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호

콘텐츠 수출·합작·문화관광…가상세계의 할리우드 꿈꾼다

국경 허문 新한류제국 ‘뮤직 네이션 SM타운’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입력2012-09-21 10: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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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셜네트워크와 스마트 환경으로 K팝 영토 확장
    • ‘시민’ ‘동포’로 팬들의 결속력, 연대감, 충성도 강화
    • 강호동·신동엽 등 거물급 영입 … 사업다각화 공격적 투자
    • 직원들, 이수만식 소통 리더십과 미래 비전 신뢰
    콘텐츠 수출·합작·문화관광…가상세계의 할리우드 꿈꾼다
    “여기 모인 우리는 언어와 민족은 다르지만 SM의 음악과 퍼포먼스로 하나 되는 뮤직 네이션(Music Nation) SM타운의 국가 탄생을 선포합니다.”

    8월 18일 오후 5시 반, 한국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 흰 정장을 차려입고 무대 중앙으로 나온 가수 강타와 보아는 4만여 관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계 첫 가상 음악국가 탄생을 알렸다. 이날 선포식은 올림픽 개막식을 연상케 했다. 한국을 비롯해 미국, 말레이시아, 이스라엘, 프랑스 등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나라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자국 국기가 그려진 피켓을 앞세우고 장내로 입장해 주경기장 트랙을 돌았다. 피부색도 국적도 다르지만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SM엔터테인먼트(SM) 소속 가수들의 팬이라는 것이다.

    30여 개국 팬들이 모두 입장하자 스타디움 주변에는 SM 소속 가수 52명의 전신사진이 내걸렸다. 일부 멤버는 커다란 ‘SM타운’기를 펼쳐들고 트랙을 돌았다. 동방신기가 ‘SM타운’기를 게양하고 강타와 보아가 선언문을 낭독한 뒤에는 슈퍼주니어 예성과 소녀시대 태연 등이 나와 축가를 불렀다. ‘SM타운 국민’에게 바치는 ‘디어 마이 패밀리(Dear My Family)’였다. 대형 스크린에는 각국을 대표하는 팬들의 축하인사가 이어지고, 장내를 메운 관중은 환호성을 지르며 축제 분위기를 즐겼다. 함께하는 모든 이가 ‘SM타운 국민’이라는 연대감으로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가상국가 선포식은 ‘SM타운 라이브 월드투어3 인 서울’ 공연을 보러 세계 각국에서 온 팬들을 위한 일종의 이벤트였다. 김은아 SM 홍보팀장은 “올해 월드투어가 5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공연을 시작으로 대만, 일본, 한국에서 열렸고 9월 22일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다”며 “케이팝 열풍이 전 세계에서 불고 있고, 한국의 수도 서울은 케이팝의 본거지인 만큼 서울 공연을 좀 더 특별하게 꾸미려고 음악으로 하나 되는 가상국가 선포식을 오프닝 세리머니로 준비했다”고 밝혔다.

    연예계 관계자들은 SM의 가상 음악국가 선포식을 두고 “케이팝과 SM 브랜드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고도의 마케팅”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는 “SM이 공연을 사전 예약한 팬들에게 발급한 SM타운 여권은 단순히 일회성 이벤트 상품이 아니라 SM타운 국민이라는 공식 인증서나 다름없다”며 “여권 소지자에게는 SM이 여는 모든 공연과 행사에 갈 때마다 스탬프를 찍어주고 특전도 제공하기 때문에 팬들의 소속감과 충성도를 높이는 중요한 매개체 노릇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SM이 SM타운 서울 공연에서 가상 음악국가 탄생을 알린 건 가벼이 볼 일이 아니다. 이 회사의 실질적 오너인 이수만 프로듀서는 2000년대 중후반부터 직원들에게 “아시아가 음악시장의 흐름을 주도하고, 한류가 국경과 인종을 초월한 가상 음악국가의 중심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말해왔다고 한다. 1990년대 중반 아이돌그룹 H·O·T의 등장 이후 팬클럽 중심의 오빠부대가 국내 음악의 흐름을 주도해왔다면, 앞으로는 한류 콘텐츠에 버추얼 네이션(virtual nation·가상 국가) 개념을 도입한 엔터테인먼트 국가가 세계 음악의 흐름을 주도할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 프로듀서가 공식석상에서 ‘버추얼 네이션’을 처음 언급한 것은 지난해 8월, 국내 최대 학술축제인 경영학회 통합학술대회 초청 강연에서다. 그해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SM타운 라이브 월드투어가 유럽의 케이팝 열풍을 입증하며 연일 화제를 모으던 때라 ‘버추얼 네이션’이라는 신조어를 꺼내든 한류 전도사의 강연은 큰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강연에서 그는 “현재 지식과 정보들은 유튜브, SNS, 스마트폰, 스마트TV 등을 통해 빛의 속도처럼 빠르게 시공을 초월해 전달되고 교환되고 있다”며 “앞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버추얼 네이션이 급부상할 것이고 SM타운이 그 중심에 자리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유튜브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SM의 콘텐츠를 시청하는 팬이 전 세계적으로 급속히 늘고 있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콘텐츠 수출·합작·문화관광…가상세계의 할리우드 꿈꾼다
    “SM타운 파리 공연에 열광했던 프랑스 한류팬들은 국적은 프랑스지만 SM타운이라는 가상국가의 재(在)프랑스 동포나 다름없습니다. 더불어 아시아, 미주, 남미 등에서 SM의 음악과 아티스트에 열광하는 사람들도 저마다 국적은 다르지만 SM타운의 시민이에요.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우리 시민들이 SM의 음악을 중심으로 모여들며 한 동포라는 동질감을 느끼고 있어요. SM은 새로운 미디어인 SNS 등을 통해서 SM타운이라고 하는 신 개념의 국가를 만든 겁니다.”

    업계 최초 유튜브 채널 만들어

    SM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유튜브에 공식 채널을 만들었다. 2010년 미국에서 열린 SM타운 LA 공연이 계기가 됐다. SM 관계자의 부연 설명은 이렇다.

    “2010년 미국 LA 공연의 비아시아인 예매율이 70%였어요.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는데 현장에서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 케이팝의 인기가 아시아를 넘어섰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죠. 그 비결이 뭔지 분석해보니 팬들이 뮤직비디오 동영상을 올린 유튜브가 도화선이었어요. 소녀시대와 슈퍼주니어의 뮤직비디오 조회 수가 수천만 건에 달했는데 아시아뿐 아니라 미국, 남미, 유럽에서도 많이 봤더라고요. 그래서 엔터테인먼트 기업 최초로 유튜브에 공식 채널을 만들고 페이스북 같은 SNS를 활용해 SM의 콘텐츠를 적극 홍보하기 시작했죠.”

    이에 힘입어 SM타운 페이스북에서 생중계한 파리 공연은 조회 수가 사흘 만에 8700만 건을 돌파하며 아시아에서 최단 시간 최다 조회 수를 기록하는 쾌거를 올렸다. 그해 10월 열린 SM타운 뉴욕 공연의 영상과 사진은 전 세계에서 1억 건 넘게 본 것으로 조사됐다. 김은아 팀장은 “파리 공연을 하기 전 SM 음악의 선호도를 파악할 수 있는 유튜브의 통계를 근거로 성공가능성을 감지할 수 있었다”며 비화를 전했다.

    “파리가 유럽의 중심지고 유럽 어디에서도 접근성이 좋아 SM타운 유럽 공연을 파리에서 연 거예요. 원래는 공연을 1회만 하려고 했는데 현장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루브르박물관 앞 광장에서 벌인 플래시몹(flash mob)도 성황을 이뤘어요. 기대는 했지만 케이팝의 인기가 그 정도일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죠.”

    SM타운 파리 공연은 이 프로듀서가 가상국가의 성공가능성을 검증하는 시험무대가 된 셈이다. 사실 SM타운의 출발은 거창하지 않았다. SM타운이라는 용어는 1999년 SM 소속 가수들이 성탄절을 기념해 합동 발매한 음반 ‘크리스마스 인 SM타운’에 처음 등장했다. 이후 SM 소속 가수들이 합동으로 음반을 내거나 공연을 할 때마다 타이틀에 ‘SM타운’이 들어갔다. SM타운은 자연스럽게 SM 소속 가수와 팬이 함께하는 마을 개념으로 자리 잡았고 상호 간의 결속력을 다지는 구심점으로 작용했다. SM타운에서 자신의 우상과 이웃사촌이 된 팬들은 조직적인 팬클럽 활동을 통해 새 앨범이 나올 때마다 구매하는 충성심을 발휘했다. 디지털음원 시장이 커지고 음반시장이 위축되면서 많은 연예기획사가 도산했지만 그 와중에도 SM이 탄탄대로를 달려온 것 역시 충성도 높은 팬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SM은 아이돌그룹의 일본, 대만, 중국 등 해외 진출에도 이러한 팬덤 현상의 파괴력을 활용해 아시아 시장에서의 입지를 굳혔다. 한류 열풍이 시작될 당시만 해도 연예계 안팎에서는 언제 꺾일지 모르는 반짝 기류라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팬들에게 소속감, 연대감을 심어주는 SM의 팬 관리 방식은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SNS, 스마트 환경과 어우러져 한류의 한 축인 케이팝을 전 세계가 열광하는 음악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이 프로듀서는 지난해 파리 공연 직후 SM이 현지에서 개최한 콘퍼런스에 참석해 SM의 한류 발전 전략에 토대가 된 문화기술(CT·Culture Technology) 이론을 소개하며 “앞으로는 IT(정보기술)보다 CT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10년, 20년 전에는 경제가 먼저 발전하면 문화도 자연히 발전하게 된다고 여겼지만 SM이 처음 해외진출을 준비할 때부터 ‘문화가 먼저 발전하면 경제발전은 따라오게 돼 있다’는 게 내 지론이었다”며 “이후 줄곧 우리 문화가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다면 우리 경제 역시 최고가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문화를 키워왔고 점점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06년부터 하버드, MIT, 코넬, 스탠퍼드 등 미국 최고의 명문대에서 한류를 주제로 강연할 때마다 문화의 힘을 역설해왔다.

    콘텐츠 수출·합작·문화관광…가상세계의 할리우드 꿈꾼다

    지난해 6월 열린 SM타운 파리 공연은 유럽의 케이팝 열풍을 실감케 했다.

    “우리 아티스트를 비롯한 문화상품은 전 세계에서 주목하는 경쟁력 있는 콘텐츠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아이튠스, SNS 같은 혁신적인 매체의 발달로 가상국가 개념이 부상하고 전 세계가 거의 동시에 콘텐츠를 소비합니다. 문화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미 한국 가수를 좋아하는 전 세계 팬들은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제품을 사고, 한국을 방문하고 있어요. 한국 스타가 입은 옷과 사용하는 휴대전화를 구매하고, 한국 드라마에 등장한 장소를 찾고, 한국 가수의 기획사를 보려고 많은 외국인이 한국으로 옵니다. 향후에는 더 다양한 방식과 형태로 문화 콘텐츠를 소비하고, 그와 연결된 문화관광 상품이 개발될 거예요.”

    ‘K팝’에서 ‘K컬처’로

    김영민 SM 대표가 올 초부터 강조한 키워드도 ‘케이컬처(K-Culture)’다. SM은 케이컬처의 세계화를 염두에 두고 지난 4월 여행사인 BT·I를 인수한 데 이어 사명을 SM C·C로 변경했다. SM C·C는 사업 방향을 크게 둘로 나눠 기존의 여행업을 통해 한류 관광의 기반을 다지는 한편 영상물 콘텐츠 제작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수만 프로듀서는 지난해 한 강연에서 “문화 콘텐츠의 엄청난 경제적 파급효과를 감안할 때,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우수한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창조하는 작업은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밝힌 바 있다.

    관광산업 분야의 첫 여행상품은 ‘SM타운 라이브 월드투어3’ 글로벌 패키지였다. 이 상품에는 8월 10일 개막한 전시회 ‘SM 아트 엑시비션’과 8월 18일 열린 ‘SM타운 라이브 월드투어’ 서울 공연 관람이 포함돼 있었다. 이 상품은 프리미엄급(1680달러)부터 유스호스텔 패키지(299달러), 가족 관객을 위한 해피 패밀리(499달러) 등 7가지로 상당히 고가였지만 일찌감치 다 팔렸다.

    SM C·C는 SBS와 20억 원 규모의 국내 판권 계약을 맺고 ‘아름다운 그대에게’라는 드라마를 만들어 납품하고 있다. 예능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거물급 MC인 강호동과 신동엽도 영입했다. 예능계의 흥행 보증수표로 인정받는 두 사람이 SM C·C와 전속계약을 맺은 사실은 8월 중순 기업 공시를 통해 알려졌다. 이들은 각기 68만9500주를 배당받아 이 회사의 주주가 됐다. 잠정 은퇴 후 복귀시기를 놓고 고심 중이던 예능계의 흥행 보증수표 강호동이 이 회사와 손잡은 데는 이 프로듀서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그는 “강호동만을 위한 제작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진정성이 담긴 설득으로 강호동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한다.

    이 프로듀서에 대한 SM 소속 연예인과 직원들의 신뢰는 절대적이었다. 이들은 그가 제시하는 미래 비전과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는 모습을 높이 평가했다. 사내에서 그는 아이디어 뱅크로 통한다. 회사가 벌이는 모든 사업에 관한 신선한 아이디어가 그에게서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음은 한 직원의 전언이다.

    “우리도 아이디어를 내지만 콘텐츠에서만큼은 프로듀서님을 당해낼 수가 없어요. 그렇다고 권위적이진 않아요. 좋은 생각이 있으면 사내 메일로 직원들에게 보내 꼭 의견을 구하세요. 그럼 직원들이 보완할 점이나 고칠 점, 더 좋은 아이디어를 보내요. 또 자주 뵐 순 없지만 연말연시 행사 같은 데서 만나면 회사의 비전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세요. 재미있게도 지금까지 그 비전이 잘 들어맞았어요. 많은 직원이 프로듀서님을 믿고 존경하는 이유죠.”

    이 프로듀서는 한류가 3단계로 발전할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에서 만들고 부른 음악 콘텐츠를 해외로 수출하는 것을 1단계,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가수를 선발해 키우는 합작을 2단계, 중국 작곡가가 만든 노래를 중국 가수가 부르고 한국은 자본만 투자해 돈을 버는 합자는 3단계로 본다. SM이 SM C·C를 자회사로 만들어 사업 다각화를 꾀하는 것도 그 때문으로 보인다. 이 프로듀서는 장래 문화콘텐츠 산업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시장은 아시아라고 강조해왔다. 이에 대한 근거로 세계 2위 음반 소비국인 일본과 13억 인구를 가진 중국이 바로 옆에 있고, 주변 아세안 국가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가 꿈꾸는 가상 음악국가 ‘SM타운’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지난해 경영학회 통합학술대회에서 그가 한 말에 답이 있다.

    “미래의 최대 시장은 중국이에요. SM의 타깃도 중국입니다. SM타운은 콘텐츠 제작과 합작, 합자를 통해 가상세계의 할리우드가 될 거예요. 물론 SM타운의 근거지는 한국입니다. 한국에서 한류 팬의 전당대회, 집성대회를 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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