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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 소설, 그리고 ‘옛날’에 대하여

  • 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쾌락, 소설, 그리고 ‘옛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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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의 것이 가장 낡은 것이다. 아기는 새로운 존재가 아니다. 여자들, 남자들 가운데서 살려고 버둥대는 아기들을 보라. 그들은 혼자 내버려두면 사흘도 생존할 수 없으므로 우리가 돌보는 매우 나이 많은 짐승이다.

인간의 출생과 죽음, 그러니까 인생이라는 여행의 시간 순서를 도치해서, 노인으로 태어나 점점 젊어졌다가, 태아가 되어 사라지는 스콧 피츠 제럴드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를 연상시키는 이 대목에 이르러, 아니 순서를 깨고 여기저기 뒤적뒤적 읽다보면, 이것은 소설인가, 아닌가의 문제를 떠나 파스칼 키냐르라는 작가에 대한 의문이 갈수록 증폭된다. 도무지 이 작가의 혼과 육체를 형성해준 뿌리, 그러니까 선천적이고도 후천적인 태생이 궁금해서 못 견딜 지경이 되는 것이다. 나는 총 95개의 장을 다 섭렵한 끝에 결정적인 한 조각을 추출해냈는데, 이 작품의 전반부에 수록된 한 편의 글, ‘르 아브르(Le Havre)’에 대한 유년의 추억담이다.

창문은 르아브르 항구를 향해 있었다. 항구는 폐허, 꿀벌 떼, 방파제, 쥐들과 다름없었다. 세이렌들(뱃사람들을 홀려 난파시키는 요정들)이기도 했다. 나는 여섯 살이었다. 동화와 전설을 읽었는데, 두 발을 창문 앞의 노란색 소형 목제 작업대에 올려놓고서였다. 창문은 바다, 아니 우중충한 만년 돌풍을 향해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아직도 기억나는데, 누구나 바다를 그렇게 불렀다.

르 아브르란 어떤 곳인가. 철도의 역사가 시작된 19세기 중반부터 파리의 생 라자르 역에서 인상파 화가들이 화구(畵具)를 들고 야외의 빛을 찾아 기차를 타고 자주 찾던 바다의 중심도시. 여섯 살의 키냐르가 ‘두 발을 창문 앞의 노란색 소형 목제 작업대에 올려놓고’ 창문을 통해 바라보던 ‘우중충한 만년 돌풍’의 ‘바다’는 인상파의 유래가 되기도 한 화가 모네가 그린 ‘해돋이 인상’의 현장. 그 바닷가 산책로에는 행동파 실존주의 작가이자 샤를 드골 정권에서 문화부장관을 지낸 앙드레 말로의 박물관이 우뚝 솟아 있다.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역사적인 장면으로, 실존주의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철학자인 사르트르가 파리 고등사범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해 재직한 곳이 르 아브르다. 청년 철학자 사르트르의 출세작이자 작가의 반열에 들게 한 문제작 ‘구토(La nause)’의 무대. (존재의) 구토하는 인간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현대인 로캉탱의 실존적 인식 과정이 이 바닷가에 널려 있는 하찮은 조약돌로부터 비롯된 것.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최북단, 그러니까 영국과 마주 보고 있는 도버해협 연안의 항구 도시로, 북대서양 특유의 우중충한 하늘과 바다와 습기 아니면 돌풍 요란한 자연 환경일지언정, 19세기에서 20세기 전반기까지 이루어진 이러한 빛나는 대목들은 르 아브르라는 공간을 당시의 그 어느 곳보다 의미심장하게 만들어주었던 셈.



키냐르는 르 아브르 인근의 베르뇌유쇠르아브르에서 명성이 높은 음악가 출신의 아버지와 언어학자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유년 시절 키냐르 가(家)의 식탁에서는 모국어와 여러 외국어가 오고 가고, 오르간을 비롯해 여러 악기의 소리들이 울려 퍼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모국어를 습득하기도 전에 무방비로 노출된 다중 언어와 소리에 대한 스트레스로 18개월부터 자폐증에 걸렸고, 급기야는 언어 거부증과 거식증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놀랍게도 키냐르는 르 아브르로 옮겨와 지내면서 두 번의 자폐증과 거식증에서 벗어났고, 놀랍게도 자신의 평생의 반려로 오르간과 문학(언어)을 선택했다. 그러니까, 키냐르는 사느냐 죽느냐의 절체절명의 기로에서 자신을 질식시켰던 바로 그 두 세계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정면 대결에 나선 것이다. 17세기 숲 속에 은둔한 비올라의 거장의 음악과 삶을 다루어 1990년대 초 전 세계 관객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킨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은 키냐르의 소설이자, 작가가 직접 시나리오를 집필한 작품으로 유년기의 트라우마를 창조적으로 승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선조 또는 선배 유산의 깊이가 깊을수록 후배는 헤아릴 수 없는 부담감으로 입이 닫히고, 숨이 막힌다. 이 책 ‘옛날에 대하여’는 두 번의 자폐증에 맞서서 작가로 분출한 키냐르식 사유의 결정체로 그의 저작 전체를 아우르는 문학의 정의(定義)이자 왕국이다. 인상적인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모든 것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으로 작가는 ‘쾌락’을 놓고 있는데, 그 쾌락을 잘게 부수어 궁극적으로 살려내고자 하는 것이 ‘소설’이라는 점이다. 아니다, 마지막 문장을 다시 써야겠다. 작가가 살려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계속되는 한, 저절로 되살아나고야 마는 것으로!

옛날에 한 사람이. (중략) 이렇게 일본의 옛날이야기는 시작된다. 옛날 옛적에 한 사람이…

축자적으로 옮기면, Jadis homme(옛날에 한 남자가)…

Jadis tis(옛날에 어떤 사람이)…



(본문의 몇몇 인용문의 행은 지면 관계상 필자가 임의로 붙여서 진행했음을 밝힌다.)

신동아 2011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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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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