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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고민 상담소②

남자들만의 우정은 신화에 불과한가요?

  • 김혜남│나누리병원 정신분석연구소 소장│

남자들만의 우정은 신화에 불과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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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만의 우정은 신화에 불과한가요?

남자들의 우정과 배신을 다룬 영화 ‘친구’.

친구의 종류는 다양하다. 어릴 적 발가벗고 같이 놀던 동네친구부터 초등학교 친구, 중고등학교 친구, 대학 친구, 사회생활을 하며 만난 운동친구 등 우리가 살아온 궤적을 따라 친구 역시 여러 그룹으로 나뉜다. 우정은 우리를 세상과 연결해주는 다리의 구실을 하기 때문에 그 발달단계를 따라서 우정의 형태도 변하게 된다. 그러니 실망스럽겠지만 ‘영원히 변치 않는 우정’같은 완벽한 관계는 없다. 우정은 두 사람이 만나 맺는 관계이니만큼 그곳에는 깊은 함정과 낭떠러지기가 산재한다. 또한 사랑보다 훨씬 쉽게, 우정은 필요에 따라 서로 헤어져야 할 단계에 부딪히게 된다. 이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우정에서도 사랑만큼이나 필수적이다. 더구나 우정은 시간과 공간에 의해 형성되는 관계이니만큼,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 조지 산타야나의 말처럼 “우정이란 한 사람의 마음 한 부분이 다른 사람의 마음 한 부분과 결합된 것으로, 사람들은 한 지점에서 친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정의 속성이 우정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다. 나와 한 시점을 같이하고 그 시점에서 나와 세상의 다리가 되어준 친구.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

한편 친구는 발달단계에 따라 그 의미 또한 변하게 마련이다. 우선 친구와 우정의 의미가 가장 큰 시기가 청소년기다. 이때 친구는 가족의 대행이자 자신을 비춰주는 거울의 구실을 하기도 하고,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의 우정이 유독 진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데 성인이 된 후 우정은 청소년기처럼 뭔가 절박하고 매일 만나야 할 것 같은 강렬함이 사라진다. 왜냐하면 그들의 정신구조가 어느 정도 확고히 자리 잡았고 가족 또는 사회생활을 통한 관계 형성으로 내적 욕구가 어느 정도 해소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전보다는 새로운 대상에 대한 절박함이 덜하게 마련이다.

게다가 성인이 되면 이전과 달리 환경의 영향을 받기보다는 전적으로 자신의 가치판단에 따라 친구를 ‘선택’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 우정은 자유 위에서 자란다. 이전까지는 친구를 자신의 일부분으로 여기는, 나르시시스틱한 측면이 있었다면 성인기의 성숙한 친구관계는 서로 분리된 독립된 존재임을 인정하면서 친밀감을 쌓는 관계로 발전한다. 어니스트 존스란 정신분석가는 “‘정상’적인 관계란 서로 의지하지만 다른 사람에 의해 너무 많은 영향을 받지도 너무 예민하지도 않을 만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라 했다. 즉,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생각과 마음을 자유롭게 나누는 건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들 역시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가운데 부딪히게 되는 여러 내적이고 외적인 갈등을 풀고 해결하는 데 친구의 도움이 절실하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간의 불화나 직장 내 고민 등의 어려운 일이 생기면 우선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술 한잔을 청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성인이 된 뒤 잠시 소강상태에 있었던 우정이라 할지라도 중장년이 되고, 아이들이 떠난 뒤 부인과의 관계에서 변화를 맞으며, 죽음이 가까이 다가옴을 의식하게 되면서 다시 중요성이 커진다. 나이 들면서 동창회다 친구 모임이다 해서 만남이 잦아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우정도 가꾸어야 한다

친구는 힘든 상황을 함께하며 극복을 도와주는, 동반자이자 공범과도 같은 존재다. 이 때문에 우리는 군대나 전쟁 같은 극한 상황에서 ‘역경을 함께한 영원한 친구’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친구를 향한 감정이 늘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가깝고 친밀한 모든 관계란 본질적으로 양가적이다. 그 안에는 사랑과 연민의 감정뿐 아니라, 질투와 미움의 감정도 같이 자라나고 있다. 친구의 성공을 같이 기뻐하지만 내 속에 시샘과 부러움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친구의 슬픔을 같이 슬퍼해주기는 쉽다. 그러나 친구의 기쁨을 진심으로 같이 기뻐해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에 대해 오스카 와일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벗의 곤경을 동정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벗의 성공을 찬양하려면 남다른 성품이 필요하다.”

따라서 우정 역시 다른 인간관계처럼 한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 ‘영원히 변치 않는’ 우정에 대한 환상을 버리는 게 좋다. 우정 역시 우리가 끊임없이 가꾸고 키워야 할 관계지, 저절로 무럭무럭 자라는 건 아니다. 그리고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베스트 프렌드는 우리 인생에서 몇 명이면 족하다는 것이다. 그 외의 친구들은 가까운 정도에 따라 우리 주위에 머물며 서로에게 다양한 의미를 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친구와 속마음을 터놓는 관계를 맺으려 한다면 그 어느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게 된다.

한편 친구 사이에서는 물질적이거나 계산적인 사안이 끼어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친구 사이에 돈이나 물질이 끼어들면 우정은 그에 대한 강렬한 욕망에 의해 파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친구는 당신의 손을 붙잡고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줄 순 있지만 부모처럼 모든 것을 초월해 받아주고 이해해주는 이는 아니다.

남자들만의 우정은 신화에 불과한가요?
김혜남

1959년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現 나누리병원 정신분석연구소 소장

서울대 의대 초빙교수, 성균관대, 경희대, 인제의대 외래교수

저서: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왜 나만 우울한 걸까’ ‘어른으로 산다는 것’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친구와 함께하기 위해서는 친구와 꾸준한 만남을 통해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만일 속마음을 털어놓을 친구가 없다는 느낌에 마음이 헛헛할 때는, 그래도 가장 믿을 만하고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에게 전화 걸기를 권한다.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다보면 친구 역시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고 그러한 이해와 격려를 지원군으로 삼아 문제에 부딪쳐나갈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우정은 적극적으로 우리의 자유의사에 따라 찾아 나서는 것이지, 사랑처럼 운명처럼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신동아’에서는 중장년층 남성의 고민을 듣고자 합니다.

마음 깊은 곳에 담은, 그렇지만 쉽게 풀지 못하는 고민을 comedy9@donga.com으로 보내주십시오.

정신분석학자이자 에세이스트인 김혜남씨가 카운슬링해드립니다.

신동아 2009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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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남│나누리병원 정신분석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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