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호

민주당은 ‘청와대 2중대’인가?

  • 입력2010-08-30 17: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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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세의 총리후보를 내세운 참신함으로 ‘마사지’했지만 8·8 개각은 참신하지 않다. ‘최악의 개각’이라고 주장하는 야당의 비판이야 늘 하는 소리라고 하더라도, 청와대가 얘기하는 ‘소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오히려 어느 평자(評者)의 신랄한 표현대로 ‘MB의, MB에 의한, MB를 위한 친위내각’의 성격이 짙다. 새로 내각 명단에 이름을 올린 면면을 보면 ‘친위내각’의 성격은 분명해진다. 이재오 특임장관 지명자를 필두로 박재완(고용노동부), 이주호(교육과학기술부), 신재민(문화체육관광부), 진수희(보건복지부) 등 장관 지명자들은 모두 이명박 대통령의 ‘친위부대’다.

    대통령의 뜻을 읽기는 어렵지 않다. 집권 후반기를 내 사람들과 함께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변화와 소통보다는 내 갈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 40대 총리의 역할은 내각이 젊어졌다는 이미지 외에는 크게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김태호씨의 개인 역량을 폄하해서가 아니라 대통령중심제인 대한민국에서 총리란 자리는 ‘가문(家門)의 영광(榮光)’일지언정 제 목소리를 내는 데는 원초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총장을 지낸 정운찬 전 총리의 예를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하물며 ‘정권 2인자’로 불리는 이재오씨가 당-정-청을 아우르는 특임장관일진대 젊은 총리의 운신이 호락호락할 수 있겠는가.

    물론 내각 구성은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다. 대통령이 자신의 국정철학에 맞는 인물들을 전면에 배치하겠다는 데에야 말릴 방법이 없다. 야당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청문회에서 지명된 인물들을 검증하는 정도인데, 이 정부 들어 웬만한 도덕성 문제에는 눈도 껌벅하지 않는 분위기이니 며칠 시끄럽다 말 것이다.

    문제는 친위내각으로 소통과 통합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올해 신년사에서 말한 것처럼 “서로 배려하고, 서로 나누고, 서로 베푸는,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우파 및 정권에 우호적인 세력은 포섭하고, 좌파 및 정권에 비판적인 세력은 배제하는 전형적인 ‘투 트랩(two trap) 전략’으로 국민통합을 이뤄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친위의 집단사고(思考)로는 비판과 반대의견을 포용하고 수렴하기 어렵다. 그럴 경우 현 정권의 최대 문제라는 국민과의 소통 부재(不在) 현상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은 이번 개각에서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과 이만의 환경부 장관을 유임시켰다. 내각 원년 멤버인 두 장관을 유임시킨 대통령의 뜻은 분명하다. 4대강 사업을 강행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총리후보와 특임장관후보도 ‘4대강 사업 전도사’라고 하니 4대강 사업은 날개를 단 격이다. 그러나 종교계와 환경단체 및 여러 전문가, 다수 국민은 4대강 사업에 반대하거나 비판적이다. 너무 서두른다는 우려에는 여권 사람들도 동조한다. 충남과 경남 등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재검토 및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제1 야당인 민주당은 대안을 제시했다. “대규모 준설과 대형 보 건설을 벌이는 엠비(MB)식 4대강 사업에 대해선 전혀 동의할 수 없다. 강 살리기 사업 목적은 운하용 수량 확보가 아니라 수질개선 사업이 우선시돼야 하며, 4대강 본류가 아닌 재해에 취약하고 정비가 시급한 지천·소하천을 대상으로 강의 특성을 고려해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대안은 홍수 피해액 중 국가하천 비중이 3.6%, 지방하천 비중이 96.4%라는 점에서 일리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정부 입장은 한마디로 ‘수용 불가(不可)’이다. “전체 4대강 공정률은 23%이지만 보 공사의 공정률은 45%로 절반에 가깝다. 이런 상황에서 보 건설의 중단은 있을 수 없다 ”는 것이다(8월11일 현재).



    결국 ‘이제 와서 어쩌란 말이냐’와 ‘이제라도 중단하거나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타협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더구나 대통령의 강행의지는 두 관계 장관을 유임시킨 데서 보이듯 확고한 것 같다. 대통령으로서야 세종시 수정이 좌초한 데 이어 4대강 사업마저 후퇴한다면 곧바로 레임덕 정권이 될 것이라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4대강 사업은 이미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가 됐으니까. 그러나 중단이 아닌 재검토와 일부 수정안까지 일절 용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치가 아니다. 정치란 지도자 개인의 신념을 관철하는 의지의 구현이 아니라 차선의 조화를 찾는 타협의 기술이니까 말이다. 더구나 20조원이 넘는 4대강 예산을 줄여 서민을 위한 대책에 투입한다면 그야말로 대통령이 내세우는 ‘친(親)서민 실용정책’이 되지 않겠는가.

    6·2 지방선거 참패 이후 여권의 분위기는 권력의 독선과 오만에 따른 소통의 부재를 자책하고 반성하는 것이었다. 그에 비추어본다면 이번의 친위내각은 엇박자가 난 느낌이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는 대통령의 ‘마이 웨이(my way)’에 있다. 집권 후반기가 시작되는 만큼 좌고우면(左顧右眄)할 것 없이 나의 길을 가자. 세종시의 경우처럼 또 밀리다간 레임덕이 빠른 시일 내에 찾아올지도 모른다. 어차피 일할 수 있는 시간도 2년이 채 남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일하면 그 결과는 국민과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그러자면 친정(親政)체제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 나름의 진정성을 의심할 필요는 없을 터이다. 문제는 역대 정권에서도 그런 시도가 되풀이되었지만 그 결과는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민심과 멀어지면서 레임덕을 가속화했을 뿐이다.

    둘째는 민주당이란 시원찮은 제1 야당의 존재다. 7·28 재·보선에서 야당이 승리했더라도 대통령이 친위내각을 내세울 수 있었을까? 아마 그러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민주당은 ‘청와대의 2중대’ 노릇을 충실하게 수행한 셈이다.

    민주당의 김진애 의원은 얼마 전 “민주당에는 3가지 없다”고 했다. 첫째, 여의도와 주류 언론 프레임에 갇혀 있어 국민의 변화흐름을 읽는 상상력이 없다. 둘째, MB 비판을 넘어선 대안적 가치에 대한 확신이 없어 헌신과 열정, 소신 또한 없다. 셋째, 활력이 없어서 ‘체’와 ‘척’은 있는데 끝까지 가지 않는다.

    그 대표적 예를 몇 가지 들어보자.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을 좌절시킨 것은 사실상 민주당이 아닌 ‘박근혜의 힘’이었다. 뒤늦게 대안을 내놓았다고는 하지만 4대강 사업 반대에서도 민주당의 역할은 미약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국민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저 종교계와 시민단체의 반대운동에 편승해 정치적 구호나 외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2008년 촛불시위 때 민주당은 ‘무시의 대상’이었으며, 지난 6·2 지방선거 때도 민주당은 MB 심판을 위한 ‘도구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민주당도 유권자가자신들이 예뻐서 표를 몰아준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겸손한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자만했다.

    알량한(민주당의 기득권을 전제로 한) 야권연대의 성과를 과장하면서 정권심판론만 내세우면 7·28 재·보선의 승리도 떼어놓은 당상이라며 오만했다. 그러나 강원에서 직무정지된 이광재 지사에 대한 동정표 덕에 2석, 광주에서 연대 파트너인 민주노동당을 ‘한나라당의 2중대’라고 비난하면서 건진 1석이 모두였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불법 민간인 사찰, 한나라당 강용석 의원의 성희롱 발언 파문 등 온갖 악재에도 한나라당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유권자가 더는 민주당이 지방선거 때처럼 앉아서 횡재하는 꼴을 보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8·8 개각의 친위내각이라면 민주당이 ‘청와대의 2중대’라는 역설(逆說) 또한 성립되지 않겠는가….

    민주당은 10월3일 전당대회를 연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주자들은 저마다 ‘진보’를 내세우고 있다. 지난해 5월 ‘포괄적 성장’을 강조하며 우 클릭했던 뉴 민주당 플랜에서 다시 좌 클릭하자는 것이다.

    비주류인 정동영 의원은 ‘담대한 진보’를 내세운다. 중도 진보가 아닌 제대로 된 진보로 당의 정체성을 바꾸자는 것으로, 담대한 진보의 핵심은 부의 재분배를 넘어 적극적으로 부를 창출하는 역동적 복지국가건설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가 지난 대선 참패에 대해 ‘통렬한 반성’을 했다고는 하나 금배지를 달기 위해 탈당마저 불사했던 근래 행적 등에 비추어 그의 주장이 국민적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더구나 그의 ‘역동적 복지’가 ‘박근혜 복지론’에 비교우위인지도 분명치 않다.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은 이미 지난해 5월 미국 스탠퍼드대 강연에서부터 “공동체의 행복공유를 위한 복지”를 강조하고 있으니 말이다.

    민주당은 ‘청와대 2중대’인가?
    全津雨

    1949년 서울출생

    동아방송 기자

    월간 신동아 편집장

    동아일보 논설실장·대기자

    現 경원대 초빙교수

    저서: 작품집 ‘하얀 행렬’ ‘서울의 땀’, 칼럼집 ‘역사에 대한 예의’


    이밖에도 ‘유능한 진보’ ‘따뜻한 진보’ ‘진정한 진보’ 등 진보의 캐치프레이즈는 넘쳐난다. 그러나 민주당이 과연 진보정당인가? 민주노동당과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러한 논제는 심포지엄의 주제는 될지언정 일반 국민의 관심사는 아니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민주당이 야당 노릇이나 바로 하라는 것이다. 작은 차이도 극복하지 못하고 분열하며, 계파 간 자리다툼이나 벌이고, 특정지역의 기득권에 매달려 제 밥그릇이나 챙기면서, 정권의 실정(失政)에서 반사이익이나 얻으려 하는 한심한 모습을 보이지 말라는 것이다. 스스로는 심판하지 못하면서 만날 정권심판론만 외치지 말라는 것이다. 집권세력의 일탈을 감시하고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되 합리적으로 하고 시의적절한 대안을 제시해 수권능력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원칙과 소신을 가지고 싸울 때는 싸우되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국정 발목잡기 식의 구태는 보이지 말라는 것이다. 새로운 인물, 새로운 비전으로 내일의 희망을 갖게 해달라는 것이다.

    민주당에 이러한 요구는 현실적으로 무리한 주문일 것이다. 새로운 인물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요, 당장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민주개혁세력의 적자(嫡子)임을 자임한다면 무엇보다 오늘의 자화상(自畵像)에 부끄러워해야 한다. 남에게 누구 2중대라고 할 게 아니라 자신이 어디 2중대가 된 게 아닌가, 돌아봐야 한다. 성찰하고 쇄신해야 한다. 제대로 된 야당이 없으면 나라도 제대로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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