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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외교관 최운상의 1954년 ‘제네바 한반도 통일회의’ 회고

6·25 참전국 모두 모여 만든 ‘유일한 국제공인 통일원칙’

  • 최운상 순천향대 교수, 전 駐인도대사

원로 외교관 최운상의 1954년 ‘제네바 한반도 통일회의’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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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외교관 최운상의 1954년 ‘제네바 한반도 통일회의’ 회고

유엔은 그간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많은 결의를 해왔다. 1971년에 열린 유엔총회에서 야코프 말리크 의장(왼쪽)이 한반도 문제의 집표 상황판을 쳐다보고 있다.

회의에 대비해 서울 외무부에서는 조정환 차관, 최문경 정무국장, 최운상 정무국 제1과장으로 구성된 대책반이 구성됐다. 제네바에 간 한국 대표단은 매일 일반 상용전보로 회의결과를 외무부에 보내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내용은 약간의 암호를 포함해 대체로 한글 발음을 영문으로 표기한 것이었다. 당시 외무부는 부산피난에서 환도한 직후여서 전용통신망 같은 것이 전혀 없었다. 서울 시내도 허허벌판이었다.

전문의 해독은 최문경 국장과 필자가 담당했고 이를 영문으로 타자하는 것은 필자의 책임이었다. 조정환 차관은 그 결과를 가지고 매일 경무대에 올라갔다. 경무대에서는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대기하고 있었는데, 가끔 “아니, 보고서가 이것뿐인가” 하고 핀잔을 줘 우리가 조 차관을 위로하는 일이 벌어지곤 했다.

1954년 4월26일 첫 번째 전체회의의 사회를 본 프린스 완 의장은 제네바 평화회의의 목적을 아래와 같이 천명했다.

“본 회의의 임무는 이 회의를 결정한 베를린 4개국 외무상 회의의 규정대로 평화적 방법에 의해 통일된 독립 한국을 수립하는 것이다. 이는 또한 국제적 긴장을 완화하고 아시아 다른 지역의 평화를 회복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통일 14원칙’



회의에 참석한 유엔 참전국 16개국은 한반도 문제의 해결에 관해 공통된 입장을 갖고 있었다. 공산주의에 공동으로 대처해온 경험과 6·25전쟁에서 같이 싸운 전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입장은 1947년 이래 유엔이 거듭 확인한 결정과 동일했다. 즉 ▲통일 정부는 진정한 자유 총선거에 의해 수립돼야 한다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유엔의 권위와 권능을 인정해야 한다는 두 가지 원칙이었다.

1954년 4월27일 기조연설에서 변영태 장관은 “대한민국은 1950년 10월7일 유엔총회 결의에 따를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 총회 결의는 통일된 정부 수립을 위해 유엔 감시하의 총선거 실시를 포함해 ‘헌법 제정의 권능이 있는 모든 조치(all constituent acts)’를 취할 것을 규정한 바 있다. 이어 변 장관은 “남한에서는 이미 유엔이 만족한 총선거가 실시됐으므로 유엔 감시하의 총선거는 북한에서만 실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불법적이며 침략적인 성격을 감안하면 남북한을 동격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였다.

1954년 4월28일 덜레스 미 국무장관은 “한반도 통일을 위한 실현 가능한 절차가 1950년 10월7일 유엔총회 결의 속에 이미 마련되어 있다”고 선언했다, 이 유엔 결의에 따라 설립된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UNCURK·the United Nations Commission for the Unification and Rehabilitation of Korea)은 즉시 활동을 재개해야 하며, 유엔이 위협받지 않고 임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중국군은 북한에서 철군해야 한다는 요구였다.

1950년 10월7일 유엔총회 결의는 한반도 통일의 기본원칙을 천명한 것뿐 아니라 또 다른 각도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유엔군이 북한에 진주해 자유총선거를 실시하고 한반도를 통일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사실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으로 그해 9월18일 수도 서울을 수복했지만, 이후 38선을 넘어 북한 인민군을 추격하는 데에는 별도의 법적 근거가 필요했다.

이와 관련해서 이때의 유엔총회가 한반도 문제에 관한 과거 결의의 주요 목적은 “통일되고 독립한 민주주의 정부를 한반도에 수립하는 것”이라고 천명하고, 10월7일 결의 1(a)항을 통해 “유엔군은 한반도 전체의 안정을 확립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을 건의한 것이다. 바로 이 조항이 당시 유엔군이 38선을 넘어 한반도 통일을 시도한 법적 근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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