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2009년 8월 4일 금강산에서 이종혁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원동연 통일전선부 부부장을 만났다. ‘신동아’는 이날 대화를 녹취한 문건을 입수했다. 셋의 대화에서 임동원 전 장관에 대한 북한의 신뢰감과 북한이 남한의 대북정책을 들여다보는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원동연 : 김대중 선생은 잘 계십니까?
현정은 : 많이 안 좋으신가봐요. 폐렴이….
이종혁 : 그 나이에 그만큼 유지하는 것도 대단하시지. 이번 노무현 사고를 보면서 충격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원동연 : 임동원 선생은 잘 계십니까?
임동원 방북 원한 北
현정은 : 네 잘 계시고요. 6·15 행사 가서 뵈었습니다.
원동연 : 임동원 선생이 평양에 오시는 것은 어렵겠죠?
현정은 : 현인택 장관을 만나니까 먼저 정권 사람들이 푸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하시더라고요.
원동연 : 결과적으로 남북관계가 풀리게 돼 있으니 통 크게 나와야 하지. 저렇게는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건대 청와대에 똑바른 보좌관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오바마 보십시오. 먼저 정권 대통령(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우리한테 보내서…. 그렇게 통이 크게 나와야 하는데, 임동원 선생이 온다고 해서 대번에 북남관계를 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평양 방문해서 좀 휴식하고 가는 그런 차원인데, 그렇게 과민반응을 하면 앞으로는 북남사업은 못하죠. 저렇게 통이 작은 사람하고 앞으로 북남사업을 하겠는가. 조그만 사건이 나면 또다시 끊기고 그러면 안 되거든요. 다른 거는 미국 사람들한테 배우면서 그런 거는 왜 안 배우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종혁 : 설상 임동원 씨가 와도 남북관계 풀라고 이야기를 하지 욕을 하겠습니까?
원동연 : 그걸 이해를 못하니 안타까운 게 있는데, 남쪽 당국이 임동원 선생한테 그런 메시지를 보내지 않는 이상은 임동원 선생이 와서 크게 풀릴 게 있겠습니까? 너무 근시안적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 우리는 이명박 정권 취임식 때 그때까지 일체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보니까 비핵·개방·3000 대북정책을 공식 채택해서 발표하고, 핵 문제 해결되지 않으면 북남관계는 없다. 한미관계로 푼다. 모든 북남관계를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한미관계를 하겠다. 이렇게 완전 직설적으로 하다보니 (갈등이) 시작된 건데….
현정은 : 제가 비핵·개방·3000을 북에서 안 좋아하니 쓰지 말라고 했는데 외교안보수석이 김병국 교수라고 제 친구 동생이라 말을 전했는데 안 믿더라고요. 그건 좌파 교수들이 하는 이야기라고 하면서요. 북하고 MB식 대화를 하겠다고 하더군요. 먼저 정권하고 다르게 하려는 의욕을 느꼈어요.
이종혁 : 똑같을 수야 없겠죠. 다르다 하더라도 내색을 하지 않고 하면 되겠는데 자꾸 미리부터 말을 그렇게 하니까.
원동연 : 좋은 건 이전 정권 것이라도 받아들이고 그리고 다음에 더 잘할 수 있는 것들도 있는데, 무조건 전 정권 것은 모조리 안 하겠다고 하는 건….
북측 인사들은 이 대화에서 임 장관이 남북관계 경색을 풀 적임자라는 투로 말한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햇볕정책 집행자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정 전 장관은 할 말은 하는 스타일이어서 북한이 껄끄러워하면서도 대화상대로 인정한다”고 말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햇볕정책 전도사다. 노무현 정부 대북정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현재도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포용정책의 적실성을 세상에 알리고 있다. 이 전 장관에 대한 북한의 평가는 생각보다 호의적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장관 시절 북한의 기대와 다르게 원칙을 앞세워 북한을 다뤘기 때문이다. 이 전 장관 재임 기간(2006년 2월 10일~12월 10일) 남북관계는 나빴다. 그는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 후 대북정책 실패 책임을 지고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북한의 핵실험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의 대북 기조를 상징하는 햇볕정책이 사실상 종언(終焉)을 고하는 순간이었다.

2002년 대선 직후인 2003년 1월 27일 임동원 당시 김대중 대통령 대북특사와 이종석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수위원이 서울공항에서 평양행 비행기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임동원, 정세현, 이종석 전 장관이 속한 한반도평화포럼(공동대표 임동원 백낙청)은 6월 26일 ‘2013년 새 정부의 통일·외교·안보 분야 비전과 과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엔 남북교역과 남북대화 전면재개, 5·24 대북제재 조치 해제, 금강산관광 재개 및 개성공단 확장,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등의 구상이 담겨 있다. ‘속(續)햇볕정책’이다. 이번 작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이 전 장관은 ‘한겨레신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