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호

튀니지 카르타고, 시디 부 사이드

불세출의 명장 한니발을 만나다

  • 사진/글·최상운(여행작가)

    입력2008-05-06 19: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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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튀니지 카르타고, 시디 부 사이드

    시디 부 사이드의 등대 근처에서는 시원하게 펼쳐진 지중해를 볼 수 있다.

    튀니스(튀니지 수도)를 떠나 카르타고로 향하는 교외선 열차 안에서 당신에게 편지를 쓴다. 나는 지금 북아프리카 튀니지에 와 있다. 기차가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곧장 바다가 나타난다. 항만 공사가 한창인 칙칙한 육지와는 달리 지중해는 햇살에 눈부시게 빛난다. 바다를 건너면 멋진 세상이 펼쳐질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문득 기원전에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공상에 빠져본다.

    카르타고인들도 저 바다를 건너 새로운 세상으로 가고 거기에 보금자리를 만들려는 생각을 가졌을까. 그래서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대제국 로마와 그토록 피나는 싸움을 벌였던 것일까. 용병 3만여 명과 코끼리 30여 마리를 이끌고 피레네 산맥과 한겨울 알프스를 넘은 불세출의 명장 한니발을 떠올리는 사이 기차는 카르타고 한니발 역에 도착했다.

    먼저 로마 유적지인 안토니오 목욕탕으로 향한다. 카르타고는 기원전 146년, 3차 포에니전쟁에서 패한 뒤 로마에 의해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도록 철저히 파괴돼 아쉽게도 지금 카르타고 시대의 흔적은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대신 로마 식민지 시기에 세워진 유적지가 많고 페니키아와 비잔틴 시대의 유적지가 조금 있다.

    튀니지 카르타고, 시디 부 사이드

    튀니지의 전통 인형이 석양을 배경으로 매달려 있다.(좌) 시디 부 사이드의 토산품 가게. 아랍식 스카프인 히잡을 두른 인형이 눈에 띈다.(우)



    튀니지 카르타고, 시디 부 사이드

    카페 데 나트의 벽에는 이곳에 들른 문인, 예술가들의 사진이 붙어 있다. 하얀 집과 파란 창문이 푸른 하늘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시디 부 사이드 풍경. 목 없는 동상이 여기저기 서 있는 카르타고의 로마인 거주지. 바다에 접한 카르타고의 로마 유적지 안토니오 목욕탕.(왼쪽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북아프리카의 산토리니’



    안토니오 욕탕은 규모면에서 카르타고 유적 가운데 가장 크고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로마의 훌륭한 건축술을 충분히 활용했는데, 남아 있는 기둥 중에서 가장 높은 것은 높이 15m에 이른다. 안토니오 욕탕을 나와 바로 옆에 있는 로마인 거주지로 발길을 돌린다. 로마인 거주지는 주택과 욕탕, 극장, 상가 등으로 이루어진 서기 3세기경의 주거시설이다. 로마 시대 동상이 목이 잘린 채 여기저기 서 있는 주택 마당에 페니키아 시대의 모자이크와 비잔틴 시대의 모자이크가 같이 붙어 있어 눈길을 끈다. 카르타고 박물관에는 페니키아, 로마, 이슬람 시대의 유적이 있는데, 야외 로마 유적지에서 바라보는 카르타고 전경도 아주 훌륭하다.

    이제 카르타고를 떠나 약 5km 떨어진 작은 마을 시디 부 사이드로 간다. 혹자는 이곳을 그리스 산토리니에 비유해 ‘북아프리카의 산토리니’라고도 일컫는데, 하얀 집과 파란 창문이 이색적인 마을이다. 색채 마케팅을 아주 철저히 해서 흰색과 파란색을 대비시켜 마을 전체를 아름답게 꾸며놓았다.

    튀니지 카르타고, 시디 부 사이드

    튀니지의 주요 특산품인 도자기는 독특한 문양과 색깔이 인상적이다.(좌) 베네수엘라에서 왔다는 아가씨가 등대 근처 카페에서 물담배를 피우고 있다.(우)



    튀니지 카르타고, 시디 부 사이드

    카페 데 나트 내부. 아랍식 담배인 물담배를 즐기는 사람이 많다.(좌) 빨간색과 녹색 기둥이 특이한 카페 데 나트는 각국의 여행객들로 붐빈다.(우)

    카페 데 나트의 물담배

    먼저 시디 부 사이드의 명물 중 하나인 카페 데 나트(Cafe des Natttes)에 들른다. 카페는 언덕 꼭대기에 있는데, 가는 길 옆에 토산품 가게가 즐비해서 이것저것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카페 데 나트 역시 하얀 집과 창문이 인상적이다. 카페 밖 테라스에 한가롭게 앉아 있는 사람들이 눈길을 끈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니 마치 우리네 마루나 평상 같은 곳에 사람들이 앉아 아랍식 담배인 물담배를 피우고 있다. 상당히 나른한 느낌을 주는 카페 데 나트는 독특한 분위기 때문인지 작가 앙드레 지드, 화가 파울 클레 같은 예술가들이 드나들었다. 특이하게도 물담배를 피우는 사람 중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다. 스페인에서 왔다는 단체관광객 중에도 남자들은 거의 입을 대지 않는데 호기심 때문인지 여자들이 더 열심히 피운다. 친구들끼리 온 튀니지 소녀들도 거리낌 없이 물담배를 즐기고 있다. 사실 튀니지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엄격한 이슬람 국가의 이미지와는 상당히 다르다. 아마도 이 나라가 현대적이고 개방적인 정책을 펼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카페를 나와 마을 안쪽으로 발길을 옮기다 보니 도넛을 파는 조그만 가게와 마주친다. 그냥 밀가루 반죽을 튀기고 설탕을 뿌린 평범한 것인데도 쫄깃한 맛이 일품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이 가게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거기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언덕 아래에 작은 등대가 나타난다. 여기가 시디 부 사이드에서 가장 멋진 전경을 볼 수 있다는 곳이다. 이 등대가 있는 건물은 예전에는 이슬람 신비주의인 수피즘의 본거지여서 1820년까지 기독교인의 출입을 금했다. 등대 주변의 카페에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다. 겨우 자리를 찾아 앉으니 아래쪽으로는 요트장이 보이고 등대는 노을에 물들고 있다.

    그들의 후예도 바다를 건너고 싶다

    진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바다를 바라보노라니 카르타고에서 만난, 고등학교 졸업반이라던 두 친구가 생각난다. 길을 물어보는 나를 직접 데려다주고 같이 구경까지 했다. 그중 한 친구는 자신도 해외여행을 무척 가고 싶은데 튀니지 사람은 비자 받기가 힘들다고 했다. 외국에서 자기들을 테러리스트로 본다며 ‘사고방식의 문제’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듣고 있던 나도 답답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 옛날 그들의 자랑스러운 조상들이 지중해를 건넜듯이 수천년 후예들 역시 저 바다를 건너고 싶다. 언젠가 그 어린 친구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마음속으로 바라면서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마친다. 시디 부 사이드의 석양이 바다를 온통 뒤덮고 있다.

    Tips

    수도 튀니스의 스타시옹 마린(Station Marine) 역에서 교외선을 타면 카르타고(현지에서는 카르타쥐로 발음)와 시디 부 사이드로 쉽게 갈 수 있다. 튀니스 카르타고 공항에서 직접 택시를 타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숙박은 시디 부 사이드 바닷가의 호텔에서 하는 것이 좋다. 관광대국을 꿈꾸는 튀니지이지만 공항 직원과 경찰 등 여행객을 상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엔 조금 문제가 있다. 때론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요리는 프랑스 식민지였던 경험 때문인지 꽤 훌륭한 편이다. 남부의 사하라 사막여행은 위험할 수 있으니 조심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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