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호

朴-文-安 ‘3자 방정식’ 골몰

안철수 출마 예고 지각변동

  • 윤종구│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jkmas@donga.com

    입력2012-09-21 11: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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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朴 - 응징 투표 막고 ‘산토끼’ 잡아야
    • 文 - 단일화 룰에 ‘모바일 투표’ 넣어야 유리
    • 安 - “말 따로 행동 따로” 실망감이 변수 출마선언땐 여야 막판까지 예측불허
    朴-文-安 ‘3자 방정식’ 골몰
    뜸만 들이던 대선구도가 드디어 윤곽을 드러냈다. 12월 대선은 이제시작된 셈이다. 대진표는 2단계로 짜여 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단일화 예선이 1단계다. 그 승자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본선 대결이 2단계다. 5년 전 대선구도는 단순했다. 한나라당 이명박, 박근혜 후보의 당내 경선이 사실상 본선이었고, 2007년 이맘때는 차기 대통령이 거의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시점으로 보면 2007년 대선의 결승선이 2012년엔 출발선인 셈이다.

    올해 대선구도가 복잡한 것은 야권 때문이다. 일찌감치 박 후보로 확정된 새누리당과 달리 야권은 아직 대표선수가 누군지조차 알 수 없다. 민주당 대선 후보가 문재인 의원이 될 가능성이 커진 것도 9월 들어서다. 선출된 민주당 후보와 안 원장이 언제 후보단일화를 할지도 아직 모른다. 비슷한 양상이었던 10년 전 대선 때는 11월 말에야 단일화가 성사됐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야권의 경우 안 원장 독주체제에서 문 후보의 급상승으로 양강체제로 재편됐다는 사실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9월 11, 12일 전국 유권자 1500명에게 ‘야권후보 단일화 때 누구를 지지하겠느냐’고 물은 결과, 문 후보가 43.7%로 안 원장(33.9%)을 10%p정도 앞섰다. 야권 단일후보 선호도에서 문 후보가 앞선 것은 처음이다. 9월 8일 동아일보와 리서치앤리서치(R·R) 여론조사에선 안 원장 43.0%, 문 후보 40.4%였다. 3일 리얼미터 조사에선 안 원장(43.7%)이 문 후보(34.6%)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문 후보의 약진이 눈에 띈다.

    문 후보 지지율이 왜 급상승하는 걸까. 가장 간단한 해석은 민주당 지지층이 큰 이변이 없는 한 대선 후보로 사실상 공식화된 문 후보로 결집하고 있다는 것. 선거 또는 경선이 막바지에 이르면 지지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사람들이 1등 후보 쪽으로 쏠리는 ‘밴드왜건 효과’가 민주당에서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선 민주당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후보를 포함한 다자구도 지지율 조사를 아예 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들이 잊혀갈수록 문 후보 지지층은 두꺼워진다.

    보수층 逆선택이 변수

    보수층이 박 후보의 상대로 안 원장보다 문 후보를 만만하게 여기고 그를 치켜세우는 ‘역(逆)선택’을 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8일 동아일보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 지지자의 46.0%가 문 후보, 33.6%가 안 원장을 ‘단일후보로 지지한다’고 응답한 반면 다자대결 지지율에선 안 원장이 여전히 문 후보를 앞서고 있는 점은 역선택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단일화는 어차피 안 원장과 문 후보의 양자대결로 치러지는데다, 일반 국민을 참여시키는 방식이라면 실제 단일화 과정에서도 역선택이 나타날 것이므로 문 후보로선 어쨌거나 호재다.



    1년 동안 애매모호한 화법으로 국민을 감질나게 해온 안 원장에게 식상한 사람들이 문 후보로 옮아가는 현상도 엿보인다. 이른바 ‘안철수 피로감’이다. 7월 24일 리얼미터의 다자대결 조사에선 안 원장 28.2%, 문 후보 10.0%였으나 9월 11, 12일엔 안 원장 23.3%, 문 후보 20.3%로 격차가 크게 줄었다.

    ‘피로감’을 넘어 ‘안철수 실망감’도 있다고 본다. 정준길 전 새누리당 공보위원이 안 원장의 여자와 돈 문제를 거론하며 불출마를 협박했다는 논란이 한창이지만, 어쨌든 언론이 안 원장을 검증할수록 뭔가 나오는 건 사실이다. 철거 판자촌 재개발아파트 입주권(딱지) 매입, 2003년 1조 원대의 분식회계 혐의로 구속된 최태원 SK 회장에 대한 구명 탄원, 포스코 사외이사 관련 ‘거수기’ 및 스톡옵션 거액 차익 논란, 안철수연구소(현 안랩) 초창기 가족의 임원 재직, 1999년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해 1년 만에 최소한 300억여 원의 주식평가 이익 등 ‘얘깃거리’가 고구마줄기처럼 나온다. 일부는 법적으로 아무 문제없는 것도 있지만 안 원장이 그동안 글과 말을 통해 워낙 ‘도덕군자’인 양 해왔기 때문에 ‘말 따로 행동 따로’란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안 원장의 지속적인 ‘민주당 김빼기 작전’이 역효과를 낳았다는 분석도 있다. 문 후보가 한창 치고 올라오던 9월 11일 안 원장이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 며칠 뒤’라는 시점을 못 박아 출마선언 예고편을 내는 등 문 후보가 호재를 만난 때마다 어김없이 안 원장의 김빼기가 시도됐다. 안 원장의 최대 강점은 ‘비정치인’ ‘순수’ ‘청렴’이란 이미지인데, 실제로 하는 걸 보니 ‘안철수도 여느 정치인 못지않게 정치적이구나’란 인식이 생길 수 있다.

    단일화 무산 시 필패

    안 원장과 문 후보의 단일화 게임은 초반부터 달아오를 가능성이 높다. 문 후보가 정당 대선 후보 선출 직후 지지율이 오르는 ‘컨벤션 효과’를 타고 날아오를지, 뒤따르는 안 원장의 출마선언이 이를 성공적으로 제압할지에 따라 초반 기선잡기 승부가 갈릴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단일화 방식과 시기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 당내 경선에서 ‘룰 전쟁’을 치렀다. 하물며 민주당 안과 밖 후보의 경선은 훨씬 많은 변수가 있는 만큼 룰 싸움은 더욱 치열할 것이다. 민주당은 ‘정치혁명’이라고 자랑하는 모바일투표를 도입하려 하겠지만 안 원장이 동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민주당 전당대회와 대선 후보 경선을 지켜본 안 원장으로선 모바일투표가 조직동원력에 좌우된다는 걸 꿰뚫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직력에서 안 원장은 민주당의 상대가 못 된다. 민주당이 요구하는 ‘안 원장의 입당’도 실현 가능성이 낮다. 안 원장이 지지를 받는 큰 이유가 ‘기존 정치세력과의 거리두기’와 ‘진영논리 탈피’인데, 입당하는 순간 정체성이 무너질 수 있다. 안 원장이 입당하면 어떤 식으로든 ‘민주당 당원’의 의사를 단일화에 반영하지 않을 명분이 없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민주당이 모바일투표와 입당을 고수하는 한 안 원장은 단일화에 응할 리 없다. 단일화를 안 하면 대선은 필패(必敗)라는 점을 잘 알고 있는 민주당으로선 두 가지를 관철하기 어려울 것이다.

    두 사람의 담판으로 한쪽이 양보하는 ‘아름다운 그림’도 그려볼 수 있다. 둘 다 권력의지가 넘치는 사람이 아니다. 안 원장은 1년 전 박원순 후보에게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한 경험이 있다. 문 후보는 당내 경선 룰 싸움에서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결선투표를 전격 수용하는 결단을 보여준 바 있다.

    어떤 방식으로 단일화할 것이냐는 룰의 문제는 단일화 시점에서의 지지율에 좌우된다. 두 사람의 지지율이 상당한 격차로 벌어지면 낮은 쪽이 경선 없이 양보할 수도 있다. 어느 한쪽이 양보하는 상황이라면, 그 기준은 문 후보 쪽이 더 까다로울 것이다. ‘개인 안철수’는 손만 털고 나오면 그만이지만 문 후보는 자칫 존립 위기를 감수해야 하는 제1야당 소속이기 때문이다. 지지율이 오차범위 내 접전이거나 이런저런 경선 방식에 따라 우열이 달라진다면 양측은 단일화 룰 전쟁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가령 단일화 경선에서 새누리당 지지자를 배제할지 여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확장성 약한 게 朴 단점

    단일화 시기는 언제일까. 안 원장이나 문 후보 모두 서두를 이유는 없다. 이미 야권 대표선수 확정이 너무 늦다는 비판을 받을 만큼 받았고, 이제 언론의 관심이 박 후보보다는 야권후보 단일화로 옮겨올 게 자명하기 때문이다. 양측은 언론의 조명을 최대한 모으면서 단일화 효과를 극대화할 시기를 택할 것이다. 이런 프리미엄을 최소 한 달은 누리려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아무리 빨라도 10월 말, 늦으면 11월까지 갈 수 있다.

    단일화는 극적 효과를 위해 여러 정치적 이벤트를 동반한다. 누가 단일후보가 되든 진보적 중도적 시민사회세력과 일부 진보정치세력을 끌어안는 대통합에 나설 게 분명하다. 2002년에도 경험했듯이 단일화의 컨벤션 효과는 폭발적일 수 있다. 박 후보로선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최대 고비다. 양측은 또 공동정부 구성과 공동정책을 다짐하는 합의서를 내놓을 것이다. 각자의 지지층을 확실하게 단속하고 연대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안 원장 쪽으로 단일화된다면 이는 더욱 필요한 일이다. 국회의원 128명의 민주당과 달리 ‘개인 안철수’는 공약을 담보할 방법이 별로 없고, 선거를 치를 조직과 경험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민의 불안을 해소해줄 필요가 있다.

    이에 맞서 박 후보는 집토끼(지지층)를 최대한 결속하고 산토끼(중도층) 잡기에 전력투구하는 수밖에 없다. 박 후보는 표의 집중력이 강하기 때문에 집토끼 단속은 그리 어려운 과제가 아니다. 그러나 호불호 또한 선명한 편이어서 표의 확장성은 제한적일 것이란 게 일반적 분석이다. 박 후보가 5·16군사정변과 유신체제 등 역사인식 문제에서 아무리 전향적 태도를 취한다 해도 비(非)지지층을 끌어오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통합 행보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들의 ‘응징 심리’를 최대한 약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야당 후보가 좋다기보다는 박근혜가 미워서라도 투표하러 가겠다’는 사람을 최소화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선의 승패가 달렸다.

    그럼 누가 12월에 웃을 것인가. 지금 이를 단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점쟁이밖에 없다. 여기선 대선 전망의 바탕이 되는 몇 가지 중요한 요인을 살펴보겠다.

    산술적으로 박 후보는 2007년 이명박 후보가 얻은 1149만 표에 이회창 후보가 얻었던 355만 표까지 동원할 수 있다면 안정적으로 승리할 수 있다. 올해 4·11총선 유권자 4018만 명을 기준으로 할 경우 투표율이 70%(2812만 명)까지 올라가더라도 이긴다. 그러나 5년 전 대선은 노무현 정권이 최악의 불신을 받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보수 표가 예외적으로 늘어났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지금은 되레 이명박 정권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다.

    4·11총선 비례대표 정당투표 결과를 보자. 새누리당이 의석수에선 152석으로 과반을 차지했지만, 정당투표에선 보수 정당이 졌다. 새누리당 42.80%와 선진통일당 3.23%를 합하면 46.03%다. 반면 민주당 36.45%와 통합진보당 10.30%를 더하면 46.75%다. 그 후 통진당 지지율이 참혹하게 떨어졌지만, 총선에서 통진당에 표를 준 사람들이 대선에서 박 후보를 지지할 리 만무하다.

    기호 2번이 3연속 당선

    유권자가 총선과 대선에서 ‘견제 투표’를 하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1997년, 2002년, 2007년 대선에서 당선자는 모두 기호 2번이었다. 대선 직전의 총선에서 패해 제2당이 된 정당이 대선에선 이겼다는 얘기다. 국민은 의회권력을 쥔 정당에 청와대까지 내주진 않은 게 지난 세 차례의 대선 표심이었다. 기호는 대선 후보 소속 정당의 의석수에 따라 배정된다. 이번에는 박 후보가 기호 1번이다.

    역대 대선에서 여당이든 야당이든 단일화와 연대에 성공한 후보는 이겼고 분열하면 졌다. 1987년엔 야권이 김영삼 김대중 후보로 갈려 패했고, 1992년엔 3당 합당으로 영남과 충청권을 확보한 김영삼 후보가 당선됐다. 반대로 1997년엔 김대중 후보가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의 DJP연합으로 충청권을 끌어안은 반면 이회창 후보는 이인제 후보와 분열하는 바람에 승패가 갈렸다. 2002년엔 노무현 후보가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로 역전승했다. 2007년 대선은 노무현 정권에 대한 반감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보수 진영에서 이회창 후보가 나왔음에도 이명박 후보가 대승한 예외적 상황이었다. 이번 대선에서 안 원장과 문 후보의 단일화가 얼마나 큰 변수일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대세론이 별 의미 없었다는 것은 익히 아는 얘기다. 1997년 박찬종, 2002년엔 여당이던 민주당 내에서 이인제, 그해 본선에선 이회창 후보가 ‘대세론’ 얘기를 들었지만 아무도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박찬종 이인제 후보는 대선 투표용지에 이름을 올리지도 못했다. ‘박근혜 대세론’이 오래됐지만, 이를 근거로 대선 승리를 자신하는 사람은 새누리당에도 없다.

    고령화의 영향으로 50대 이상이 4년 전 총선 기준으로 300만 명 정도 늘어난 점도 지켜볼 대목이다. 50대 이상엔 박 후보 지지자가 많을 뿐만 아니라 투표율도 높다. 지역주의는 늘 중요한 요소다. 영남, 특히 부산 경남에서 탈지역주의 속도가 빠르다. 19대 총선 부산 지역에서 민주당과 통진당이 거둔 정당득표율은 40.2%였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의 부산 득표율이 29%였던 점에 비춰보면 대약진이다. 안 원장과 문 후보 모두 부산 출신이라는 점에서 이는 새누리당에 위협적 요소다.

    장훈 중앙대 교수가 취합한 자료에 따르면 2007년과 2012년 유권자의 이념분포는 보수층의 경우 31.5%에서 31.7%로 거의 변동이 없다. 반면 중도층은 43.9%에서 32.6%로 대폭 줄었고, 그만큼 진보층이 24.6%에서 35.7%로 늘었다. 야권에 유리한 환경이다. 선거 변수에서 세대별 대립과 함께 이념 갈등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정권심판론의 불씨는 잠재돼 있다고 보지만, 박 후보가 5년간 ‘여당 속 야당’ 역할을 해왔고 현 정권과의 차별화를 계속해나갈 것이므로 큰 영향을 못 미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역시 보수는 썩었어’란 인식을 국민에게 다시 각인시킬 만한 메가톤급 권력비리가 터질 경우 달라질 수 있다. 야당은 끊임없이 이런 먹잇감을 찾을 것이다.

    이상의 대선 요인 중에는 박 후보에게 유리한 것도 있고 야권에 유리한 요소도 있다. 남은 3개월 동안 이런 요인들이 뒤섞이면서 어떤 요인이 더 돌출되는 환경이 조성되느냐, 또는 그런 환경을 누가 만드느냐에 따라 판세가 요동칠 수 있다. 몇 달 사이에 야권 후보 지지율이 10~50%대를 오갔고 대선을 20여 일 앞둔 시점에서의 단일화로 대역전 승부가 펼쳐지는 광경을 10년 전 목도했다. 3개월간 대선 판도가 몇 차례나 출렁거릴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약간의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는 건 누가 이기고 지든 51대 49의 박빙 싸움이 될 것이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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