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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국제영화제의 몰락과 광화문 한자 현판 걸기

  •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충무로국제영화제의 몰락과 광화문 한자 현판 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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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상징거리의 뒤죽박죽 콘셉트

‘광화문이 경복궁의 정문일 뿐이므로 한자 현판이 무방하다’는 정부 당국자의 이런 논리는 상식과 괴리되어 있다. 그의 억견과 달리 광화문은 대표적인 중심대로가 맞다. 지난 6월24일 서울시 발표에 따르면 서울시는 세종로~태평로를 ‘국가상징거리 조성구간’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세종로의 시작점에 위치한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 차원을 넘어 ‘국가상징거리의 대표적 조형물’이다. 실제로도 많은 한국인과 외국인 관광객은 한국이나 서울 하면 ‘광화문과 그 주변의 전통과 현대가 조화된 풍경’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런 곳의 문패에 한글을 내거느냐 한자를 내거느냐는 ‘국가정체성’과 관련되는 일이 분명하다.

시인 이동희씨는 광화문 한자 현판에 대해 “한국 일번지에, 한글을 능멸하는 일을 자행하다니 놀랍기만 하다. 한국 사람으로서 한국의 얼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다. 그 길은 ‘광화문’에 있지 ‘光化門’에 있지 않다”고 했다. 김형오 한나라당 의원은 2005년 기고문에서 “한글 광화문 현판을 내려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그것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현판이든, 이승만 전 대통령이 쓴 현판이든 그 글씨가 누구의 것이든 30년 이상 서울의 문패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입니다”라고 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광화문광장에 세종대왕 동상을 설치하고 한글이야기관을 개관했다. ‘한글문화’를 세계에 자랑할 광화문 일대의 테마로 제시한 것이다. 정부가 바로 몇 발짝 뒤의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떼내고 한자 현판으로 교체하는 건 정반대로 가는 일이다. 중국을 대신해 ‘서울이 한자 문화권’임을 전세계인에게 광고해주는 꼴이다. 국가상징거리 광화문 일대의 문화 콘셉트는 뒤죽박죽이 되고 있다.

광화문 한자 현판을 둘러싼 찬반논란은 진보·보수의 이념지형과 무관해 보인다. 진보성향 노무현 정권은 ‘박정희 지우기’가 진짜 이유이고 그 명분으로 한자 현판을 들고 나온 측면이 있다.(하상복씨의 ‘광화문의 정치학’ 논문) 보수성향 이명박 정권은 이를 계승해 실행에 옮긴 셈이다. 보수진영은 국·한문 혼용에 상대적으로 관용적이다. 그러나 천안함 사태 이후 보수진영 일각은 중국을 한민족의 위협으로 인식하면서 “서울의 간판 얼굴에 중국 한자를 걸어두는 건 자존심이 상한다”는 태도를 보인다.



이런 정황상 8월15일 제막식 이후에도 광화문 한자 현판과 관련된 논란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원본도 아니고 고종 당시 무명 관리의 글씨체를 컴퓨터로 복원한 광화문 한자 현판은 구한말과 비슷하게 재현한 가치만 있지 문화재적 가치는 전무하다.

광화문은 과거의 유산이면서 동시에 현재의 한국과 서울의 상징이다. 정부 당국은 전자에만 집착하는 교조주의에 빠져 있는 것으로 비친다. 정부 측 논리로는 중국 당국이 세계적 유산인 자금성에 마오쩌둥의 대형사진을 걸어두는 게 설명이 안 된다. 광화문의 현재적 가치와 국내외인의 정서에 미치는 상징성을 고려했을 때 세종 당시의 훈민정음체로 한글 현판을 만들어 거는 방안 등 대안이 고려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문화 창달’ 위해 뭘 했나

문화주체성은 도시의 통합과 발전에 꼭 필요한 일이다. 한글과 같은 고유의 가치, 영화제와 같은 독자적인 세계관·문화관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 도시가 한 나라의 수도라면 그 중요성은 더욱 크다. 그러나 서울의 충무로와 세종로에서 벌어지고 있는 두 사건은 원래 있던 것도 없애버리려는 문화주체성의 퇴보를 암시하고 있다. 여야가 오랜만에 합심해 그 길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과 오세훈 시장이 ‘문화 창달’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왔는지 살펴보더라도 잘 떠오르는 일화가 없다. 우리의 지도자들은 서울을 세계 속에서 빛낼 ‘상징적 자본’을 스스로 내던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신동아 201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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