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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에게 경영을 묻다 ⑨

겹겹이 듣기, 켜켜이 보기! ‘인생 대박’ 논어의 힘

  • 배병삼│영산대 교수·정치사상 baebs@ysu.ac.kr│

겹겹이 듣기, 켜켜이 보기! ‘인생 대박’ 논어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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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력 없으면 노예가 된다

그런데 창의력이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 아니다. 자율적이고 독립된 인간, 즉 ‘자유로운 존재’로 살아가기 위한 절체절명의 조건이기도 하다. 작가이자 화가인 폴 호건(1903~95)은 이렇게 말한다.

상상할 수 없으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없다. 또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묘사하고 있는 세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자기 자신의 눈이 아닌 다른 사람의 눈으로 현실을 보게 된다. 더 나쁜 것은 환상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갖춘 ‘마음의 눈’을 계발하지 않는다면 ‘육체의 눈’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 것이다.(‘생각의 탄생’, 45쪽)

제 눈으로 제 스스로의 가치를 창조하지 못하면 곧 남의 눈을 빌려서야 세계를 보게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자유인이 아니라 노예에 불과하다! 창의력이 없다면 자기 세계를 만들지 못하고, 자기 세계를 갖추지 못한 사람은 남의 눈을 빌려서 세계를 보게 된다는 폴 호건의 지적은 정말 무서운 말이다. 이건 외국의 명품 브랜드를 찾아 헤매는 오늘날 우리들의 행태를 떠올리게 한다. 지금 우리는 ‘남의 눈을 빌리는’ 데 쓸데없이 많은 돈을 소모하고 있다. 사막에서, 정글에서, 지하에서 피땀 흘려 얻은 알토란 같은 소득을 이른바 ‘명품’에 소비(소모)하고 마는 오늘날 사치 바람의 뿌리가 바로 ‘내 눈이 없다’는 인문학적 명제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제 스스로 명품을 발견(제작)하는 눈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고작 남이 만들어놓은 ‘명품’ 가방을 둘러메고서 남의 눈길의 피사체가 되기를 즐기는 노예(속물)의 삶을 사는 것이다. 남의 눈길에 휘둘리고, 남에게 보일 것을 생각하는 육안, 즉 피상적인 눈으로는 애써 노동해 얻은 소득을 고스란히 남에게 갖다 바치고 고작 럭셔리 브랜드 상품을 비싸게 사오는 ‘바보짓’을 면키 어렵다. 더욱 두려운 것은 ‘내 마음의 눈을 계발하지 못하면 육체의 눈만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으리라’는, 곧 노예의 상태가 지속되리라는 호건의 경고다. 그렇다면 개안(開眼)은 인간의 본질에까지 닿는 거대한 문제가 된다.



요컨대 인문고전 ‘논어’를 제대로 읽으면 창의력이 파생되는데, 그 창의성은 오늘날 ‘큰돈’이 된다! 남의 밑에서 작은 돈으로 연명하고 싶지 않은 자존심 강한 사람이라면, 남의 눈에 휘둘리는 노예(속물)로서의 삶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평생을 두고 대박을 터뜨릴 야망을 가진 젊은이라면 인문학을 공부할 일이다. 그 속에서 삶과 경영의 새 모델을 찾아내고 또 그것을 재해석하는 눈길을 통해 창의력은 싹을 틔우리라. 돌아가는 길 같지만, 실은 가장 가깝고 질러가는 것이 이 길이다(오늘날을 두고 ‘창의력’의 시대로 명명한 사람은 공자가 아니라 빌 게이츠였다.)

‘논어’는 가난을 버텨내는 힘

그러나 ‘논어’가 어찌 ‘잘살기’에만 쓰이랴. 도리어 고통에 처한 인간에게 ‘논어’는 더더욱 필요하다. 불교식으로 하자면 인생 자체가 ‘고해(苦海)’이겠으나, 공자에게 고난은 경제적 곤란과 계급적 고통, 즉 빈천(貧賤)이 그 대명사다. 이 둘 가운데서도 ‘가난’은 오늘날도 사람들이 다 피하고 싶어하는 절박한 고통이다. ‘논어’는 이 가난의 고통을 헤쳐나가는 기술을 제시한다.

어쩌면 ‘논어’의 진정한 가치는 창의력보다 가난의 고통을 이기는 힘을 제공하는데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공자 스스로가 물질적 고생을 몹시 심하게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제 스스로를 두고 “어려서부터 가난하여 많은 기예를 익혔노라”(‘논어’ 9:6)라고 했기에 드는 생각이다. 공자가 가난을 어떻게 대했는지 잠시 살펴보자. 공자가 천하를 주유하다가 곤경에 처하여 따르는 제자들이 영양실조로 쓰러질 지경에 이르렀다. 이때 제자 자로가 스승에게 덤빈다.

자로가 화난 낯으로 공자를 뵙고 말했다. “군자도 역시 궁핍하답니까(亦窮)?”

공자 말씀하시다. “군자야말로 ‘정녕 곤궁할 줄을’(固窮) 알지. 소인배들은 궁핍하면 바로 넘치느니라.”(子路·#53784;見曰, “君子亦有窮乎?” 子曰, “君子固窮, 小人窮斯濫矣.” 논어,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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