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 _ 너머북스, 372쪽, 1만7000원
전쟁의 후유증은 차차 아물어갔다. 조선 선조 말, 농경지 조사를 통해 불균등한 세금부과를 완화해 민생이 숨통을 텄고 탈루된 세금을 찾아 재정에 보탰다. 어느 역사에서나 보이듯 사리사욕을 공론에 감추는 자도 있었지만, 더 공정한 태도로 정치에 임하는 사람도 있어 조금만 노력하면 그런대로 살만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모두 새 국왕의 즉위를 축하했다. 1608년 2월 2일, ‘새로운 정치 초반(新政之初)’에 거는 기대가 봄기운과 함께 삼천리에 넘쳐흘렀다.
그 상서로운 기운이 충만했던 1년여의 시간 동안 새로운 국왕은 친형 임해군을 진도로 귀양 보냈다가 강화에서 죽였고, 아버지의 유신에게 죽음을 내렸다. 희망은 있었다. 여러 사람이 민생과 재정 안정을 위해 대동법을 추진했다. 이때 왕실과 집권 북인은 이권을 지키기 위한 본심을 드러냈다. 대동법 추진자는 하나둘 조정을 떠나든지 귀양을 갔다.
곧 백성의 성원은 신음으로 바뀌고 곳곳에서 궁궐 짓는 망치 소리만 들려온다. 광해군은 궁궐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며 새 궁궐을 지으라고 한다. 경연은 문을 닫은 지 오래다. 실록 편찬은 요원할뿐더러 남기는 기록도 부실하다.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폐위한다. 이이첨을 위시한 신하는 제 잇속만 챙기고, 광해군의 멘토 정인홍은 아집에 갇혀 있다. 전형적인 배제의 정치.
드디어 불안한 정치 때문에 북인 세력 안에서도 이탈 현상이 나타나고, 이탈하지 않은 자는 서로 싸운다. 윤선도는 이이첨을 비판하고, 허균은 동지였던 이이첨에게 죽임을 당한다. 관직도, 상벌도, 과거급제도 다 판다. 남은 것은 궁궐 공사다. 후금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군량미까지 공사비로 쓴다. 심지어 심하전투(1619년 명나라에 쳐들어오는 후금에 대항하기 위해 명나라·조선 등이 참전해 벌인 대전투) 이후 전사자와 부상자 집안에 주라고 명나라 황제가 준 은(銀) 1만 냥조차 공사비로 쓴다. 이제 딱한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은 차츰 반정 뒤에 살아야 할 사람들에 대한 안쓰러움으로 바뀐다.
이렇게 민생과 재정의 안정, 건강한 정치, 풍요로운 문화의 창출, 변동하는 국제정세에 대한 능동적 대처 등이 절박하고 중요했던 시기를 허망하게 보내버렸다. 아니 그냥 보내버린 것이 아니다. 조선은 악화된 채로 방치되고 엉켜서 나뒹굴고 있었다. 잃어버린 15년은 실기(失機)의 업보까지 남겨주었다. 그러나 반정(反正)으로 일어난 이들은 다시 이 땅에서 살아갔다. 그들은 다시 농사를 지어야 했고, 바닥난 재정을 긁어모아 나라를 운영해야 했으며, 후세를 낳고 기르고 가르쳐야 했다. 무너진 사회의 기강을 세워 그래도 좀 더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야 했으며,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어야 했다. 그러다가 미처 여력이 없던 차에 닥친 침략에 허둥대기도 하다가, 다시 일어서 하루하루 이 땅에서의 삶을 이어갔을 것이다.
오항녕│ 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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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의 심리학 _ 데이비드 맥레이니 지음, 박인균 옮김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심리학 광’인 저자가 우리 뇌에 숨어 있는 39가지 착각의 기제를 분석한 책. ‘대체 왜 사람들은 정치인의 뻔한 거짓말에 속는 걸까’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한 인지과학의 답을 담았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완전하지 않다. 살면서 마주치는 수많은 정보는 기억을 변조하기 일쑤고, 우리의 무의식도 이성을 건드린다. 인간은 따뜻한 잔을 손에 쥐고 있으면 맞은편 사람의 인상을 온화한 것으로 인식한다. 청소용품 냄새가 나는 공간에서 뒷정리를 훨씬 잘하고, 면접관은 무거운 클립보드에 끼워 제출한 이력서를 더 진지하게 검토한다. 문제는 우리가 이성을 과신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인간이 합리적이며 객관적이라는 미몽에서 벗어나 자신의 감정·판단·행동을 지배하는 편견·선입관·망상의 작동 방식을 감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추수밭, 368쪽, 1만5000원
도조 히데키와 천황의 시대 _ 호사카 마사야스 지음, 정선태 옮김
독일 히틀러, 이탈리아 무솔리니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의 주범으로 꼽히는 도조 히데키의 삶을 담은 평전. 히데키는 1942년 일본의 총리·육군상·육군참모총장을 겸직하며 전쟁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다 패전 후 ‘A급 전범’으로 분류돼 처형당한 인물이다. 일본의 유명 논픽션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그의 주변 인물을 탐문하고 다양한 자료를 섭렵하는 과정에서 ‘역겨운 인간’ 정도로만 알려져 있던 히데키가 당대 일본 사회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산물’임을 밝힌다. “군인이야말로 ‘선택받은 백성’이라고 생각한 그는 국가를 병영으로 바꾸고 국민을 군인화하는 것을 자신의 신념으로 여겼다. 왜 이러한 지도자가 시대와 역사를 움직였던 것일까. 그것이 바로 이 나라가 가장 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문제”라는 저자의 목소리가 인상적이다. 페이퍼로드, 708쪽, 3만8000원
공자는 가난하지 않았다 _ 리카이저우 지음, 박영인 옮김
유학의 시조 공자, 이를 발전시킨 맹자, 시선(詩仙)이라 불린 이백…. 고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은 세속에서 벗어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저자는 공자·맹자가 결코 가난하지 않았고, 이백은 묘비명 한 편을 써줄 때마다 5000만 원이 넘는 사례금을 받았다고 말한다. 중국의 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그가 역사 속 인물의 경제생활을 분석하는 근거는 사료다. 그는 각종 역사서에서 정확한 수치를 찾아내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공자가 위나라 관학에서 받은 연봉은 좁쌀 90t. 280명이 1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으로, 네 식구였던 공자 가족이 수십 년을 먹어도 남을 정도였다. 집도 3칸이긴 했지만 대지가 2만여㎡로 농장 수준이었다고 한다. 맹자의 연봉은 공자의 150배 수준. 그는 제나라에서 좁쌀 1만5000t을 연봉으로 받았으며 여러 왕에게 막대한 양의 황금 덩어리도 선물로 받았다. 에쎄, 408쪽, 1만8000원
저자가 말하는 ‘내 책은…’
과학은 없다 _ 쌤앤파커스, 404쪽, 1만8000원
21세기의 인류는 최고의 과학 문명을 향유하고 있으며, 이제 모든 것을 현재의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정말 그럴까? 20년 전 당시의 과학으로 UFO를 설명하기 위해 연구를 시작한 나는 이제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과학은 없다’에서 나는 UFO를 구전(球電), 플라스마, 그 밖의 매우 드문 자연현상으로 설명한다거나 기존 비행물체를 보고 착각한 것이거나 초강대국의 비밀병기로 해석하려는 시도는 더 이상 의미가 없음을 밝힌다. 나아가 UFO가 현재 지구의 과학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초지성체와 관련돼 있다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린다.
초지성체는 인류 역사 속에서 여러 번 당대의 과학 수준에 맞춘 ‘보여주기 게임’을 해왔다. UFO 현상도 오래전부터 나타난 초상적(超常的)인 사건의 연장선에서 해석할 수 있다. 첨단 우주과학 시대에 그들은 유사 우주선 형태로 우리 앞에 나타나 초첨단 우주 시대에 맞는 신화를 만들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영국에서 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미스터리 서클’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플라스마 보텍스(plasma vortex) 같은 드문 자연현상으로 이해하려 하거나, 첨단 레이저 장비 등을 동원한 인간의 행위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실패해왔다. 나는 적용된 기술 수준을 통해 미스터리 서클 제작에 초지성이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프랑스 전·현직 최고 국방 책임자들이 밝혔듯, 가장 가능성 높은 가설은 우리가 외계인의 방문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과학자들은 우주 만물이 아원자(亞原子) 수준에서 서로 얽혀 있어, 어느 한곳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순식간에 우주 저 끝까지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양자역학의 비국소성이라 불리는 이런 성질은 생명현상을 설명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조지프슨 효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브라이언 조지프슨은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가 초능력을 발휘하는 데 양자역학적 비국소성을 활용한다고 단언한다.
오늘날 외계인의 방문 가능성을 부인하는 과학자들은 무작위로 여행을 해 먼 곳의 외계인이 지구로 올 가능성이 확률상 0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초능력으로 정확히 알 수 있다면, 그들이 우리를 찾아올 확률은 매우 높다.
나는 이 책에서 초심리현상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텔레파시, 투시, 예지 등의 초감각지각과 염력이 실제로 존재할 가능성을 아널드 토인비, 이마누엘 칸트, 카를 융,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 여러 저명인사와 관련된 사례를 통해 살펴보며, 그런 현상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우주의 돌아가는 바를 설명하는 데 휠씬 유리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맹성렬│우석대 전기전자공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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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해방 _ 피터 싱어 지음, 김성한 옮김
미국 프린스턴대 ‘인간가치센터’에서 생명윤리를 가르치는 저자는 동물권익옹호단체 ‘동물해방’의 초대 회장이다. 2005년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뽑힌 동물권 운동가이기도 하다. 저자는 수많은 동물이 실험 대상으로 죽어가는 현실을 고발하면서 동물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고 있는지 보여주고, 이 같은 잔혹 행위가 나타나게 된 역사적ㆍ문화적ㆍ사회적 배경을 살핀다. 또 동물 학대의 배후에 깔려 있는 종차별주의적인 사고를 비판하면서 ‘공리주의’라는 도덕 원리에 바탕을 둔 동물 해방을 주장한다. ‘만약 어떤 존재가 고통을 느낀다면, 그와 같은 고통을 고려하지 않으려는 것은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1975년 출간 이래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동물 해방 운동의 바이블로 꼽힌다. 연암서가, 504쪽, 2만 원
개인투자 궁금증 300문 300답 _ 곽해선 지음
부동산, 주식, 채권, 보험·펀드, 예금, 연금, 파생상품, 주요 금융 이슈 등 재테크에 관심 있는 독자가 알아야 할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 1998년 초판 출간 후 개정 작업을 거듭해 100쇄 중쇄를 앞둔 경제 분야 장기 베스트셀러다. 부동산의 경우 ‘상가 분양 사기당하지 않으려면? 아파트 분양 과장 광고에 속지 않으려면? 재건축 투자할 때 아파트 층수를 봐야 하는 이유는?’ 등의 질문이 제시돼 있다. 주식 부문에서는 ‘장·단기 금리 차 커지면 주식을 사야 하는 이유는? 자본금을 까먹은 기업이 감자하는 이유는?’ 등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 KBS 라디오 ‘경제전망대’ 등에서 해설을 해온 저자는 ‘기준 금리가 뛰면 왜 대출 금리도 뛸까?’ ‘통화량의 많고 적고가 재테크에 어떤 영향을 줄까?’처럼 경제 이슈가 재테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동아일보사, 308쪽, 1만4800원
최고의 영예 _ 콘돌리자 라이스 지음, 정윤미 옮김
흑인 여성 최초로 미국 안보보좌관과 국무부장관을 지낸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 8년간의 백악관 생활을 기록한 자서전. 9·11테러가 일어난 시점에서 시작해 탈레반 축출과 사담 후세인의 죽음 등 재임 시절 경험한 세계사의 굵직한 순간들을 빠짐없이 담았다. 사담 후세인이 체포된 날 그는 새벽 3시에 보고 전화를 받았다. “제리 브레머가 ‘드디어 잡았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곧장 대통령에게 전화로 상황을 보고했다. 대통령은 도널드 럼즈펠드에게 확인 전화를 했다”처럼 외부인은 알 수 없는 내부 상황 묘사가 눈길을 끈다. “카다피 리비아 국가 원수가 2008년 나를 자신의 텐트로 초청했으나 거절했다” 같은 개인적인 경험담도 인상적이다. 김정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등 라이스가 만난 남북한 정치 지도자에 대한 거침없는 평가도 흥미롭다. 진성북스, 980쪽, 2만5000원
저자가 말하는 ‘내 책은…’
Dog-사람과 개가 함께 나눈 시간들 _ 이강원·송홍근·김선영 지음, 이담북스, 196쪽, 1만2000원
사람은 자기 이득만 챙기는 이기주의적 동물로 악명 높다. 자신의 필요에 따라 수많은 동·식물을 멸종시켰고, 이 순간에도 다른 생물체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사람은 좀처럼 손해 보는 장사를 하려들지 않는다. 다른 동물과 거래할 때 계산이 빠르다. 소·돼지·양·닭에게 먹이와 물을 주고 비·바람을 피할 좁은 집을 제공하고 늑대·표범과 같은 포식자의 위협으로부터도 보호해준다. 하지만 자연수명보다 훨씬 짧은 보호기간이 끝나면 빚을 갚으라고 윽박지른다. 가축이 자신의 목숨을 끊어야만 내놓을 수 있는 고기와 가죽을 요구한다.
사람은 동물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대가를 얻고자 키운다. 소·돼지 같은 동물은 이런 사람을 어떻게 평가할까? 가축은 일생 동안 태양의 따스함, 흙의 부드러움을 한 번도 느끼지 못하고 산다. 매우 열악한 집에서 이동과 번식의 자유를 박탈당한 채 고단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고단한 삶도 그들에겐 사치일 뿐이다. 녀석들에게 허용된 삶은 자연수명의 10%도 안 된다. 닭은 한 달 내외, 소는 2년 안팎의 짧은 생애를 마치고 사람의 입속으로 들어간다. 소·돼지·닭 등 가축의 노예와 같은 운명은 가축 당대에 종식되지 않고 대대손손 이어진다. 슬프다 못해 가련한 운명이다.
하지만 사람의 유일한 친구인 개는 어떠한가? 그들은 다른 가축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산다. 가축우리가 아닌 집에서 사람과 더불어 살아간다. 녀석들도 소·돼지 같은 가축이며 재산이지만, 사람 세상에서의 지위는 다른 동물과 비교하기 어렵다. 개는 1만~4만 년 전 사람의 강요가 아닌 자신의 선택과 의지로 인간 세계에 동참했다. 이에 반해 소·돼지는 7000~9000년 전 인간이 포획해 노예의 신분으로 사람 세상에 왔다. 개와 다른 가축은 이렇듯 출발 자체가 다르다.
야생의 개는 사람 사는 세상에 본격적으로 발을 담근 이후 주인의 필요에 따라 다양하게 개량된다. 싸움개로, 썰매개로, 사냥개로, 경비견으로 심지어는 군견으로도 개량되고 또 개량된다. 최근에는 주인을 위해 애교를 부리는 것이 주된 임무인 애견으로도 개량됐다.
필자는 사람에 의해 다양하게 개량된 개들의 뿌리를 찾는 데 주력했다. 지금까지의 애견 서적은 애견의 역사에 대해 간단히 짚었지만, 이 책에서는 그것이 주제다.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이 책의 묘미는 귀여운 강아지 시추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페키니즈는 어떤 경로를 통해 중국의 황궁에서 벗어나 세계인의 애견이 됐으며, 칭은 왜 페리 제독에게까지 건너갔는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개의 역사에 대해 알 수 있다.
하지만 궁극적인 의도는 사람의 친구 개를 좀 더 알고 사랑하자는 데 있다. 그러자면 개의 역사와 기원에 대해 약간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강원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 가치확산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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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노트 _ 오에 겐자부로 지음, 이애숙 옮김
199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히로시마를 방문해 원폭 투하 후 살아남은 이들의 삶과 죽음, 고통을 관찰하고 기록한 르포르타주. 겐자부로는 일본의 천황제와 국가주의를 일관되게 비판하고, 일본의 군사재무장과 핵발전을 반대하는 운동을 벌여 ‘전후 일본의 양심’으로 불린다. 일왕이 문화훈장과 문화공로장을 수여하려 했을 때 ‘민주주의 위에 군림하는 권위와 가치관을 인정할 수 없다’며 수상을 거부한 일화도 유명하다. 그가 찾아간 히로시마에는 몸과 마음의 상처 때문에 생긴 수치와 굴욕감으로 집 안에서 꽁꽁 숨어 지내는 이가 있고, 반대로 핵무기 폐지를 요구하는 운동에 참가함으로써 원폭의 비참함을 극복하려는 사람도 있다.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얻어낸 작가의 평화주의와 휴머니즘이 인상적이다. 삼천리, 202쪽, 1만2000원
따뜻한 자본주의 _ 허의도 지음
지금 우리는 행복한가. 이 책은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포스코경영연구소 경영자문위원인 저자는 압축 성장을 이룬 우리나라가 외견상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을 뿐, 결코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인 자살률과 최저 수준 출산율을 근거로 든다. 선진국의 불행은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저자는 ‘자본=행복’이라는 공식은 이미 오래전 깨졌다며 인간의 이타적인 동기와 환경을 강조하는 대안적인 자본주의를 모색한다. 1%와 99%가 더불어 살아가는 ‘따뜻한 자본주의’를 위해서는 사람을 가장 중심에 놓는 것, 자본주의의 곪아터진 부위를 도려내고 그 자리에 공존·공생·공감·감동·배려·통합 등 인문적인 코드를 넣는 것 등이 출발점이 돼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부제는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한 희망의 메시지’다. 프리스마, 392쪽, 1만8000원
이원호의 생각 _ 이원호 지음
‘밤의 대통령’ ‘황제의 꿈’ 등으로 연속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작가 이원호가 자신이 바라는 새로운 대통령상을 제시한 소설. 주인공 이름을 ‘이명박’으로 하고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광우병 시위가 절정에 달한 2008년 6월, ‘이명박’ 대통령은 측근이 써준 대국민 담화문을 찢어버린다. ‘청와대 뒷동산에 올라 아침이슬을 따라 불렀다’고 발표하는 대신 봉하마을로 달려가 노무현과 함께 공동성명을 낸다. 다음 날 광우병 시위대는 사라진다. 국민을 들뜨게 할 만한 새로운 정책도 잇따라 내놓는다. 종교세를 부과해 세금을 연간 100조 원씩 더 걷고, 정년은 70세까지 연장한다. 치매 증세가 보이지 않는 사람은 75세까지 기준급을 받고 근무할 수 있게 했다. 지난 3월부터 시사주간지 ‘주간동아’에 ‘레임덕은 없다’는 제목으로 연재 중인 글을 모아 낸 책이다. 한결미디어, 338쪽, 1만3000원
저자가 말하는 ‘내 책은…’
우리교육 100문 100답 _ 다산북스, 412쪽, 1만6000원
한국의 교육 소비자는 중립적인 교육정보에 목마르다. 공교육계에서 유포하는 정보는 정작 가장 중요한 의문에 대한 답이 없고, 사교육계에서 유포하는 정보는 이윤동기로 인해 왜곡돼 있기 일쑤다. 우리 아이 교육을 위해 강남으로 이사 가야 하는지, 수능의 중요도가 낮아졌다는데 사실인지, 선행학습이 필요하다면 어느 정도가 적정한 건지…. 이 책은 최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이러한 의문에 답하는 ‘실용서’다.
그런데 그저 ‘실용서’라고 보기엔 다루는 주제의 폭이 상당히 넓다. 교육의 속성상 실용적인 정보만 주워 모아서는 실용조차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첫째 이유는 정권의 향배에 따라 교육정책과 대입제도가 오락가락한다는 점이다. 일례로 입학사정관제의 경우, 올해 들어 정두언·정동영·정몽준 씨가 연이어 폐지를 주장했다. 연유를 따져보면 이 제도가 대세가 되기 어려움을 알 수 있다. 둘째 이유로 우리나라의 사회변동이 매우 빠르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아이가 사회에 진출할 즈음에는 인재상과 채용기준이 상당히 달라진다. 올해 들어 왜 삼성에서 지방대생을 많이 뽑겠다고 발표했는지,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이 강남·명문대 출신 도련님·공주님형 인재를 꺼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나는 교사·학부모·학생뿐 아니라 언론계와 교육계 인사들이 이 책을 꼭 읽어주길 바란다. 여태까지 교육과 관련돼 벌어진 많은 논쟁이 개념의 혼란에서 비롯된 헛소동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이 입버릇처럼 ‘입시 위주 교육’을 비판한다. 그런데 이를 따져보면 ①객관식 문제풀이 위주의 주입식 교육이 ②매우 높은 경쟁 강도로 이뤄지는 걸 비판하는 것이다. ①의 해법은 객관식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폐지하고 논술형 공인시험으로 대체하는 데 있고, ②의 해법은 서열 격차를 줄이는 대학체계 개혁과 학벌주의를 제어할 수 있는 강력한 사회정책에서 나온다. 이 두 가지를 뒤섞어놓고 이야기하면 답이 안 나온다.
평준화 논란도 그렇다. ‘평준화’는 우리나라 법률·행정에서 공식적으로 쓰는 용어가 아니다. 그 속에는 ①무시험 고교배정과 ②획일적 교육과정이라는 서로 다른 의미가 섞여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도입한 것은 ①인데, 이를 깨고 성적순 선발을 허용하는 순간 고입 사교육이 급팽창할 것이다. 이를 감당할 정치세력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남는 건 ②의 문제, 즉 우리 교육을 어떻게 다양화할 것이냐다. 해법은 교사의 자율성을 제약하는 교과서·내신평가제도와 국영수 위주의 입시과목을 혁신하고, 학생의 교과 선택권을 폭넓게 보장하는 무학년 학점제를 도입하는 데 있다. 헌법에 보장된 ‘동등한 교육 권리’는 획일적인 교육을 제공하라는 의미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동등한 선택권을 보장함으로써 다양한 교육을 꽃피우게 하라는 ‘교육 기회 극대화’의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이범│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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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향곡 _ 유광현 지음
1950년 6월 납북된 작곡가 유정호 씨의 동생이 형 가족의 삶을 통해 남북 분단의 역사를 기록한 책. 피아노에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 있던 유 씨는 1949년 5월 대한민국 정부수립 경축 전국 음악 콩쿠르에서 기악부문 대상을 받고, 성악부문 대상을 받은 동갑내기 최영애 씨와 만나 사랑에 빠진다. 전쟁통에 동반 납북된 이들은 북에서 ‘인민 작곡가, 인민가수’로 불리며 김일성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최 씨가 ‘기쁨조’ 담당비서로 일하다 김일성의 애첩으로 몰려 죽음을 맞으며 비극이 시작된다. 북한 바이올리니스트 손숙이와 재혼한 유 씨는 북한의 실상과 독재의 참상을 알리는 ‘통일교향곡’을 작곡한 뒤 숨을 거둔다. 유 씨의 아들이 이 작품의 일부를 몰래 숨긴 채 탈북해 미국에 살고 있던 작은아버지인 저자와 만나 아버지의 삶을 들려주면서 작품이 완성됐다. 비봉, 408쪽, 1만3500원
이분법 사회를 넘어서 _ 송호근 지음
“2007년에는 온통 ‘노무현 때문’이었다. 지금은 모두 ‘이명박 때문’으로 바뀌었다.”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는 이러한 진영 논리가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국민소득 일만 불에서 이만 불에 이르기까지 OECD 국가 중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왜 그랬을까? 지그재그로 달려왔기 때문이다. 공유가치가 그만큼 적어서 합의점을 도출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소요했고 더 많은 갈등비용을 지불했다.” 저자는 또 한 번의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헷갈리는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새로운 미래는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건넨다. 이번 대선의 쟁점이 될 복지와 소통 관련 쟁점을 하나하나 따지면서, 이념적인 논쟁을 넘어 한국의 미래를 위하는 자세를 가질 것을 강조한다. 다산북스, 252쪽, 1만5000원
승자의 편견 _ 데이비드 코드 머레이 지음, 박여진 옮김
‘앞만 보고 열심히 달리면 정말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부제가 붙은 책. GE에너지, 클로록스 등 여러 기업을 상대로 경영 전략과 혁신 방법 등을 조언해온 경영 컨설턴트인 저자는 “지속 가능한 경쟁우위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폴라로이드나 소니처럼 한때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하다 권좌를 내준 기업들이 대표 사례로 등장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우주개발 경쟁 등을 예로 들며 변화에 대처하는 적응의 중요성을 역설하기도 한다. “리더들은 위기와 변화에 대한 경각심은 높지만 그 다음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는 저자는 “제대로 된 플랜 A를 만든 뒤 ‘전략적 계획’과 ‘전술적 실행’을 조화시킨 새로운 조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원제는 ‘플랜 B’다. 생각연구소, 340쪽,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