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호

“세상은 나에게 돌을 던졌다”

동서양 넘나든 종교 창시자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2-09-21 15: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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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란의 지도자, 평화운동가 평가 엇갈려
    • 문선명, 김일성의 닮은꼴 리더십
    • 한학자 여사가 후계 실권자…형제간 다툼 주목
    • “자녀들의 역할은 비전 여부에 따라 달라질 것”
    “세상은 나에게 돌을 던졌다”

    9월 6일 경기 가평군 설악면 송산리 청심평화월드센터에서 참배객들이 문선명 총재 초상화 앞에서 조문하고 있다.

    9월8일 경기 가평군 천주청평수련원에 우뚝 선 청심탑(높이 33m, 폭 11m)이 구름 사이를 비집고 나온 아침 햇살을 받아 빛난다. 탑에는 아홉 개 장면으로 나뉜 고(故) 문선명 통일교 총재의 일대기가 돋을새김으로 꾸며져 있다. 첫 장면은 태어나는 모습이고 마지막 장면은 인류의 왕으로 즉위하는 것. 청심탑 내부엔 ‘아버지의 기도’가 적혀 있다.

    “참부모라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알아야겠사옵니다.(중략) 그 참부모 사상을 몸에 지녀야 되겠사옵니다.”

    천주청평수련원은 통일교 신도에게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한 일본인 신도는 “하나님의 참사랑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9월 3일 ‘논란의 지도자’가 타계했다.

    “나는 이름 석 자만 말해도 세상이 와글와글 시끄러워지는 문제 인물입니다. 돈도 명예도 탐하지 않고 오직 평화만을 이야기하며 살아왔을 뿐인데 세상은 내 이름자 앞에 수많은 별명을 덧붙이고 거부하고 돌을 던졌습니다. 내가 무엇을 말하는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고 그저 반대부터 했습니다.”



    1920년 평북 정주군에서 태어난 문 총재는 2009년 출간한 자서전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의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92년 삶은 파란만장했다. ‘떠들썩한 인물’이라는 말마따나 ‘메시아’ ‘평화운동가’ ‘교주’라는 엇갈린 평가가 따라붙었다. 종교, 인종, 나라가 하나 되는 평화세계를 신도에게 강론했다.

    천주청평수련원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문 총재의 빈소가 마련된 청심평화월드센터가 서 있다. 빈소는 이른 아침부터 추모 인파로 붐볐다. 고인의 젊은 시절 모습을 담은 대형 초상화가 꽃 장식 앞에 세워져 있었다. 내·외신기자 100여 명이 문 총재 타계 소식을 전하고자 빈소를 취재했다. AFP AP 로이터 등 통신사와 외국 방송사들도 취재 경쟁에 동참했다. 한 외신기자는 “한국 밖에서는 박정희보다 문선명이 더 유명하다”고 말했다.

    문 총재는 20세기 한반도가 배출한 몇 안 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인 중 하나다. ‘스스로 메시아라 했던 한국인 종교 운동가’(뉴욕타임스), ‘1970년대를 휩쓴 논쟁적 종교의 지도자’(LA타임스), ‘수천 쌍 합동결혼식의 주재자’(영국 가디언), ‘거대 기업제국의 창시자’(타임)라는 반응이 해외에서 나왔다.

    문 총재는 논쟁적 종교인이자 평화운동가다. 1954년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를 설립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57년 완성한 교리서 ‘원리강론’을 통해 종교관을 구체화했다. 각국에 흩어진 교회를 신령과 진리로 통일해 하나의 세계를 만들겠다고 주장했다. 개신교계는 우상화, 현세주의 등을 문제 삼아 통일교를 이단(異端)으로 몰아세웠다.

    교리와 관련한 논쟁이 끊이지 않았는데도 통일교는 20세기 한국에서 탄생한 종교 중 가장 성공했다. 50여 년 만에 세계 194개국에 300여만 명(통일교 추산)의 신도를 둔 종교로 급성장했다.

    “한국이 세계의 중심” 교리 설파

    “세상은 나에게 돌을 던졌다”

    통일교 창시자인 문선명 총재 내외.

    “한국이 세계의 중심 국가이며 하나님의 뜻이 한국을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통일교 원리는 1950~60년대 청년들의 가슴을 간질였다. 통일교로 개종하는 교수와 학생이 늘어나자 기독교계 대학인 연세대, 이화여대에서는 1955년 통일교 입교자에 대한 제적, 퇴학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문 총재는 1958년 일본, 1959년 미국에서 각각 포교에 나서면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1960년 이후 일본 여성 1만여 명을 한국 남성과 결혼시켰다. 과거보다 교세가 약해졌지만 아직도 통일교 헌금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은 일본으로 알려져 있다. 1980년대부터 일본에선 통일교 반대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딸이 한국으로 시집간 집의 부모가 “통일교가 딸을 세뇌시켰다”고 주장해 물의를 빚은 적도 있다.

    1976년 9월 워싱턴광장에서 열린 문 총재 강연에 30만 명 가까운 인파가 몰려 미국 종교계에 충격을 줬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문 총재를 ‘1976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미국에서 한때 신도 수를 늘린 것은 개인주의화한 미국인에게 공동체적 가치를 제공한 덕분이라는 분석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9월 3일 “1960년대 말 대안 종교 열풍을 타고 미국에 자리 잡은 통일교가 정치스캔들과 합동결혼식 등 독특한 관습으로 인해 이교적 이미지를 떨쳐내지는 못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같은 날 “미국 정치권에서 논란이 된 인물이었지만 아직 워싱턴에서 그의 영향력은 상당하다”고 보도했다.

    통일교는 종교이면서 기업이다. 교육, 언론, 학술, 스포츠, 예술 등 다양한 영역에서 다채로운 활동을 벌이면서 영향력을 키웠다. 세계일보, 용평리조트, 성남일화천마축구단, 선원건설, 세일여행사 등이 속한 통일그룹을 운영한다. 이 그룹의 자산은 2009년 말 기준으로 1조7361억 원 규모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타임스, 일본 일간지 세카이닛포, 유니버설발레단, 리틀엔젤스예술단이 통일교 계열이다. 선문대, 청심국제중고교, 선화예술중고교도 설립해 운영해오고 있다.

    문 총재는 타 종교를 아우르는 평화운동에도 나섰다. 1966년 초교파협의회를 창립하고 세계종교회의를 개최했다. 1985~1987년에는 미국 목사 5000여 명을 한국으로 초청해 초(超)종교 활동을 전개했다. 2001년 9·11사태 이후에는 중동평화를 위한 초종교 세미나와 평화행진을 개최했다.

    통일교는 문 총재를 정점으로 한 ‘유일체제’였다. 핵(核)이 사라진 조직은 크건, 작건 동요하게 마련이다. 인류사에서 새로 일어선 종교는 창시자가 사망한 뒤 세가 꺾이거나 분열한 예가 많다. 문 총재 사후 통일교는 어떻게 될 것인가.

    통일교 어디로 가나

    통일교에서는 2009년부터 ‘포스트 문선명’ 구도를 놓고 노선 갈등이 일어났다. 다툼의 중심에는 3남 문현진 GPF재단 세계의장(43), 4남 문국진 통일그룹 회장(42), 7남 문형진 통일교 세계회장(33)이 서 있다.

    현재 통일교 실권자는 한학자 여사라는 데에 통일교 안팎에서 이견이 별로 없다. 통일교는 지난해 신도를 대상으로 ‘참부모님 노정 섭리사 강의’를 진행했다. 강의 요지는 ‘한학자 여사는 하나님의 부인’ ‘문형진 회장(7남)은 섭리적인 후계자’라는 것이다. 후계자가 하나님의 부인보다 위에 위치하기는 어렵다. 실질적 교주이자 실권자는 한 여사가 될 소지가 큰 것이다.

    통일교의 공식 후계자는 7남이지만, 자산·조직을 관리하는 실력자는 4남이다. 장남, 차남은 1984년, 2008년 각각 별세했다. 장남 격인 3남은 GPF를 이끌면서 ‘종교의 틀을 벗어난 평화운동’을 하고 있다. 통일교 안에서 공식 후계는 문형진(종교), 문국진(기업)으로 정리됐으나 3남을 따르는 신도 또한 적지 않다. 특히 교육 수준이 높은 엘리트들이 3남을 지지하는 예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3남, 4남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산에 대한 소유권이 분명한 회사와 달리 종교와 같은 신앙의 세계에서 신도를 소유할 수 있다고 보나? 사람을 소유할 수 있다고 보나? 아니다. 물질적 자산을 소유하는 회사와는 다르다. 누가 후계자 이슈를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것이 중요한 사안이라고 보지 않는다.”(3남, 문현진 의장)

    “후계 다툼이라는 말은 맞지 않다. 문선명 총재께서 통일교의 상속자, 대신자로 문형진 세계회장을 결정해주셨다. 전 세계 통일교인은 이 결정과 관련해 문형진 세계회장을 환영하며, 존경하고 있다. 그 부분은 총재님 양위의 절대적 고유 권한으로 후계 문제는 종결됐다.”(4남, 문국진 회장)

    문현진 의장은 문 총재를 통일교 창시자로 국한하지 않고 보편적 영성에 기초한 평화통일운동가라고 여긴다. 문 총재가 1954년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를 창시한 것은 또 하나의 종교를 만들고자 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 영성을 강조한 초종교· 초교파 운동을 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문국진·문형진 회장과 그들을 따르는 이들은 문 총재가 메시아라는 점을 강조한다. 문국진 회장은 “나의 아버지를 믿어야만 구원받는다, 우리는 레버런드 문(문선명 목사)이 재림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셨다고 믿는다”고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통일교에서 벌어진 갈등의 기저에는 이렇듯 문 총재의 삶을 들여다보는 기준과 앞으로의 방향성, 메시아관(觀)의 차이가 버티고 서 있다.

    이른바 ‘왕자의 난’이라고 불리는 형제간 갈등은 교권을 장악한 쪽이 그렇지 않은 쪽을 공격한 측면이 강하다. 4남, 7남 측은 2010년부터 3남이 기반으로 삼고 있는 자산과 관련해 “되찾겠다”면서 소송을 벌이기 시작했다. 3남 측이 소유한 여의도 땅을 둘러싼 송사와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UCI 관련 소송이 대표적이다. 문 총재가 1977년 설립한 UCI는 통일그룹처럼 기업군을 거느리고 있다. 3남의 장인인 곽정환 전 세계평화초종교초국가연합 회장은 사탄이자 타락한 천사장으로 몰렸다. 3남을 지지하는 일부 신도는 출교 조치를 당했다.

    “세상은 나에게 돌을 던졌다”
    형제간 영향력 경쟁

    문 총재는 임종 직전 특별한 유훈을 남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국진·문형진 회장은 문 총재 보좌관에게 통일교 섭리와 관련해 유언을 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자식이 말씀을 들으면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문 총재는 대답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4남, 7남은 “O” “X”식으로라도 답을 듣고자 했으나 문 총재는 특별한 언급 없이 타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3남도 강남성모병원을 찾아 아버지를 문병했으나 이후 다시 방문했을 때는 4남, 7남 쪽 인사들이 길을 막았다.

    문현진 의장은 9월 10, 11일 경기 가평군의 문 총재 빈소를 찾았으나 조문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통일교 측은 3남 부부에게만 조문을 허용하고 함께 온 신도들과 경호원의 출입을 막았다. 3남 측은 “ 아들이 아버지를 뵙는데 협상까지 해야 하느냐. 신변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문 의장 부부만 조문하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밝혔다. 문 총재 사후 통일교가 발표한 성화위원회(장례위원회) 유족 명단에도 3남과 그의 가족 전체가 빠져 있다. 통일교 관계자는 “조문을 막은 게 아니라 부부만 조문하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형제간 갈등의 밑바탕에는 ‘포스트 문선명’ 시대를 둘러싼 헤게모니 경쟁이 깔려 있다. 문선명 총재를 ‘믿는’ 사람들에 대한 앞으로의 영향력을 두고 경쟁하는 것이다. 4남, 7남이 종교로서의 통일교(Unification Church)를 강조하는 반면, 3남은 종교의 틀을 벗어난 통일운동(Unification Movement) 평화운동에 천착한다. 형제들은 앞으로도 각자의 길을 걸으면서 나름의 방식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한 통일교 인사는 “문 총재의 사후 자녀들의 역할은 문 총재를 따르던 신도들에게 어떠한 비전과 철학을 보여주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벌이는 형제간 경쟁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 같다.

    문선명-김일성의 닮은꼴 리더십

    국가, 종교 영역에서 유일체제 구축


    “세상은 나에게 돌을 던졌다”

    1991년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과 포옹하고 있는 문선명 총재.

    “형님!”

    1991년 12월 문선명 총재는 김일성(1912~1994)을 처음 만났을 때 우렁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문 총재가 만수당의사당에서 “하나님을 부정하는 공산주의는 멸망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통일교는 이후 대북 투자에 나섰다. 평화자동차, 보통강호텔, 세계평화센터를 북한에서 운영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9월 5일 조전을 보내 조의를 표했을 만큼 북한과 통일교의 인연은 각별하다.

    9월 7일 방북한 문형진 통일교 세계회장은 평양 세계평화센터에 차려진 문 총재 분향소에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대신해 조문을 온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부터 조의문을 전달받았다. 북한은 문 회장에게 문 총재 부인 한학자 여사를 평양으로 초청하고 싶다고 말했다. 통일교 관계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문 총재를 초청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문 총재는 “내가 지 아버지하고 친구지, 지하고 친구인가. 그 녀석보고 오라 그래”라고 말했다고 한다.

    성장 배경도 비슷

    북한은 국제연합(UN)에 가입한 국가인 반면 통일교는 종교다. 그런데 두 조직은 놀라울 만큼 닮았다. 북한은 김일성을 ‘어버이’로 부르는 대(大)가정을 형성했다. 현재 북한의 국가체제는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유일체제를 지향한다. 통일교는 종교의 영역에서 유일체제를 구축했다.

    김일성과 문 총재는 성장 배경부터 비슷하다.

    김일성은 1912년 평남 대동군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은 미션스쿨인 숭실학교를 졸업하고, 기독교 계통의 명신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다. 북한에서 ‘조선의 어머니’로 칭송받는 김일성의 생모 강반석은 장로로서 창덕학교 교장이던 강돈욱의 둘째딸로 죽을 때까지 기독교 신자였다. 반석(盤石)이라는 이름은 성경의 베드로를 가리킨다. 김일성은 1989년 문익환 목사를 만났을 때 “삼일예배날(수요일) 어머니와 함께 예배당에 갔다”고 말했다.

    문 총재는 1920년 평북 정주시의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문 총재는 종조부인 문윤국 목사에게 가르침과 영향을 받았다. 문 목사는 3·1운동에 참여했으며 이승훈 선생과 오산학교 설립을 주도했다. ‘세계일보’에 따르면 문 총재는 열다섯 살이던 1935년 4월 17일 부활절 새벽 묘두산에서 기도하던 중 평양으로 가라는 계시를 받았다.(1995년 8월 26일자) 문 총재가 거처를 옮겼을 때 평양은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릴 만큼 기독교 교세가 강한 곳이었다.

    북한에서 김일성은 ‘민족의 태양’이라고 불린다. 군국주의 일본의 덴노제에서 일왕은 일본의 건국신(神)인 아마테라스신(天照大神)의 재현이다. 일제도 일왕을 우상화할 때 욱일승천하는 태양의 이미지를 사용했다. 군국주의 일본의 덴노는 사람으로 태어난 하느님이었다. 일제는 일왕의 생일을 천장절(天長節)이라고 불렀다. 김일성의 생일은 북한에서 태양절(太陽節)로 불린다. 북한의 김일성 우상화는 현인신(現人神)을 숭배하던 군국주의 일본의 그것과 비슷한 부분이 적지 않다.

    개신교계는 1950년대 문 총재에 대한 우상화와 현세주의를 문제 삼아 통일교를 이단으로 규정했다.

    어버이 vs 참부모

    북한에서 수령은 어버이면서 대가정의 가부장(家父長)이다. 김일성 가족은 경배하는 조상의 지위에 올랐으며 국가 제사의 대상으로 격상됐다. 북한의 부자세습은 가부장적 전통을 기반으로 한다. 북한의 국가체제는 수령을 뇌수로 하는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를 지향한다.

    문 총재는 통일교 그 자체다. 통일교는 참부모를 정점으로 한 대(大)가정을 표방했다. 한때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했다. 국제합동축복결혼식은 참생명의 씨, 참혈통의 씨를 접붙여 큰 축복을 전해주는 부활의 예식으로 간주된다. 초국가적 혈연관계를 맺음으로써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천주적 대가정주의’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통일교에선 교인을 ‘식구’라고 부른다. 문 총재를 가리키는 ‘참부모님’란 단어는 모성과 부성을 아우른다. 부인 한학자 여사와 구분할 때만 문 총재를 참아버님으로 부른다. 통일교 집회는 참부모님 사진을 바라보면서 큰절을 올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북한에서 쓰는 어버이란 단어 역시 부성과 모성이 결합돼 있다. 수령은 특별하게 성(性)을 구분할 때를 제외하곤 ‘아버지’(김일성 아버지)가 아닌 ‘어버이'(어버이 수령)로 불린다. 이를 두고 동아시아 샤머니즘의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있다.

    북한에서 ‘조선의 어머니’는 김일성 민족의 어머니다. 북한이 어머니로서 여성의 이미지, 즉 정숙한 여성을 숭상하는 것은 유교적 전통과 관계가 있다.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임에도 가족을 보듬는 유교적 여성의 이미지를 강조한다.

    인간도 개조가 가능하다면서 이뤄지는 북한의 자아비판은 종교행위를 연상케 한다는 평가를 듣는다. 북한에서 실시되는 자아비판의 형식과 구조는 복음주의 기독교의 간증을 닮았다. 통일교는 기독교를 바탕으로 창시된 종교다.

    통일교의 ‘참어머니’는 북한의 ‘조선의 어머니’와 비슷하다. 통일교에 따르면 참어머니는 성신(聖神)이면서 후(後)해와다. 통일교에서 참어머니는 문 총재의 부인인 한학자 여사다.

    통일교도 정숙한 여성, 즉 순결을 강조한다. 선문대에 순결가정문화학과를 개설했으며, ‘세계일보’는 ‘순결과 참가정’이라는 제목의 섹션을 내기도 했다.

    통일교는 기독교에 뿌리를 뒀는데도 주류 기독교단과는 달리 효(孝)를 강조하는 유교 전통과 한국식 샤머니즘이 스며들어 있다. 조상의 원통함을 풀어주는 조상해원식, 조상축복식이 대표적이다. 천주교도 제사를 용인하지만 통일교는 조상의 해원과 축복을 적극적으로 강조한다. 기독교에 한국적 요소가 가미돼 세계로 퍼진 셈이다. 북한에서는 마르크스레닌주의에 한국적 요소가 섞여 주체사상이 만들어졌다.

    박후건 경남대 교수(경제학)는 “유일체제 리더십에서 리더의 역할은 유일체제 리더십이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먼저 조직을 장악하고, 다음 조직을 강화시키며, 그리고 조직이 재생산되게끔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박후건 저 ‘유일체제 리더십’에서 인용)

    김일성은 ‘조직 장악’ ‘조직 강화’ ‘조직 재생산’에서 모두 성공했다. 김정일이 김정은을 통해 조직 재생산에 성공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통일교는 현재 조직 재생산 과정에 있다.

    박 교수는 조직 장악, 조직 강화를 통해 유일체제를 만들고 ‘조직 재생산’에도 성공한 경제계 인물로 잭 웰치 전 GE 회장을 꼽았다. 삼성그룹도 이건희 회장을 중심으로 한 유일체제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게 박 교수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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