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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이 쓰는 이사람의 삶

‘불국사 화가’ 박대성

“몸을 불편케 내몰아야 정신을 시퍼렇게 벼를 수 있지”

  • 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불국사 화가’ 박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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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와 通하다

‘불국사 화가’ 박대성

오랜 친구 이문열 작가와 함께 한 박 화백.

그때 이미 그는 대가 중의 대가였다. 국전에 내리 8번 입선한 것은 차라리 시시한 전적이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중앙미술대상을 받았으며, 가나아트의 전속화가에다, 호암갤러리의 첫 초대전에서 650평을 가득 메우는 대작 중심의 전시를 한 경력에, 일찍이 대만 화단에서도 귀국을 말리던 ‘공인받은 몸’이었다. 그런데 불국사 앞에서 붓이 나가주지 않는 것이었다.

날마다 불국사를 바라봤다. 지극정성으로 불국사를 그리고 또 그렸다. 그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차츰 불국사가 손에 잡혀오기 시작했다. 주변이 점점 명료해졌다.

“불국사는 가로 길이가 긴 가람이거든. 정면에서 보면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요. 초점을 잡을 수가 없어 미터수를 재서 초점을 셋으로 나눴지.”

오래 보고 있자니 신라의 천재 건축가 김대성이 어떤 마음으로 불국사를 지었는지 훤히 보였다. 불국사에 관한 한 이제 박대성만큼 할 말이 많은 사람은 흔치 않다. 교감의 정도가 얼마 만큼인가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다.



“대낮에도 보고 한밤에도 보고 달빛 아래서도 보고 온갖 불국사를 다 봤는데 눈 내린 불국사를 보지 못했어. 경주에 7년 동안 눈이 안 왔다는 겁니다. 눈 덮인 불국사를 한번 보기는 봐야겠는데…어느 날 한밤중 줄기차게 눈이 내려 쌓이데요. 불국사가 흰눈으로 수북하게 덮이는 것을 뚫어지게 지켜봤어. 그리고 한 20분 후에 거짓말같이 싹 녹아버리데. 뭔가 날 돕기는 돕는구나 싶더라고.”

나는 이번 경주길에 가로 10m, 높이 2.5m, 그의 화실 한 벽면을 가득 채우는 2000호짜리 불국사 그림 앞에서 하룻밤을 새웠다. 실제와 똑같은 천년송 10여 그루 사이로 실제와 똑같은 기왓장과 누대와 석축과 난간을 가진 불국사가 마주 보며 길게 누워 있었다. 크기가 거대하다고 그림이 사람을 압도하는 건 아니니라. 건축이 아니라 회화가, 건축물만한 공간감과 신비와 무게와 울림을 지닐 수 있다는 실감을 전에는 한 적 없다.

소산의 불국사는 이미 평면 위의 불국사가 아니었다. 마주 선 사람을 그 안으로 빨아들이는 불국사였고, 공간을 뚫고나와 이쪽의 가슴 속으로 확장하는 불국사였다.

소산(小山)은 대성(大成)이란 이름을 눅이라고 친척어른이 붙여준 그의 아호다. 소산말고 소평(小平)이란 호도 같이 쓴다.

토함산에 똬리 튼 용

나는 소산을 서너 번 만났다. 경주에 세 번 갔고 KTX로 대구까지 동행한 적이 있다. 그의 이야기는 간결하고 강렬해서 마음속으로 어록을 만들어볼 정도였다. 그러나 불국사 그림 앞에서 나는, 화가라면 솔거밖에 없는 줄 알았다는 이야기, 자신이 그린 소나무 그림에 새가 날아와 부딪혀 떨어지는 화가를 어릴 적부터 동경했다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솔거-신라-경주-김대성-불국사-박대성’이 내 머릿속에서 한 끈에 주르륵 꿰어지는 건 일종의 감격이었다.

“불국사를 지을 때 김대성 그 어른이 염두에 둔 건 용이라는 걸 알았어요. 보라고! 북과 운판이 놓인 종각은 용의 머리거든. 머리를 동해 쪽을 향해 두고 있지. 석축의 돌을 봐요. 머리 쪽은 자그맣다가 몸통 쪽에 오면 커졌다가 꼬리 쪽에 가면 다시 작아지지. 그건 용의 비늘이거든. 청운교, 백운교는 앞발이고 연화 칠보교는 뒷발이지. 서쪽으로 꼬리 부분을 가서 보면 더욱 절묘해. 길게 드러누운 것도 딱 용의 형상이지. 위에서 내려다보면 더욱 확실한 것이 긴 회랑을 이루며 똬리를 틀고 있잖아. 용의 현실 동물은 뱀이라고. 그리고 정가운데 머리를 치켜든 부분에 대웅전 부처님이 딱 앉아 계시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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