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척추질환’ 하면 젊은 층의 ‘허리 디스크’를 맨 먼저 떠올릴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노령인구 증가와 함께 퇴행성 척추질환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척추관이 닳고 좁아져 생기는 척추관협착증 환자가 크게 증가했다. 2007년 이후 4년간 환자가 2배나 늘어 매년 100만 명 이상이 치료를 받고 있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30대 환자도 매년 5%씩 증가해 이제는 나이를 초월한 질환이 되는 추세다.
이처럼 전 세대에 걸쳐 환자가 증가한 이유는 인구의 노령화로 퇴행성 질환자가 늘어나는 동시에 각종 IT 장비의 일상화로 잘못된 자세를 가진 젊은 층이 많아진 데 있다. 척추관협착증은 증상이 심해질수록 허리나 엉덩이보다 허벅지, 발바닥, 발목, 종아리, 발바닥 등 다리 쪽으로 통증이 오기도 해 다릿병으로 오인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로 인해 치료 시기가 늦어지기도 한다.
척추가 고장 났는데 다리가 아픈 이유는 척추관협착증의 발생 과정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척추에는 척추뼈와 그 사이에서 쿠션 구실을 하는 디스크(추간판), 그 단면으로 뻥 뚫린 척추관이 있는데, 척추관 안으로는 뇌로부터 팔다리를 비롯한 인체 각 기관으로 뻗어가는 신경이 지나간다. 척추관이 어떤 이유로든 좁아지거나 막혀 신경을 압박하면 통증이 찾아온다.
척추관협착증 환자의 미세 현미경 감압술 전후 MRI. 수술 전(왼쪽)에는 거의 막혀 있던 척추관이 수술 후 뻥 뚫렸다.
미세 현미경 감압술을 하는 의료진.
이렇게 척추 관절이 커지면 상대적으로 그 안에 든 척추관은 좁아지거나 막혀 신경을 누르게 된다. 퇴행성 척추질환은 대부분 단순히 요통이나 양쪽 엉덩이 부위로 통증이 나타나지만, 척추관협착증처럼 신경을 직접적으로 누르는 경우에는 허벅지나 종아리, 발목, 발바닥까지 저리거나 쑤시고 아프다.
단순히 신경이 눌려서 일어나는 통증보다 더 심각한 것은 신경으로 가는 혈관이 좁아져 신경이 막혀버리는 경우다. 혈관이 좁아지면 신경이 붓게 되고, 신경이 부으면 신경혈관의 순환장애가 더 심해져 마침내 신경이 막혀버리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신경이 막히면 엄지발가락을 위로 움직이지 못하거나 발을 위아래로 못 움직여 신발이 자꾸 벗겨질 수도 있으며 심하면 배변장애 등 신경마비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신경마비 증상이 노인 환자에게 일어나면 뇌졸중(중풍)이나 파킨슨병으로 오인해 척추질환과 관련 없는 치료를 받다 증세가 더 악화될 수 있으므로 증상만을 보고 섣부르게 자의적 판단을 하지 말고 내과, 정형외과 등 증세와 관련 있는 분야의 종합적인 검진을 받아야 한다.
만약 다리 쪽에 심각한 증상이 나타난다면 수술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체력적으로 약하고 동반 질환을 갖기 쉬운 고령 환자에 대해서는 수술 부담을 줄인 미세 현미경 감압술을 일반적으로 시행한다. 이 수술은 과거에 전신마취를 해서 크게 절개하고 피를 많이 흘리며 오래 입원해야 하는 척추고정술의 단점을 대폭 보완해 고령 환자에 대해서도 거부감 없이 할 수 있다.
환자와 대화하는 시술
수술용 미세 현미경 장비를 사용해 3~5배의 시야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1.5~2cm 정도로 조금만 절개해도 정밀하고 안전한 수술이 가능하다. 회복이 빠르고 수혈의 필요성이 없으며 부위마취로 진행해 전신마취에 대한 부담감도 없으므로 동반 질환이 있는 고령 환자도 좀 더 편안하게 병증에 맞는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최근에는 일측접근 감압술(UBF)이라는 더욱 간소해진 수술법이 개발돼 동반 질환을 가진 초고령 환자들에 대해서도 부담 없이 수술을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모든 척추관협착증에 수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보통 증상은 있지만 신경을 누르는 정도가 심하지 않고, 통증이 심하지 않다면 안정과 운동제한 조치를 한 후 약물치료를 병행한다. 이런 보존적 치료에도 효과가 없으면서 수술할 정도로 심하지 않을 때는 척추신경성형술을 시행한다.
신경성형술은 엑스레이가 장착된 1mm 지름의 특수 카테터(관)를 척추의 디스크(추간판)와 신경 압박 부위까지 정확하게 집어넣어 눌린 신경을 풀어주거나 약물을 주입해 치료하는 방법이다. 엑스레이 영상을 직접 보면서 신경이 눌린 위치와 염증 부위를 정확하게 확인하는데다 환자와의 대화를 통해 통증과 자극이 실제 어디에서 발생하는지, 약물이 골고루 퍼지는지 등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정확하고 안전한 시술이 가능하며 전신마취가 필요 없고 흉터도 없다. 또 20~30분의 짧은 시간 안에 시술할 수 있어 체력이 달리는 고령 환자들에게 적합하다. 전신마취를 하지 않아 고혈압, 당뇨, 심장병, 골다공증 환자들에게도 안전하게 시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