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덤프트럭 120대 5번 운행…하루 1만t 흙 퍼 날라
- ‘1조 공사’ 토목공사만 14개월…“진척률 0.5% 순항 중”
- 2015년 5월 완공되면 글로벌 인재 1만 명 집결
- 인근 LG, KT 등 연구센터만 17곳…서초구 ‘R&D 클러스터’ 부상
- “베이징 중관춘(中關村)처럼 한국 경제 이끌 브레인 기대”
도시지원시설 공사장 입구에서 150여 m 떨어진 곳에서 터파기를 하는 10여 대의 포클레인도 부지런히 버킷(바가지)을 놀렸다. 공사장 입구와 달리 이미 수십m 터파기가 진행된 곳에서 작업하는 포클레인은 고저 차이 때문인지 장난감처럼 작아 보였다.
“8월 7일 공사를 시작해 현재 진척률은 0.5%입니다. 매일 120대의 덤프트럭이 5회 운행하면서 하루 평균 5000㎥(1만t)의 흙을 나르고 있어요. 토목공사는 전체 34개월 공사 기간 중 14개월간 진행됩니다.”
안학모 삼성물산 현장소장은 “기자가 공사현장을 찾은 것은 처음”이라며 “주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방음펜스를 설치하고 분진을 예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삼성전자 우면 R·D 센터는 우면산터널 과천 방향 출구 쪽 우면초교 근처(우면동 167의 2와 272번지) 6만4463㎡(2만 평) 부지에 지상 10층, 지하 5층 건물 6개동(1개동은 지상 8층)으로 들어선다. 연면적은 33만821㎡(10만 평). 연구 1단지(1만8107㎡), 연구 2단지(2만8804㎡), 도시지원시설(6642㎡) 부지 3개 필지로 나뉘어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삼성전자가 건축비와 땅값 등 1조2000여억 원을 투입해 서울에서 처음 짓는 연구·개발(R·D)센터인 만큼 국민의 관심도 그만큼 크다.
친환경 첨단연구소
우면 R·D 센터는 기존의 딱딱한 ‘콘크리트 연구소’가 아니라 주변 녹지경관과 어울리는 친환경 첨단 연구소로 지어질 계획. 공사가 마무리되면 이곳은 디자인·소프트웨어 연구 인력 1만 명이 일하는 핵심 연구거점이 된다. 서울에 처음 연구시설을 확보하게 돼 핵심 연구인력 확보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의 설명이다.
“우면 R·D 센터는 글로벌 인재들이 혁신 제품을 개발하는 핵심 기지로 기존 수원, 기흥 연구단지와 함께 3대 연구거점이 될 것이다. 자연 친화적인 명품 산책길과 조각공원 등을 조성해 우면산과 조화를 이루는 친환경 연구소로 만들 계획이다.”
특히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우면 R·D센터 관련 보고를 받고 핵심 기지로 만들라고 지시하는 등 특별한 관심을 보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서초구 역시 우면 R·D센터 건립을 계기로 세계적인 ‘첨단 R·D 클러스터’ 조성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매주 구청장 주재 현안회의를 통해 관내에 있는 R·D 센터의 민원과 요구사항을 분석한 뒤 연구단지 유치 전략을 정교하게 가다듬고 있다. 현재는 또 다른 대기업 3곳과 R·D 센터 유치를 위해 협의 중이다.
여기에 우면 R·D센터 공사기간에만 연간 60만 명의 건설 일자리가 생기고, 공사 완료 후에는 1만 명의 글로벌 인재가 서초로 유입되는 만큼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초구 관내에는 이미 LG전자 서초 R·D캠퍼스(양재동), KT 연구개발센터(우면동), 모토로라 모바일연구소(양재동) 등 17개 기관·기업연구소가 터를 잡았다. 여기에 삼성전자가 우면 R·D센터를 완공하고, 2015년께 서울 성수동에 신사옥 글로벌비즈니스센터를 짓고 양재동 사옥을 연구시설로 활용한다는 현대자동차그룹의 계획이 이뤄지면, 양재·우면동 일대는 세계적 R·D 클러스터로 부상할 전망이다. 진익철 서초구청장의 말이다.
“베이징 실리콘밸리인 중관춘(中關村)에는 IBM, AMD,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기업과 바이오 신소재산업 관련 2만여 기업이 입주해 있다. 이곳이 베이징 전체 공업 생산액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서초구 R·D 클러스터도 머잖아 한국 경제를 이끌 핵심 기지가 될 것으로 본다. 도로 등 기반시설이 잘 갖춰진 것도 장점이다.”
경부고속도로와 지하철 신분당선, 양재대로, 고속버스·시외버스터미널, 양재화물터미널 등 교통과 물류기반이 이미 들어섰고, 2016년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과 강남구 수서동을 잇는 강남순환도시고속도와 우면산을 관통하는 서초터널(총연장 2.63km)이 완공되면 사통팔달 교통망도 구축된다.
‘잉크도 마르지 않은’ 실시계획 변경
그러나 우면 R·D 센터를 착공하기까지는 ‘산 넘어 산’이었다. 잠시 그 역사를 되돌아보자.
우면 R·D 센터의 시작은 2005년 2월 서초구가 현재의 공사장 일대(양재 R·D 특정개발진흥지구)를 ‘정보통신(IT)·전자·자동차 분야 첨단 연구개발 특구’로 지정해줄 것을 건의하면서부터다. 그해 9월 당시 건설교통부는 이곳을 우면2 국민임대주택단지예정지구 내 연구시설용지로 지정 고시했고, 서울시는 2009년 4월에 양재 R·D, 성수 IT, 마포 디자인, 종로 귀금속, 여의도·중구 금융 등 산업뉴타운(산업·특정개발진흥지구) 대상지로 선정했다. 하지만 2010년 1월 국토해양부가 양재 R·D 특정개발진흥지구 내 연구시설을 4층 이하(용적률 240% 이하), 아파트형 공장 등 도시지원시설은 5층 이하(300% 이하)로 결정 고시하면서 실타래가 꼬였다.
‘4층 이하’ 규제는 인근 우면동 형촌·성촌마을 주민들의 조망권을 고려한 결과였지만, ‘4층 이하’로 높이가 제한되자 투자·입주할 글로벌 기업들이 난색을 표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된 것. 2010년 6·2 지방선거에 당선된 진익철 서초구청장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직원들과 머리를 맞댔다. 서초구청 이미행 총무과장의 설명이다.
“서초에서 R·D 단지로 지정된 유일한 곳이 ‘4층 이하’로 묶여 아파트형 공장밖에 들어설 수 없게 됐다. 세계적인 도시가 되려면 친환경 글로벌 기업이 들어와야 하는데 ‘4층 제한’으론 이런 기업을 유치할 수 없었다. 공원녹지율이 높은 서초에 공해산업이 들어설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잉크도 마르지 않은’ 실시계획 변경(밀도 완화) 요청 카드를 꺼내들었다. 규제를 풀어달라는 요구였다.”
진 구청장과 직원들은 국토해양부와 환경부, 서울시 등을 찾아 “관내 17개 R·D 센터가 이미 모여 있는 만큼 글로벌 R·D 연구단지 유치가 꼭 필요하다”며 “층수 제한을 풀어 참여 기업에 인센티브를 줘야 가능한 일”이라고 설득했다. 연구단지 인근 형촌·성촌마을 주민에게는 지역 발전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친환경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겠다고 설득했다. 노력은 결국 빛을 발했다.
1년 2개월간의 설득작업 끝에 연구시설은 4층→10층(용적률 240%→360%)이하로, 도시지원시설은 5층→10층(용적률 300%→360%) 이하로 개발밀도를 완화하는 우면2지구 실시계획 변경 승인을 받았다. 2011년 8월 22일이었다. 삼성전자는 2달 뒤 경쟁입찰을 통해 SH공사에 2018억여 원을 주고 연구시설 부지를 매입했다. 도시지원시설은 300여억 원에 사들였다.
30여 명의 주민이 ‘건축허가를 내주지 말라’고 서울시에 민원을 제기하면서 건축허가가 보류되자, 3800여 명의 인근주민은 서울시에 ‘빨리 허가하라’며 청원서를 냈다. 결국 서울시는 7월 27일 건축허가를 승인했고, 8월 7일 공사가 시작됐다. 2005년 2월 연구개발 특구 지정 건의 후 7년 8개월 만에 드디어 결실을 보는 순간이었다.
공사가 시작되자 주민들의 기대감도 커졌다. 이종환 서초구주민발전협의회장(65)은 “우면 R·D 단지가 들어온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다. 연구단지가 들어와 우수 인력이 유입되고 도시 기반시설이 잘 갖춰지면, 지역 브랜드 가치도 올라가고 지역경제는 물론 국가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고, 최홍규 양재1동 주민자치위원장(52)은 “‘우리나라에는 왜 미국의 실리콘밸리 같은 연구도시가 없을까’하고 아쉬워했는데, 우리 동네에 이렇게 큰 첨단 연구단지가 들어서니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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