쿄는 오사카와 분명 다르다. 오사카 시내에는 이른바 ‘자이니카’(‘재일 코리안’을 줄여서 부르는 말. 재일동포를 남북한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부르려고 하면서 생겨난 용어)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조선인촌이 있는 데 반해 도쿄 시내에는 그런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0년이 되면서 도쿄 시내, 그것도 번화가인 신주쿠와 가부키쵸를 남북으로 이어주는 ‘쇼큐안도리(職安通り)’에 100여 개가 넘는 한국음식점이 즐비하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2006년 여름에 만난 도쿄대학의 이토 아비토 교수는 한국의 ‘진도’를 40년 가까이 연구하고 있는 문화인류학자다. 그는 “쇼큐안도리의 이런 현상은 정말로 놀라운 변화”라고 했다. 실제로 그전에는 도쿄 시내에 자이니카의 집단 거주지가 없었다. 자이니카는 물론 외국인 거주지역도 별도로 형성되지 않았다. 도쿄는 에도시대부터 쇼군(將軍)의 직접 지배 아래에 놓여 있었고, 근대 이후에도 일본적인 특징을 유지한 도시였기 때문이다.

특히 이토 아비토 교수는 ‘한국 사회는 일본에 비해 지역적 기반이 강력하게 작용하지 않는다’는 평가를 내린다. 이러한 경향성은 일본의 자이니카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왜, 도쿄 시내 중심가의 한 거리가 한국음식촌으로 바뀐 것일까. 여기에는 오로지 김근희라는 한국인의 노력이 깔려 있다. 50대 초반의 김근희는 쇼큐안도리에서 가장 큰 한국음식 전문 슈퍼마켓인 ‘한국광장(韓國廣場)’을 운영하는 사장이다.

김근희 사장과 나는 1993년 겨울에 그가 운영하던 민박에서 첫 인연을 맺었다. 나는 그때 일본의 김치 붐을 조사하기 위해 도쿄에 갔다. 마침 그가 운영하는 민박에 며칠 묵게 됐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김치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당시 그가 운영하던 민박은 지금의 도쿄 신오쿠보 역에서 쇼큐안도리로 통하는 골목 안에 있었다. 그 민박에서 첫 하루를 묵은 나는 이 집 마당에 가득한 김치 항아리에 맨 먼저 눈이 갔다. 1993년만 해도 일본에서 김치 붐은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했다. 이때 김근희씨는 민박 앞 큰길, 지금 그의 부인이 운영하는 ‘한국학생식당’ 자리에 조그만 한국음식 전문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 정도로 그는 김치 전파에 미쳐 있었다.

대단한 충격이었다. 그는 내게 가게 2층에 ‘한국음식문화연구소’를 건립하겠다는 생각을 내비쳤다. 일본인들은 ‘문화’라는 말에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하기에, 이곳을 한국을 알리는 창구로 이용한다면 한국김치는 물론 한국음식 전부를 일본 사회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지금 개념으로 말하면 이른바 ‘문화 마케팅 전략’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어떻게 일본인들이 한국음식을 좋아하겠는가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김근희씨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가 식민지라는 불행한 상황에서 일본에 온 자이니카 1세대에 속하지 않는 것과 관계가 깊다. 그는 1981년 일본에 유학을 와서 명문 히토쓰바시대학에서 사회학 박사과정을 마친 지식인이다. 1965년에 한일 수교가 이루어졌지만 한국 사회에서 식민지 경험의 그늘은 좀체 걷히지 않았다. 일본 사회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물론 일제 강점기에 실시되던 조선인에 대한 ‘국민화(國民化)’ 정책은 바뀌었고 자이니카를 외국인으로 인정하긴 했지만, 차별은 더욱 심해졌다.

그러나 1950년대에 태어난 한국인 가운데는 식민지 경험을 직접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전 세대에 비해 좀 더 개방적인 사람도 많다. 특히 1970년대 이후 일본과의 문화적 교류가 증가하면서 유학이나 사업을 목적으로 일본에 온 후 아예 정착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이들을 일본 내 자이니카 사회에서는 뉴커머(New Comer)라고 부른다. 김근희씨 역시 뉴커머에 속하는 한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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