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더와 배우의 연기력 상관관계
- 레이건과 고이즈미가 성공한 이유
- 수박 겉핥기식 예술 공부로 쇼 하지 말라
- 생명·자연에 대한 관심과 학문 자세의 중요성
청와대에 입성한 대통령은 국민에 의한 선거라는 지난한 과정을 거쳤으니 권력을 누릴 권한이 당연히 있다고 통상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역할인지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다. 21세기 리더십은 무대 위와 무대 아래를 구분하지 않는다. 동시에 무대 앞과 무대 뒤도 구분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배우가 반드시 무대 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대 뒤에서 고생하는 스태프 역시 무대 앞의 배우와 다름없이 중요하다. 서울대 리더십센터는 2011년 11월 뮤지컬 ‘대통령이 사라졌다’를 공연하면서 배우들은 바닥에서 공연하고 관중은 이동식 목조 스탠드에 앉아서 관람하게 했다. 무대 위의 주역과 무대 아래 관객이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큰 나라 대통령은 의전 절차가 까다로워 만나기 힘들다. 하지만 2000년 방문한 코스타리카의 경우 대통령 면담이 그리 어렵지 않았고, 대통령궁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매우 쉬웠다. 1987년 노벨평화상을 탄 아리아스 전임 대통령을 사저 서재에서 만났을 때, 그는 농담도 하고 장난도 하며 여유를 보였다. 코라손 아키노 전 필리핀 대통령을 1992년 인터뷰했을 때도 그랬다.
리더를 배우라고 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배우의 배(俳)자는 사람 인(人)변과 아닐 비(非)자로 이뤄져 있다.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사람이 아니라니, 이상하다 싶다. 배우는 개인이 아니라 팀의 일원으로서 전체 중의 하나일 뿐 개체로서의 정체성은 없다는 뜻이다. 리더 역시 혼자 존재할 수 없는 숙명을 지닌다. 함께 하나가 될 때 리더로 존재할 수 있다. 함께 일하는 사람은 물론 관객과도 호흡을 같이 해야 한다. 원 피스, 한마음이 돼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리더가 독불장군이 돼야 한다고 착각한다.
정치인의 퍼포먼스
리더가 배우처럼 되려면 연기를 잘해야 한다. 물론 진정성이 묻어 있어야 한다. 요즘 대선 후보들처럼 쇼 하라는 것이 아니다. 연기란 잘 보이는 기술이다. 그러려면 첫째 감각이 남달라야 한다. 리더십의 요소로 자질·상황(때) 등을 주로 꼽는데, 여기에 필수적인 것이 리더의 감각이다. 감각이 얼마나 빼어난지가 리더의 자질을 가리는 시금석이 된다. 감각은 지능(IQ)이 높다고 저절로 나오지 않는다. 좋은 학교 다녔다고 감각이 빼어난 것은 아니다. 평소에, 특히 어릴 적부터 여러 경험을 하면 다양한 감각(미각·리듬감각·심미안 등)이 절로 몸에 밴다.
그럼 배우가 정치 리더가 되면 어떨까? 자연스러울까?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배우 출신인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얼마 전까지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낸 아널드 슈워제네거도 배우 출신이다. 레이건은 성공 사례, 슈워제네거는 실패 사례다. 필리핀의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도 배우 출신인데, 대통령선거 때는 최다득표를 했으나 재임 중 각종 부패에 연루되고 독직 혐의까지 받아 ‘피플 파워 2’ 시민운동에 밀려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그 후 필리핀 법원에 의해 종신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배우가 아니면서 배우처럼 퍼포먼스를 잘해낸 정치인도 있다. 일본 총리를 지낸 고이즈미다. 그는 극장형 정치 퍼포먼스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TV에 출연해 정치 쟁점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설명했다. 당내 기반이 약했던 그는 미디어를 자유롭게 활용해 자신의 정책을 국민에게 직접 전했다. CNN과 인터뷰 중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부르는 등 대중에게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레이건은 재임 내내 훌륭한 정책을 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국내 경제를 살려 레이거노믹스(Reagonomics)라는 신조어가 탄생할 정도였다. 2005년 2월 CNN·USA투데이·갤럽이 공동으로 실시한 미국 성인 1800명 대상 여론조사에서 역대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도 뽑혔다. 그는 수전증이 약간 있긴 했지만 연설이며 제스처를 꼭 연기하듯 했다.
‘레이건의 리더십’ 저자 최병구에 따르면 레이건은 시대정신이 무엇인지를 잘 포착한 정치인이다. 대통령의 업적을 한두 마디로 말할 때 링컨은 ‘노예를 해방시킨 대통령’, 루스벨트는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대통령’으로 불린다. 레이건은 ‘냉전(Cold War)을 승리로 이끈 대통령’으로 지칭된다. 대처 전 영국 총리는 레이건이 총 한 방 쏘지 않고 냉전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했다. 레이건은 그레나다 침공 결정으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국제 테러국가에 단호하고 굳센 의지를 보여 평범한 미국인을 매료시켰다.
감각의 힘
인기 배우 출신 정치인 강신성일 전 의원. 이외에도 정한용 강부자 최불암 최종원 전 의원 등이 배우 출신으로 정치에 도전했다.
우리나라에도 배우 출신 정치인이 적지 않게 있었다. 신성일, 이주일, 정한용, 최종원 등이 대표적인데, 대개는 국회의원 자리만 차지하다 말았다.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오명을 남기기도 했다. 이주일은 “코미디 공부 많이 하고 국회를 떠난다”는 말을 남겼다. 배우만 한 고두심은 “어떤 분야에서 인기를 얻었다고 정치에 나서는 게 우습다”며 “요즘 대선주자들은 연기하듯 거짓말을 잘하더라”고 했다. 그렇다고 연기가 거짓말과 동의어는 아닐 것이다.
1960년대에 나와 함께 하와이 동서문화센터에서 공부했던 안민수 동국대 석좌교수는 “연기는 곧 과학”이라는 철학을 갖고 배우훈련 방법론을 체계화했다. 배우는 종합예술의 전면에 나서는 궁극적인 표현 매체라고도 했다. 배우는 신체와 영혼을 함께 담고 있는 몸통이기도 하다. 영감과 그것을 표현하는 기술도 표현 매체인 몸통 안에 담겨 있다. 이는 물리적인 현상이면서 동시에 ‘나’라는 생명을 가진 존재가 된다. 이들은 카메라 앞에서 대중 앞으로 나와, 본연의 모습이 아닌 작품 속의 역할자(Role Performer)로서 활동한다.
서울대 리더십센터에서 교육받는 학생들은 늘 서울 혜화동 게릴라극장에 간다. 그곳의 예술감독 이윤택은 배우는 일상적 삶의 습관을 뛰어넘는 형이상학적 존재이며, 창조적 주체라고 말한다. 그리고 배우는 자신과 타인, 인간과 자연,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넘나드는 직관과 영감의 영역에서 노니는 인간이라고 했다. 훌륭한 배우가 되려면 스타니슬라프스키(Stanislavskii) 시스템을 습득해야 하는데, 이는 배우 스스로 캐릭터를 상세하게 이해해서 실제 캐릭터의 내면 요소까지 연기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같은 맥락에서 배우 장두이는 맡은 배역을 사랑하라, 그리고 확신을 갖고 연기하라고 하면서 맡은 역할의 색깔·무게·형태를 분석하라고 말한다.
감각보다 논리의 중요성이 강조된 적도 많았다. 데카르트는 감각을 합리적인 정신작용을 못하게 하는 원인으로 보고 생각을 강조했다. 반면 데모크리토스는 인식에는 사고로 하는 것뿐 아니라 감각으로 하는 것도 있다고 했다. 말콤 글래드웰의 저서 ‘블링크’에 따르면 사람은 눈 한번 깜빡거리는 0.2초의 순간에 세세하게 분석할 때보다 더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다. 농구감독은 공이 선수의 손에서 떠나기 전에 선수의 동작만 보고도 3점 슛의 성공 여부를 안다. 골동품 평가자는 한눈에 작품이 진품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위대한 정책결정자는 모든 정보를 오랜 시간 들여다보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변수 중 몇 개만 골라 집중적으로 사고하고 감각적으로 판단한다.
리더가 되려면 뛰어난 감각으로 남보다 먼저 의미를 파악하고 행동에 옮길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미각, 음과 리듬감각, 시간감각과 공간감각, 상황감각 등이다. 나아가 여러 감각이 결합된 공감각이 있으면 응용력과 다양성이 생기고, 균형감각까지 발전하면 윤리와도 맞닿을 수 있다. 이러한 감각은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몇몇 대선주자처럼 뒤늦게 클라리넷, 색소폰, 드럼 같은 것을 한다고 예술성이 갑자기 솟는 것은 아니다. 감각은 어릴 때부터 키워야 한다. 여러 종류의 음식을 먹어봐야 미각이 자란다.
리듬감각, 상황맥락지능
음악적 감각은 일의 절차와 순서에 강약, 완급, 고저 등을 나타내 사람을 멋지게 보이게 하고 여유를 보탠다. 리듬이 있으면 같은 일이라도 훨씬 여유와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소리는 원래 움직임이다. 리듬은 모든 움직임의 시간 및 흐름과 관련이 있다. 리듬론은 우리가 선택한 자극의 단위 길이를 기준으로 흐름과 패턴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리드미컬한 흐름에 반응한다는 것은 각 요소가 갖는 유기적인 표현 패턴에 반응한다는 것이다. 리더에게 리듬감각이 없다면 상황의 흐름도, 조화도 알지 못한 채 자기 생각과 주장만 내세우는 일이 늘어날 것이다. 전략에서 리듬은 필수 요소다. 그러기 위해서는 몸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머리가 좋아 전문가가 된 사람이 감각으로 직조된 리더십 없이 리더가 되는 것이 큰 비극이다. 공 하나 제대로 던질 줄 모르는리더가 많다. 몸치는 반쪽 리더에 불과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안철수가 몸치다.
막스 베버는 정치인이 갖춰야 할 세 가지 자질로 열정, 책임감, 균형감각을 들었다. 이 중에서 균형감각은 사물과 사람에 대해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이다. 내적으로 집중력과 평정심을 갖고 현실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능력이다. 균형감각은 정열적인 정치가를 눈에 띄게 하고, 단순한 정치 아마추어와 구별하게 하는 감각적인 능력이다.
리더는 지식을 갖춰야 하지만 기본 바탕은 지능이다. 지능 중에서도 감각지능이 발달하지 않은 사람은 리더 자격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지프 나이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저서 ‘리더십 에센셜(원제·The Powers to Lead)’에서 리더가 갖춰야 할 여러 가지 지능을 소개했다. 리더는 이성적 호소와 추종자의 자율성이 더해진 소프트 파워와, 채찍과 당근으로 가능한 하드 파워를 가져야 한다. 이 중 소프트 파워는 지능 외에도 비전, 커뮤니케이션, 센스, 직관 등 책으로 배울 수 없는 요소들을 겸비해야 나온다. 즉 감정적으로 성숙하고 지혜롭고 동시에 자아 인지력이 강해야 리더가 된다는 것이다. 조지프 나이는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합친 것을 스마트 파워라고 하고 이것이 리더십의 정수라고 했다.
중요한 것은 상황맥락지능(contextual intelligence)이다. 상황맥락지능이 높지 않으면 리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라 범인(凡人) 이상이 될 수 없다. 이는 역할인지가 제대로 안 된다는 뜻이다. 상황의 기초는 관계다. 관계가 어떻게 설정돼 있는지, 그래서 내가 처한 상황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달리 말해 나무도 보고 숲도 보고 숲에서 나무가 차지하는 위치와 비중을 가리는 것이다.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역사에서 신의 섭리를 알고 그의 옷자락을 잡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상황맥락지능에서 직관적인 판단을 할 때는 5가지 차원을 고려한다. 추종자의 욕구와 수요, 정보의 흐름, 시간의 긴급성, 권력자원의 분배, 문화적 맥락 등이다.
味覺, 美覺!
감각적인 언행을 하려면 콘텐츠가 알차야 함은 물론 바탕이 다양한 요소로 이루어져야 하고 융합적인 시각이 있어야 한다. 느낌이나 감각만으로는 언술이 논리적일 수 없다. 내용이 차 있어야 함은 물론 그 내용이 다양하고 보는 시각 역시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것이어야 리더답다.
감각으로 따지는 대표적인 것이 맛에 대한 감각, 미각이다. 어릴 적부터 여러 음식을 먹어보는 것은 미각을 자극하는 길인 동시에 다양성을 익히는 길이다. 미각이라는 말은 이중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만져보거나 시험해서 검사한다는 뜻을 가진 중세영어 ‘tasten’을 어원으로 하고,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날카롭게 접촉하다’는 뜻의 라틴어 ‘taxare’가 있다. 맛보는 것은 항상 시험 혹은 평가를 의미했다. 다양하게 맛본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하게 평가할 기회를 갖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인이 서양인에 비해 맛에 대한 다양성이 뒤진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비행기를 타자마자 라면을 찾고 외국에 도착하자마자 한식집 가고, 여행 중 즉석밥·깻잎·고추장·컵라면 등을 상비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안다. 그러나 리더라면 언어, 종교, 인종 등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게 필요하다. 다양성이 있어야 사고의 폭이 넓어진다. 이런 각도에서도 보고 저런 각도에서도 볼 줄 알아야 한다. 음식으로만 다양성을 알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다른 음식, 다른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없다면 골수분자가 되기 십상이다. 자기주장, 자기 정책만 옳고 남의 주장은 무시해버릴 위험성이 상존한다.
미각 이야기를 다시 하면 기미(器味)라는 것이 있다. 그릇 맛이다. 그릇에 무슨 맛이 있겠느냐고 하겠지만 음식은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설렁탕을 질그릇에 담아 먹는 맛과 양식기에 담아 먹는 맛이 같지 않은 것과 같다. 미식가 중에도 기미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기미를 안다는 것은 리더 감각의 정수인 상황맥락지능이 앞선다는 뜻이다.
다양성은 미각으로만 가리지 않는다. 리더에게는 미각(味覺) 아닌 미각(美覺)이 필수다.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 말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꾸며야 할 책무가 있기 때문이다. 예술성부터 갖추라는 뜻이다. 심미안이 있어야 세상을 아름답게 꾸밀 줄 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리더에게 심미안이 없다면 세상을 어떻게 꾸며야 할지 잘 모르게 된다. 겉치레만 잘해도 근사하다고 감격하면 큰일이다. 광화문 거리를 엄청난 돈을 들여 저렇게 꾸며 놓고 멋있다고 감탄하는 리더가 있다면, 그는 리더 반열에 들 수 없다. 심미안은 그림을 좋아하면 저절로 생긴다. 잘 그린 그림, 심오한 뜻이 담긴 그림, 정형에서 크게 벗어난 듯한 그림 등을 보노라면 세상에 대한 이해가 달라질 수 있다. 다양한 이해가 따른다. 그림을 보지 않더라도 마음이 고우면 아름다움이 그곳에서 절로 나온다. 내 것만 챙기지 않으면 아름다운 마음이 솟는다.
서울대 리더십센터의 리더십 훈련에서 예술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리더의 감수성에 따라 세상에 대한 이해와 꾸밈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최우정, 정호진, 허철 등으로 구성된 통영국제음악제 앙상블 팀이 와서 바흐의 변주곡을 연주한 뒤 해설하고 학생들과 토론한 적이 있다. 연주회만 다녀온 것과 비교할 때 교육 효과가 다르다. 외국의 리더십 훈련 과정에서 재즈와 록 음악을 가르치는 것도 이유가 있다. 재즈는 기획팀에, 그리고 록은 협상팀에 들려줘 성공도를 높이게 하는 훈련방법이 있다.
자연에 대한 이해
서울대 리더십센터가 지난해 ‘대통령이 사라졌다’라는 뮤지컬을 만든 것도 예술성을 강조하려는 목적의 일환이었다. 학생들이 몸소 음악과 안무를 익히며 만든 이 뮤지컬의 본디 뜻은 ‘리더십은 봉사이고, 권력은 아름답다’는 것을 체득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학생들은 공연히 끝난 후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이게 진짜 수업이다. 진짜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터득한 계기였다”고 말이다. 서로 도와 한 팀이 돼야만 한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했기에 이런 말도 할 수 있다.
요지는 인문학적 소양이 있어야 리더인 것은 맞지만, 세상을 아름답게 꾸미지 못하고 경제만 떠들어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의 말대로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수없이 많다. 시의 아름다움, 교육의 지혜, 젊음의 용기 같은 것이 GDP(국내총생산) 어디에 포함돼 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하나도 반영돼 있지 않다.
그리고 예술은 몸으로 체득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특히 강조해야겠다. 몸에 배어 있지 않은 요소들은 소용이 없다. 대선 때가 되면 후보들이 배우기 쉬운 색소폰을 들고 연주하는 척한다든지 드럼을 치는 흉내를 낸다든지 하는데, 쇼에 불과할 뿐 당사자의 예술성을 말해주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예술성은 장기간에 걸쳐 연마되는 것이다. 가능성은 본능적으로 갖춰져 있다.
인문학적 소양에 대해 한마디 덧붙이자면,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인성학만이 아니라 자연학에 대한 이해다. 나아가 우주에 대한 이해 없이 리더 될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우주에 대한 이해를 촉구하는 것은 세상이 지구만이 아니고 지구는 무수한 행성 중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과 통한다. ‘멀티 유니버스’를 쓴 브라이언 그린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의 말처럼 무한 우주(multiverse)에는 도플갱어(doppeleganger)가 수없이 있다. 또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말대로 다른 우주에서 우리를 보면 굴곡 때문에 바깥세상을 왜곡해서 볼 수밖에 없어 어항 속의 금붕어와 다르지 않다. 이 ‘작은 파리한 파란색의 지구’(미국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말)에서 복작대니 여기서 벗어나 광활하기 그지없는 우주를 보며 인간과 사회를 다시 생각하는 지도자를 바란다. 또 장대익 서울대 교수의 말대로 인문학을 생문학(生文學)으로 다시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현재 생물학의 시대를 살고 있다. 다윈 혁명, 분자 혁명, 인지 혁명의 물결 속에서 활동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외면하고 인간과 자연과 공간에 관해 고담준론을 펴봤자 소용이 없다.
인문학적 소양이며 예술성이며 몸의 율동과 리듬 등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면 췌언(贅言)이 된다. 그런데 간과하면 안 될 것이 있다. 바로 아카데믹 라이프(academic life)다. 리더더러 당신은 평생 학문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문하면 “그럴 거면 학자 되고 말지”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과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의 차이는 크다. 후자이기 위해서는 평생 더 공부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식도 감각도 없이 남을 위할 수는 없다. 내 머리와 내 가슴을 채우기 위해서는 책도 열심히 읽고, 현장에서 많은 것을 체득해야 세상에 눈을 겨우 뜬다. 나도 잘 모르지만 더 모르는 남을 알기 위해서 들여야 할 노력과 시간은 보통 사람의 몇 배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카데믹 라이프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 정치인 가운데 종(種)이 좀 다른 조윤형 전 국회의원만큼 책을 가까이 한 사람을 별로 보지 못했다. 조윤형은 국회도서관에서 산 유별난 정치인이다. 책만 열심히 본다고 저절로 아는 것이 많고 판단도 옳아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남보다 더 많이 알아야 사물과 현상, 그리고 인간을 훨씬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고 전체를 조감하는 능력이 생기며 내일을 예견할 수 있다. 그러기에 리더가 학자의 수준에 있어야 하는 것은 거역할 수 없는 명제다.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집무가 끝난 뒤에도 300쪽이 넘는 보고서들을 일일이 읽곤 했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2장이 넘지 않는 굵은 글씨의 보고서를 읽는 수준에 그친다. 그렇게 줄이고 줄인 요약본에서 어찌 내용의 진수를 알 수 있겠는가? 열심히 공부해 여러 내용을 여러 각도로 해석하며 내 것으로 만들어야 다음 단계의 호기심도 생기고 의문도 생기고 하면서 정책을 파고들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각 부처 장관이 보고하는 내용을 따를 수밖에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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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은 좋은 학교 나왔다고 생기지 않는다. 좋은 자리 편력으로 리더십이 생기지 않는다. 리더십 훈련을 한다면 배우 수업 받듯 해야 하고, 그중에서도 특히 역할인지와 역할수행에 대한 방법을 체득해야 한다. 그리고 리더십을 발휘할 때 배우처럼 연기를 잘해 국민의 마음속으로 파고들고 국민을 감동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리더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이 감각이다. 리듬감각, 공감각, 상황맥락감각, 융합적 감각 등. 감각은 감각 자체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가 뒷받침될 때 빛이 난다는 이야기도 했다. 대선 후보자 중 이런 리더십 감각을 갖춘 이는 몇이나 될까?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황된 공약 내세우고 쇼 하면서 국민을 더 이상 우롱하지 않는, 진정성이 듬뿍 담긴 감각의 리더가 탄생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