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의 유민영 대변인이 ‘신동아’ 에 한 답변이다. ‘신동아’ 9월호는 “안 원장과 함께 룸살롱에서 술을 마셨다”는 증언을 보도하면서 유 대변인의 이 답변도 함께 실었다.
신동아 보도 이후 인터넷과 정치권에서 룸살롱 논란이 한동안 들끓었고, 본격적인 언론 검증이 시작됐다. ‘안철수 룸살롱’ ‘박근혜 콘돔’이 검색어 1위에 올랐고 네이버가 곤욕을 치렀다. 안 원장 측은 한동안 “대꾸할 가치가 없다”는 표현을 견지했다. 유 대변인은 “기사의 기본이 안 되어 있다”고 했고, 금태섭 변호사는 “부당한 공격” “괜히 몰아붙인다”고 했다.
그러나 예상외로 파문이 커지자 안 원장 측은 ‘대꾸할 가치 없는 기사’에 대꾸를 했다. “1998년 이전에는 술을 마셨고 몇 번 유흥주점에 가본 적이 있다. 이후에는 두세 차례 갔으나 술을 마시지 않고 동석했다”는 답변이었다. 그러면서도 “어처구니없는” “악의적” “조직적” 같은 단어를 사용하며 기사에 대한 비난을 빠뜨리지 않았다.
보도 후 기자는 안 원장 지지자들로 보이는 네티즌들로부터도 평생 들을 만큼의 욕을 들은 것 같다. 일부 네티즌이 “기자가 출마하나. 그만하자”고 할 정도였다. 2007년 대선 때 “박근혜가 전두환으로부터 성북동 저택을 공짜로 받았다”는 기사를 썼을 때도 친박 네티즌들로부터 심하게 욕을 먹은 적이 있는데 이번엔 그 몇 배였다.
“기본이 안 된 기사”
당사자의 설명까지 나왔으니 ‘안철수 룸살롱’ 건의 선후관계는 명료하게 정리될 수 있다. 안 원장은 MBC TV ‘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단란하게 먹는 술집도 가보셨어요?”라는 질문에 “아뇨. 뭐가 단란한 거죠?”라고 답했다. 안 원장의 주장대로 그가 TV에 나와 직접적 표현으로 여종업원이 접대하는 술집을 부인(否認)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식의 선에서 볼 때 그런 술집에 안 가봤다는 취지로 말한 것이 분명하다. 사회자도 감동했는지 “영웅”이라고 했다. ‘세인트(Saint·聖人) 안철수’가 미디어를 통해 탄생한 순간이었다.
이후 ‘신동아’는 안 원장이 룸살롱에서 술을 마셨다는 증언을 보도했고 이 보도에 떠밀리듯이 안 원장은 룸살롱에서 술 마신 점을 시인한 것이다. 이로써 룸살롱을 드나들어놓고도 TV프로에 출연해선 그런 데는 안 가보고 살아온 것인 양 말해온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신동아’ 기사는 진실을 밝혀주었음에 분명하다. 한 나라를 이끌지도 모르는 대선주자의 가식이나 감추고픈 과거를 드러낸 기사보다 더 공적으로 유익한 기사는 없다. 그렇다면 이 기사에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안 원장이 룸살롱에서 무엇을 했는지를 육하원칙에 입각해 구체적으로 쓰지 않았기에 대꾸할 가치도 없고 기본도 안 된 기사라는 것일까. 언론의 의문제기에 대해 진정성 있는 자세는 아닌 것 같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대선 후보 존 매케인과 로비스트 비키 아이즈먼의 스캔들 의문을 1면에 보도하면서 ‘매케인에게 있어 윤리에 대한 자신감은 그에 따른 위험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라는 제목을 붙인 바 있다. ‘신동아’ 기사는 이렇게 한편의 논문이 연상될 정도로 룸살롱 이야기를 암시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안 원장의 품격에 누가 되는 용어도 사용하지 않았다.
안철수의 에토스
반면 안 원장과 측근들이 구사하는 어휘들은, 방어권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기사를 작성한 쪽에 대한 모욕으로 느껴지기에 충분했다. 비단 이 건만이 아니다. 안 원장의 고상한 말들과는 어울리지 않은 그의 부동산 거래 내역들이 보도됐다. 그러자 금 변호사는 “일부 언론 뒤에 숨은 보이지 않는 거대 권력이 현 상황을 지휘하고 있지는 않은지 강한 의문을 갖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언론을 권력의 꼭두각시로 보는 근거를 대지는 않았다. 해당 매체들은 이 말에 모욕감을 느꼈다고 했다.
같은 말을 하면서도 상대를 깎아내리는 재주가 안 원장의 측근들에게 있는 것 같다. 불리하다 생각되면 비방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수준의 ‘안철수의 입들’은 되레 안 원장의 점수를 깎아내리는 내부의 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인격에 의한 설득력인 에토스(ethos)는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자질이다. 안 원장의 에토스에 조금 의문이 들기 시작하는 게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