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호

“국내에선 공익 해외에선 수익 추구하겠다”

김중겸 사장의 한전 혁신 1년

  • 송홍근 기자│carrot@donga.com

    입력2012-09-21 14: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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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시장 개척 나서 미래 성장 동력 확충
    • 고강도 경영합리화 조치 국내외서 성공
    • 이동거리 20만9702㎞… 발로 뛰는 경영
    “국내에선 공익 해외에선 수익 추구하겠다”

    김중겸 한전 사장이 2011년 9월 20일 서울 성동구 마장동 성동전력소를 방문해 전력수급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8월29일 격앙된 반응이 지식경제부에서 쏟아져 나왔다. 한국전력공사가 지경부 산하 전력거래소와 전력거래소 비용평가위원회 위원들을 상대로 4조4000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내겠다고 ‘폭탄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비용평가위원회엔 정부 공무원도 들어가 있다. 을(乙)인 공기업이 갑(甲)인 주무부처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이다.

    한전은 “비용평가위원회가 구매단가를 잘못 계산하는 바람에 적자구조가 악화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관가에서는 “한전이 정부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했다”는 뒷말이 나왔다. “누가 사장으로 오더라도 적자를 개선하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게 김중겸 한전 사장의 소신이다. 김 사장은 전기요금 인상과 관련해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있다.

    글로벌 톱 향한 뚝심 경영

    김 사장이 취임 1주년을 맞았다. “뚝심 있다”는 평가가 한전 안팎에서 나온다. 그는 지난해 9월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Global Top Green · Smart Energy Pioneer’를 한전의 비전으로 제시했다. 취임사에서는 “전력사업 글로벌화와 미래 트렌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면서 “글로벌 전력회사를 벤치마킹해 국내·해외사업에서 모두 경쟁력을 높여 전 부문 글로벌 톱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사장의 한전 경영은 ‘국내에서는 공익 추구, 해외에서는 수익 추구’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는 취임 후 1년 동안 17개국, 67개 기관을 방문했다. 이동거리가 20만9702㎞에 달한다. 해외 사업 수주를 위한 프런트 로그(Front Log·향후 참여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업기회 목록)를 발굴하고자 글로벌 현장을 직접 발로 뛴 것. 한전이 최근 1년 동안 발굴한 프런트 로그는 40건(2012년 12건, 2013년 28건)에 달한다.



    한전은 원자력 및 화력발전, 자원 개발 분야에서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이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 진행 중인 5600MW 규모 원전 건설 사업이다. 한전은 현재 7개국 13개 곳에서 발전사업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다. 해외 자원 개발과 송배전 관련 컨설팅 사업 등에서도 가시적 성과를 내고 있다.

    김 사장은 장기 비전을 마련하면서 2025년 매출 목표를 150조 원으로 설정했다. 그중 해외 사업 비중이 50%에 달한다. 현재는 한전 매출의 97%가 국내에서 발생한다. 국내 전력산업의 성장은 사실상 한계에 도달해 있다. 적극적 해외 수주 및 투자를 통해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것은 한전의 미래와 직결돼 있다.

    김 사장은 “국내에서 이뤄지는 사업은 공적 개념으로 접근해야 하므로 국가의 발전과 국민을 위해 질 좋은 전기를 싸게 공급한다는 생각으로 일하되 해외에서 벌이는 사업은 절대 손해를 봐선 안 된다는 생각으로 추진해야 한다. 해외사업 추진 시 한전이 메이저 업체로 참여해 수익성을 극대화하고 고용 창출에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맞춤형 전략으로 해외 공략

    한전은 수력 및 화력발전 부문에서는 프로젝트별로 맞춤형 전략을 수립해 신규 수주를 늘려나갈 계획이다. 또한 풍력을 비롯한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해나가기로 했다. 가치에 비해 저평가된 해외 발전 설비를 인수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키워내고, IT 기술이 접목된 기술집약적 수출상품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려고 한다.

    김 사장 취임 이후 자원 개발 분야는 ‘물량 확보’에서 ‘질적 성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했다. 자원 개발 대상 지역도 유연탄은 북미와 아프리카, 우라늄은 오스트레일리아, 중앙아시아 등으로 다변화할 계획이다.

    UAE 원전 사업의 성공적 수행은 한전의 미래에 매우 중요하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안전성 논란이 불거지면서 세계 원전시장이 위축되고 있으나 장기적으로 원전을 대체할 에너지원을 찾기 어렵다. 한전 역시 원전 르네상스가 다시금 도래하리라고 예상한다. 한전은 UAE 원전 사업을 차질 없이 진행하는 한편 제2의 원전 수출을 이뤄내고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정부의 확고한 원전 수출 의지와 한국형 원전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제2, 제3 원전 수주에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게 한전의 각오다.

    한전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고 있으나 최근 2년간 해외사업 수주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올해 초 에티오피아 송·배전 컨설팅 입찰 때는 참가 자체가 제한됐다.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는 바람에 ‘최근 3년 연속 결손이 아닌 회사’라는 입찰 기준을 맞추지 못해서다. 인도네시아 석탄화력발전소와 이집트 복합화력발전소 입찰에서도 부채가 많은 탓에 재무 분야 심사에서 최저 수준의 점수를 받고 탈락했다.

    지난해 전기의 원가 회수율은 87.4%다. 전기를 만드는 데 100원이 들어가는데, 87원에 팔았다는 뜻이다. 이 같은 정부의 요금 정책 탓에 한전은 전기를 팔면 팔수록 오히려 적자가 커지는 ‘희한한 기업’이 돼버렸다. 김 사장은 왜곡된 구조를 바꾸고자 지경부와 대립 각을 세우고 있다.

    전기는 원가가 석유의 2.5배에 달하는 ‘비싼’에너지인데도 한국의 전기 소비 증가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5배다. 석유난로를 쓰는 상가나 가정을 찾아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김, 오징어를 건조할 때도 전기를 사용하는 게 일반화하고 있다. 석유를 사용하던 공장이 전기로 에너지원을 바꾸는 경우도 많다. 석유, 가스 가격은 뛰는 상황에서 전기요금을 묶어놓아 일어난 일이다.

    김 사장은 전기료 현실화를 놓고도 정부와 다툼을 벌였다. 올해 4월 한전은 13.1%의 전기료 인상안을 제출했다. 지경부는 서민생활 안정을 위해 5% 이상은 불가능하다면서 거부했다. 올해 7월 한전은 10.7%로 수정된 인상안을 내놓았으나 지경부는 또다시 퇴짜를 놓았다. 결국 8월 6일부터 4.9% 인상하는 것으로 최종 결론이 났다. 지경부는 소신을 끝까지 굽히지 않은 김 사장에게 불쾌한 감정을 갖고 있다. 4조 원대 소송을 내겠다는 선언은 여기에 불을 질렀다. 지경부 안팎에서 김 사장 경질설이 나돈 까닭이다.

    “전기요금 현실화해야”

    “국내에선 공익 해외에선 수익 추구하겠다”
    한전은 낮은 전기요금으로 인해 2008년부터 2012년 상반기 현재 누적적자가 10조9000억 원에 달한다. 2012년 상반기 영업적자는 전년 동기 대비 53.6% 늘어난 4조3532억 원, 당기순손실은 48.3%가 늘어난 2조8960억 원이다. 이 같은 적자는 발전회사로부터 비싼 가격으로 전력을 구입해 싼 가격에 국민에게 판매하는 전력거래 시스템의 불합리성에 근본 원인이 있다. 한전이 전력거래소와 비용평가위원회 위원을 상대로 4조 원대 소송을 내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은 이러한 구조를 바로잡으려는 자구책의 일환이다.

    한국수력원자력, 한국동서발전, 한국중부발전 등 6개 한전 자회사는 원가에 이문을 붙여 한전에 전기를 넘기므로 수익을 내고 있다. 한전이 자회사 주식을 100% 소유하고 있는데도 지경부는 자회사들을 시장형 공기업으로 지정해 한전이 경영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발전사들과

    전력거래소를 한전으로 통합해 ‘원 켑코(One KEPCO·하나의 한전)’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견해도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공공재인 전기를 시장에 맡기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면서 뇌-몸통-핏줄을 다시 한몸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전에 전기를 판매하는 민간 발전사들은 한전 자회사보다 더 큰 수익을 거두고 있다. 자회사들의 2010년 매출액 대비 순이익 비율(순이익률)은 1.68%다. SK ENS는 순이익률이 30.67%. GS 파워 9.11%, MPC 율촌 7.87%, MPC 대산 7.34%에 달한다(2010년 기준). 2012년 5월 기준으로 한전 자 회사들은 전체 발전 설비의 81%를 담당하고 있으며 민자회사들은 8.5%를 맡고 있는데, 81%를 담당하는 자회사들의 2010년 당기 순이익은 4272억 원인 반면 8.5%를 담당하는 민간 발전사들의 순이익은 3401억 원에 달하는 것. 민간 회사들이 막대한 초과이윤을 얻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국내에선 공익 해외에선 수익 추구하겠다”

    김중겸 한전 사장이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알 바락 사우디전력공사 사장과 대화하고 있다.

    김 사장은 취임 초기부터 이러한 왜곡된 구조의 개선을 정부에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한전 일각에선 전력거래소 비용평가위원회를 ‘지경부의 꼭두각시’로 여기기도 한다. 한전의 적자 구조는 전기요금을 현실화하고, 전력거래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어렵다는 게 김 사장의 생각이다. 적자 구조가 해소되지 않으면 해외 사업에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전력거래소 비용평가위원회가 한전의 전력구입가를 결정짓는 ‘정산조정계수’를 결정하는데, 2009년에는 ‘미래투자비 기회비용’ 명목으로, 2010년엔 발전자회사 당기순손실을 방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한전 쪽의 부담이 늘었다. 이로 인해 올해 상반기까지 약 4조4000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는 게 한전의 주장이다. 한전 관계자는 “미래투자비 기회비용은 법적인 근거조차 없는 항목으로 이중보상의 문제가 있으며 ‘발전자회사 당기순손실 방지’는 세계 어느 시장에서도 적용 사례를 찾을 수 없는 기준”이라고 주장했다.

    적자 줄이려 비상 경영 돌입

    한전은 민간 발전사로부터 전기를 구입할 때 요금 상한선을 두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한전은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전력시장 운영규칙’ 개정 제안서를 전력거래소에 제출했다고 9월 12일 밝혔다. 민간 발전사들은 한전의 전력시장 운영규칙 개정 제안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한전이 발전 자회사가 생산한 전기를 구입할 때 전력거래소는 앞서 언급한 ‘정산조정계수’를 적용해 전력 가격을 조정한다. 정산조정계수란 발전 단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발전사들이 큰 폭의 이윤을 가져갈 수 없도록 조정하는 일종의 할인 비율을 말한다. 하지만 민간 발전소의 경우 정산조정계수를 적용받지 않아 전력 수요 급증 시 막대한 이득을 보고 있다. 한전은 1시간마다 전력거래소를 통해 자회사들과 민간 발전소에서 전기를 사오는데, 발전소마다 생산비용이 다르다. 낙찰가가 A발전소 50원, B발전소 60원, C발전소 70원 식으로 결정되다 Z발전소가 120원에 낙찰되면 A, B, C발전소의 낙찰 가격도 120원으로 올려준다. 한전은 원칙적으로는 모든 발전회사에 120원을 주고 전기를 구입해 국민에게 판매해야 한다. 이러한 구조가 계속되면 한전이 버텨낼 재간이 없다. 그래서 정산조정계수를 적용해 발전자회사에는 120원보다 적은 돈을 지급한다. 하지만 민간 발전소에는 120원을 그대로 지급해야 한다. 민간 발전소의 이윤을 보장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발전은 막대한 자본이 들어가는 장치산업이다. 이윤을 보장해주지 않으면 민자(民資)가 참여하기 어렵다.

    4조 원대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한전의 ‘강수’는 전력거래 시스템 개편과 관련해 지경부와 전력거래소를 압박하려는 용도이기도 하다.

    김 사장은 밖으로는 제도 개선을 촉구하면서 안으로는 경영 합리화에 나서고 있다. 한전은 7월부터 위기관리 대응 수준을 가장 높은 단계로 격상하고(2단계→3단계) 비상 경영체제에 돌입했다. 효율성 제고를 통해 1조1000억 원을 절감하고 부동산 임대 등을 통해 6000억 원가량의 수익을 확보할 계획이다. 용도가 배정돼 있는 예산도 타당성을 재검토해 초긴축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김 사장이 위기관리 태스크포스 팀장을 맡았으며 9월부터 경영합리화 점검회의를 매달 개최한다. 흑자 전환을 달성하고자 임직원이 전력투구하고 있는 것이다.

    Watch&Warning 시스템 도입

    김 사장은 올해 2월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Watch&Warning(감시와 경고) 시스템을 도입해 효율성을 높이고 있으며 부서 간 협력은 물론이고 견제 또한 강조하고 있다. 승진제도를 연공서열이 아닌 능력 위주로 바꿨으며 직무·지역 순환근무를 확대했다. 또한 금융, 계약, 회계, 원자력, 발전,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1004명의 해외 사업 전문 인력을 육성하고 있다.

    김 사장은 소통 경영을 강조한다. 경영 현안과 관련한 사장의 메시지를 생중계해 전 직원이 공유하도록 하고 있다. 영업창구 직원, 송·변전소 근무자 등과 ‘CEO 조찬간담회’를 매주 개최해 현장 직원의 건의 사항과 어려움을 가감 없이 청취한다. 200명의 젊은 직원이 ‘중역회의’ 형식으로 토론하는 주니어보드는 경영 개선 아이디어를 생산하고 전파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김 사장은 1950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휘문고, 고려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했다. 현대건설 대표이사 사장을 지내면서 경영능력과 리더십을 인정받았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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