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의 황매산에는 두 가지밖에 없었다. 철쭉과 바람. 황매산 정상에서 어슴프레 보이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시작된 바람은 ‘산청’을 굽이쳐 와 철쭉을 때렸고 산에 오르는 사람들의 뺨을 스쳐 다시 철쭉 속으로 헤집고 들어갔다. 바람이 일 때마다 철쭉 숲에선 휙휙~ 하는 소리가 났다. 바람을 먹고 사는 철쭉의 향기가 황매산을 가득 메웠다.
흐드러진 철쭉 물결 속에 오롯이 둥지를 튼 영화주제공원에는 영화 ‘단적비연수’, 드라마 ‘태왕사신기’‘주몽’ 등이 만들어진 세트장이 있어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끌었다. 세트장 내 나무 풍차들이 삐걱삐걱 여유로운 소리를 내 운치를 더했다.
지리산과 황매산은 경남 산청의 이쪽 끝과 저쪽 끝이다. 두 산 사이에 여울진 산마루들이 만들어낸 굽이굽이 속에 산청의 1개 읍과 10개 면이 들어앉아 있다. 3만5000명의 산청군민은 그렇게 지리산을 등지고 황매산을 보며 살아간다. 이재근(56) 산청군수는 이런 황매산을 ‘친환경의 메카’라 불렀다.
‘산청’의 브랜드는 ‘산 엔 청’이다. ‘산에는 푸르름이 있다’는 뜻. 산청에서 생산되는 모든 친환경 제품엔 ‘산 엔 청’ 마크가 찍혀 나온다. ‘산 엔 청’에는 ‘지리산 청정골’이란 부제도 붙어 있다. 산청의 공동브랜드 ‘산 엔 청’은 2008년 대한민국 브랜드 대상을 받았다.

이재근 군수가 한방약초축제 기간 중 열린 향토작가 초대전을 둘러보고 있다.
하늘이 내린 청정골
산청은 매년 5월이 되면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지난 몇 년간 그랬고 올해엔 더 그랬다. 산청이 자랑하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각종 축제가 줄을 이으며 오가는 사람들의 넋을 뺀다. 금서면 경호강변과 전통한방휴양관광지에서 열리는 산청 한방약초축제, 전국 최고의 철쭉군락지인 황매산에서 열리는 황매산 풍년제·철쭉 큰잔치, 산청군 생초면 평촌 들녘에서 펼쳐지는 산청 생초함박꽃축제 등이 모두 5월, 이 산청 땅에서 열린다.
그중 제일로 꼽히는 축제는 역시 올해로 9회째를 맞은 한방약초축제다. 지난해엔 전국에서 120만명이나 이 축제를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축제기간이 3일이나 길어 찾는 이가 더 많았다. 한방약초축제가 한창이던 5월9일 오후, 군수실에서 만난 이재근 군수는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한방약초축제 자랑부터 늘어놓았다.
“이미 대한민국 최고 최대 한방약초 축제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전국에서 몰려오는 사람들의 수도 수지만 우리나라 최고의 한방관련 전문가, 기업들이 주목하는 행사로 발전했다는 데 진정한 의의가 있습니다. 지리산 청정골에서 자생하는 명약들, 전통 있는 한방 의술만으로도 이미 최고의 행사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방약초축제 기간 중 열리는 기산 국악제전도 볼만한 구경거리다. 올해로 3년째를 맞는 이 행사는 국악을 민족예술로 부흥시키고 체계화하는 데 기여한 기산 박헌봉 선생의 위대한 업적을 재조명하기 위해 시작됐다. 국악문화의 발전을 위해 발족한 기산 선생 국악문화현창사업회와 산청군이 주최하고 기산 선생이 직접 설립해 초대교장을 지낸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 총동문회(위원장 최종실)가 행사를 주관한다.
산청군 단성면이 고향인 기산 선생은 1945년 국립국악원 창설을 주도했고 1960년에는 국악예술학교(현 서울국악예술고)를 설립, 초대 교장을 지냈다. 국악의 경전으로 불리는 ‘창악대강’을 완성 출판하여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는 등 평생을 국악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박범훈 중앙대 총장, 사물놀이로 유명한 김덕수 선생, 타악연구소 최종실 교수, 마당놀이로 유명한 중앙대 김성녀 교수, 국악인 오정해 김무길 등이 모두 기산 선생의 제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