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용주의와 실용개혁정치
2007년 대선에서 특이한 현상은 주요 후보들이 ‘실용주의’란 말을 공통적으로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손학규 후보가 한나라당을 뛰쳐나올 때 ‘실용노선’을 강조했으며, 정동영 후보도 실패한 이념정치와 거리를 두기 위해 자신은 ‘실용적’임을 주장했고, 이명박 후보 역시 신행정부를 ‘실용정부’로 명명할 것을 검토했을 만큼 실용주의를 지향한다. 문국현, 이인제 후보도 실용을 주장했다.
이들이 실용을 앞세운 이유는 분명하다. 실패한 이념정치와 선을 긋고, 실익과 공익개념을 내세워 유권자의 관심을 확보하려는 목적이다. 5년 전에 실용주의를 말하는 후보가 있었다면 웃음거리가 됐을 것이다. 이념정치에 신물이 난 지금은 누구나 실용주의자임을 자처한다. 시대정신의 시계추가 실용주의 쪽으로 기울었는가. 실용주의는 어떤 정치사상인가, 진보나 보수처럼 이데올로기의 한 유형인가.
한국 사회에서 실용주의는 부정적 의미로 쓰일 때가 더 많다. 편의, 편익, 편리를 도모하는 기회주의, 어떤 뚜렷한 원리, 원칙 없이 눈치를 봐가며 이익을 추구하는 임의주의와 동의어로 쓰여왔다. 기껏해야 집단의 이해갈등이 극단적 충돌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취하는 절충적 선택이 실용주의의 긍정적 의미로 쓰였을 정도다.
실증주의와 공리주의
세계관과 철학적 원리에 어긋나더라도 실익을 가져오는 것이라면 취할 수 있다는 소극적 의미의 실용과, 학문이 세상을 다스림에 있어 실익을 도모해야 한다(經世致用)는 명제로부터 출발해 이용후생(利用厚生)과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주창한 실학정신에 이르기까지 실용의 의미는 점차 넓어졌지만, 대체로 부정적, 소극적 차원에 머무른 것이 한국의 정신사적 유산이다.
열강의 침탈, 개항, 식민지, 전쟁, 그리고 군부독재 등 간난의 역사와 대면하고 극복하기 위해서는 유연하고 절충적인 논리보다 극단적 행위를 처방하는 이념과 자기희생을 정당화하는 이념체계에 더욱 매력을 느꼈던 탓이다. 관념론적 전통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현실성’을 강조하는 실용주의가 정착될 기반은 매우 취약했다.
실용주의(pragmatism)는 자유주의의 발전과정에서 뻗어 나온 하나의 철학사조 또는 세계관이다. 개인의 권리를 강조한 초기 자유주의가, 빈곤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일종의 폭력으로 바뀌자 벤담 같은 학자가 다수의 공리(公利)와 실리(實利)에 비중을 둔 수정이론을 제시했는데, 그것이 개인의 효용(utility)을 중시하는 공리주의(utilitarianism)다. 사물, 사회, 인간질서는 유용성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하는데, 사회구성원 다수가 유용성을 공유하는 것, 나아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자유주의의 목표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초기적 유용성 개념은 19세기 미국 사회와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변용되기에 이른다. 윌리엄 제임스와 존 듀이는 자연과학적 사고방식과 합리성, 경험성을 도입해 진리의 발견에 현실성, 실용성, 결과성을 중시하는 진리체계를 제안함으로써 유럽의 관념론 및 목적론적 전통과 단절을 꾀했던 것이다. 이것이 실용주의 철학이다.
진리판단의 척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이나 관념이 아니라 인간에게 어느 정도 유용성을 갖는가의 문제, 즉 실용성과 현실성이어야 한다. 실용주의는 경험세계와 실제세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만을 문제시한다는 점에서 실증주의의 후손이며, 사물과 진리의 실용성과 결과성을 중시하고 이론의 실천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행동주의적이다.
한국에서 이런 유형의 철학·사회사상을 찾으라면 박지원과 정약용으로 대표되는 조선왕조 영·정조시대의 실학사상일 것이며, 박지원의 손자인 박규수와 그의 문하생인 김옥균, 유길준, 박영효 등의 개화론을 꼽을 수 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을 관념론과 도덕론에서 찾은 주자학적 전통을 부정하고 ‘사실’과 ‘현실’에 두어야 한다는 그들의 세계관은 당시에는 가히 혁명적이었다. 주자학은 헤겔철학보다 더 관념론적이다. 명분을 버리고 공익과 실익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존 듀이는 이렇게 설명한다.
“정치이론가들은 현재 진행되는 사회의 제반 현상 속에서 자신을 위치시켜 시민들로 하여금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지혜를 발휘하고, 그들이 덜 맹목적으로, 덜 우연적으로, 더 지적으로 높은 수준의 방안들을 실행하도록 도움으로써 오류와 실수를 줄이고 성공의 혜택을 증진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 제언 속에 정치인 자신의 어떤 이념이 들어 있는지를 생각해보라. 있다면, 공익과 실익, 다시 말해 국민의 복리증진이 최고의 가치라는 확신이다. 극단적 이념정치는 국민을 어떤 이론체계와 목적과 필연 속으로 몰아넣는다. 그것이 ‘덜 지적인지’ ‘오류와 실수가 있는지’는 성찰하지 않은 채 이념적합성의 여부가 중시됐던 것이다. 진리의 가치를 실용성에 복속시키는 듀이의 철학이 때로는 도구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듣기도 하지만, 현실을 이념으로 재단하는 오류를 탈피하는 데는 매우 유용한 시각이다. 이런 의미에서 실용주의를 정치사상이기보다는 통치양식(mode of governance)으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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