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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입국의 꿈을 펼친 지도자, 박정희

  • 고승철│저널리스트 koyou33@empas.com│

과학입국의 꿈을 펼친 지도자,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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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화 전 KIST 원장은 박정희를 ‘KIST의 아버지’라 불렀다. 1965년 박정희는 미국을 방문해 존슨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열었을 때 한국이 과학기술연구소를 설립할 수 있도록 미국의 지원을 요청했다. 존슨 대통령도 청년 시절에 교사로 활동한 경력이 있어 초등학교 교사를 지낸 적이 있는 박정희와 의기투합했다. 미국은 KIST 설립에 자금, 인력, 노하우를 제공했다.

박정희는 KIST를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집현전’으로 여겼다.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에 몰두하는 집현전 학사들을 격려하려 자주 들른 것처럼 박정희도 수시로 KIST를 방문했다. 설립 후 3년여 동안 한 달에 한두 번꼴이었다. 연구소 박사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애로를 듣곤 즉석에서 해결해주었다. 재미 한국인 과학자에게 직접 편지를 써서 조국 근대화에 동참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안 돼”라는 말 한 번 없었다

1965년 5월 중순, 미국 뉴욕의 아스토리아 호텔. 미국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재미교포와 만나는 자리였다. 대통령은 참석자와 일일이 악수하며 인사했다. 전자공학을 전공한 김기형 박사도 거기서 대통령을 만나 “전자부품을 개발하는 연구를 하는데 장차 한국에서도 이 부품이 필요할 것”이라 말했다. 1년 후 김 박사는 박 대통령이 보낸 전문(電文)을 받고 귀국을 결심했다. 그는 귀국 후 장관급 경제과학심의회의 상임위원으로 임명돼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각국을 돌며 과학기술 행정 시스템을 조사했다. 박 대통령은 김 박사를 불러 5시간 동안이나 독대하며 선진 과학기술 행정에 대해 보고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1967년 4월 과학기술처가 창설됐다. 초대 장관으로는 김 박사가 임명됐다. 그는 박 대통령이 원자력발전, 포항제철 설립 등에서 선견지명을 보였다고 역설하면서 “나는 박 대통령을 모시는 동안 단 한 번도 ‘안 돼’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회고했다. 그만큼 과학기술을 우선하는 대통령의 의지가 강했다는 뜻이다.

KIST에 이어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에 이르기까지 과학기술처 설치, 과학재단 창립, 대덕연구단지 조성,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국방과학연구소 설립 등이 이어졌다.



박정희가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하던 1961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79달러였다. 세계 최빈국의 하나였다. 한국은 박정희 정부의 경제성장 드라이브 정책에 힘입어 만년 빈곤에서 벗어났고 오늘날에는 세계 10~12위권의 강국으로 탈바꿈했다.

미국 뉴욕공대 교수이던 정근모 박사는 1970년 3월 일시 귀국했다. 과학기술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하려면 이공계 특수대학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논문을 쓴 인연으로 한국 정부가 초청했기 때문이다. 그 논문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보완자료를 마련했다. 이 자료는 4월8일 열린 경제동향보고회에서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브리핑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자 정 박사는 박 대통령 옆에 앉도록 자리를 배정받았다. 국수를 먹으며 KAIST 설립 방안이 논의됐다. 문교부 대신에 과학기술처가 주관 부처로 결정됐다.

이휘소 박사, ‘10월 유신’ 반대

정 박사는 KAIST 설립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해외의 한국인 두뇌를 애국심에 호소해 끌어들이는 게 주업무였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소설의 주인공인 이휘소 박사도 정 박사의 간곡한 부탁을 받고 동참 의사를 나타냈다. 이 박사가 귀국 절차를 밟던 1972년 10월에 박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노린 ‘10월 유신’이 단행됐다. 이 박사는 이에 동의할 수 없다며 귀국을 포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박사는 교통사고로 불귀(不歸)의 객(客)이 됐으니 사람의 운명은 짐작기 어려운 모양이다.

KAIST는 1973년 9월17일에 강의를 시작했다. 정근모 박사는 “한국과학원의 설립은 참으로 우리나라의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가치이고 진행형 진보”라면서 “아래에서부터 올라온 의견과 최고통수권자의 의지가 정확하게 일치해 이루어진 축복”이라 평가했다.

서정만 초대 대덕단지관리소장은 대덕연구단지와 박정희의 리더십과 관련, “박 대통령은 집권 기간 내내 민족과 국가의 선진화를 지향하는 한결같은 의지와 집념으로 과학기술 진흥을 앞장서 이끌었고, 그러한 진정성과 순수성이 곧 과학자와 기술자에 대한 사랑과 배려로 이어진 점은 여느 대통령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었다면서 “그만이 갖고 있는 ‘과학대통령’이란 호칭은 우연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KIST 출신의 과학기술인들은 박정희과학기술기념관을 KIST 내 부지에 100억원을 들여 건립하기로 했다. 이들은 과학대통령 박정희를 21세기의 모델로 내세워 한국을 굳건한 선진국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다졌다.

박원훈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총괄부원장은 “기념관 건립 사업은 단지 박 대통령에 대한 향수 때문에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이공계를 기피하는 현 세태에서 과학기술의 중요성에 대한 한 국가지도자의 정확한 인식이 국가발전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제대로 알기 위한 살아 있는 교육 현장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과학대통령 박정희와 리더십’은 무거운 주제와는 달리 여러 에피소드를 많이 담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신동아 201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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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철│저널리스트 koyou33@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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