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이어온 ‘습관성’ 독자 인생

1964년 당시 고작 중학교 1학년이던 내가 신동아 같은 고급 시사잡지를 손에 쥐게 된 것은 아마 대학생이던 큰형님이나 선친이 신동아를 즐겨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책꽂이에 신동아가 복간호부터 순서대로 가지런히 꽂혀 있던 모습이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책장에는 민중서관에서 발행한 ‘한국문학전집’과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이 꽂혀 있었는데, 신동아와 함께 이 책들은 어린 시절의 내가 세계를 내다볼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다. 이 책들 속에서 한 인생이 꿈을 꾸고 미래를 설계했고 인생관까지 확립했다.
유년 시절의 독서가 특히 중요한 것은 아마도 머릿속에 그 내용이 깊이 각인되기 때문일 것이다. 내 삶에 독서가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스스로 알 순 없지만, 여하튼 그 시절 신동아에서 읽은 소설들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유주현(柳周鉉) 작가의 ‘조선총독부’(1964년 9월~1967년 6월 연재)는 내 인생 최초의 대하소설(大河小說)이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읽는데도 매회 너무도 흥미진진했던 기억이 지금은 오히려 신기하게 느껴진다. 무단통치(武斷統治)의 데라우치 총독, 조금은 부드러웠다는 사이토 총독 등 소설 속 수많은 인물이 여전히 기억이 난다. 심지어 그들의 얼굴 생김새까지 머릿속에 남아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중학 시절 방학숙제로 ‘조선총독부’에 대한 독후감을 작성해 냈다가 선생님에게 칭찬받은 기억도 난다. 학창생활 중 아주 드물게 받은 칭찬 중 하나가 신동아 덕분이니 이도 감사할 일이다.
유학 중에도 매달 신동아 읽어
세월이 조금 흐른 후에 신동아가 연재한 이병주(李炳注)의 소설은 또 얼마나 흥미로웠던가. 젊은 시절의 나는 “태양(太陽)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월광(月光)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로 시작하는 ‘산하(山河)’(1974년 1월~1979년 8월 연재)를 비롯한 그의 모든 소설을 빼놓지 않고 찾아 읽었다. 당시 젊은이들은 기나긴 줄거리의 장편 대하소설을 밤을 밝혀가며 읽곤 했는데, 요즘은 모든 측면에서 그런 긴 호흡이 사라졌다. 시대는 변하기 마련이지만 생활의 느긋함 혹은 여유로움이 사라진 것 같아 안타깝다. 요즘의 신동아가 소설을 싣지 않는 것도 안타깝고, 또 예전처럼 열심히 읽지 않는 내가 안타깝다.
여하튼 신동아는 내게 매월 한 획을 긋는 삶의 방식이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당시 막 개교한 한국과학원에 입학해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는데, 과학기술을 위해 병역의무까지 면제받는 특별한 학생들이었으니 학업 분위기는 매우 열성적이었다. 시험도 많았고 실험도 바빴지만 한 달에 한 번 신동아를 받는 날엔 어떤 일보다도 신동아를 독파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었다. 그때 내 버릇을 잘 알고 있던 기숙사 룸메이트는 내가 유학을 떠나 있었을 때 고맙게도 외국에까지 신동아를 보내주어 매달 한 번씩 ‘신동아 몰입’을 계속할 수 있었다.
신동아가 복간되던 1964년, 대한민국은 바로 그해에 처음으로 연간 수출액 1억 달러를 돌파했다. 그 무렵 국민소득 100여 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던 대한민국은 불과 반세기 만에 선진국 문턱에 도달했다. 지난해 수출액은 5000억 달러를 넘어섰고 국민소득도 2만2000달러에 달했으니 우리는 그야말로 기적 같은 발전을 이룩한 자랑스러운 국민이다. 같은 기간에 쌓인 신동아의 역사도 당연히 자랑스러운 것이다. 이제부터 할 일은 새로 맞을 반세기를 지난 반세기보다 훨씬 더 자랑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어려운 과제지만 대한민국과 신동아는 역시 잘해낼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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