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호

인간이 臟器(장기) 보다 오래 산다

  • 이승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seungchul1.lee@samsung.com

    입력2012-09-19 16: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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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성질환, 세대 가리지 않고 확산
    • 사망에 이르진 않아 의료비용 급증
    • 노인 학대 증가…세대 간 갈등 조짐
    • 단계별 예방의료 시스템 구축-실버산업 연계 필요
    인간이 臟器(장기) 보다 오래 산다
    한때 ‘구구팔팔삼사(998834)’라는 말이 유행했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 사흘 앓고 나흘째 죽는 것이 행복한 인생이란 말이다. 그러나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0세, 건강수명은 71세다.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의 차이가 무려 9년인데, 이는 생애 마지막 9년을 질병이나 부상으로 고통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사흘 앓고 나흘째 죽는 것’은 그야말로 보기 드문 복이다.

    만성질환의 습격이 세대를 가리지 않고 있다. 한창 일할 나이의 젊은이들도 만성질환에 시달려 우리 경제에 타격을 주고 있다. 한편으론 만성질환으로 사망에 이를 확률은 낮아져 사회적 부담은 더욱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우선 65세 이상 인구 중 당뇨병, 고(高)콜레스테롤 등 만성질환 유병률(한 집단의 전체 인구 중 특정 질병을 가진 사람의 비율) 증가 속도는 65세 이상 인구 증가 속도보다 빠르다. 2005년에서 2010년 사이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436만7000명에서 535만7000명으로 22.7% 증가한 반면 만성질환 유병률은 당뇨병 24.7%, 고콜레스테롤 86.4%로 나타났다. 여성 노인층의 유병률이 남성 노인층보다 1.6배 높았고, 고혈압과 고콜레스테롤 유병률이 증가하는 속도 역시 여성 노인층이 남성 노인층보다 빨랐다.

    우리나라 노인장기요양보험 대상에는 뇌혈관질환, 치매, 파킨슨병 등이 포함된다. 이 중 진료건수가 가장 많은 것은 여전히 뇌혈관질환이지만, 최근 들어 치매와 파킨슨병으로 진료받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2005~2010년 치매 증가율은 212.7%로 가히 압도적이다. 파킨슨병도 82.9%에 달한다. 서울대병원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의 치매유병률은 2012년 9.1%이지만 2050년에는 13.2%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기후변화도 노인의 건강을 위협한다. 기후변화로 심근경색증, 장출혈대장균, 비브리오패혈증 등의 위험성이 증가한 것. 체온이 1도 올라갈 때마다 신체의 효소 활동이 10%씩 감소하는데, 노인층의 경우 체온을 조절하는 갑상선 호르몬 기능이 저하되어 있기 때문에 기후변화에 따른 신체 위험도가 젊은 층보다 더 높다.



    치매, 파킨슨병 환자 급증

    또 노인 인구의 91%는 한 가지 이상의 만성질환을 갖고 있어 여러 가지 약물을 동시에 섭취하고 있다. 이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가져온다. 일례로 치매 노인들이 우울증 약물을 복용할 경우 낙상 위험이 3배나 증가하고, 백내장 발병률은 15%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미국에서는 약물 부작용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 수가 2004년 120만 명에서 2008년 190만 명으로 52% 급증했는데, 이들의 절반 이상이 65세 이상 노인이라고 한다.

    노인성질환은 65세 이하 인구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2010년 40, 50대 중장년층 중 노인성질환으로 진료받은 사람은 22만3000명으로 2005년에 비해 1.3배 증가했다. 치매, 뇌혈관질환, 파킨슨병, 기타 퇴행성질환 등 노인성질환은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30대 청년층에서도 늘고 있다.

    노인성질환이 세대를 가리지 않고 확산되는 이유로는 면역력 저하와 생활습관 변화 등이 꼽힌다. 무리한 다이어트, 과도한 스트레스, 운동 부족 등으로 대상포진이나 녹내장 등 노인성질환이 30대 사이에서도 빈번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퇴행성질환은 장시간 서 있거나 앉아서 일하는 사람들, 특정 행위를 반복하는 직업군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중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07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백화점 등에서 서서 일하는 여성 근로자의 66%가 무릎이나 관절 등의 퇴행성질환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한다.

    반면 노인 사망의 원인이 되는 질병이 달라지고 있다. 전과 달리 폐렴, 바이러스 감염, 알츠하이머 등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아지는 반면 주요 사망원인으로 꼽히던 허혈성심장질환, 뇌혈관질환, 암, 만성하기도질환, 당뇨병 등으로 인한 사망률은 낮아지는 추세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노인성질환을 관리할 수 있게 되면서 유병률이 상승함에도 사망률은 하락하는 것이다. 실제로 주요 질병의 5년 생존율을 살펴보면 위암 65%, 갑상선암 99.3%, 유방암 90% 내외, 심부전 50~60%, 당뇨 80~90%에 달한다.

    ‘사회적 갈등’ 우려

    앞서 말했듯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0세, 건강수명은 71세다. 보통 눈(目)의 수명은 60~70세, 귀(耳)의 수명은 70~80세라고 한다. 즉, 인간이 장기(臟器)보다 오래 사는 시대가 온 것이다. 따라서 기능이 저하된 장기를 회복하고 건강한 삶을 누리기 위한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노인 진료비는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2005년부터 2010년 사이 총 진료비는 1.76배 늘었지만 65세 이상 노인 진료비는 2.28배 늘었다. 전체 진료비 중 노인 진료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1.3배 높아졌다. 노인 인구 중 75세 이상 노인의 진료비 지출은 더욱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2010년 노인 인구 중 75세 이상 노인의 비율은 37.7%인데, 이들의 의료비 지출 비중은 39.6%에 달한다. 이는 5년 전과 비교해 인구 비율은 1.1배 높아졌지만 의료비 지출 비율은 1.2배 높아진 수치다.

    문제는 출산율 저하와 맞물려 노인의 의료비를 감당할 부양인구가 현격히 줄고 있다는 데 있다. 노년부양비란 부양연령층(15~64세) 인구에 대한 피부양 노인 연령층(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을 말하는데,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 노년부양비는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2000년 10.1%였던 노년부양비는 2010년 15%, 2020년 21.7%, 2040년 56.7%로 예측된다. 앞으로 30년 후면 2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는 셈이다. 세대 간 갈등이나 사회적 혼란이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유럽과 일본 등은 이미 세대 갈등이 수면으로 표출되었다. 2000년 일본 정부가 노인요양서비스인 ‘개호보험’을 실시한 이후 노인 관련 시민단체인 ‘실버유니온(Silver Union)’이 서비스 확대를 요청하는 광고를 마이니치신문 1면에 냈다. 그러자 다음 해 여름, 젊은 세대의 단체인 ‘라이츠(Rights)’가 “미래 세대에게 불리한 정책은 선거로 심판하자”며 선거 연령을 18세로 낮추자는 시위를 전개했다. 또 2003년 독일에서는 기민당 청년조직(Young Union) 필립 미스펠터(25) 의장이 “경제 회생을 위해 노인층 복지 지출 축소하자”고 주장하자 기독교민주연합(CDU) 노인연합 의장 오토볼프(70)가 언론에 필립 미스펠터에 대한 격한 감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인간이 臟器(장기) 보다 오래 산다

    급증하는 만성질환 인구에 대처하기 위해 국가 의료 시스템을 예방 중심으로 개선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세대 갈등의 조짐이 보인다. 부모를 부양하는 자식이나 친족, 요양시설에서 노인 학대가 빈번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 한 예다. 보건복지부의 ‘노인학대 현황보고서’(2011)에 따르면 노인 학대 신고 건수가 2006년 2274건에서 2010년 3068건으로 4년 사이 10% 이상 늘었다.

    노인성질환이 중장년층과 젊은 층에게까지 확산되면서 노동 가능 인구층의 생산성이 하락할 것으로 전망되는 점도 주의 깊게 봐야 한다. 하버드 메디컬 스쿨(Harvard Medical School)은 기업경영 비용을 유발하는 주요 질병으로 관절염, 허리와 목의 통증, 우울증, 비만 등을 꼽는데, 이런 질병은 최근 65세 이하 인구층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실정이다. 또 비민이나 스트레스 등은 향후 다양한 노인성질환으로 발전할 위험도 크다. 2010년 30, 40대 남성의 과체중 비율은 40%를 초과했다. 스트레스 등의 원인으로 인한 정신질환의 사회·경제적 비용은 국내총생산(GDP)의 2%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노인성질환 변화에 따른 사회·경제적 위협요인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예방사업을 활성화하고 실버산업 및 유헬스(U-health) 등과의 연계를 모색하며, 노인성질환에 대한 치료기술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

    우선 국가보건체계를 3단계 예방 시스템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발병 전 예방에 해당하는 1단계 예방, 발병 후 질환이 더 악화되지 않도록 하는 2단계 예방, 발병이 진행된 노인이 장기요양대상자로 진입하는 것을 방지하는 3단계 예방이 골자다.

    국가가 3단계의 예방의료 체계를 구축하면 만성질환 유병률과 노인층의 만성질환 환자 수를 줄여 보험재정 부담을 감소시킬 수 있다.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노인의 만성질환 환자를 10% 줄이면 건강보험 재정이 약 1조 원(급여비 지출 대비 2.9%)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발병 전 예방단계에서 흡연, 과음, 비만 등의 비(非)건강행동 인구를 1%만 줄여도 72억 원의 건강보험 재정 절감 효과가 발생하는 것으로 예측된다.

    따라서 1단계 예방에서는 젊은 세대부터 시작하는 건강관리 프로그램을 통해 개인병력을 관리하고 생활습관을 개선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만성질환으로 진행하는 것을 막기 위해 비만이나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2단계 예방에서는 이미 발병한 질환이 더욱 악화되지 않도록 증상별, 개인별 맞춤 치료를 하고, 노인복지시설과 연계해 신체·인지 기능 저하를 방지해야 한다. 방문건강관리사업 등을 통해 상시적으로 관리하고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3단계 예방에서는 신체와 인지 기능이 저하된 노인이 장기요양급여대상자로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병증이 더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한편 실버산업 및 유헬스 산업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 3단계 예방체계와 상호 보완할 수 있는 건강보조기구, 노인주택단지, 재가 서비스, 노인 리크루팅 등의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실버산업은 2010년 43조9621억 원에서 2020년 148조5969억 원에 달하는 등 연평균 12.9%씩 고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참고로 실버산업의 부문별 연평균 성장률(2010~2020)은 정보 25.1%, 여가 13.7%, 금융 12.9%, 의료기기 12.1%, 주택 10.9%, 요양 6.6% 등이다.

    또 건강한 노인에게 일자리를 줌으로써 경제적인 면에서나 자아성취 차원에서 도움을 주고, 정신과 신체 건강뿐만 아니라 삶의 활력도 제공해야 한다. 60세 이상 노인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는 일본의 노인 리크루팅 회사인 고레이샤(高齡社)는 2010년 연매출 4억3000만 엔(약 62억 원)을 기록한 바 있다.

    실버·유헬스 산업 육성해야

    평균수명이 길어진 것을 반영해 보장질환을 확대하고, 보장기간도 연장한 리스크 관리 보험도 필요하다. 이런 보험 상품은 연령과 직종에 따른 맞춤형 노인질환 관리 보장, 은퇴 후 소득 보장, 간병 보장, 생활 편의 등을 제공해야 한다. 일본이나 미국 등의 실버산업에서는 암보험, CI보험(Critical Illness 보험·갑작스러운 사고나 질병으로 중병 상태가 계속될 때 보험금의 일부를 미리 받을 수 있는 보험), 의료실비보험, 장기간병보험, 장애보험, 자산관리, 유언신탁 등의 다양한 실버금융산업이 이미 활성화되어 있다.

    노인 주거단지도 젊은 세대가 유입될 수 있도록 자연스러운 지역 기반의 주거단지로 조성해 노인들의 외로움을 경감시키는 등 심리적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 한 예로 일본 도쿄 도심에 위치한 니고시탄다 고령자 복합시설(西五反田高齡者複合施設)은 3대가 함께하는 주거시설이란 개념으로 설계됐다. 지방자치 정부가 토지를 제공하고 민간기업이 건축을 맡아 시설동에는 케어센터를 두고 주거동에서는 건강한 노인과 일반 주민들이 함께 거주하도록 했다.

    유헬스 산업 육성을 통해 노인층의 건강을 상시 진단하고 치료하도록 해야 한다. 노인층의 생체신호를 24시간 측정해 질환을 관리하고 투약, 운동, 섭생 방법 등을 즉각 제시한다. 또 의료용 로봇 기술을 발전시켜 원거리 치료를 실현하고, 다빈도 질환에 대해서는 기술을 표준화해 노인성질환에 대한 의료비 저감에 일조하도록 한다.

    한편 노인성질환의 관리뿐만 아니라 발병의 근원을 치료하는 차원에서도 노인성질환 치료기술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 사실 노인성질환의 치료기술 개발은 의료전문가들이 꼽는 중요 의료서비스 발전전략 중 하나다. 특히 치매치료제, 인공장기, 줄기세포치료 등이 노인성질환을 극복할 수 있는 주요 기술로 각광받고 있다. 이미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에서는 치매 치료를 위한 뇌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알츠하이머병을 비롯한 뇌 질환 시장 규모는 2010년 전 세계적으로 780억 달러(약 88조 원)에 육박할 정도다.

    우리나라도 바이오, 제약, 농업, 의학 등이 결합된 노인성질환 예방 및 치료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어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농촌진흥청은 차세대 바이오그린21사업을 통해 의학, 바이오, 공학 등이 융복합된 다양한 노인성질환 치료기술을 개발하고 있는데 향후 성과가 주목된다. 누에고치를 활용한 인공고막, 돼지 이식에 성공한 인공장기 등이 그 예로, 수명이 다한 노인들의 장기를 이들 기술로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 당뇨와 아토피 억제 효과가 있는 신품종 쌀 등을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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