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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왜 술을 마셔야만 하는지 샐러리맨 인생 그리고 싶었다”

웹툰 ‘미생’ 작가 윤태호

  • 강지남 기자│layra@donga.com

“왜 술을 마셔야만 하는지 샐러리맨 인생 그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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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술을 마셔야만 하는지 샐러리맨 인생 그리고 싶었다”

‘미생’52수 중에서

미생의 또 다른 재미는 바둑이다. 프로바둑 입문에 실패한 장그래는 바둑이란 거울로 회사와 조직을 들여다본다. 늦은 밤 퇴근길에 김 대리가 말한다. “나 하나쯤 어찌 살아도 사회는, 회사는 아무렇지 않겠지만, 그래도 이 일이 지금의 나야.” 이런 김 대리를 보며 장그래(혹은 윤태호)는 조치훈 9단의 말을 나지막이 읊조린다.

“바둑 한 판 이기고 지는 거…. 그래 봤자 세상에 아무 영향 없는 바둑. 그래도 바둑. 나에겐 전부인 바둑. 내게 허락된 세상….”

“바둑에 이런 말이 있어요. ‘전체가 부분을 결정한다.’ 네모난 바둑판이 바둑을 결정하죠. 인생도 마찬가지예요. 내 뜻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환경을 무시할 수 없어요. 또 내가 한 번 두면 상대가 둘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게 바둑이고 인생이죠. 한 수 두면서 앞으로 둘 수에 대해 아무리 계획해봤자 상대가 계획대로 따라와주지 않아요. 계속 수정하고 재설정하는 게 인생인 것 같아요. 처음 설정한 방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게끔 노력하면서요.”

노숙하며 만화 배워

그는 1969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서울, 전북 군산, 그리고 다시 광주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삼형제 중 막내인 꼬마 윤태호는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신문에 4컷 만화를 연재했고, 각종 미술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다. “하지만 그 시절 그림 그리는 재능은 부록 같은 것”이었다. 육성회비도 제 때 못 내는 가난한 집 아이가 미대 진학을 꿈꾸거나 만화를 업으로 삼겠다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상장은 액자에 넣어 걸어놓는 것이란 걸 남의 집에 가보고서야 알았어요. 우리 어머니는 밥풀 묻혀서 붙여놓곤 하셨거든요.”

가세가 기울어 고등학교 2학년 때 고향으로 돌아와 광주 살레시오고로 전학했다. 고3이 되자 학교는 전교 석차가 위에서 1~30등인 학생들과 밑에서 1~30등인 학생들, 그리고 예체능계 몇 명을 섞어 한 반을 만들었다. 그의 짝꿍은 전교 10등인 아이. 공부는 뒷전이고 매일 밤 광주 시내를 배회하며 방황하던 그에게 짝꿍은 “일요일에 학교 나오지 않을래?” 했다. 수십 명이 독서실에 앉아 자습하는 신기한(?) 공간을 경험하며 그는 처음으로 대학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학비가 싸고 장학금도 많다는 국립대 미술교육과는 실기 반영비율이 10%에 지나지 않았다. 불합격 통보를 받은 날, 그는 부모님에게 “만화가가 되겠다”고 선언한 뒤 상경했다.

“강남 대치동 은마아파트 안에 있는 공원 아세요? 주로 거기서 노숙했어요. 만화학원이 그 근처였거든요. 120원짜리 안성탕면 하나로 하루를 버티다가 학원 애들이 불쌍하다고 밥 사주면 고맙게 얻어먹고…. 그때는 ‘어떻게든 견뎌내자’라는 생각이 강했어요. 정말 만화가 너무 하고 싶었거든요.”

이후 허영만, 조운학 문하생을 거쳐 1993년 스물다섯의 나이에 ‘월간 점프’를 통해 데뷔했다. 하지만 인쇄돼 나온 자기 작품을 보고 “이건 쓰레기다” 싶어 다시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스토리가 너무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소설책만 열심히 읽으면 글 쓰는 능력이 생기겠거니 했는데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2년 동안 그림은 접고 스토리에만 매달렸어요. 그때도 컴퓨터가 있었지만 손으로 쓰고 또 썼어요.”

“땅에 발 딛고 사는 놈이 누굴 흉내 내는 기고? 신이라도 될라캤나? 내는 인간이 될라 캤다!” - ‘이끼’에서 천용덕

영화 이끼의 줄거리는 원작과 거의 다를 바 없고 대사의 상당량도 원작에서 그대로 따왔다. 그만큼 윤태호의 작품은 구성과 대사가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은둔의 2년’ 동안 그는 드라마 ‘모래시계’대본과 최인호의 소설들을 몇 번씩 베껴 썼다. 글을 손으로 익히기 위해서다. 또 하나의 소재를 가지고 이리저리 연구했다. 가령 ‘연인’이 소재라면 평범한 스토리를 하나 쓰고, 그걸 코믹한 버전으로 바꿔보고, 또 궁상맞은 이야기로 고쳐봤다. 그림 없이 스토리만 짜고 또 짰다. 그는 “굉장히 지루한 작업이지만, 나는 나를 학대하는 걸 좋아한다”며 웃었다.

“그러다 정말 웃긴 얘기를 만들었다 싶어 선배에게 보여줬더니 ‘야, 이거다. 다시 데뷔해!’ 하는 거예요. 난생처음 스토리를 인정 받아봤어요.”

이 작품이 바로 성인 코미디물 ‘혼자 자는 남편’(2004)이다. 섹시한 여성과 결혼하는 게 꿈인 한 남자가 군인 출신 아버지가 낙점한 거구의 여자와 혼인한 뒤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만화다. 이후 그는 ‘야후’ ‘로망스’ ‘수상한 아이들’ ‘연씨별곡’ 등을 발표하며 점차 이름을 알려갔다.

장그래와 노홍철

평생 만화에 매진했다지만 윤 작가는 바둑 10급이기도 하고 사주, 관상, 풍수지리, 심지어 점성술(astrology)까지 배웠을 정도로 잡학에도 능하다. 그는 “인정받고 싶은데 잘 안 돼서, 그래서 내 팔자가 궁금해 공부했다”며 웃었다. 가난이란 부모가 아이 말에 귀 기울일 형편이 못 된다는 것. 그래서 아이는 자신감이 없어지고 자기 뜻을 감추는 데 익숙해진다는 것. 그런 유년 시절을 보내왔기에 내 이야기로 인정받고 싶다는 열망이 강하다고 했다.

“상업적인 성공보다는 내가 하려고 했던 의도 그대로 이해받는 것. 그게 제 목표예요. 미생이 그런 것 같아요. ‘이끼’도 그렇고 ‘야후’도 그렇고, 그동안 네거티브한 작품을 많이 했는데, 이제 긍정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거든요. 한계 있는 샐러리맨이지만 굳이 자기 뜻을 굽히지 않아도 훌륭하게 살 수 있는 샐러리맨들을요. 많이들 좋아해주시니까 정말 좋죠.”

주인공 장그래의 이름은 무한도전에서 ‘긍정교’ 창시자로 나온 노홍철에게서 힌트를 얻었다.

“노홍철 씨가 한참 ‘웃으세요’ ‘예스, 예스’ ‘긍정의 힘’을 얘기했잖아요. 예스? 그래, 그럼 ‘그래’라고 하자 했지요.”

장그래는 인턴 기간을 거쳐 2년짜리 계약직으로 채용됐다. 앞으로 남은 10여 개월의 연재 기간.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장그래는 어디까지 성장할까.

“대학도 안 나온 장그래가 대기업 정직원이 되면 좋은 대학 나와도 취업하기 어려운 이 땅의 수많은 청년이 분하지 않을까요? 그래가 열심히 사는 건 사는 거고, 현재 시스템이 그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지금 고민하는 포인트예요. 지켜봐주세요.”

신동아 2012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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