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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막걸리 교실 ②

김포특주는 다시 태어날까?

전설로 남은 ‘특별한 술’

  • 허시명| 술 평론가 sultour@naver.com |

김포특주는 다시 태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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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의 공출로 좋은 쌀이 바닥난 시절. 싸라기로 만든, 뜨물처럼 멀건 탁배기도 귀하던 그 시절에 찹쌀로 빚은 김포약주는 그냥 술이 아니었다. 그래서 ‘특주’라는 특별한 이름을 달았다. 이후 격동과 시련의 세월 속에 쇠락의 길을 걸은 김포특주를 가업으로 다시 살려내려는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
김포특주는 다시 태어날까?

김포탁주 양조장 앞에 선 권종옥씨와 권이준씨 부자(큰 사진). 1972년 김포탁주합동 양조장을 설립했을 때의 계약문건.

막걸리학교를 찾아온 사람들 중에는 양조장을 직접 경영하거나 혹은 집안에서 양조장을 경영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경남 하동 화개에서 양조업을 하는 이근왕씨도 그런 경우다. 나는 그분께 “매일같이 술을 빚으시는 분이 뭐 배울 게 있다고 그 먼 곳에서 막걸리학교를 찾아오셨습니까?”라고 물은 일이 있다. 그분 대답이 이랬다.

“어디 가서 막걸리 얘기를 들을 데도 없고, 함께 얘기할 데도 없어서 왔습니다.”

막걸리를 마시는 사람은 보통 막걸리를 마시며 인생사나 일 이야기를 하지 막걸리 자체에 대해서 얘기하지는 않는다. 막걸리 만드는 사람들도 막걸리 제조 비법이 흘러나갈까봐서인지 막걸리 얘기를 되도록 아낀다. 그러다보니 막걸리라는 술 자체에 대해 논하고 까부는 자리란 사실 만나기 어렵다.

이근왕씨가 궁금했던 것은 막걸리 자체이기도 했지만, 막걸리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의 면면이었을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편하게 친구가 되어, 막걸리가 왜 좋은데? 뭐가 부족한데?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막걸리가 될까? 하고 말을 섞을 수 있는 자리로 그는 막걸리학교의 문을 두드린 것 같다.

“대를 이을 수 있다면 하십시오”



양조업자나 양조장 가족들은 이와 비슷한 이유로 막걸리학교를 꽤 찾아온다. 막걸리학교는 5기에 이르기까지 모두 200명이 수료했는데, 그중 양조장에 관련된 사람이 15명쯤 된다. 양조장 손자도 있고, 예비 며느리도 있었다.

그중 중대한 출발점에 선 인물이 있다. 김포금쌀 양조장을 운영하는 권이준씨다. 그이는 3기 수강생으로 막걸리학교를 들어오던 당시 막걸리 양조장을 짓는 중이라고 했다. 그 규모를 몰라 “양조장 짓는 데 돈이 얼마나 들어갑니까?” 물었더니 10억이 조금 넘는단다. 10억 넘는 돈을 들여 막걸리 공장을 짓고 있는 분이 수강료가 40만원이 안 되는 막걸리학교 강좌를 찾아와 뭘 들으려 할까, 좀 걸맞지 않은 것도 같았다.

처음 막걸리학교를 열던 내 마음은 좀 재미나고 흥겹게, 문화의 한 가지로서 우리의 술 이야기를 나눠보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는 권이준씨처럼 인생의 중요한 출발점이나 전환점에 선 분이 많았다. 강의를 하는 내 처지에서는 조심스럽고 어깨가 무겁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막걸리학교 수강생뿐 아니라 더러 양조장을 하겠다고 내게 자문하러 오는 이들이 있다. 그럴 때 내가 하는 첫 번째 말은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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