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2월 생수시장의 절대 강자 삼다수의 판매원이 농심에서 광동제약으로 바뀌었다. 때맞춰 농심과 롯데칠성음료가 백산수와 백두산 하늘샘 등 백두산을 취수원으로 하는 생수를 출시하면서 생수시장에 불꽃 튀는 마케팅 전쟁이 시작됐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과 한라산이 자신이 품은 물로 자존심을 건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됐다.
지난해 12월 출시된 농심 백산수, 롯데칠성음료 백두산 하늘샘, 광동제약의 삼다수.
하루 2L 이상의 좋은 물을 마셔야 신진대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의학계의 정설이다. 물은 인체에 들어가 혈액을 맑게 하고 노폐물을 걸러내며 전해질 이온 농도를 조절한다. 그래서 좋은 물을 많이 마시는 사람은 장이 편하고 피부도 곱다. 정수기 시장이 수십 년째 맑은 물, 좋은 물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그런데 정수기 시장이 요즘 소강상태다. 정수 방식과 저수조 방식, 물때 문제를 놓고 서로 다투다 소비자에게 도매금으로 안 좋은 인상만 심어줬다. 스테인리스 저수조가 어떠니 하면서 서로 자사 정수기가 최고라 하지만 소비자에겐 아직도 ‘죽은 물’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다. 대형 마트의 생수 가격인하 경쟁으로 렌털 정수기의 가격 경쟁력도 떨어졌다. 소비자는 산속 깊은 샘에서 나오는 자연 그대로의 깨끗한 물이 그립다. 산을 오르다 옹달샘에서 떠 마신 그 달고 깊은 맛….
1998년 국내 생수시장에 72번째 업체로 뛰어든 무명의 ‘제주 삼다수’(판매원 농심)가 판매 6개월 만에 시장 1위로 우뚝 올라선 첫 번째 이유도 단연 ‘살아 있는 물’ 마케팅 덕분이었다. 소비자는 한라산의 영기가 서린 깨끗한 백록담 물을 마실 수 있다는 기대감에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켜켜이 쌓인 화산 현무암이 수십 년 필터 기능을 하며 걸러낸, 미네랄이 살아 있는 물이라는 콘셉트는 소비자의 뇌리에 그대로 박히며 생수시장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절대 강자 한라산, 대항마 백두산
이후 생수시장뿐 아니라 음료시장에도 살아 있는 깨끗한 물 전쟁이 벌어졌다. 롯데칠성음료는 칠성사이다 광고에 백두대간과 독도 풍광을 삽입해 깨끗한 물 이미지를 구축했다. 정수기 시장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미네랄이 없는 물, 즉 ‘죽은 물’ 논쟁이었다. 이후 정수기 광고에도 ‘미네랄이 살아 있는 자연의 물’이란 문구가 등장했다. ‘아이시스’로 뒤늦게 생수시장에 뛰어든 롯데칠성음료가 2009년 8월 세계적 청정지역인 민간인통제선 북측에서 취수한 ‘롯데 아이시스 DMZ(디엠지) 2km’를 출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네랄이 살아 있는 천혜 자연의 물’을 내걸고 마케팅을 펼친 이후 농심이 판매하는 삼다수(생산자는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는 지난 14년 동안 생수시장의 30%를 장악하며 절대 강자로 군림했다. 삼다수의 성장은 생수시장 전체를 자극하며 500억 원대에도 못 미치던 생수시장을 6000억 원대로 키워놓았다.
2011년 국내 생수시장 총 매출규모는 5630억 원으로 이 중 삼다수가 1860억 원을 차지했다. 롯데칠성음료의 매출은 ‘에비앙’ ‘볼빅’ 등 수입 생수를 포함해 960억 원으로 2위. 2012년 삼다수 매출은 2000억 원, 롯데칠성음료 총매출은 1000억 원, 총 생수시장 매출은 6000억 원대를 훌쩍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농심과 롯데칠성음료는 둘 다 생수시장의 늦깎이로 데뷔했지만 살아 있는 물 마케팅과 라면 과자 음료 판매로 다져진 전국 유통망을 바탕으로 단번에 생수시장 1, 2위를 꿰찼다.
살아 있는 자연의 물 전쟁은 지난해 12월 삼다수의 판매원이 농심에서 광동제약으로 바뀌고 농심과 롯데칠성음료가 각각 ‘백산수’와 ‘백두산 하늘샘’을 잇따라 출시하면서 다시 불이 붙었다. 같은 민족의 영산이지만 한라산보다 더 높고 세계적 천연 원시림으로 지정된 백두산을 취수원으로 삼다수의 독주를 막겠다는 야심만만한 도전이었다.
백두산과 한라산은 오래전에 화산활동이 멈춘 휴화산으로, 그 인근 지역에서 나오는 샘물은 화산석이 빗물을 수십 년간 정화하면서 이물질을 제거하고 미네랄도 첨가해 물맛이 좋고 건강에 좋다는 공통점이 있다. 좋건 싫건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과 한라산이 자신이 품은 물로 자존심을 건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된 셈이다.
농심과 롯데칠성음료는 비슷한 시기에 백두산을 취수원으로 하는 생수를 내놓았지만 서로 경쟁을 하기보다 삼다수라는 1등 생수를 꺾기 위해 협력하는 분위기다. 가급적 경쟁을 피하려는 모습이 곳곳에서 포착된다. 삼다수가 생수시장의 절대 강자로 자리를 잡았다는 이유도 있지만, 취수원이 같은 백두산이라 서로 공격하면 자칫 공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농심의 신춘호 회장은 롯데그룹 신격호 총괄회장의 둘째 남동생이다. 오랜만에 형제 그룹이 힘을 합쳐 생수시장의 절대 강자와 정면승부를 벌이게 된 형국이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과 한라산이 자신이 품은 물로 한판 대결을 벌이게 됐다. 백두산 천지(왼쪽)와 한라산 백록담.
광동제약은 기존 위탁판매업자였던 농심을 포함해 입찰에 참가한 7개 생수사업자와의 경쟁에서 삼다수 판매권을 가져올 수 있었던 이유로 ‘비타 500’과 ‘옥수수 수염차’ 등 식음료수를 판매하면서 구축한 전국 소매 유통망과 생산 전후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관리시스템을 들고 있다. 또한 이런 요인이 앞으로 삼다수 판매를 더 늘릴 수 있는 큰 장점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국내에서 식음료 판매로 40년 이상 잔뼈가 굵은 대기업인 농심과 롯데칠성음료의 유통망과 관리시스템도 만만치 않다. 유통 전문가들은 “정통 제약업체인 광동제약의 식음료 매출 비중이 아무리 최근 들어 크게 늘었다 해도 그간의 경험이나 매출 규모 등으로 볼 때 농심과 롯데칠성음료의 도·소매 유통망과 관리시스템을 따라잡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식음료 양대 거인의 유통망 파워
삼다수의 대박을 이끈 또 다른 요인 중 하나인 ‘민족 영산’ 마케팅도 백두산 물의 출시로 그 희소성이 반감됐다. 백보 양보해도 민족 영산으로서 우리 국민의 가슴속에 새겨진 백두산의 이미지는 한라산보다 더 강렬한 게 사실이다. 백두산은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자 등줄기인 백두대간의 첫 산으로, 영산 중의 영산으로 각인돼 있으며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천연 원시림이란 이미지까지 덧칠돼 있다. 화산 호수인 백두산 천지와 한라산의 백록담은 그 규모와 물이 담긴 양을 비교해도 큰 차이가 난다. ‘백두에서 한라까지’라는 캐치프레이즈와 노래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백두산의 영산 이미지는 한라산보다 비교 우위에 있다. 실제 백산수와 백두산 하늘샘의 취수원은 백두산 천지에서 각각 40km, 35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삼다수의 취수원과 한라산 백록담과의 거리도 이와 엇비슷하다.
제주도개발공사 김하진 과장은 “삼다수는 지금껏 취수량이 조례로 묶여 있던 바람에 없어서 못 판 때도 많다. 연초에 증산 조례가 통과돼 취수량이 늘면 매출액이 훨씬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졸지에 2000억 원의 매출을 날려버린 농심의 각오는 대단하다. 농심의 한 관계자는 “삼다수 대박 신화를 이룬 경험과 노하우를 살려 단기간 내에 잃어버린 매출 2000억 원을 되찾겠다. 백산수는 삼다수보다 훨씬 좋은 물, 깨끗한 물”이라고 의지를 불태웠다. 롯데칠성음료 관계자도 “늦어도 5년 안에 백두산 하늘샘 단일 상품만으로 1000억 원대의 매출을 올리겠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3가지 물 모두 국제기준 능가
식품과 음료수 제품 마케팅이 다른 제품 마케팅과 다른 점 중 하나는 아무리 광고를 융단폭격 수준으로 퍼부어도 맛이 없고 안전하지 않으면 그걸로 ‘끝’이라는 점이다. 맛에다 건강에 좋은 요소가 제품에 많이 포함될수록 금상첨화다. 생수도 마찬가지다. 결국 생수 제품의 대박과 롱런 여부도 물맛과 안전성, 건강에 끼치는 영향, 이 세 가지에 의해 결정된다.
삼다수 측은 14년간 소비자에 의해 검증된 물맛과 안전성, 학계에서 공인한 건강 기여도를 앞세우며 “시장에 새로 뛰어든 백두산물은 이 세 가지 부분에서 삼다수를 절대 못 따라올 것”이라고 장담하지만, 농심의 백산수는 2010년 8월부터 같은 이름으로 중국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팔리고 있다. 롯데칠성음료도 DMZ 2km 등 프리미엄 생수를 생산, 판매하고 있어 상당한 기술력을 축적했다. 특히 백산수는 2011년 9월 중국 지린성 창춘에서 열린 ‘동북아박람회’ 식품부문에서 “차가 잘 우러나고 차 맛을 좋게 하는 물”이라는 평가와 함께 “중국 최고의 명차인 보이차와 가장 잘 어울리는 물”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과연 시장의 신참인 백산수와 백두산 하늘샘 등 백두산 물의 맛과 안전성, 건강 기여도는 고참 한라산 물을 앞설 수 있을까. 물맛은 소비자의 주관적 감각에 의해 결정된다고 볼 수 있고, 나머지는 전문가의 판단영역이라 칼로 무 자르듯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실제로 ‘신동아’가 각 회사로부터 제품 관련 자료를 받아 확인한 결과, 데이터상으로는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 물맛을 결정하는 증발잔류물, 경도, 유리탄산, 과망간산칼슘 소비량, 잔류염소, 황화합물, 용존산소, 경도 등의 측정치를 보면 세 회사 제품 모두 ‘맛있는 물’의 국제기준을 충족했으며 오히려 훨씬 앞서 있었다. 각 제품의 차이는 의미 없는 수준이었다.
안전성 면에서도 세 회사의 물은 큰 차이가 없었다. 물맛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일반 샘물 공장에서 거치는 모래 침전조나 활성탄, 다단계 마이크로필터에 의한 정수처리 과정을 과감히 생략했다. 다만 미세먼지 입자나 미생물 등을 제거하기 위해 간단한 여과 과정을 거치거나 UV 살균을 할 따름이었다. 세 제품 모두 국제적으로 공인된 기관들로부터 품질과 안전성을 검증받았다.
백두산 규소, 한라산 바나듐
삼다수 측은 “백두산 물도 삼다수처럼 화산암층을 통과해 오랜 기간 자연 정화된 약알칼리성 천연 광천수인 것은 같지만, 삼다수는 지하 420m에서 뽑아낸 지하암반수라 더 안전하고 깨끗하다. 백두산 물은 해발 600m의 지표수이기 때문에 한라산 물을 따라올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백두산 물 측은 “삼다수도 취수 공장이 해발 400m 이상에 위치해 있어 정확한 취수지점은 해발로 따지면 지하 10m 정도에 불과하다. 백두산 물은 비록 취수공장이 해발 600m에 있지만 지하에서 뽑기는 마찬가지이고, 취수지점 위로 1500m의 화산암층이 있어 필터링 효과는 한라산 물보다 더 좋다”고 반박했다.
다음은 건강 기여도 부분. 즉 얼마나 미네랄이 풍부하게 녹아든, 살아 있는 물이냐는 점이다. 이 부분은 위에서 언급한 취수정의 높이 문제와 관련이 깊다. 취수 지점 위로 화산암층이 두꺼울수록 물을 걸러내는 효과도 좋아지고, 미네랄이 물로 녹아드는 양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3개 회사가 제출한 자료를 검토한 결과 칼슘, 마그네슘, 칼륨, 나트륨 등 무기질은 백두산 물에 조금 더 많이 든 것으로 나타났지만 크게 의미 있는 차이는 아니었다. 다만 백두산 물에는 항동맥경화와 치매예방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규소(SI)가, 한라산 물에는 당뇨병 등에 효과가 좋은 바나듐(V)이 많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소비자가 큰 관심을 보일 만한 것은 백두산 물의 가격 경쟁력이다. 농심과 롯데칠성음료는 백산수와 백두산 하늘샘이 비록 물류비용이 많이 드는 최고급 프리미엄 생수지만 삼다수와 비슷한 가격 선을 유지키로 했다. 편의점이나 각 소매점에서 작은 병의 가격이 삼다수보다 50원에서 150원 정도 비싸게 팔리는 것은 용량 차이 때문이다. 삼다수 작은 병에는 500㎖가 들었지만 백두산 하늘샘은 550㎖, 백산수는 600㎖로 양이 각각 50㎖와 100㎖씩 더 많다. 2L들이 큰 병의 가격대는 서로 비슷한데, 백두산 하늘샘은 3월쯤이나 출시될 예정이다.
국내 굴지의 식품음료 기업 대 전통의 제약회사, 백두산 대 한라산이 벌이는 ‘생수 전쟁’의 결과는 올해 말이 지나봐야 누가 승기를 잡았는지 윤곽이 드러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