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감한 사냥꾼 오리온자리 옆에 애꾸눈이 된 황소가 씩씩거리고 있다. 오리온과 투우라도 한 걸까.
- 2월의 별자리인 황소자리에는 바람둥이 제우스와 얽혀 비운의 삶을 살다 간 아름다운 여인들의 얘기가 전해진다.
겨울의 마지막 달에 만날 별자리는 황소자리다. 이 별자리는 승리를 뜻하는 V자 모양이어서 입시나 취업 준비생들에겐 무척 친근한 별자리다. 내겐 황소자리에 얽힌 두 가지 사연이 있다. 하나는 나 자신의 일이고, 다른 하나는 좋은 벗을 얻게 된 사연이다.
합격 기원하는 별자리
30여 년 전 내가 대입을 준비하던 무렵엔 학생들 대부분이 독서실을 다녔다. ‘4당(當) 5락(落).’ 즉 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이상 자면 떨어진다는 선생님 말씀에 매일 자정이 넘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추운 겨울밤, 주위가 모두 잠든 고요한 골목길 머리 위로 유난히 반짝이는 별무리가 눈에 들어오곤 했다. ‘좀생이별’로 알려진 별무리, 그리고 그 옆으로 보이는 V자 모양의 별들을 보면서 그 별들이 행운을 가져다줄 것이라 믿곤 했다. 그것이 황소자리라는 걸 안 것은 대학에 들어온 뒤다.
20여 년 전, 일요일 새벽마다 손석희 씨가 진행하는 아침 방송에 게스트로 출연해 별과 별자리 이야기를 하던 때다. 그 프로그램에서 황소자리 이야기를 들려주고 입시생들의 합격을 기원한 적이 있다. 당시 이 방송을 들었다는 고3 학생이 10여 년이 지나 내 앞에 나타났다. 우주인 후보로 잘 알려진 고산 씨다. 고 씨는 이소연 씨와 함께 우주인 후보로 선정돼 대전시민천문대에서 내게 이틀간 별자리 교육을 받았다. 그 인연으로 나는 그와 좋은 벗이 됐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이 별자리를 황소로 보든, 합격이나 승리의 상징으로 보든 그건 별 보는 사람의 마음이다. 별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황소자리를 찾아주는 길잡이는 지난 호에서 얘기한 사냥꾼, 오리온자리다. 그런데 오리온이 정말 하늘에서 사냥을 하고 있을까. 무엇이든 너무 잘하면 재미가 없는 법. 오리온은 거의 모든 동물을 다 잡아봤기에 사냥에 특별히 재미를 느끼지 못했을 수 있다. 그럼 뭘 하고 있을까. 그도 나름의 취미가 있지 않을까. 당대 최고의 사냥꾼이자 용맹한 사나이 오리온의 취미로 어울리는 것은? 투우 정도라면 오리온에게 제격인 취미 아닐까. 물론 고대 그리스인들이 투우를 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오리온이 하늘에서 투우를 한다고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황소자리를 찾을 수 있다.
오리온의 오른쪽에 투우의 상대가 될 만한 황소자리가 자리한다. 이 황소는 이미 오리온의 칼에 여러 곳을 찔려 상처투성이가 됐다. 황소는 한쪽 눈을 잃고 애꾸가 됐고 등에도 큰 상처가 나서 파리들이 달라붙어 있다. 한쪽 눈이 빨갛게 충혈된 황소가 화를 못 이기고 오리온을 향해 긴 뿔을 들이밀며 돌진하지만, 오리온은 여유롭기만 하다.
밤하늘의 투우 경기
황소자리의 V자 모양이 바로 황소의 얼굴인데, 그중 별 하나가 유난히 붉고 밝게 보인다. 이 별은 ‘알데바란’이라는 이름의 1등성으로 충혈된 황소 눈으로 볼 만하다. 황소의 등에 위치한 좀생이별은 칼에 찔린 상처로 생각할 수 있다. 아름다운 별들을 상처에 달라붙은 파리떼로 간주하는 것에 불만을 갖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늘에는 ‘파리 별자리’도 있다는 걸 알면 그리 거북하진 않으리라.
자, 이제 오리온과 황소 주변에 있는 다른 별자리도 찾아보자. 무슨 경기든 둘만 하면 재미가 없다. 관중이 있어야 투우사도 흥이 난다. 밤하늘에서 관중은 바로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쌍둥이자리다. 쌍둥이는 겁이 나는지 서로의 어깨를 꼭 잡고 오리온과 황소에서 눈을 못 떼고 있다.
투우사와 황소, 그리고 관중 말고 또 있어야 할 것은? 이 위험한 경기에서 꼭 필요한 건 구급차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에 구급차가 있을 리 만무하다. 구급차를 대신할 것은? 마차다. 오리온과 황소의 다른 쪽 옆에는 만일의 사태를 위해 마차부가 대기 중이다. 하지만 성이 난 황소는 벌써 마차부에게 한쪽 뿔을 들이밀고 있다. 치료를 해달라는 걸까, 아니면 화풀이를 하는 걸까. 그건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사냥꾼 오리온이 투우에 열중하는 동안 그의 사냥개는 뭘 하고 있을까. 주인이 논다고 사냥개도 놀 순 없는 일. 최소한의 밥벌이는 해야 할 터다. 사냥꾼 없이 사냥개 혼자 겨울 숲에서 가장 쉽게 잡을 수 있는 동물은 토끼다. 큰개자리 바로 앞에 사냥감 토끼자리가 있는 것은 참 재미있는 우연이다. 큰 개가 사냥하는 동안 작은 개도 허공을 향해 짖어보지만, 아직 훈련이 덜 된 작은 개에게 잡힐 동물은 없다. 작은 개가 짖고 있는 쪽엔 전설 속에 등장하는 유니콘을 닮은 외뿔소자리가 있다. 하지만 전설 속 동물이라 그런지 워낙 희미해서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다. 작은 개가 헛것을 본 건 아닐까.
상상은 각자의 자유고, 이야기는 만들기 나름이다. 조용히 눈을 감고 고대 그리스로 시간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긴 겨울밤의 멋진 낭만일 것이다.
황소자리 신화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신들의 왕 제우스가 페니키아의 공주 에우로파(Europa)를 유혹하기 위해 황소로 변신했다는 이야기다. 옛날 아게노르 왕이 다스리는 페니키아의 해변에 에우로파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공주가 살고 있었다. 어느 화창한 봄날, 에우로파가 시녀들과 함께 바닷가에서 놀고 있을 때 인간의 모습으로 산책하고 있던 제우스가 우연히 이들을 보게 됐다. 바람둥이 제우스는 아름답고 우아한 에우로파에게 반해 사랑에 빠졌고, 눈처럼 하얀 커다란 황소로 변해서는 왕의 소떼에 섞여 그녀에게 접근했다.
이 멋진 황소를 발견한 에우로파는 황소의 유혹하는 눈빛에 사로잡혀 그 곁으로 다가간다. 에우로파가 부드러운 손길로 등을 어루만지자 황소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에우로파와 시녀들은 황소의 재롱과 아름다움에 매료돼 황소에게 화환을 걸어주고 소의 몸을 만지며 장난을 쳤다.
에우로파와 이오
그런데 에우로파가 황소의 등에 올라타는 순간, 소는 기다렸다는 듯이 재빨리 바다로 내달려 크레테 섬까지 헤엄쳐 갔다. 크레테 섬에서 제우스는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고 에우로파를 설득해 아내로 맞았다. 에우로파는 그곳에서 미노스(Minos) 등 아들 셋을 낳았지만 결국 제우스에게 버림받고 훗날 크레테 섬의 왕과 결혼한다.
또 다른 그리스 신화에선 강의 신 이나쿠스의 딸 이오(Io)가 암소로 변해 이 별자리의 주인공이 됐다고 말한다. 이 역시 제우스의 바람기에서 비롯됐다. 제우스는 이오의 아름다움에 반해 그녀를 유혹하기로 마음먹었다. 검은 구름 속에서 이오와 사랑을 나눈 제우스는 바람 피운 것을 의심하는 헤라 여신의 눈을 피하기 위해 이오를 암소로 변신시켰다. 그러나 이를 눈치 챈 헤라가 암소를 데려가 여러 개의 눈을 가진 괴물 아르고스에게 밤낮으로 감시하게 했다.
홀로 남은 이오는 슬피 울었지만, 울부짖음은 소의 목소리로 메아리칠 뿐, 누구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딸을 찾아 헤매던 이나쿠스는 어느 날 모래 위에 뿔로 ‘이오’라고 쓰고 있는 암소를 보고 비로소 자식이 변한 모습임을 알게 됐다. 이나쿠스는 암소의 머리를 안고 울며 슬퍼했지만 헤라에게서 딸을 구할 수는 없었다.
결국 제우스가 이오를 구해내기 위해 전령의 신 헤르메스를 보냈고, 헤르메스는 피리 소리로 아르고스를 잠들게 한 뒤 그의 목을 베어버렸다. 하지만 아르고스가 죽은 후에도 헤라는 이오를 놓아주지 않았고, 이오는 소의 몸으로 헤라를 피해 도망친다. 이집트까지 도망친 이오는 제우스를 만나 인간의 모습을 되찾고 아들까지 낳게 되지만, 결국 제우스와 헤어진 뒤 이집트 왕의 비(妃)가 된다.
일곱 자매의 별
플레이아데스 성단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 별들을 ‘선원들의 별(Sailor′s Stars)’이라고 불렀다. 이 별들이 여명 속에 떠오를 때 지중해의 날씨가 온화해져 항해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에 이 별들은 가을철 별자리에 속해 있었고, 가을철 별자리가 새벽에 떠오를 때가 봄이다.
플레이아데스는 밤하늘에서 가장 유명한 별무리 중 하나였기에 나라마다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영국과 독일에서는 ‘일곱 형제별(Seven Stars)’, 러시아에서는 ‘알을 품은 암탉(Sitting Hen)’, 덴마크에서는 ‘저녁 암탉(Evening Hen)’, 그린란드 에스키모들은 ‘개의 무리(Pack of Dogs)’,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별들이 좀스럽게 모여 있다고 해서 좀생이별이라고 불렀다. 한자로는 ‘묘성(昴星)’이라 쓴다.
플레이아데스 성단은 ‘일곱 자매 별(Seven Sisters)’이라고도 하는데, 플레이아데스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틀라스(Atlas) 신의 딸들인 일곱 자매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일곱 자매는 마이아(Maia), 타이게타(Taygeta), 케라에노(Celaeno), 아스테로페(Asterope), 알키오네(Alcyone), 엘렉트라(Electra), 메로페(Merope)로, 성단 속에 각각의 이름이 붙어 있다. 성단의 가장 동쪽(왼쪽) 두 별에는 일곱 자매의 아버지 아틀라스와 어머니 플레이오네(Pleione)의 이름도 붙었는데, 17세기 이탈리아 천문학자 리치올리가 추가한 것이다. 이때부터 플레이아데스 성단은 일곱 자매뿐만 아니라 이들의 부모까지 모여 있는 완전한 가족의 별무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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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시력을 가진 사람은 6개의 별만 볼 수 있다. 시력이 아주 좋은 사람은 9개 이상도 본다고 한다. 고비사막에서 만난 유목민들은 시력이 4.0 정도라고 했으니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다. 망원경으로는 이 성단에서 100개 이상의 별을 볼 수 있다. 여러분은 몇 개나 볼 수 있는지 확인해 보기 바란다. 7개 이상 보인다면 눈이 아주 좋다는 얘기다.
플레이아데스는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거인 아틀라스와 플레이오네 사이에서 태어난 일곱 딸이다. 아버지가 제우스를 배신해 하늘의 무게를 짊어지는 벌을 받게 되자 너무 슬퍼한 나머지 하늘의 별이 됐다고 한다. 지금은 7개의 별 중 한 개가 잘 보이지 않는데, 일곱 자매 중 유일하게 결혼하지 못한 메로페가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해 사라졌다고 하고, 케라에노가 번개에 맞아 죽었다는 얘기도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엘렉트라에 관한 것이다. 엘렉트라는 아들 다르다누스가 세운 트로이가 아가멤논(Agamemnon)이 이끄는 그리스군에 함락되자 이를 보지 않으려고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황소자리를 떠난 엘렉트라는 그 후 북쪽 하늘을 방황하다가 큰곰자리의 한 모퉁이에 안착했다고도 전해진다. 북두칠성의 손잡이 두 번째 별인 미자르(Mizar) 옆에 위치한 작은 별 알코르(Alcor)가 바로 그것이다.
황소의 얼굴에 해당하는 부분에는 알데바란(Aldebaran)을 포함해 7개 정도의 별이 V자 모양으로 펼쳐져 있다. 이 별들은 플레이아데스 성단과 같은 산개성단으로 히아데스 성단(the Hyades)이라고 불린다. 히아데스는 그리스 신화의 아틀라스(Atlas)와 아에트라(Aethra) 사이에서 태어난 딸들로 플레이아데스와는 배다른 자매다. 알데바란은 겉보기에 이들 성단에 속해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들과 수십 광년 떨어져 있는 다른 세계의 별이다. 히아데스 성단은 지구로부터 약 130광년 떨어져 있다.
히아데스는 ‘비가 내리다’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3000년 전쯤인 고대 그리스엔 히아데스가 새벽의 동쪽 하늘에 떠오를 때부터 우기(雨期)가 시작됐는데 이때가 5월 말경이다. 우기는 히아데스가 저녁 동쪽 하늘에 떠오르는 11월 하순 이후에 끝났다. 그래서 히아데스 성단을 ‘비의 히아데스’ 또는 ‘눈물의 히아데스’라고 부르기도 했다. 아라비아에서는 V자 모양을 ‘삼각의 숟가락(Triangular Spoon)’으로 일컫기도 했고, 알데바란을 큰 낙타로 보고 V자 모양의 작은 별들에 ‘작은 암낙타(the Little She Camel)’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눈물의 히아데스
‘눈물의 히아데스’와 관련한 신화는 이렇다. 히아데스는 산의 요정들로 형제 간의 우애가 매우 두터웠다. 어느 날 그들의 형제인 히아스(Hyas)가 리비아에서 사냥을 하다 사나운 멧돼지에게 물려 죽자 히아데스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먹지도 않고 비통하게 울기만 했다. 감동한 제우스가 이들을 하늘에 올려 별로 만들었다. 그러나 별이 되고서도 히아데스의 눈물은 그치지 않았고, 그 눈물은 비가 되어 지상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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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아데스에 얽힌 또 하나의 신화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와 관련한 것이다. 디오니소스가 어릴 때 그의 어머니가 제우스의 광채를 못 이겨 재로 소멸되어 죽었다. 제우스는 홀로 된 디오니소스를 히아데스에게 맡겨 소년이 될 때까지 키워달라고 부탁했다. 디오니소스가 소년이 되자 제우스는 이들을 하늘의 별로 만들어 은혜에 보답했다고 한다.
신화 속 이야기는 밤하늘 별만큼이나 많다. 하지만 신화는 신화일 뿐, 어느 이야기를 믿을지는 우리 각자의 마음에 달린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