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연안 관할 수역에서 해양 범죄의 수사와 송치, 치안 유지, 오염방제 및 탐색 구조 등을 관장하는 해양경찰이 설립된 지 올해로 59년이 됐다.
- 그 사이 바다의 중요성은 크게 커졌다. 물류 유통, 자원 개발, 식량 수급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바다에 대한 의존도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 그만큼 해양경찰이 해야 할 일도 많아졌다.
- ‘해양의 시대’에 우리나라 바다 주권의 수호자로 활약 중인 해양경찰의 발전사와 향후 과제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2010년 부산해양경찰서와 해양환경관리공단이 공동으로 실시한 대형 해양오염사고 대비 해상 방제훈련 광경. 선박 21척, 헬기 1대, 오일펜스 1.2km 등의 장비와 220여 명의 인원이 동원됐다.
인구 5000만 명이 넘은 나라는 지구상에 약 50개국이다. 그러나 인구가 많아도 국민소득이 낮고 경제발전이 덜 된 나라는 ‘20-50클럽’에 속할 수 없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6년 10월,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이제 우리도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경제적인 내실이 뒷받침되지 못한 상황에서 OECD 가입을 서두르는 바람에 오히려 경제위기를 초래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20-50클럽’의 멤버가 된 것은 한국의 국가적인 위상을 정확하게 나타내는 하나의 지표다. 국가적 위상이 눈에 띄게 향상된 것은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도 입증됐다. 펜싱, 사격, 수영, 체조처럼 문화적·경제적인 뒷받침이 있어야만 선수층의 저변이 확대될 수 있는 종목에서 우리는 여러 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우리 국민의 경제적·문화적인 위상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20-50클럽’ 이야기를 장황하게 꺼낸 이유는, 중요하고도 예민한 기능을 갖는 국가기관인 해양경찰의 현재 모습을 정확히 평가하기 위해서다. 또 발전하는 국가 위상에 걸맞게 되려면, 나아가 국가적인 발전을 선도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역량 있는 국가 기관이 되려면 어떤 목표와 노력이 필요한지도 말하기 위해서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는 한 나라의 경제적인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다. 그러나 국민이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그 나라가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도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가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개인 중에도 돈은 다소 만지지만 윤리적인 인식이 부족한 사람이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국가도 마찬가지다.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달러를 넘을지라도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일정 수준에 미치지 못할 수 있는 것이다.
한일 대륙붕 공동개발 협정
국가기관은 혈세로 운영된다. 그러니, 물론 조직원들의 사명감과 노력에 많이 좌우되기는 하나, 국가의 경제력이 올라가면 조직도 커지고 기능도 향상되게 마련이다. 해양경찰도 예외는 아니다.
1974년 1월 31일 서울에서 대한민국과 일본 간에 대륙붕 공동개발협정이 체결됐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이 협정의 내용은 우리나라가 1970년 1월, 제7해저개발광구로 설정한 동중국해 대륙붕 지역에서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자원을 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중요한 점은 제7광구의 대부분이 ‘등거리 원칙’을 적용해 배타적경제수역(EEZ)의 경계선을 정할 경우 일본의 EEZ 관할수역 범위에 속한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바다 윗부분은 일본측 EEZ가 되나 해저는 대한민국의 대륙붕이라는 우리 측의 관할 주장이 법적으로 타당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았다면, 논리적으로 불가능했을 협약이다. 물론 이는 1969년 2월 국제사법재판소가 판결한 유명한 대륙붕 경계획정 사건인 ‘북해대륙붕 사건’에서 확인된 ‘육지의 자연연장설’에 근거를 둔 것이다. 필자는 이 사건을 ‘자원외교의 승리’ 사례로 우리 외교사에 길이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국제사법재판소가 인정한 법적 원리, 즉 ‘육지의 자연연장설’에 근거를 둔 것임에도 일본인 대부분과 국회는 이 협약을 ‘중요한 외교적 실수’라고까지 지적하며 반대했다는 점이다. 조약을 체결한 뒤 일본 정부와 국회는 여러 가지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비준을 거부했다. 1976년 들어서 일본이 내놓은 핑계는 우리나라의 국내법에 ‘해양오염방지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해저자원을 탐사하고 개발하다보면 해양을 오염시킬 요인이 많이 발생하는데 ‘해양오염방지법’이 없는 한국과 함께 이런 활동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조약 관계관의 보고를 듣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물었다.
“우리는 정말 ‘해양오염방지법’이 없는가?”
“예. 없습니다.”
“그럼 당장 만들게.”
환경오염의 기본 개념조차 아직 알려져 있지 않던 그 시대 한국에서 ‘해양오염 방지’라는 건 고위 공무원조차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해양오염방지법’을 만들기 위한 범정부기관 위원회가 소집됐다. 그때 마침 ‘제3차 유엔해양법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해 약 두 달간 미국 뉴욕에 머물며 ‘해양환경의 보호와 보존’에 관한 토의를 하고 돌아온 필자는 범정부기관 위원회에 국방부 대표로 참석하게 됐다.
해양오염 방지 주무기관
당시 한국 정부는 일본의 ‘해양오염방지법’을 우리말로 번역해 우리나라 ‘해양오염방지법’의 초안을 만들었다. 한자가 섞인 일본어를 번역하는 일은 영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것보다 쉬울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여건이 여러 모로 달랐기 때문이다. 일본의 ‘해양오염방지법’에는 오염 방지 활동의 실질적인 주체가 ‘해상보안청’으로 규정돼 있다. 당시 번역 작업을 주관한 ‘보건사회부 수질보존과’ 직원들은 기계적으로 ‘해상보안청’을 ‘해양경찰’로 옮겼다. 일본의 ‘해상보안청’은 당시 일본 ‘교통성’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해양경찰은 ‘내무부 경찰국’ 소속이었다. ‘교통성’을 ‘내무부’로 번역하면 이것도 사실 큰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해양오염 방지를 위한 국가기관으로서의 각종 소관 업무 범위와 의무 사항이 나열되는 것을 보고 그 회의에 나와 있던 해양경찰 대표는 당황했던 것 같다. 생소할 뿐 아니라 일견 중차대하고 복잡한 임무를 아무런 준비도 없는 해양경찰이, 단순히 일본의 ‘해양오염방지법’ 때문에 갑자기 맡게 되는 것은 부당하기도 하고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토의 과정에서 인내력을 발휘하고 앉아 있던 그는 갑자기 일어나 ‘보건사회부 수질보존과’ 당무자의 멱살을 틀어쥐고 복도로 끌고 나가는 해프닝이 빚어지기도 했다.
사실 미국이나 일본과 달리 영국에서는 해군이 해양오염 방지 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새로운 오염방지 업무를 전담하는 일에 대한 두려움과 당혹감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그 해양경찰 대표에게 당시 해군 법무차감이던 필자는 “가능하다면 이 임무를 해군이 가져가고 싶다”고 말했다. 국가기관이 임무를 맡으면 조직과 인원 및 예산이 당연히 뒤따르를 것이므로 새로운 임무를 두려워할 것만은 아니라고 귀띔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해양경찰은 해양오염 방지 업무의 주무기관이 됐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직, 인원 및 예산이 차차 갖춰진 것도 물론이다.
해양 의존의 세기
“21세기는 해양 의존의 세기”라는 말을 많이 한다. 우리가 의식하거나 의식하지 못하거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분명 ‘해양 의존’의 세기’다. 물류 유통, 에너지 자원 개발, 생활공간, 심지어는 식량 수급까지 인류는 해양에 의존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바다를 의식하고, 각종 문제에 대비하면서, 집요하고도 성실하게 필요한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 이런 분야에 관한 한 최일선에 선 국가기관 중 하나가 해양경찰이다.
앞으로 한 세기 동안, 바다라고 하는 일반인이 잘 알지 못하는 분야에서 새로운 국가적인 목표와 기능을 정의하고 준비하고 나아가 국가의 이익을 보호해야 하는 해양경찰은 국가 기관 중에서도 가장 역동적인 부서로 계속 성장하고 발전할 것이다. 꼭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우리나라는 육지 영토의 3.9배나 되는 EEZ를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추정치일 뿐이다. EEZ 중 대부분이 아직 범위가 확정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접 관할 수역 면적은 대체로 38만㎢를 조금 넘는다고 보고 있다. 이 관할 수역을 지키고 주권적인 권리를 행사하는 일을 해양경찰이 맡고 있다.
최근 이 바다를 둘러싼 주변국과의 갈등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중국은 해양굴기(海洋堀起), 즉 ‘바다에서 일어선다’는 말을 쓸 만큼 해양강국 건설에 매진 중이다. 해양산업을 8대 핵심사업으로 정했다. 일본도 2007년 해양기본법, 2008년 해양기본계획 등을 제정해 국가해양 전략의 기본 골격을 세웠고, 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종합해양 정책본부’를 출범시켜 일관성 있는 해양 정책을 추진 중이다. 국제 해양 문제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고, 해양을 통해 국부를 창출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우리나라와 이런 주변국의 이해관계는 상충될 수밖에 없다. 1996년 유엔해양법협약 발효 이후 꾸준히 진행 중인 중국·일본과의 해양경계획정 협상이 크게 진전을 보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일본과는 독도 영유권 문제로, 중국과는 서해와 동중국해에서의 경계획정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다.
흔히 마주 보는 국가나 인접한 국가 사이에 해양관할 수역(대부분 영해나 EEZ) 경계를 획정할 때는 ‘등거리 원칙’을 기준으로 삼는다. 여기에 첨가해 해안선의 길이나 인접한 섬의 존재, 그리고 섬과 연안의 인구 수 같은 것을 참작하게 돼 있다. 이것을 ‘비례의 원칙’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서해에서 한국과 중국의 경계를 정하는 것을 예로 들어보자. ‘등거리 원칙’을 적용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와 중국, 심지어 북한까지 모두 동의한다.
해양 주권의 수호자
지난 7월 인천에서 해양경찰청 본청 간부와 전국 15개 해양경찰서 서장 등이 참여해 열린 불법조업 단속 체험 훈련 모습. 이날 참가자들은 진압복을 입고 가상의 중국어선에 올라 단속법을 체험했다.
생물자원을 놓고도 우리나라는 주변국과 갈등 관계에 있다. 해양경찰이 연간 300~400척의 중국 어선을 나포하고 있지만 우리 EEZ를 침범하는 중국 어선의 수는 계속 늘고, 단속방해 행위는 갈수록 과격해진다. ‘해양 영토의 수호자’ 해양경찰에 더 큰 힘이 실려야 하는 이유다.
한중 어업협정이 발효되기 직전인 2001년 2월까지 우리 해양경찰은 노후한 3000t급 경비정 3척과 소형 경비 선박 몇 척만 갖고 있었다. 항공력은 전무했다. 필자는 해양법 학자로서 주권적인 권리를 행사하는 국가의 기본적인 체제가 이처럼 열악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점을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이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지적했었다. 이후 해양경찰은 꾸준히 성장해 지금은 인력 1만여 명, 함정 289척, 항공기 20대를 보유하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면이 있다. 한국과 중국, 한국과 일본 사이에 EEZ 및 대륙붕 협상이 체결되면 우리나라의 해양 영토는 더 넓어지므로 좀 더 광역화되고 입체적인 경비체계가 필요하다. 이에 따라 해양경찰은 앞으로 대형함정 4대와 고정익 항공기 8대 및 회전익 항공기 7대를 신규로 확보할 예정이다. ‘해양경찰 비전 2020’을 수립해 2020년까지 장비 증강에 매진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장비 증강 사업이 완료되면 우리 해양경찰은 대형함정 33척, 항공기 34대를 보유하게 된다. 초계순찰의 기동성이 높아지고, 사고해역에 1시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체계적인 광역 경비 임무도 수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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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해양경찰에게 가장 역동적인 국가기관으로 성장하도록 하기 위해 주는 조직과 인원과 예산은 모두 혈세에서 나온다. 그것은 곧 우리 국민의 꿈과 이상과 안전을 보장해야 될 해양경찰에게 주는 신뢰다. 이 귀중한 국민의 신뢰에 대해 성의와 창의로 응답한다면, 젊음을 송두리 째 바쳐서 헌신한다면, ‘대한민국 해양경찰’은 영국보다, 미국보다 그리고 중국이나 일본보다 더 훌륭한 해양경찰로서 영광된 성장을 계속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