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2월 부푼 기대를 안고 출범한 이명박 정권이 곧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지난 5년 동안 국민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 정권의 여러 정책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킨 것을 실감했다.
- 예리한 통찰로 개성 있는 평론을 내놓는 황장수 미래경영연구소 소장이 이명박 정권의 공과(功過)와 퇴임 후 문제를 짚어봤다.
노 정권은 재벌과 기득권 세력의 특권·반칙 청산을 내걸고 집권했다. 그러나 청산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정권의 핵심 세력은 오히려 기업과 결탁해 각종 부패를 저질렀다. ‘박연차 게이트’가 대표적 사례다. 또한 중산층, 서민, 노동자에게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를 강요했으며 이에 따라 빈곤의 보편화와 빈부격차 확대를 가져왔다.
국민은 부동산 가격 폭등에 불안을 느꼈고 정권의 언어유희와 이념대립 조장에 실망했다. 국민에게 ‘샐러리맨 신화’ ‘청계천 복원’으로 상징되는 이명박은 그 대안으로 보였다. BBK, 도곡동 땅 등 도덕성 문제는 부차적인 것이었다. 이명박 후보는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선진국 삶 실현이라는 유권자의 욕망에 불을 지피며 500만 표 차이로 승리했다.
이명박 정권의 功過
최근 이명박 정권은 대통령 퇴임을 앞두고 임기 5년간의 백서를 발간했다. 백서는 대표적 치적으로 두 차례의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 세계 7번째 20-50클럽(국민소득 2만 달러, 인구 5000만 이상) 가입, 세계 9번째 무역 1조 달러 달성을 꼽았다.
그러나 일본보다 높은 국가 신용도, 양호한 재정건전성, 기업 환경 개선에 의한 역대 최고 수준의 창업은 현실과 동떨어진 자화자찬으로 비친다. 핵심 대선 공약인 ‘747(7% 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위 경제대국 달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명박 정권은 국격 제고와 관련해서는 G20 개최, 핵안보정상회의 개최, 녹색기후기금 사무국 송도 유치, FTA를 통한 세계 3위의 경제영토 확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세계 6번째 원전 수출을 업적으로 들고 있다. 이 중 세계 6번째 원전 수출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있다. 향후 UAE 원전 수출이 실질적인 외화벌이가 되는지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명박 정권은 친서민 복지와 관련해 역대 최다 복지예산 지출, 국가가 책임지는 보육, 전통시장 및 소상공인 지원 확대를 치적으로 꼽는다. 그러나 지난 5년간 사회 양극화가 심화된 것을 볼 때 이 정권이 복지 분야 치적을 내세우는 것은 민망한 일이다.
그 외엔 치적이라고 할 만한 것이 눈에 띄지 않는다. 이 정권은 외교안보 분야에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치적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너무 마이너한 이야기’로 비친다.
원칙에 입각한 대북 정책도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은 치욕에 가까운 저자세 퍼주기 정책으로 일관했다. 대북 외교를 비정상적으로 왜곡시켰다. 특히 이들 정권의 탈북자 외면은 역사적으로 두고두고 비판받을 것이다.
이에 비해 이명박 정권에선 탈북자 지원과 북송 반대 운동이 국내외에서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그 영향으로 중국 정부가 탈북자 북송을 중단하는 일도 생겼다. 이명박 정부의 원칙적 대북 정책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에서 금이 간 한미관계를 상당부분 복원시켰다. 전시작전권 전환을 2015년까지 연기한 것은 그 결실의 하나다. 이는 안보나 국가 재정 측면에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 집권 기간 중 남북 간에 최악의 긴장상황이 조성됐고 그 과정에서 천안함·연평도 사건이 발생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대북 정책은 치적 분야라기보다는 공과가 교차하는 분야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이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해외순방을 자주 했지만 외화내빈으로 그쳤다. 주요 외교 정책인 자원외교는 사실상 수익성 확보에 실패하고 있다. 자원외교의 홍보는 화려했으나 실적은 초라하다.
금융위기는 겨우 버텨냈지만…
결론적으로 이명박 정권의 거의 유일한 공적은 세계 금융위기를 비교적 잘 버텨낸 점 정도다. 1997년 외환위기 사태는 사실 외환관리 부실에 의한 것이다. 사소하다고 볼 수도 있는 경제 실책이 국가적 위기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이에 비해 청와대의 워룸(전쟁상황실, 비상경제대책회의실)으로 대변되는 이 대통령 특유의 부지런하고 신속한 위기 대응력은 세계적 금융위기에서 상당한 효력을 발휘했다.
소니, 파나소닉, 샤프 등의 몰락에서 보듯 당시 금융위기가 세계로 번져가면서 전 세계 대기업이 고전했다. 그러나 한국의 대기업은 정부의 고환율-감세 정책에 힘입어 글로벌 초일류기업으로 발돋움했다. 물론 이면에서는 경제양극화가 심화한 것도 사실이다.
이명박 정권은 ‘MB노믹스’라는 경제정책을 내세워 집권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 MB노믹스라는 말은 거명조차 되지 않는다. 747은 공약(空約)이 된 지 오래다. 임기 5년간 평균 경제성장률은 3% 수준에 불과했다. 지난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년 연속 세계 평균 경제성장률에 못 미쳤으며 그 차이가 14년 만에 최대가 됐다. 저성장이 굳어져가는 조짐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임기 출발 시점에서 조금 늘어난 2만3000달러에 그쳤다.
이명박 정권은 신자유주의가 극대화한 비즈니스 프렌들리의 기치 아래 규제 완화, 고환율, 감세 정책을 펴왔다. 신자유주의의 끝물에 오히려 신자유주의적 가치를 지향하며 세계경제 흐름에 역행하다 위기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
중산층의 비명
이상득 전 의원
이명박 정권은 출범 이후 무려 21차례의 부동산 활성화 대책을 내놨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주택거래 감소, 매매가격 하락, 전월세 가격 폭등을 초래했다. 이 대통령 임기 중에 전세가는 전국에서 40%나 폭등했고 수도권의 집값은 20% 가까이 하락했다.
서민을 위해 그린벨트를 풀어 시세보다 30% 이상 저렴한 가격으로 2018년까지 총 150만 가구(수도권 100만, 지방 50만)를 공급하겠다는 보금자리주택 사업은 집값 하락으로 실효성이 반감됐다. 오히려 부동산 경기침체와 전월세 파동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건설업체 관계자들은 “보금자리주택은 실패한 정책이다. 일반 주택거래를 위축시켰다. 엄청난 국고만 낭비한 채 주택 소유주와 세입자에게 고통을 안겼다”고 말했다. 이 사업은 향후 공공임대 사업으로 방향 전환이 확실시된다.
부동산정책 실패는 중산층에 직격탄이 됐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을 소유한 중산층은 거래 마비, 집값 하락, 대출이자 부담 증가로 큰 고통을 겪었다. 전·월세를 사는 중산층도 전·월세가 급등으로 비명을 질렀다. 이들의 삶은 실로 피폐해졌다. 가계부채는 1000조 원, 하우스푸어는 200만 가구에 달한다. 중산층의 상당수는 ‘국민성공시대’를 약속한 이 정권에 배신감과 분노를 느끼고 있다.
정부 개입에 의한 고환율 정책은 수출 대기업에 매년 수십조 원의 이익을 가져다줬으나 그 대가로 서민과 중산층에겐 물가 상승에 의한 ‘대기업으로의 소득 이전’이라는 고통을 안겼다. 또한 키코(외환파생상품) 사태를 초래해 중소기업에 치명적 상처를 줬다. 저금리 정책 역시 가계부채 문제를 심화시켰고 대신 투기 세력과 대기업엔 막대한 이익을 줬다. 재벌과 대기업의 경제력 비중은 더 높아져 10대 그룹 순이익이 전체 상장사의 60%에 육박한다.
22조 원이 들어가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이 정권의 최대 토목공사다. 그러나 최근 감사원이 수질 악화, 보 균열, 세굴 현상 등의 문제가 있다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4대강이 홍수를 방지한 성과가 있었다는 평가는 몇 년이 지나야 확인될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선진화’라는 이름 아래 공기업 민영화를 적극 추진했다. 이는 인천공항, 코레일, KAI 등 곳곳에서 의혹과 논란을 불러왔다. 이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규제완화는 ‘자본주의의 꽃’인 금융시장에도 암운을 드리웠다. 금산분리 법안을 무력화했고 재벌이 금융까지 지배하는 시스템을 강화시켰다.
해외 단기 투자자본에 대한 규제 완화는 악덕 투기자본에 의한 국내 금융상품 시장 교란과 투기를 불러왔고, 파생상품시장 세계 1위라는 쓴웃음 나오는 기록을 갖게 됐다. 국내외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사회간접자본사업이 늘어나면서 특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나아가 고액 배당, 주주이익 극대화, 금융사 임원의 고액연봉 등 미국 금융위기 당시 월가의 행태와 비슷한 금융업계 모럴해저드를 가져왔다. 반면 15조 원 이상의 구제자금이 들어간 저축은행 사태는 본질적 원인 규명과 처벌이 다음 정권으로 미뤄지고 있다.
특권과 비리로 박탈감 키워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왼쪽)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오른쪽)
자원외교 사업은 이 대통령 본인과 이상득 전 의원, 박영준 전 차관 등이 나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추진됐으나 숱한 잡음과 의혹을 낳았다. 인수위 때 시작한 쿠르드 유전사업은 2억5000만 달러의 계약금이 들어갔으나 거액을 날린 실패한 사업으로 귀결되는 양상이다. 이 사업의 핵심인물에 대해선 다른 의혹으로 조사가 진행 중이다. 카메룬 다이아몬드 사업, 버마 가스전 사업 등은 구체적 성과는 없이 주가조작 등 숱한 의혹을 일으킨 채 사실상 중단됐다. 각종 국책 금융기관의 투자와 보증이 들어간 국내외 사업들도 성과가 알려지지 않은 채 잊히고 있다.
이명박 정권 5년은 상당수 20대 젊은이에게도 고통의 세월이었을 것이다. 청년 일자리는 36만 개 감소했고 고용률은 2.2% 하락했다. 더욱이 이 정권은 ‘고소영’ ‘강부자’로 대변되는 특권의식을 보여줬고 권력형 비리를 끊임없이 저질러 젊은 층의 상대적 박탈감에 불을 질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밖에도 진보정권에서 시작된 대학입시 자율화는 이 정권 들어 특례입학, 입학사정관 제도 등으로 악성 진화했다. 결국 대학별로 3000여 가지가 넘는 복잡하고 난해한 입시 제도를 낳았다. 그럼에도 대입 제도의 공정성 문제가 끊임없이 거론되고 있고 중산층은 여전히 과도한 사교육비로 고통 받고 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퇴임 직전 특별사면 여부를 놓고 대통령직인수위와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이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의원, 측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친구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등이 비리혐의로 수감 중인데 이 대통령이 이들을 사면대상에 포함시킬 것이라는 얘기가 나돈다. 역대 대통령이 퇴임 직전 특별사면을 단행한 예가 적지 않지만 주로 기업인이나 정치인에 대한 사면 복권이었다. 차마 친인척이나 측근을 사면해주지는 못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신의 집사 격이었던 최도술 씨를 퇴임 직전 특사에 포함시킨 것이 거의 유일하다.
재점화할 휘발성 이슈들
이 정권 내내 권력형 비리 의혹으로 시끄러웠으나 드러난 것은 핵심 몇몇의 수억 원대 비리였다. 무리하게 의혹을 제기했을 수도 있지만, 살아 있는 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이 대통령 퇴임 이후 이명박 정권의 권력형 비리 의혹에 대한 재수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수 있다.
우선 2007년 대선 때부터 논란이 돼온 BBK, 도곡동 땅, 다스 등 꺼진 불처럼 보이는 사건들이 재점화할 가능성이 있다. 김경준 씨, 정봉주 전 의원, 안원구 전 국세청 국장 등 불이익을 본 당사자들이 아직 존재한다. 내곡동 사저 사건, 이국철 SLS 회장 로비 사건도 새로운 단서가 나온다면 언제든 뜨거운 이슈로 부상할 수 있다. 4대강 사업, 자원외교 및 국책금융기관 투자, 해외 원전 개발, 보금자리주택사업, 일부 공적 기업 관련 문제 등도 재조명 대상이 될 수 있다. 저축은행 사건도 배후 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박근혜 당선인은 대선이 끝날 때까지 이 대통령과 결별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숱한 파열음을 내고도 여전히 같은 당적을 갖고 있다. 박 당선인은 선뜻 승복하기 어려운 2007년 8월 여론조사에 의한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패배 이후 힘든 시간을 보냈다. 2008년 4월 총선의 친박계 공천 학살, 세종시를 둘러싼 갈등 과정에서 박 당선인과 이 대통령은 긴장관계에 있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대선 과정에서 안철수 변수 등 숱한 위기가 있었지만 박 당선인이 이 대통령에게 어떠한 정치적 채무도 지지 않은 채 당선된 듯하다는 점이다. 이는 퇴임 후의 이명박 대통령 측과 박근혜 정권의 관계를 예측하는 데 중요한 전제가 된다.
이명박 정권은 구설에 자주 올랐고 굵직굵직한 스캔들과 의혹에 시달렸으나 특유의 세심함과 부지런함으로 야권과 언론에 기민하게 대응해왔다. 그러나 퇴임 후에는 이만큼 대응할 수 있는 힘이 없다.
박 당선인은 어려운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환경에서 임기를 시작해야 한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정권은 곧바로 추락할 수도 있다. 야권과 야권을 지지하는 층은 박 정권에 한동안 마음을 열지 않을 것이다. 정권 주도세력이 견고하지 못하며,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박 정권은 몇 가지 실수만 겹치더라도 크게 흔들릴 수 있다.
박근혜 정권의 출범을 마뜩지 않게 여기는 정치세력은 박 정권에 도덕적, 법적 문제가 없는지 눈에 불을 켜고 살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임기 초 대선자금 수사로 시달리다 이듬해 탄핵으로 연결됐고 이명박 대통령도 광우병 촛불시위로 정권 초기부터 홍역을 치렀다. 박 정권에서 특별한 문제점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견제 세력은 이명박 정권 관련 의혹으로 결집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대선 패배를 추슬러야 하는 야권으로선 어떻게 해서든 타개의 실마리를 얻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前 정권 비리 청산=권력 안정
향후 이명박 정권 관련 의혹이 제기될 때 박근혜 정권이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박 정권의 운명이 결정될 수도 있다. 무리하게 방어하거나 은폐하려 할 경우 박 정권은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는 장기불황, 소비 둔화, 저성장, 고실업, 자영업 몰락, 청년실업, 양극화, 가계부채 위기 등 민심 이반을 부를 만한 휘발성 있는 소재가 널려 있다. 박 정권이 이를 돌파하기 위해 쓸 수 있는 카드는 제한돼 있다. 조기 재정 투입에 의한 경기 진작은 가용 재원이나 효과를 고려할 때 ‘언 발에 오줌 누기’가 될 수 있다. 수출 독려, 경기 부양에 적극 나서려면 정권은 높은 도덕성을 지녀야 하고 국민적 지지를 얻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박 정권이 부패·특권 청산에 주저하는 태도를 취한다면 스스로 실패의 길로 접어드는 것이다.
|
역대 정권이 임기 초반 전(前) 정권의 비리 청산에 나섰던 것은 민심을 얻어 권력을 안정화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물론 신뢰와 원칙을 중요시한다는 박 당선인이 권력 장악을 위해 전 정권을 일부러 괴롭히지는 않을 것이다. 박 당선인은 이 대통령과 수많은 갈등을 겪어오면서도 결정적 파탄 없이 봉합해왔다.
문제는 전 정권 관련 의혹이 야당이든 언론이든 수사기관이든 어디에선가 불거져 나올 때다. 원칙과 법대로 처리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닥칠 수 있다. 박근혜 정치력의 첫 시험대는 이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다. 다시 말해 이명박 정권의 허물이 드러날 때, 박근혜 정권은 이를 덮어주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