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5일 오전 6시 어슴새벽 서울 풍납동 현대아산병원. 왕년의 철권들이 ‘투혼의 챔피언’ 최요삼과 이승에서 작별하는 영결식장에 모였다. 최요삼은 지난해 12월25일 열린 세계복싱기구(WBO) 인터컨티넨털 플라이급 타이틀 방어전에서 받은 타격으로 뇌사 상태에 빠졌다가 결국 숨을 거두었다. 그는 장기를 기증해 환자 6명의 생명을 구하는 데도 챔피언 역할을 했다.
‘4전5기 신화’의 주인공인 홍수환 한국권투인협회 회장이 추도사를 낭독하기 위해 마이크 앞에 섰다. 현역 시절에 호리호리한 몸매에 반항아 기질을 보였던 그도 세월이 흐르자 머리칼에 허옇게 서리가 앉은 점잖은 장년 신사로 변모했다.
“최요삼 챔피언이 신인왕을 받던 때, 당신의 그 상냥하고 당당한 목소리가 아직도 생각납니다. 외딴곳에서 사랑하는 이와 조용히 살고 싶다는 당신의 소박한 꿈을 일기장을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참으로 죄스럽고 서글플 따름입니다. 부디 저 세상에 가서는 그 꿈을 이루소서. 당신은 진정한 챔피언입니다.”
홍 회장의 목소리가 식장 안에 울려 퍼지자 한 시대를 풍미한 전(前) 챔프들이 눈시울을 붉힌다. 장정구, 유명우, 변정일, 지인진…. 최요삼을 가르쳤던 조민 숭민체육관장도 고개를 숙인다. 고인을 친오빠처럼 따랐던 세계복싱협회(WBA) 현역 여자 세계 챔피언 김주희가 추모시를 낭독하며 통곡한다.
“오빠, 제가 지금 보이시죠? 가슴으로 느끼고 계시죠?”
사각의 링에서는 냉혹할 만큼 강인했던 사나이들도 애절한 추모시를 듣고는 몸이 무너지면서 어깨를 들썩인다.
“뭐니뭐니 해도 복싱이 최고여”
고인을 친동생처럼 아꼈던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는 고개를 숙인 채 눈가의 물기를 손수건으로 훔친다. 그는 최요삼 가족에게 건넨 부의금 봉투에 애절한 심정으로 글을 썼다.
‘삼아! 고작 형이 해줄 수 있는 건 저승 갈 때 노잣돈과 마음밖에 없구나. 차마 형은 네가 불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보기 싫다. 내 동생이 이렇게 가는 건 정말 싫다. 뭐가 그리 급해서 먼저 가는지…. 형이 너한테 해줄 게 너무도 많은데…. 삼아! 다음 세상에서는 고통 없는 삶을 살아라. 동생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