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10월 열린 수도권 과밀반대 시민대회.
혹자는 정부혁신분권위원회가 지방분권의 미래상으로 주민과 함께하는 정부, 지속적인 자기개혁이 가능한 정부, 지방의 창의성과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 자율과 책임 그리고 공동체 정신을 바탕으로 한 사회 등의 요소를 제시한 것을 지적하며, 이것이 노무현 정부가 추구하는 지방분권의 이상적 모델이 아니고 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런데 위원회가 제시한 이러한 속성들은 정치적 지방자치를 실시한 나라라면 어느 국가라도 달성할 수 있는 지방자치의 보편적 가치에 불과하다. 특정 형태의 지방자치 모델을 통해서만 달성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
강박적 균등주의
노무현 정부를 사로잡은 또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균등주의다. 균등주의는 균형주의, 평등주의, 형평주의 등의 용어로 치환해도 무방하다. 균등은 기회의 균등, 접근의 균등, 지급한 만큼 받는 시장균등, 결과의 균등 등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는데, 노 정부가 지향하는 균등주의는 결과적 균등에 가깝다. 노 정부를 흔히 좌파정부라고 하는데, 좌파적 정책성향은 지방정책 영역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노무현 정부의 좌파적 성향을 확연히 보여주는 것은 행정수도 이전 정책과 뒤이어 시도된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이다. 행정수도의 이전안(案)이 거센 사회적 반대에 부딪히고 위헌판결로 좌초되자 노무현 정부는 이전할 행정수도의 규모를 줄인 행정중심복합도시라는 변형을 통해 결국 행정수도 기능의 일부를 충청권으로 이전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다.
나아가 행정복합도시의 혜택으로부터 소외된 충청권 이외 지방 도시들이 볼멘소리를 하자 수도권에 소재한 170여 개 공공기관을 전국적으로 분산 배치하는 조치와 지방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민간기업자본의 지방투자를 촉진시키는 조치를 ‘혁신도시법’ ‘기업도시법’의 이름으로 내놓았다. 혁신도시, 기업도시,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은 접근방식이 각기 다르지만, 추구하는 목적은 모두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에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격차를 줄이는 데 있었다. 다시 말해 수도권에 집중돼온 경제적 부와 자원을 분산시켜 전국이 골고루 잘살게 하겠다는 취지로 추진됐다.
수도권과 지방을 동시에 발전시키는 윈-윈 전략으로 이러한 공간정책을 추진했다면 균등지상주의나 평균주의에 사로잡혀 있다는 비난을 모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윈-윈 전략 대신 제로섬 전략을 선택했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공간정책에 깔린 기본 가정은 수도권의 성장을 억제하지 않는 한 지방은 발전할 수 없다는 인식이다. 명백한 제로섬 시각이다. 이러한 시각은 ‘선 지방발전, 후 수도권 규제완화’ 전략으로 나타났으며, 이를 구체적으로 적용한 결과 수도권 규제를 풀어 이천공장 증설을 허용해달라는 하이닉스반도체의 요청이 정부의 반대로 무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