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호

게도 구럭도 놓친 개혁… 개천에서 용쓰다 미꾸라지 된다?

노무현 2003-2008, 빛과 그림자 - 교육

  • 정유성 서강대 교수·교육학 yoosch@sogang.ac.kr

    입력2008-02-14 10:3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참여정부가 부동산만큼이나 골머리를 썩인 게 바로 교육이다. 정권 초기 공교육 정상화와 교육격차 해소, 사교육비 경감 같은 개혁안이 기대를 모았으나 이내 실망을 안겨줬고, 때로는 분노를 샀다. 수월성과 평등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의욕적으로 쫓았으나 일 처리 방식의 비민주성과 일관성 부재 때문에 한때 ‘동지’였던 교사집단마저 등 돌리게 만들었다. 참여정부 교육정책의 당초 목표와 그 결과 사이에 엄청난 격차가 벌어진 사정을 들여다봤다.
    게도 구럭도 놓친 개혁… 개천에서 용쓰다 미꾸라지 된다?

    참여정부는 정권 초기부터 교육행정정보시스템 도입을 놓고 교원단체와 갈등을 빚었다.

    교육은 ‘사람 사이(人間)’에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일(人間化)’이다. 한 사회 안에서 자라나는 세대에게 기존 지식과 가치를 전하는 보수적인 기능과 더불어 그들의 앞날에 필요한 새로운 삶의 틀을 마련하고 채비해주는 미래지향적인 구실을 한다. 사람 목숨을 이어가는 데 들숨 날숨이 꼭 필요하듯 이 두 가지는 교육이 꼭 해내야 할 몫이다. 더불어 그 숨이 깨끗하고 맑아야 사람이 건강하듯 교육도 이 두 가지가 제 몫을 해야 사회가 건강하다.

    우리 교육은 어떤가. 인문 숭상 풍조와 학벌사회의 오랜 모순이 아직도 ‘뿌리 너무 깊은 나무’로 역한 숨을 내뿜는다. 산업화를 넘어 지식정보화니 지구화니 하는 문명 전환의 파고가 높은데 산업시대의 구태의연한 숨에 헐떡인다. 그러다보니 제대로 된 인성(人性)도, 그렇다고 쓸모 있는 인재도 기르지 못한다. 게도 구럭도 놓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잘못된 경쟁에 쏠린 교육 탓에 숱한 사람이 실패자, 낙오자로 전락한다. 이에 따른 그릇된 의식 탓에 가장 가까운 부모 자식 사이, 스승과 제자 사이가 벌어지다 못해 뒤틀린다.

    한국 교육의 고질병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과목을 가장 오랜 시간 공부하건만 실력이 없고 제 또래에 맞는 삶을 살지 못해 흐트러진 존재로 망가지거나 심지어 죽어간다. 그렇게 공부 열심히 한 아이들을 가려 뽑건만 대학의 경쟁력은 여전히 바닥을 기고, 기업은 기업대로 쓸 만한 인재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요컨대 교육 때문에 당사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모두가 불행하다. 이렇게 신주단지 위하듯 하는 교육은 모두에게 애물단지가 돼버린 지 오래다.

    사정이 이쯤 되니 정권만 바뀌면 맨 먼저 교육개혁의 깃발을 올리고, 장밋빛 미래를 약속한다. 적어도 1995년 문민정부가 ‘교육 대(大)개혁안’을 내놓은 뒤로 어느 정권이고 교육개혁을 부르짖지 않은 정권이 없다. 그뿐인가. 유난히 수명이 짧기만 한 교육부 수장이 바뀔 때마다 크고 작은 개혁을 내걸고, 또 꾀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할 뿐이고 교육현실은 암담할 따름이다.



    한국 교육은 그 병이 너무 깊어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이다. 경제고 뭐고 떠들지만 정작 그 바탕인 교육이 이대로 가면 선진국 꿈이고 강대국 비전이고 모두 허황되다. 정작 사람다운 사람, 사람 대접하고 사람 생각하는 삶터를 바라기는 아예 글렀다. 가뜩이나 깊은 병을 더친 것이 다름 아닌 개혁 병이다.

    사실 이 병은 그 병세가 너무 깊고 복잡해서 이제 외과적 수술이나 한두 가지 증상만 다룬 처방으로 낫게 할 수가 없다. 오로지 뿌리를 갈고 체질을 바꿔야 다스릴 수 있다. 그렇다고 하루, 아니 잠시도 쉴 수 없는 교육을, 또 날마다 불거지는 문제를 그냥 둘 수는 없다. 여기서 어떤 교육개혁도, 아니 교육정책 자체가 딜레마에 부딪히게 된다. 참여정부의 교육정책과 개혁 또한 이 딜레마에 치여 죽도 밥도 아닌 어정쩡한 성과에 그치고 만 것이다.

    게도 구럭도 놓친 개혁… 개천에서 용쓰다 미꾸라지 된다?

    김진표, 윤덕홍, 김병준, 이기준(왼쪽부터 차례로)

    과도한 자신감, 안이한 대처

    참여정부의 시작은 요란했다. 이른바 진보개혁 세력이 정치 전면에 등장한 뒤 두 번째 정부였고, 그만큼 기대가 컸다. 국민의 정부가 어렵사리 IMF 외환위기를 극복한 뒤 월드컵 열기로 뜨겁고 지구화니 지식정보화니 하는 문명전환의 물결이 드높을 때 들어섰으니 더욱 그랬다. 참여정부는 교육정책만큼은 국민의정부 정책기조를 대부분 이어받았으며 여기에 좀 더 전향적인 교육정책을 더하고자 했다. 통일과 교육 두 영역이 일관되게 국민의정부와 맥을 이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교육을 둘러싼 정황은 안팎으로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졌고, 그 정책을 추진하는 주체나 교육 당사자들의 존재와 태도 또한 바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점에서 참여정부 교육정책은 그 첫걸음부터 비틀거린 셈이다.

    먼저 참여정부는 출범 당시 교육에 그다지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대선공약 중에도 다른 영역에 비해 교육관련 공약은 그리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 교원관련 전문성 강화나 복지체제 구축, 교육자치 정착, 고교 평준화 유지 및 다양화, 대입제도 수능 중심 유지 및 개선, 사교육비 경감, 교육여건 개선, 대학교육 특성화와 자율화, 교육복지 확대, 유아교육법 제정, 인적자원개발 내실화, 사립학교법 개정, 교육혁신위원회 설치 등 그 목록만 봐도 그렇다. 국민의정부 교육정책을 이어가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물론 교육은 서둘러 바꾼다고 능사가 아니며 오히려 그런 졸속한 개혁에 치여 문제가 더 커지곤 한다. 하지만 시대의 요청도 시급하고 쌓인 과제 해결도 다급한데 뜻만 앞세운 과도한 자신감과 안이한 대처가 문제였다.

    일단 그 목표설정만 봐도 그렇다. 교육정책의 기본 목표인 ‘함께 가는 학습복지사회 건설’은 무엇보다 교육복지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면서 대학 경쟁력 강화, 공교육 정상화의 목표도 함께 추구했다. 수월성과 평등성이라는 이른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쫓고자 적어도 애는 썼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런 목표설정은 너무 일반적이고 막연해서 구호에 그치기 쉽다. 그 모순과 갈등의 역동성이나 상호 연관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치밀한 정책을 수립해 꾸준하게 수행해도 모자란데, 기실 그러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 주체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해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하지 못한 탓이 크다. 앞서의 정부들과 마찬가지로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교육혁신위원회를 만들었지만 그 구성이나 위상이 오히려 약화된 것부터 그렇다. 또 청와대와 교육부 등 정책수립 및 수행기관끼리 제대로 조율이 안 되고, 중구난방으로 혼선을 빚기도 했다.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이 모든 정책을 책임지고 수행해야 할 교육부 수장들이었다. 일단 그 선정부터 구태의연한 교육학계 원로와 경제 관료들 사이를 헤매다 대통령 측근까지 오락가락했다. 인사청문회를 치르다 낙마한 경우까지 생기면서 단명한 데다, 성격이 아주 다른 장관들이 들고나면서 일관성 있는 정책추진은 아예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런 와중에 교육 당사자들이나 교육 대중의 마음과 바람을 읽어 정책에 반영한다거나 시대적 요청에 따른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것은 기대할 수조차 없는 것이 당연하다.

    의욕과 한계

    어쨌든 참여정부가 추진하고 집행한 교육정책의 주된 내용은 학교 교육력 강화를 통한 공교육 정상화, 고등교육의 수월성 확보, 교육안전망 구축과 교육격차 완화, 그리고 인적자원 관련 평생 직업교육 체제와 교육 및 인적자원개발(HRD)의 국제화 등이다.

    먼저 입시 위주 교육 탈피와 공교육 신뢰회복에 주력하고자 했다. 일단 평준화 근간을 유지하면서 교육의 다양화, 특성화를 통해 수월성 또한 높이고자 한 것이다. 교육여건개선사업을 추진해 아직 부족하지만 교육환경을 개선하고자 노력했고, 특성화 고교 확산 등 다양한 학교 모델을 세웠다. 또 학교 안에서는 수준별 이동수업을 도입하고 영어교육을 강화했으며 영재학교도 지정했다. 교원평가제를 시범 실시해 교원의 질을 높이고자 했고, 교육자치를 정착시키고자 교육감 등을 주민이 직접 뽑도록 했다. 나아가 사립학교법을 개정해 개방형 이사제를 도입하는 등 사학이 좀 더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했다.

    게도 구럭도 놓친 개혁… 개천에서 용쓰다 미꾸라지 된다?

    경기도 일산의 학원가. 참여정부가 집권하는 내내 사교육비 문제로 시끄러웠으나 아무런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또 사교육비 경감대책으로 다양한 교육수요를 학교 안으로 흡수하도록 EBS 수능 강의, 방과 후 학교 등을 시도했다. ‘삼불(三不)정책은 고수하면서 고교교육 중심의 입시 제도로 바꿔 2008년 입시부터 내신강화, 수능등급제 등을 도입했다. 교육격차를 해소하고 교육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을 선정하는 등 소외 계층이나 지역을 배려했다. 아울러 유아교육법을 제정함으로써 유아교육을 제도교육 안으로 끌어들였다.

    대학 교육력을 높이고자 전문대학원을 도입하는 등 전문화, 수월성 정책을 펴기도 했다. 대학 연구력 강화를 위해 BK에 이어 NURI(New University for Regional Innovation·지방대학혁신역량강화사업)라는 지방대학 육성 프로그램도 펼쳤다. 아울러 대학구조 개혁을 위해 국립대학의 법인화, 대학 통폐합 정책을 수립·추진했고 특성화와 국제화의 기반 마련에 노력했다.

    지식정보화 시대에 더욱 중요한 평생교육에서는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평생학습축제, 평생학습도시 조성 등의 사업을 펼쳤고, 학점은행제, 독학사, 원격대학 등을 통한 성인의 대안적 고등교육 기회 확대에도 힘썼다.

    이렇게 참여정부 교육정책의 내용만 보면 꼭 해야 할 숙제를 그런대로 열심히 한 셈이다. 거듭 확인할 수 있듯 지난 국민의 정부 정책을 이어간 것이 대부분이다. 물론 교육정책의 일관성이나 해묵은 교육관련 난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핵심이 되는 학벌사회, 경쟁위주 교육, 시험 중심 학습 등의 폐해를 극복하는 숙제나, 지구화·지식정보화의 거센 물결에 맞서고 다문화 사회나 저출산 같은 새로운 바람에 마주하는 과제 해결은 미숙하거나 부족했다.

    교육 당사자 배제한 교육정책

    그러나 정작 참여정부 교육정책의 문제는 그 내용이 아니다. 바로 그 정책 수행과정과 성과가 문제다. 일단 수행과정부터 뜯어보자. 다른 영역도 그렇지만 참여정부의 가장 큰 실책은 수행과정의 민주성, 일관성, 효율성 등의 측면을 소홀히 한 점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그 수립이나 수행과정에서 당사자들의 의견과 상황을 충분히 반영해야 정당성을 확보할 뿐 아니라 효율적으로 진행되어 바람직한 열매를 거둘 수 있다. 바로 이런 정책수립과 수행의 기본을 갖추지 못하거나 미처 헤아리지 못해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러니 그 과정이 삐걱대고 성과가 초라할 수밖에 없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보기가 다름 아닌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이나 교원평가제 도입을 둘러싼 갈등과 사립학교법 개정을 놓고 벌어진 갈등이다. NEIS나 교원평가제 모두 도입 취지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지식정보사회에 학생들의 종합적인 정보를 체계화해서 관리하는 일은 중요하다. 교사들이 이른바 ‘철밥통’으로 알려진 교직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는 자기계발, 갱신을 꾀하도록 평가제를 도입하는 일 또한 그렇다. 그런데도 이를 반대하고 나선 교사들을 집단이기주의라고 몰아붙일 수만은 없는 것이 당사자인 이들의 의견과 동의를 충분히 얻지 못한 정부의 비민주성과 졸속성 때문이다. 이런 시행착오는 그밖에도 많은 제도 도입과 개선과정에서 거듭됐다.

    사립학교법 개정도 마찬가지다. 참여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가장 높던 탄핵정국 이후 개혁입법에 목숨을 걸고 야당이나 반대세력과 이전투구를 벌이다가 노무현 정권은 지리멸렬해졌다고 한다. 결국 제대로 된 내용도 담지 못하고 누더기만 남은 개정을 위해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허비한 셈이다. 그 내용에 대해서야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 과정만큼은 뼈저리게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교육과 같은 일상적이면서도 장기적인 생활세계 영역은 그 정책의 성과가 금세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시급하고 절실한 부분은 5년 안에 해결이 나거나 적어도 그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참여정부가 가장 중요시하고 또 중점을 둔 교육격차 해소 문제가 상징적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은 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로 참여정부 이래 교육격차는 더욱 벌어져 교육은 양극화의 주범 및 그 결과가 되고 말았다. 오랜 교육에 따른 재생산 구조를 그 증세만 건드리고 소박한 지원정책에 그쳐 본질적인 접근을 못한 탓도 있으나 그보다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탓이 크다.

    정책 효과·수요자 만족도 낙제

    교과서적인 얘기지만 모든 정책은 정책형성 및 수립-집행-집행 후 3단계로 나눌 수 있고, 그 단계마다 적합성이나 민주성, 그리고 실현가능성과 일관성, 효과성과 수요자 만족도 등을 기준으로 평가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일단 정책형성 및 수립단계의 적합성은 어느 정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민주성과 그 수행에 대한 의지는 부족했다. 정책집행 단계에서 실현가능성과 일관성은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실현가능성에서는 그런대로 기본은 했으나, 일관성 측면은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정책의 효과와 수요자 만족도가 문제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일부 수요자가 만족할 만한 것이 없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부정적이다.

    물론 이 모두를 참여정부가 책임져야 할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발목 잡은 야당, 동조세력에서 비판세력으로 돌아선 교사 집단, 혼란 속에 제 자식 챙기기에 급급한 부모, 틈새를 노려 제 이득만 취하려는 사교육시장과 대학 등 교육주체 모두가 걸림돌이었던 게 사실이다. 그뿐만 아니라 편향된 언론도 한몫을 했다. 교육과 같은 생활세계 문제를 지나치게 정치적 논리로 해석하기 급급해 사실보도에 앞서 선정적으로 여론을 호도한 점이 그렇다.

    하지만 아무리 잘 봐주려 해도 참여정부의 교육정책은 준엄한 역사적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사립학교법 개정 과정에서 보여준 혼란과 실책, 그리고 교육 양극화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켜, “개천에서 용 나기는커녕, 개천에서 용쓰다 미꾸라지로 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놓았으니 이제 어떡할 것인가.

    아무려나 참여정부는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하지만 교육정책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며 그 영향은 새로 출범하는 정부나 우리 모두에게 지속된다. 여기서 그 1차적인 평가를 해보았지만, 실로 엄정한 평가는 두고두고 할 일이다. 평가는 지난 정책을 비판하는 측면이 있지만, 이는 곧 새로운 출발을 다지기 위한 과정이다. 사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교육과 경제부양은 다르다

    나무는 10년을 보고 심고, 교육은 100년을 보고 해야 한다는 말은 누구나 다 안다. 그런데 요즘 이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교육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이리저리 손보겠다며 서슬이 퍼렇다. 마치 길을 뚫고 물길을 내 경제를 부양하려는 것처럼 교육을 뚝딱 고치고 바꿔보겠다는 깜냥이다. 그러나 교육은 사람을 사람 만들고, 앞날의 삶을 채비하는 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식의 이른바 ‘차가운 근대화’나 토건국가 탓에 교육이 수단이 되고 물건이 되어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다.

    게도 구럭도 놓친 개혁… 개천에서 용쓰다 미꾸라지 된다?
    정유성

    1956년 서울 출생

    서강대 독문학과 졸업, 독일 뮌헨대 석사(교육학)·박사(철학)

    인간교육실현 학부모연대 사무국장, 교육부 정책심의위원

    現 서강대 문학부 교수(교육문화학)

    저서 : ‘대안교육이란 무엇인가’ ‘사람 살려, 교육 살려’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기 원하는가’ 등


    물론 정권도 바뀌고 새로운 정책을 펴려니, 대중의 관심이 높고 걱정도 많은 교육을 이리저리 손대보고 싶은 거야 당연한 심사다. 하지만 교육이 당장 눈앞에 보이는 제도 몇 가지 고치고 새로운 제도를 도입한다고 나아질까. 한두 번 속은 게 아니다. 교육 병을 낫게 하려면 이제 서둘러 손대고, 빨리 고치려는 매무시부터 단속해야 한다.

    한국 교육은 오로지 그 뿌리를 바꾸고 체질을 갈아야 거듭날 수 있다. 물론 하루도 쉴 수 없는 교육을 그저 내버려두거나, 그냥 두고보자는 말이 결코 아니다. 시급한 증세부터 제대로 진단하고 고쳐나가되, 서둘지 말고 천천히 지켜보고 살펴보고 바꿔야 한다. 그러면서 교육 당사자들의 아픔과 바람을 깊이 헤아리되, 모든 것이 바뀌는 오늘날 세상뿐 아니라 앞날을 내다볼 줄 알아야 한다. 또 교육이 본디 어떤 일인지, 사람과 사람 사이가 어때야 하는지 그 본질부터 되짚고 새겨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서둘러 서툰 개혁에 나서다간 교육 병을 낫게 하기는커녕 교육, 아니 우리 살림이 온통 결딴날지도 모른다. 이번만큼은 이런 어리석음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