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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헤는 문학선비’ 이순원

“소설은 글로 짓는 집… 같은 집 또 지을 수야 없죠”

  • 원재훈 시인 whonjh@empal.com

‘별 헤는 문학선비’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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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순원의 작품세계는 스펙트럼이 넓다. ‘19세’와 ‘은비령’ ‘마흔에게 바친다’ ‘압구정동에는 비상구가 없다’가 한 작가에게서 나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상상력이 탁월하다. 무엇보다 그는 야멸차고, 동정 없고, 까칠한 세상에서 따뜻한 인간의 마음을 간직하고 살아간다. 그래서 나는 그를 좋아하고 따른다.
‘별 헤는 문학선비’ 이순원
이순원(50·李舜源) 형 집에서 따뜻한 저녁식사를 하기로 약속했다.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여서 반가운 마음에 덜컥 집으로 찾아가겠다고 했다. 언젠가부터 느끼기 시작한 건데, 그동안 내가 바쁘게 살아서인지 주위를 돌아보지 못했다. 주위를 돌아볼 여유도 마음도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내 앞에 떨어지는 ‘급한 일’들을 처리하기에 바빴다.

나는 꺼져가는 모닥불 불씨처럼 겨우 눈을 뜨고 찬바람을 맞고 있었다. 그런데 묘한 것이, 그런 나에게, 벌거벗은 마음에, 세상은 차가운 바람과 눈보라를 몰고 왔다. 정호승 시인의 ‘세상은 나에게 소주 한 잔 사주지 않았다’는 시 구절이 떠올랐다. 이런 날에는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 그리운 법이다. 내가 그리하진 못했어도 위로받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일 터.

이순원과 통화를 하고 나자 가물거리며 남아 있던 마음의 불씨가 타오른다. 그 불쏘시개가 바로 저녁식사 약속이다. 아주 오랜만에 통화했는데, 어젯밤에 늦도록 술 마시고 아침에 안부인사하는 것 같다. 그렇게 이순원은 늘 편안하고 다정하다. 야멸차고, 동정 없고, 까칠한 세상에 그는 따뜻한 인간의 마음을 고수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를 좋아하고 따른다.

아늑한 환상

초인종을 누르고 집 안에 들어가니 몇 년 전에 본 풍경과 다른 게 하나 없다. 반갑게 맞아주는 이순원 역시 내 눈에는 별로 변한 게 없다. 부인에게 인사하고 서재에 마주 앉아 노트를 펼치니 금세 부인이 따뜻한 차를 내온다. 향기로운 국산 차다.



오래된 나무 책상엔 구형 노트북이 올라가 있고, 책장엔 빈틈없이 책들이 일어나 있거나 누워 있다. 빡빡한 공간이지만, 나무 우거진 깊은 숲에 들어온 느낌이다. 어디선가 다람쥐가 도토리를 물고 뽀르르 달려갈 것 같다. 그런 아늑한 환상에 젖다 차를 마시면서 현실로 돌아오자 문득 그의 나이가 궁금했다.

“이제 쉰을 넘겼어요. 새해 들어 지나온 날들을 뒤돌아보니 그동안 내가 참 특별한 대접을 받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고마운 일이지요. 내가 잘나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에요.”

그의 책상 위에 올라 앉은 책들 중엔 최근에 나온 소설이 많았는데, 의외로 언론 리뷰가 거의 없었고 서점 판매 역시 부진해 내가 모르는 책들, 그냥 나왔다 지나쳐가는 작품이 많았다. 이순원은 “이분들의 소설도 좋은데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에 비해 자신은 과분한 평가를 받았다는 ‘겸손’한 이야기다. 그래, 맞다. 그는 ‘겸(謙)’자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이다.

주역의 64괘 중에서 가장 좋은 괘가 ‘겸’괘라고 미술평론가 손철주 형이 가르쳐주었다. 새해에는 이 글자를 마음에 품고 살라는 덕담이었다. 나는 이순원을 겸손을 타고난 사람으로 본다. 그건 꾸민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겸손으로 마음을 꾸민다면 위선적이라는 평가를 받기 쉽다. 하지만 이순원은 안과 겉이 늘 연결돼 있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속을 알 것 같기도 모를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겸손해 보이는 건가 싶다.

“이제는 죽어도 호상(好喪)인 나이잖아요. 물론 옛 시절 이야기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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