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호

럭셔리 브랜드가 영화제로 달려가는 까닭은?

영화제와 스폰서

  • 이은경| 시계칼럼니스트 veditor@donga.com

    입력2012-09-20 14: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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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럭셔리 브랜드가 세계 각국에서 열리는 영화제를 경쟁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예술적 영감이 넘치는 제품을 만든다는 이미지를 얻기 위해서다. 그러나 한국 기업은 영화제 마케팅에 대해서는 아직은 서투르다.
    럭셔리 브랜드가 영화제로 달려가는 까닭은?
    9월 8일 열린 제69회 베니스 영화제 폐막식에서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한국 영화가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김 감독은 베니스의 상징인 날개가 달린 사자 모양의 황금 트로피와 함께 또 하나의 귀한 선물을 받았다. 스위스 시계 브랜드 예거 르쿨트르가 베니스 영화제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시계가 그것이다.

    예거 르쿨트르는 이 브랜드의 대표 모델이라 할 수 있는 ‘리베르소’ 뒷면에 ‘제69회 모스트라(베니스의 다른 말)’라는 글자와 황금사자상을 새긴 특별한 시계를 김 감독과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에게 증정했다. 남우주연상은 ‘더 마스터’의 주연인 호아킨 피닉스와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이 공동수상했고, 여우주연상은 ‘필 더 보이드’에 출연한 하다스 야론에게 돌아갔다.

    시계에 예술을 입혀라

    예거 르쿨트르는 2005년부터 베니스 영화제의 공식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다. 이 회사는 베니스 영화제를 브랜드 홍보의 기회로 활용해 자사 제품의 이미지를 높였다. 예거 르쿨트르 측의 설명이다.

    “영화 제작 현장과 시계 제작 공방에는 ‘침묵’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꿈이 현실이 되고 궁금증을 유도하는 뭔가가 탄생하는 곳이 시계 공방과 영화 현장이다. 두 곳 모두 정확하고 정교하며 집착에 가까운 세밀함을 강조한다. 상하이 국제영화제, 아부다비 영화제와도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우리는 시계 제작이라는 예술이 영화를 만드는 것과 비슷한 자유롭고 창의적인 행위라고 여긴다.”



    예거 르쿨트르는 다양한 방식으로 영화계를 돕고 있다. 이 회사가 영화 제작자에게 직접 수여하는 ‘글로리 투 필름메이커(Glory to the Filmmaker)’는 영화계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2007년 기타노 다케시, 2009년 실베스터 스탤론, 2011년 알 파치노가 이 상을 수상했다. 올해는 미국의 감독이자 작가, 배우, 프로듀서인 스파이크 리가 수상자로 선정됐다.

    예거 르쿨트르는 영화배우들이 레드카펫 행사에서 착용한 자사의 시계를 경매에 붙여 그 수익금을 아프가니스탄의 임산부와 신생아를 돕는 단체에 기부했다. 이탈리아 여배우 크리스티나 카포톤티가 기부 행사에 참여한 대표적 배우다. 이 회사는 상하이 국제영화제에서도 매년 경매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수익금은 중국의 고전 영화를 디지털로 복원하는 데 쓰인다.

    쇼파드가 칸 영화제 후원

    럭셔리 브랜드가 영화제로 달려가는 까닭은?

    예거 르쿨트르 리베르소 시계.

    예거 르쿨트르는 이번 베니스 영화제에서 새로운 여성시계 컬렉션인 ‘랑데부’를 소개했다. 랑데부 컬렉션의 뮤즈(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인 다이앤 크루거를 비롯해 영화제에 참석한 수많은 여배우가 이 컬렉션을 착용하고 레드 카펫을 밟았다. 베니스 영화제의 스폰서 마케팅은 예거 르쿨트르의 독무대처럼 보였다.

    칸 영화제, 베를린 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에도 럭셔리 브랜드가 참여해 마케팅 활동을 벌이고 있다.

    쇼파드, 스와로브스키, 로레알이 세계 각국에서 열리는 영화제 중 으뜸으로 평가받는 칸 영화제를 후원한다. 이 영화제의 최고 영예는 황금종려상이다. 투명한 크리스털에 종려나무 잎이 달려 있는 황금종려상 트로피는 1998년부터 스위스의 시계 및 주얼리 브랜드 쇼파드가 제작하고 있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쇼파드의 주얼리 공방에서 수작업으로 이 트로피를 제작한다. 5월에 열린 제65회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은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아무르’에 돌아갔다. 하네케 감독은 쇼파드가 제작한 트로피를 들고 전 세계 미디어 앞에서 인터뷰를 했다.

    쇼파드는 영화계에서 뛰어난 가능성을 보인 젊은 남녀 배우에게 ‘트로피 쇼파드’라는 상을 수여하고 있다. 2012년 트로피 쇼파드는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영화 ‘디센던트’에서 반항적인 청소년을 연기한 쉐일린 우들리와 샘 레빈슨 감독의 ‘어나더 해피 데이’에서 열연한 에즐라 밀러에게 돌아갔다.

    쇼파드의 아트디렉터이자 공동 사장인 캐롤라인 슈펠레는 2007년부터 매년 칸 영화제를 찾은 여배우를 위한 주얼리 세트인 ‘레드 카펫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올해에는 판빙빙, 리우웬, 제인 폰다, 나오미 왓츠, 리즈 위더스푼 등이 레드 카펫 컬렉션을 착용하고 칸 영화제의 레드 카펫을 걸었다.

    럭셔리 브랜드가 영화제로 달려가는 까닭은?

    스위스 시계 및 주얼리 브랜드 쇼파드가 칸 영화제에서 젊은 남녀배우에게 시상하는 ‘트로피 쇼파드’. 올해에는 영화배우 숀 펜이 시상자로 나왔다.



    럭셔리 브랜드가 영화제로 달려가는 까닭은?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은 베니스 영화제를 위해 특별 제작된 예거 르쿨트르 리베르소 시계를 선물로 받았다.

    배우에게 ‘작품’ 전달

    럭셔리 브랜드가 영화제로 달려가는 까닭은?

    제65회 칸 영화제에서 쇼파드가 마릴린 먼로에게 헌정하기 위해 제작한 다이아몬드 목걸이.

    쇼파드는 올해 5월 칸에서 ‘영화제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마릴린 먼로에게 헌정하는 주얼리를 선보였다. 슈펠레는 마릴린 먼로에게 영감을 받은 엘레강스한 주얼리를 디자인해냈다. ‘마릴린 먼로 주얼리’는 여자들의 영원한 로망인 다이아몬드로 화려하게 제작한 하트 모양의 목걸이다.

    크리스털 주얼리 브랜드 스와로브스키도 칸 영화제의 공식 파트너다. 1999년부터 이 영화제와 함께한 스와로브스키는 아카데미 시상식, 토론토 국제영화제의 후원사이기도 하다. 그래미상, 골든 글러브, 세자르 영화제 등에서 샤론 스톤, 페넬로페 크루즈, 제니퍼 애니스톤, 그웬 스테파니 등이 스와로브스키를 착용하고 등장했다.

    스와로브스키는 주목받는 여배우들에게 자사의 ‘작품’을 전달하는 것으로 영화제 마케팅을 시작한다. 스와로브스키는 올해 ‘반짝이는 인생 중의 하루(A DAY IN THE LIFE OF SPARKLE)’라는 매우 특별한 오거나이저(일반 다이어리에 비해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도록 짜인 시스템 다이어리. 한국에서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호응을 얻고 있다)를 제작했다. 화이트 가죽 커버에 크리스털로 사용자 이름을 새긴 오거나이저를 칸 영화제에 참석한 감독, 배우에게 나눠줬다. 스와로브스키는 오거나이저와 함께 550개의 크리스털 록 스톤으로 장식한 거울, 1900개의 크리스털이 박힌 클러치 백도 제공했다.

    스와로브스키는 2011년부터 부산국제영화제의 후원사로도 참여하고 있다. 부산에 온 세계 각국의 여배우들은 스와로브스키가 한국으로 공수해온 클러치 백과 주얼리 컬렉션을 착용하고 레드 카펫을 밟았다. 이 회사는 부산국제영화제 때도 감독, 배우를 위한 오거나이저를 제작해 배포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10월 4~13일 열린다. 올해는 스와로브스키가 어떤 오거나이저를 선보일지 자못 궁금하다.

    럭셔리 브랜드가 영화제로 달려가는 까닭은?

    (왼쪽) 칸 영화제의 공식 후원사인 로레알의 한국 모델인 영화배우 김윤진. (오른쪽)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디자인하고 있는 쇼파드의 CEO이자 아트디렉터인 캐롤라인 슈펠레.

    로레알은 1997년부터 칸 영화제의 공식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다. 올해에도 로레알의 브랜드 모델(김윤진, 에바 롱고리아, 밀라 요보비치, 제인 폰다, 궁리, 판빙빙, 셰릴 콜, 이네스드라 프레상주 등)이 대거 칸 영화제에 참석했다.

    럭셔리 브랜드가 영화제로 달려가는 까닭은?

    보드카 브랜드 그레이구스는 아카데미 시상식부터 그래미 어워드, 골든 글러브 등 각종 시상식 파티를 후원한다.

    로레알은 칸 영화제 기간에 영화 및 예술 분야의 인재 발굴을 목표로 한 프로그램을 영화제 측과 공동 주최한다. 로레알과 칸 영화제 집행위원회는 영화 발전을 위해 공헌한 예술인에게 공동으로 공로상을 수여하고 있다. 제인 폰다, 멜라미 그리피스, 궁리, 모건 프리먼 등이 이 상을 수상했다.

    로레알은 가능성 높은 젊은 영화감독의 영화 제작 활동을 지원하는 시네폰다시옹 재단도 후원하고 있다.

    칸, 베니스 영화제와 더불어 세계 3대 영화제의 하나로 평가받는 베를린 영화제엔 독일 시계 브랜드 글라슈테 오리지널이 참여하고 있다. 2010년부터 베를린 영화제를 후원한 이 브랜드는 독일의 젊은 영화감독에게 제작비를 지원하는 등 독일 영화 사업을 위한 후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 브랜드는 올해부터 취리히 영화제 후원도 시작했다.

    영화인의 술, 그레이구스

    그렇다면 아카데미 영화제는 어떤 브랜드가 후원하고 있을까? 보드카 브랜드 그레이구스가 영화제의 돈줄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브랜드는 골든 글러브, 그래미 어워드, 선댄스 영화제도 후원한다. 3월 제84회 아카데미 시상식 파티 때도 전 세계 영화인이 그레이구스를 마시는 모습이 노출됐다. 그레이구스는 영화제 참석자를 위해 새로 브랜딩한 프리미엄 칵테일을 선보였다. 지난해 토론토 국제영화제 때도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 안젤리나 졸리, 메건 폭스가 그레이구스를 마시는 모습이 언론 카메라에 잡혔다. 이 같은 마케팅을 통해 그레이구스는 영화인이 사랑하는 술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영화제는 세계인을 몸 달게 하는 축제다. 기업이 영화제에 참여하면서 얻는 효과는 상당하다. 영화제가 열리는 기간에 각종 매체와 SNS를 통해 스타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전 세계로 생중계된다. 예거 르쿨트르와 쇼파드의 시계를 찬 배우의 사진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 소비자의 구매욕을 간질이는 게 순식간이라는 얘기다. 영화라는 장르가 주는 예술적 이미지는 기업이 만든 제품의 이미지를 한 단계 높이는 데 기여한다. 한국 기업들도 영화제 마케팅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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