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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인문학과 노숙자 인문학

  • 김현미│동아일보 출판팀장 khmzip@donga.com│

CEO 인문학과 노숙자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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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인문학과 노숙자 인문학

행복한 인문학 임철우 외 12인 지음/ 이매진/ 272쪽/ 1만2000원

그러나 무엇보다 저자가 생각하는 인문학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서부터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이르기까지 온갖 궁금증을 풀어주는 학문이다. 그래서 생각을 크게 만들어주는 학문이다.

“효율성을 핵심으로 하는 기업에 몸담은 남정네들은 점점 왜소해져간다. ‘호모 사피엔스’를 ‘인적 자원’이라 부르는 상황이니 그런 분위기가 당연하지 않으랴. 호걸을 만나기가 어렵지 않은가. 경영자는 단기 성과에 매달리다 보니 장기 비전을 세우지 못하는 것 아닌가.” 이것이 왜 ‘CEO 인문학인가’에 대한 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배움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문학·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는 문학평론가 고영직씨에게 어느 노숙인이 밤중에 전화를 걸어왔다. “교수님, 제가 시를 썼는데요, 여기에 쉼표를 찍어야 할까요, 마침표를 찍어야 할까요?” 당시의 감정을 고씨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고 했던가. 우리 영혼은 서로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어쩌면 섞일 수도 있다는 시적 믿음을 갖게 하는 사례들은 인문학 코스에 참여한 분들이라면 한 번쯤 경험해보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내 안의, 우리 안의 두꺼운 페르소나를 벗고, 화장발도 조명발도 없이 서로의 얼굴과 가슴을 마주할 때, 나와 너와 우리는 ‘참된 전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 또한 점차 자라났음은 물론이다. 인문학으로 말 걸기는 인문학 코스의 경험을 통해 점점 인정과 지지를 받기 시작한 셈이다.”(행복한 인문학·이매진 펴냄)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강좌는 2005년 9월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가 삼성코닝의 지원을 받아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과정’을 열면서 시작되었다. 입학신청을 한 노숙인들 가운데 20여 명을 선발해 8개월간 철학, 역사, 예술사, 문학, 글쓰기 등 기초 인문학 교육을 한다. 이렇게 술병 대신 책을 든 노숙인의 상당수가 자립에 성공하자, 노숙인 인문학과정은 자활근로자, 교도소 수용자, 지역주민으로까지 대상을 넓혀갔고 ‘실천인문학’ ‘현장인문학’ ‘평화인문학’ ‘시민인문학’ 등 다양한 이름의 코스가 개설되었다.

‘행복한 인문학’은 여러 인문학 코스에 참여했던 강사진 13명이 함께 쓴 책이다. 이들에게 영감을 준 미국의 언론인 얼 쇼리스는 1995년 미국 뉴욕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인문학 코스(클레멘트 인문학 코스)를 처음 개설하면서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었다.

“인문학은 가난한 사람들이 ‘정치적 삶’을 사는 데 있어서 필수단계인 ‘성찰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이끌 수 있는가?”

한국의 상황도 비슷했다. 경기도에서 열린 ‘자활참여주민 인문학 교육’에서 문학을 강의한 임철우 한신대 교수는 이런 의문에 대해 “확신보다는 차라리 ‘그럴지도 모름’ 혹은 ‘그렇기를 바람’, 아니 ‘부디 그러면 얼마나 좋겠는가’ 정도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결과는 놀라움이었다. 매번 세 편의 시를 낭송하고 감상하는 수업에서 수강생 대부분이 너무나 정확하게 작품을 이해했다. 임 교수는 이 수업을 통해 “문학은 지식이 아니라 본디 현실의 삶 속에서, 그 생생한 육성 언어에서 피어나는 꽃”임을 확인했다.

고영직씨도 노숙인, 자활근로자, 교도소 수용자를 대상으로 강의하면서 인문학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나는 인문학 과정에서 다른 나를 발견하고 스스로를 표현하면서 다른 삶과 다른 사회를 꿈꾸려는 근원적인 충동이 누구에게나 있으며, 그렇게 살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이 인문학 과정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표출된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자기 회의 없는 확신과 신념이 갖는 위험성을 경계하면서 우리는 타인과 더불어 소통하고 대화하면서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인문학 수업이 타인과 더불어 소통할 수 있는 저마다의 ‘사연’을 충분히 제공했다고 믿는다.”

‘행복한 인문학’에 대한 추천사에서 소설가 공선옥씨는 좀 더 명료하게 배움의 의미를 정리한다.

“어떤 이유로든 배움의 기회를 놓쳐버린 사람들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온다는 것은 행운이다. 더구나 그 배움이 출세하기 위해 혹은 돈벌이를 더 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좀 더 고결한 영혼을 갖기 위한 것이라면,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그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들일 수 없을 것이다.”

인문학은 CEO나 노숙인에게나 공평하게 ‘아름다운 배움을 통한 고결한 영혼’을 선물한다.

신동아 2009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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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동아일보 출판팀장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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