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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 시인의 작가 열전

‘별 헤는 문학선비’ 이순원

“소설은 글로 짓는 집… 같은 집 또 지을 수야 없죠”

  • 원재훈 시인 whonjh@empal.com

‘별 헤는 문학선비’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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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헤는 문학선비’ 이순원
동네 도사견이 헐거운 목줄을 풀고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이빨을 드러내고 혀를 내밀며 침을 질질 흘리고 있으니 할아버지 할머니는 숨고, 혹시 변소에 숨었으면 냄새가 나더라도 동네 장정들이 도사견을 잡을 때까지 숨어 있고, 방송을 듣는 장정들은 어서 마을회관으로 나오라는 내용이었다. 작은 마을을 돌아다니는 도사견은 위협적인 존재이지만, 이장님 연설을 듣는 동안 터져 나오는 웃음 때문에 배꼽이 빠져 방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그 ‘우추리’는 지금도 촌장이 있는 마을이다. 전통 유교마을에서 나고 자란 이순원은 지금도 고향에 내려가면 먼저 집안에 모신 사당인 ‘사우’에 절을 하고 마을 ‘영당’에 절을 한 다음에 부모님께 인사를 한다. 전형적인 유교 집안에서 자라고, 지금도 그 관습을 지키는 그이다. 유교의 오랜 전통이던 호주제가 올해부터 폐지됐다. 그래서 전통 유교마을 출신인 선비 이순원은 어떻게생각할까 싶었다.

“저는 호주제 폐지를 찬성한 사람이에요. 저는 유교 원리주의자가 아닙니다. 남녀의 권리는 조선 중기까지 평등하게 이어졌어요. 조선 중기를 넘어서면서 신사임당의 아들 이율곡과 같은 엄정한 성리학자들이 나오면서 여성의 위치가 집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저는 남녀가 유별하긴 하지만 우위가 정해진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여성으로서의, 남성으로서의 몫이 있는 거지요. 유교 역시 마찬가지예요. 중요한 건 인간에 대한 예의입니다.”

그렇다. 때가 되면 갓 쓰고 도포 입고 마을 촌장에게 인사를 드리는 이순원이 경기도 일산 자택에서는 설거지를 한다. 아내에 대한, 아니 인간에 대한 예의이고 겸손한 행동이다.

이순원의 부인은 아마도 이 시대의 마지막 조선 여인이 아닐까 싶다. 이순원은 어린 시절에 정씨 포은가의 여인과 정혼했다. 집안 어른끼리 어린 시절에 맺어준 정혼녀와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치 시간을 저만치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 든다.



그 형수가 차려주는 저녁식사를 기대하면서 오랜만에 작가의 작업실에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니 몸과 마음이 살살 녹아내렸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노트를 덮었다. 그냥 그의 말을 듣기만 했다.

많은 작가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집 밖에 집필실을 둔 것과 달리 이순원은 집 안에 집필실이 있다. 그는 집 안에 있는 게 어울리는 사람이다. 집 안에서 아내를 도와 설거지도 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아이들과 아내도 깨운다. 형수가 저녁 준비를 하는지 맛있는 냄새가 서재로 솔솔 기어들어온다.

물레와 솟대

이순원의 방에는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물건이 있다. 하나는 물레고 하나는 솟대다. 물레는 할아버지가 만들어 할머니와 어머니가 쓰던 물건이라고 했다. 집필실에 들어서면 그 물레가 제일 먼저 눈에 띈다. 여인들의 물건인 물레를 선비의 방에 들여온 연유는 무엇일까.

“내가 열 살 때 돌아가신 할머니가 베를 짜려고 돌리던 물레래요. 비록 할머니가 물레를 돌리는 모습을 뵙지 못했지만, 어머니가 물레를 돌리는 모습은 중학교 때까지 보았습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만들어준 물레를 어머니가 물려받았고, 순서대로라면 아내가 물려받아야 하겠지만, 이제 더 이상 여인들이 물레를 돌리지 않기에 제가 물려받은 겁니다.”

이순원의 모친은 아들의 글이 물레에서 실이 나오듯, 술술 풀려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전해준 것이다. 이제는 멈추어버린 물레, 하지만 이순원은 가끔 글이 막힐 때면 막막하게 그 물레를 돌리곤 했다. 그것은 작가의 말대로 어머니의 무언의 격려고 응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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