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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

창조보다 눈부신 진화의 신비

  • 김학순│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창조보다 눈부신 진화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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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발전한다”

이듬해 마침내 ‘종의 기원’이 출간된다. 당시 다윈은 20여 년 동안 부지런히 많은 양의 증거를 확보해 자신의 이론을 윌리스보다 훨씬 더 완전하게 다듬어낸 상태였다. 진화론을 발전시킨 공로는 다윈에게 돌려도 큰 문제가 없다. 다윈이 ‘19세기의 가장 혁명적인 발견’을 20년 이상 묵힌 것은 성서의 가르침을 거역하기에는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종의 기원’은 인간의 사고체계에 엄청난 파장을 낳았다. 인류문명이 시작된 이래 인간 위에서 군림하던 신을 몰아낸 것은 사고의 혁명을 가져왔다. 신이 삼라만상을 창조했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에겐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충격은 인간 자체의 위상 격하였다. 다윈은 인간을 철저하게 동물계의 일원으로 여겼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동일한 자연 질서의 일부라고 본 것이다. 그때까지 인간은 창조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종의 기원’에는 길게 뻗은 나뭇가지와 비슷한 도표로 진화를 설명하는 계통수 하나가 나온다. 생물종이 나뭇가지처럼 공동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가며 새로운 종으로 진화하고 멸종한다는 사실을 표현한 그림이다. 여기서 인간은 구체적으로 등장하지 않지만 무수히 많은 생물체와 똑같이 나뭇가지 중 하나일 뿐이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한 이듬해인 1860년 옥스퍼드에서 열린 영국협회 정례회의장에서 진화론과 창조론을 둘러싸고 유명한 논쟁이 벌어졌다. 새뮤얼 윌버포스 주교가 옆자리에 앉은 생물학자 토머스 헉슬리에게 유인원에서 시작하는 헉슬리의 가계가 할아버지와 할머니 중 누구에게서 비롯된 것인지 물었다. 그러자 ‘다윈의 불도그’라 불리는 헉슬리는 “원숭이가 내 조상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주교처럼)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도 사실을 왜곡하는 사람과 혈연관계라는 점이 더 부끄럽다”고 반박했다.

‘종의 기원’은 자연과학의 경계를 넘어 정치, 철학, 사회, 문화, 예술 전반을 이전과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생명체가 진화한다는 놀라운 발상은 우주와 만물이 영원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발전한다는 인식도 깨우쳐주었다. ‘종의 기원’은 그 과정에서 숱한 오해와 오용을 견뎌내야 했다. 곳곳에서 정반대의 의미로 해석되기도 했다. 강대국의 식민지 지배 정당화에 악용되기도 했고, 피식민지에서는 해방의 이데올로기나 진보의 희망으로 활용됐다. 독일 나치는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내세우는 논거로 이 책을 들이댔다.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지적처럼 진화론만큼 가장 다양하고 가장 많이 왜곡돼 적용된 사례도 흔치 않다.

‘종의 기원’은 출간된 지 15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창조설을 믿는 기독교와 불화를 겪고 있다. 로마 교황청이 진화론은 가톨릭 교리와 충돌하지 않는다고 발표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영국 성공회도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을 맞은 2009년 “다윈을 오해해 그에게 잘못된 대응을 한 것을 사과한다”고 밝혔다.

프랜시스 크릭과 더불어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내 노벨상을 받은 제임스 왓슨은 “다윈은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내 어머니보다 더 중요하다. 그가 없었다면 생명과 존재에 대해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라고 할 정도로 진화론을 극찬한다. 인류 역사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 현대에 와서 일정 부분 상처 입은 것과 달리 ‘종의 기원’은 여전히 그 가치를 뽐내고 있다.

신동아 2012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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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순│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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