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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제, 안정제로 버틴다… 대선 개입? 난 對北 심리전 요원일 뿐”

‘국정원女’ 김모 씨의 울분 토로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수면제, 안정제로 버틴다… 대선 개입? 난 對北 심리전 요원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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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누가 미행하는 것 같아 깜짝깜짝 놀라
  • ● 북한 사이버 심리전 방어 업무 담당
  • ● 공황장애 증상 생겨…‘政爭이 낳은 피해자’
“수면제, 안정제로 버틴다… 대선 개입? 난 對北 심리전 요원일 뿐”

지난해 12월 13일 오후 국정원 관계자들이 여직원 김모 씨를 경호하며 서울 역삼동 오피스텔 건물을 빠져나가고 있다.

“누가 나를 미행하거나 감시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깜짝깜짝 놀라요. 늘 불안하고요.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고….”

국가정보원 여직원 김모 씨(29)는 공황장애 증상에 시달리고 있다. 한 달 넘게 신경안정제, 수면제를 투약한다. 병가를 내고 출근하지 않는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정쟁(政爭)의 한복판으로 쓸려 들어갔다. 지난 대선 직전 민주당이 ‘국정원 아지트’라고 주장한 오피스텔에서 그녀는 도대체 뭘 한 걸까.

김 씨는 당시 일을 떠올릴 때마다 불안이 밀려온다. 지난해 12월 11일 퇴근길에 악몽 같은 사건이 시작됐다.

“오후 6시 30분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이 있는 6층에 내렸더니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한 남자가 어디 사시느냐, 이름이 뭐냐고 묻더군요. 1층으로 다시 내려가 경비 아저씨에게 ‘무슨 일이 생겼느냐?’고 물었어요. 잘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6층에서 이것저것 묻던 그 사람이 1층으로 내려와 또 이름을 물었습니다. 저를 따라 6층으로 다시 올라와선 다른 이들에게 ‘국정원 직원이 맞다’고 하더군요.”

악몽으로 변한 퇴근길



김 씨는 집으로 들어간 후 이틀 뒤인 12월 13일 오후 3시 30분까지 나오지 못했다.

“사람들이 초인종을 연거푸 누르고 문을 발로 찼습니다. ‘왜 안 나오느냐’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요.”

김 씨 집 앞에서 소동이 벌어진 것과 비슷한 시각,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이던 진성준 의원이 브리핑할 게 있다면서 기자실을 찾았다.

“국정원 직원이 정치 관련 홈페이지에 접속해 문 후보를 비방하는 댓글을 무차별적으로 올리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3차장실 심리정보국 소속 김모 씨가 상급자 지시를 받아 서울 역삼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수개월간 근무하면서 야권 후보 비방을 일삼았다고 한다. 민주당 공명선거감시단이 ○○오피스텔 607호로 출동했다. 문 열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거절해 대치 중이다. 포털사이트나 정치 관련 홈페이지에 접속해 글을 올렸기에 현장 컴퓨터 등을 압수하면 증거물을 확보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오후 6시 55분, 민주통합당의 한 당직자가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에 전화를 걸어 “강남구 역삼동 소재 모 오피스텔에서 불법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고 제보했다. 25분 뒤 선관위 직원이 오피스텔 로비에 도착해 제보자를 만난 뒤 6층으로 올라왔다. 선관위 특별기동조사팀원 5명도 현장으로 출동했다. 기자들까지 몰려와 김 씨 집 앞은 어수선했다.

오후 7시 30분, 선관위 직원 1명, 경찰 1명, 민주당 법률지원단 소속 변호사 1명이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왔다. 선관위 직원은 김 씨의 운전면허증을 촬영하고 4분 만에 철수했다. 불법 선거운동을 했다고 볼 만한 물증을 발견할 수 없었다. 선관위 직원이 제보자에게 “다 끝났죠?”라면서 조사 종료를 고지했다.

“얼굴 노출할 수 없었다”

선관위 직원, 경찰이 떠난 뒤 초인종이 또 울렸다. 겁이 난 데다 정보기관 요원이 얼굴을 노출시킬 수 없어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 사람들이 왜 이러는지, 난리법석이 왜 벌어졌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밖에 사람이 많다보니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집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발자국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요. 공포가 밀려왔습니다.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었던 터라….”

김씨는 112에 신고하기도 했다.

“집 앞에 사람들이 계속 와서 문 두드리고 초인종 울리고 그러는데, 좀 무서워서 그러는데 와주실 수 있을까요?”

“신고자 집을 그렇게 두드려요?”

“네. 와주시겠어요? 계속 두드리고 초인종도 계속 누르고 그러는데….”

경찰이 오지 않아 30분 후 신고전화를 다시 걸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저기 조금 전에 신고했었는데 오시는 건가요? 오고 계시는 건가요?”

“경찰관이 아직 안 왔습니까?”

“잘 모르겠는데요. 밖에서 계속 초인종 누르고 있어서….”

김 씨는 모두 4차례 112에 신고했다. 이웃 주민들도 “무슨 사고가 생긴 것 같다”면서 112에 전화를 걸었다. 출동한 경찰이 초인종을 눌렀으나 김 씨는 경찰이 왔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밖이 시끄러워 인터폰으로 말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김 씨가 무서움에 떨고 있던 시각인 오후 10시 23분, 진성준 의원이 다시 브리핑에 나섰다.

“최근 국가정보원 3차장 산하 심리정보단이란 조직이 심리정보국으로 확대 개편됐고, 이곳에 소속된 요원들이 대통령선거에 개입해 문재인 후보 낙선을 위해 활동해왔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이 제보를 근거로 현장에 출동한 것이다.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해 불법을 자행했다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국기 문란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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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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