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여정부의 주택정책은 서민의 세금부담을 늘려 부동산시장을 얼어붙게 했다.
2004년 총선을 계기로 열린우리당이 거대 여당이 된 이후 훈계의 정치는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라고 했던 정권의 겸손한 초심을 지워버렸다. 2004년 가을의 4대 개혁입법안 투쟁이 그 변신의 계기였을 것이다. ‘대통령인 국민’을 보수와 진보, 도덕과 부패, 수구꼴통과 미래연대로 나눠 패싸움으로 몰아간 것이 시작이었다.
적군과 아군을 구획하는 정치양식은 새로운 정책을 선보일 때마다 되풀이됐다. 국민은 때로는 아군으로, 때로는 적군으로 분류되는 이념 정체성의 혼란을 겪어야 했다. 신행정수도 건설에 반대하면 보수인가, 진보인가. 종합부동산세에 반대하면 보수인가, 아닌가. 메이저 신문인 동아·조선·중앙을 구독하면 진보인가, 아닌가. MBC는 보수인가, 진보인가. KBS는 어떤가.
이런 종류의 소모적 질문이 모임마다 제기됐고, 그에 대해 명백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사람들은 급기야 자신의 정체성을 되돌아봐야 했다. 정체성의 혼란은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좋게 해석되기도 하지만, 흔히 자신의 무능에 대한 좌절감을 낳고, 급기야는 피해의식으로 굳어지곤 한다.
보수표+호소표
피해의식의 원천은 이뿐 아니다. 청와대가 쏟아낸 거친 말들은 불화살이 되어 국민의 마음에 그대로 꽂혔다. 적어도 집권 초기에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속어들이 대통령 입에서 발설될 때 신선한 충격 같은 게 있었다. “막 가자는 것이지요?”라는 말이 전파를 타고 전국에 생중계됐을 때 국민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혹스러웠을 것이지만, 일단 신선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조진다’는 말이 비속어가 아니라 신문지상의 칼럼과 해설기사에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하는 일상어가 됐고, ‘대못질한다’고 대통령이 힘주어 말했을 때 국민은 급기야 마음에 대못이 박히는 듯한 아찔한 고통을 느껴야 했다. ‘대못질’이야말로 가해자로서 정권이 가한 막말의 절정이었다.
정권 말기로 다가갈수록 ‘대통령인 국민’의 마음은 상처투성이, 유혈이 낭자한 상태가 됐다. 여기에 정권 말기 쏟아진 비난여론을 맞받아친 대통령의 말, “경제도 좋고, 잘못한 것 별로 없다”는 그 말에 국민은 더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하여 유권자는 오랫동안 생각해오던 것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신하는 것, 가해자가 되어 응징하는 것, 어떤 정당들이 난립해도 응징의 표적을 고정하는 것, 바로 그것이 2007년 표심이었다.
후보들의 득표율은 이렇게 결정됐다. 반드시 보수성향은 아니더라도 현 정권과 진보여당을 응징해달라는 호소가 표심으로 나타났다고 보면, 보수진영이 얻은 64%는 보수표+호소표의 결과라 할 것이다. 이것이 중도성향 유권자 대부분이 보수진영에 가담한 이유이며, 선거 사흘 전 이명박 후보가 BBK에 개입했음을 자인하는 비디오테이프가 공개됐음에도 오히려 지지율 상승으로 마감된 이유다. 다른 후보로 지지를 옮기기에는 ‘응징 욕망’이 더 시급했고 절실했던 까닭이다. 부패와 부도덕은 다음 일이었다.
그런데 반동적 투표, 혹은 응징 투표에 해당되지 않는 예외 지역이 있다. 지역주의의 본산인 경상도와 전라도다. 이 두 지역은 예외 없이 지역주의라는 구시대적 행태로 돌아갔다. 열린우리당이 한국 정치에 기여한 공로는 지역주의의 틀을 깬 점이다. 지역연고 대신 이념을 통해 정치세력 규합에 성공했다는 것은 쉽게 묻힐 공적이 아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이 표방한 이념정치가 별로 업적을 못 내자 이념이라는 연대 요인의 호소력이 소멸됐고, 우리당은 급기야 해체되기에 이르렀다. 이념을 대체할 뚜렷한 연대요인이 없는 상태에서 후보들은 지역연고에 매달렸고 표심도 지역주의로 회귀하는 듯했다.
경상도와 전라도는 과연 지역주의로 회귀했다. 정동영 후보는 경북 6.8%, 경남 12.4%, 부산 13.5%를 얻은 데 그친 반면, 광주에서 79.8%, 전북에서 81.6%, 전남에서 78.7%를 얻었다. 이명박 후보와 이회창 후보가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각각 얻은 표는 위의 수치를 거꾸로 뒤집으면 된다. 두 지역은 민주화 이후 20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지역주의에 매달리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