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대 대선 계기로 시청률 2배 올라
- 신문사 노하우 십분 살린 ‘해석적 저널리즘’
- 새로운 매체 수요 충족한 ‘중장년층의 SNS’
- 박근혜 당선으로 딜레마 빠질 수도
2012년 12월 19일 채널A의 18대 대통령선거 개표방송.
그런 종편이 ‘대선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객관적 지표상으로도 종편의 약진은 기대를 훨씬 웃돌았다. 2011년 12월 개국 이후 대선이 본격화하기 전인 2012년 9월까지 종편의 평균 시청률은 1%를 밑돌았다. 그러나 10월부터 평균 시청률이 급격하게 상승하기 시작하더니 12월에도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갔다. 종편 채널마다 편차는 있지만 4개사 모두 시청률이 8월 대비 2배 이상 큰 폭으로 뛰었다.
종편의 정치적 영향력이 무시 못할 정도로 높아졌다는 것을 모두가 인정하는 분위기다. 대선 기간 내내 하루 종일 정치뉴스를 틀다보니 국민의 종편 정치뉴스에 대한 노출도가 상당했다. 필자가 대선기간에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20%에 가까운 응답자들이 “종편이 투표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선거 초반 MBN을 제외한 종편 출연 금지령을 내린 민주통합당 관계자들도 10월 이후 종편에 적극적으로 출연해 입장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종편 4사는 대선 기간 내내 온종일 정치뉴스와 토론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아무리 정치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고조된 시기라 해도 오락매체 성격이 강한 TV에서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이 아닌 정치뉴스만으로 시청률을 두어 달 사이 두 배 이상 끌어올린 종편의 저력은 주목할 만하다. 이런 약진이 지상파 방송의 10분의 1에 불과한 제작비를 투입해 거둔 성과라는 점에서 또 한번 놀랄 만하다.
“투표에 종편 영향 받았다”
진보 성향의 일부 학자들은 이를 두고 “종편이 충분한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비판하지만, 아마도 지상파 처지에서는 가장 약 오르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민주당 윤관석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총 제작비는 SBS 3731억 원, KBS 3026억 원, 서울 MBC 1885억 원인데 반해 종편이 개국 이후 2012년 8월까지 프로그램 제작비로 투입한 금액은 jtbc 650억 원, TV조선 340억 원이었다. 이는 지역 MBC(391억 원)나 지역민방(426억 원)의 제작비 수준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종편이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까. 많은 이가 갖는 궁금증이다. 이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답은 엄밀한 사회과학적 분석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며, 필자 또한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학술적 검증 결과가 아직 나와 있지 않은 현 시점에서는 미국 폭스뉴스(Fox News Channel)의 예를 살펴보면서 그 답을 어느 정도 예측해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 경제학자인 비그나와 캐플란 박사 연구팀은 미국의 보수적 뉴스 채널인 폭스뉴스의 보급이 미국 대선과 상원의원 선거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쳤는지 추정했다. 폭스뉴스는 1996년부터 케이블 TV를 통해 보급되기 시작해 2000년 보급률이 35%가 되었다. 연구자들은 9000여 개 지역의 1996년과 2000년 대선 결과를 분석해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통제하고도 폭스뉴스가 보급된 지역에서 공화당 후보의 득표율이 약 0.4%p에서 0.7%p 높다는 것을 밝혀냈다. 마찬가지로 연구자들은 같은 기간 폭스뉴스의 보급이 상원의원 선거에서도 공화당 후보들의 득표율을 약 3%p에서 8%p 상승시켰다는 것을 확인했다.
美 폭스뉴스 파워
한국 대선은 누가 당선되든 득표율이 50%를 크게 넘지 못할 정도로 정치적 대립이 극심하다. 이런 정치 환경에서 미국 연구자들이 추정한 폭스뉴스 정도의 영향이 한국 대선에도 나타난다면 이는 상당한 수준의 정치적 영향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종편 시청자 다수는 이미 새누리당 지지 성향을 가진 유권자였을 개연성이 높다. 그러나 선거 캠페인의 주 효과는 어차피 강화 효과다. 또 한국 유권자가 고령화하고 있고 이번 대선에서 50대 이상의 투표율이 예상외로 높았던 점, 한국의 정치 지형상 어차피 대선에서는 1~3%p 차로 당락이 결정될 공산이 크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종편의 존재가 향후 선거에 미칠 영향이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종편은 미국 폭스뉴스를 롤모델로 벤치마킹해 한국적 환경에 맞도록 진일보한 성과물이라 할 수 있다. 루퍼트 머독이 경영하는 폭스뉴스는 1996년 개국과 동시에 ABC, CBS, NBC 등 지상파 3사는 물론 걸프전 등을 거치며 뉴스 전문채널로 확실히 자리매김한 CNN 등 경쟁사들의 틈새에서 생존을 향한 뉴스전쟁에 돌입했다. 친공화당 성향의 보도와 논평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보수층 시청자를 끌어안으면서 2002년 이후 폭스뉴스는 CNN 시청률을 능가하면서 현재까지 이 부문 선두를 달리고 있다.
퓨(Pew) 리서치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2000~2004년 폭스뉴스의 정규 시청자 층이 50% 가까이 성장하는 동안 경쟁사들의 시청률은 정체를 보였다. 이번 대선에서 종편이 일으킨 돌풍은 폭스뉴스가 막강한 경쟁사 틈바구니에서 생존하기 위해 썼던 전략을 동아 조선 중앙 매경이라는 최고의 신문사를 운영해온 노하우에 접목해 한국 실정에 맞게 풀어낸 성과물이라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세 가지 요인을 꼽을 수 있다. 첫째, 이념적으로 확실한 보수적 논조를 취한 것이다. 필자는 종편 개국 전에 평소 친분이 있던 한 종편채널의 모기업 신문사 소속 기자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그는 종편 뉴스의 논조를 어떻게 잡는 것이 좋겠느냐고 물어왔다. 필자는 당연히 폭스뉴스처럼 보수적 시각을 확실히 드러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런 전략적 선택의 합리성을 보여주는 다양한 학술 연구가 존재한다. 경제학자 뮬라이네이선과 쉬퍼는 2005년 발표한 ‘뉴스시장’이란 제목의 논문에서 경쟁이 치열한 미디어 시장에서는 중립적 입장을 취하는 것보다 확실하게 어느 한쪽의 이념적인 입장을 취함으로써 독자적인 시장을 확보해 경제적 이득을 극대화할 수 있음을 이론적으로 보여줬다. 유사한 맥락에서 필자는 2009년 ‘저널 오브 커뮤니케이션’에 게재한 논문에서 동일한 기사를 보여주고 폭스뉴스, MSNBC, CNN, NPR의 기사로 다르게 내보냈을 경우, 폭스뉴스로 내보냈을 때 시청자의 선택을 받을 확률이 가장 높다는 것을 보여준 바 있다. 보수적 유권자들이 다른 3개 뉴스 채널보다 폭스뉴스의 브랜드를 선택할 확률이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즉, 독자적 시장의 형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많은 학자가 필자와는 상반된 조언을 했던 것으로 안다. TV 개국을 계기로 모기업인 신문사의 보수적 색채를 탈색해 ‘중원’을 잡아야 한다는 시각이었다. 내부적으로도 그런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실제로 초창기 종편들은 ‘지상파 따라 하기’를 필승 전략으로 잡은 듯 보였다. 이걸 본 지상파 방송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으리라.
그러나 시청률이 지지부진하고 대선이 다가오자 종편은 신속히 변화를 시도했다. 채널A와 TV조선이 먼저 보수적 논조를 확실하게 잡아나가기 시작했고 MBN은 “민주당에 붙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로 친(親)야당 성향으로 논조를 잡았다. 그러나 이것도 나쁘게 볼 일이 아니다.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으로 볼 수 있고 규범적으로도 야당 성향의 종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친민주당 성향을 보이는 뉴스 채널로 MSNBC가 있다.
보수 논조는 전략적 선택
아무튼 종편의 이런 전략은 주효했고 대선이 본격화하자 그 효과가 극대화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시청률이 두 배로 오르고 종편의 방송 내용이 인터넷 등을 통해 회자됐다.
jtbc만이 어정쩡한 논조를 선거 후반까지 유지했다. 대기업 색채가 강한 중앙일보의 특성상 jtbc에 이념적 이미지가 투영되는 것을 꺼린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각 종편의 시청률 상승세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jtbc의 8월 이후 시청률 상승세는 타 채널에 비해 완만한 편이다. 9~12월 TV조선은 시청률이 8월 대비 약 160% 상승했으나 jtbc의 상승 효과는 약 85%에 그쳤다. 9월까지 TV조선에 앞서던 평균 시청률이 두 달 사이에 역전된 것이다. 8월에 시청률 선두에 섰던 채널A는 12월까지 계속 선두 자리를 지킨 반면 jtbc는 꼴찌로 추락했다. 채널A나 TV조선 등 이념적으로 좀 더 확실한 논조를 취한 종편의 약진이 모호한 논조를 취한 jtbc보다 상대적으로 두드러졌음을 의미한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도 종편들의 이런 전략과 묘하게 맞아떨어졌다. 대선 초반부터 ‘안철수 신드롬’이 일어 모든 정치적 담론의 초점이 2030세대에 맞춰지고 중장년층을 ‘구태세력’으로 몰아가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저주에 가까운 언사로 중장년 보수층의 공분을 샀다. 또 젊은 층의 전유물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연일 노년층을 향한 자극적인 표현이 난무했다.
종편 등장 이전까지 신문구독률의 하락으로 코너에 몰린 중장년층 보수 유권자의 시각을 대변해줄 매체는 없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사이 한국 사회는 고령화하고 있었고, 이들을 위한 매체 수요가 형성되고 있었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종편채널들이 중장년층 매체에 대한 수요를 흡수하기 시작했고, 궁극적으로 ‘중장년층의 SNS’라 불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호응을 이끌어냈다.
대선캠프 肉聲 생생하게 전해
종편의 두 번째 성공요인은 ‘해석적(interpretative) 저널리즘’과 ‘사운드바이트(soundbite) 저널리즘’을 결합시킨 새로운 형태의 대선 보도 형식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사실 해석적 저널리즘은 미국 정치뉴스의 큰 경향이라고 할 수 있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정치 전문가(political pundit)들이 출연해 매일 일어나는 정치사건을 분석하는 해석적 저널리즘이 단순한 사실 전달에 초점을 맞추는 ‘스트레이트(straight) 뉴스’를 대체한 것이다. 특히 폭스뉴스는 후발주자로서 이런 형식의 뉴스를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해 마치 보수 성향의 라디오 토크쇼를 TV에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형식의 뉴스 프로그램 ‘오라일리 팩터(The O‘Reilly Factor)’를 진행하는 스타 방송저널리스트 빌 오라일리를 배출하기도 했다.
종편은 이런 폭스뉴스의 전략을 받아들여 미리 써놓은 대본을 읽어 내려가는 진부한 앵커 코멘트와 학자들의 고리타분한 정치학개론 같은 인터뷰를 섞어 만드는 지상파 뉴스와 확연히 차별되는 새로운 장르의 뉴스를 선보였다. 이런 뉴스 형식은 마치 대선캠프의 ‘워룸(War Room)’에 앉아 있는 것 같은 생생한 정치 분석으로 시청자의 관심을 끌었고, 윤창중(윤창중칼럼세상 대표·18대 대통령직인수위 대변인), 고성국(정치평론가), 김행(위키트리 부회장), 황태순(위즈덤연구소 수석연구원), 변희재(미디어워치 대표), 이택수(리얼미터 대표), 배종찬(리서치앤리서치 이사) 등 여러 스타 정치평론가를 배출했다.
종편이 미국식 해석적 저널리즘을 차용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해석적 저널리즘의 가장 큰 역효과로 정치혐오증 증가를 꼽는 학자가 많다. 미국식 해석적 저널리즘의 특징은 모든 정치 현상을 전문가들의 비판적인 분석을 통해 보게 되고, 정치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사운드바이트’가 감소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1960년대에는 매일 TV 뉴스 시간에 대통령의 육성이 60초 이상 나왔으나 현재 6초 이하로 줄었다는 보고가 있었다. 미국 정치학자 토머스 패터슨은 저서 ‘아웃 오브 오더(Out of Order)’에서 과도한 해석적 저널리즘이 선거 후보자와 정치인들을 오직 선거 승리만을 생각하는 ‘전략적 동물’로 보이게 해 정치혐오를 부추긴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국 종편들은 미국과 달리 모든 대선 후보 캠프에 매일처럼 직접 출연해 자신들의 입장을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새누리당뿐 아니라 민주당과 안철수 진영의 인사들도 거의 매일 종편에 출연해 주요 현안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피력했다. 이것은 정치권력화한 지상파 방송 기자들이 절대 흉내낼 수 없는 것이다. 지상파가 모든 정치 정보는 자신들의 입을 통해 전달돼야 한다는 오만함으로 정보 유통의 독점 권력을 내려놓기를 거부한 사이, 종편들은 각 대선캠프 관계자들을 매일 스튜디오로 불러 그들의 입을 통해 각 후보의 속내를 시청자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해석적 저널리즘과 사운드바이트 저널리즘의 접목이라고 볼 수 있는 이런 노력이 시청자에겐 신선한 시도로 비쳤다.
유력 신문사 노하우 접목
종편들이 모회사인 신문사의 노하우를 절묘하게 접목시켰다는 점을 종편 성공의 세 번째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종편들은 폭스뉴스보다 진일보하고 보완된 형태의 해석적 저널리즘을 창조해냈는데, 이것은 폭스뉴스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인적 자원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기 어려운 노하우를 보유한 유력 신문사를 모기업으로 둔 종편만이 선보일 수 있는 저널리즘 형식이다.
우선 특유의 취재력과 전문성을 지닌 신문사 정치부 기자들이 물 만난 고기처럼 종편 채널을 누볐다. 동아일보 황호택 논설주간이 진행한 채널A ‘황호택의 대선민심’은 지상파에서는 들을 수 없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지상파에서는 특집 프로그램에서나 볼 수 있는 대담을 이끌며 시청자의 기대를 충족시켰다. 조선일보 정치부 주용중 부장은 정치부 기자 20년 경력이 녹아나는 대선 뒷얘기와 분석으로 호응을 얻었다. 중앙일보 전영기 논설위원은 TV 친화적이지 않은 외모에도 메인뉴스의 앵커 자리를 꿰차기에 이르렀다.
국회의원들을 불러놓고 전 앵커가 던지는 질문은 출입기자들이 국회의원과의 회식자리에서 나누는 대화를 그대로 스튜디오로 옮겨놓은 듯 긴장감 넘치면서도 흥미진진했다. 신문매체의 ‘깊이’가 접목된 이러한 보도 형식은 해석적 저널리즘의 원조 격인 미국 방송사들을 뛰어 넘는, 수준 높은 것이었다.
종편 앵커우먼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지상파 메인뉴스에서 앵커우먼의 역할은 대개 작가가 써준 대본을 읽는 데 그치는 수준인 반면 종편 앵커우먼들은 정치평론가 못지않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며 게스트들과의 토론을 이끌었다. 채널A에서는 강수진 문화과학부장, TV조선에서는 정치학 석사 출신의 이하정 앵커우먼 등이 두드러졌다.
이러한 전략이 과연 시청자에게 어필했을까. 심층적인 사회과학적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단편적인 사례를 통해 답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번 대선에서 종편의 히트상품 중 하나는 ‘TV토론 분석’이었다. 대선 후보 TV토론 시작 전에 전문가 패널이 나와 토론 방향에 대해 예상하고, 토론이 끝난 후 분석하는 형식의 프로그램이었다. 이 역시 전형적인 해석적 저널리즘의 일부로 미국 대선방송을 모방한 것이었으나, 기존 지상파의 보도와는 확연히 차별화된 새로운 시도였다.
이런 방송은 최고의 흥행 성적을 올렸다. 일례로 12월 4일 1차 대선 후보 TV토론 직후 TV조선의 전문가 좌담이 시작된 오후 9시 56분경 순간시청률이 1%대에서 갑자기 6.115%까지 치솟았다. 지상파 채널에서 토론을 시청한 사람들이 토론에 대한 좌담을 보기 위해 이동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상파 MBC의 간판 토론 프로그램인 ‘100분 토론’의 최근 시청률이 1.7~1.8%대이고 KBS ‘심야토론’의 시청률도 5%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종편이 시도한 새로운 저널리즘 형식이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번 대선을 통해 종편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대선 이후의 환경은 녹록하지 않다. 특히 대선 기간 종편 돌풍의 근원이 되었던 여러 요인이 대선 후에 오히려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우선 보수 정부의 출범은 종편에 딜레마일 수 있다. 종편이 누린 대선 특수의 근원은 확실한 이념적 색채를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지상파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얘기를 거침없이 쏟아내며 보수층 유권자의 가슴을 후련하게 해준 것이 주효했다.
朴 정부와 ‘건강한 긴장’ 유지해야
젊은 층의 절대적 지지를 얻어 그 누구도 드러내놓고 비판하기 어려웠던 안철수 전 대선 후보의 모호한 태도와 정책 부재 등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퍼부은 것도 종편이었다. TV토론에서 ‘남쪽 정부’란 표현을 스스럼없이 한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선 후보가 SNS에서 영웅시될 때 이를 정면으로 비판한 것도 종편이었다. 2030세대에게 SNS가 중장년층을 향한 적개심을 분출하는 창구였다면, 5070세대는 종편에서 정규제 한국경제 논설실장, 윤창중 칼럼니스트, 전원책 변호사 등의 보수 성향 논객들이 쏟아내는 거침없는 야당 비판을 보며 조용히 ‘결전의 날’을 준비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종편들은 대선 과정에서 취한 친보수 논조를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 언론의 기본적인 역할인 ‘파수꾼(Watch Dog)’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정부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견지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사실 종편 처지에서는 ‘소비자의 수요’ 측면에서 문재인 전 민주당 대선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더 유리했을 수도 있다. 김대중 정부 때처럼 세무조사 대상이 될지 모를 일이지만, 막 걸음마를 시작한 종편들이 5년 동안 진보 정부의 저격수로 좀 더 확실한 입지를 굳히는 계기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발목잡기식 행보를 계속한다면 비판하는 게 당연하지만, 언론의 기본 역할을 수행하려면 종편은 새 정부와의 관계에서 ‘건강한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새로운 정치뉴스의 형식과 콘텐츠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대선 기간에 정치평론가들은 종편 시청률 상승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대선이 끝난 지금은 그들이 메워줬던 방송시간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 고민할 때다. 선거는 정치이고, 정치는 흥미진진하다. 그러나 정책은 지루하기 쉽다. 정치가 아닌 정책을 논하는 종편이 시청자에게 외면당하지 않으려면 새 정부가 펼치는 정책에 대한 뉴스를 진지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전달할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젊은 층과 여성 시청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뉴스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 필자가 대선 기간에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지상파 방송의 시청자층과 비교해 종편 시청자층은 고연령 남성이 두드러지게 많았다. 대선 후에도 이 계층을 만족시키는 뉴스를 생산해야 함은 분명하다. 그러나 대선 이후에도 성장세를 이어가려면 상업적인 성공, 즉 광고 유치가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미국의 미디어 경제학자 제임스 해밀턴은 ‘시청자 가치’와 ‘한계적(marginal) 시청자’라는 개념으로 미국 뉴스의 연성화(softening)를 설명한다. 즉 모든 시청자가 다 동일한 가치를 갖고 있지 않다 는 것이다. 뉴스의 주 시청자층은 40~60대 남성이지만 대부분의 가정에서 소비와 관련한 주요 결정권은 30, 40대 젊은 주부에게 있다. 당연히 광고주들은 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TV 프로그램에 더 많은 광고비용을 지불할 의사를 갖고 있다. 또 남성들은 이미 뉴스를 많이 시청하고 있으므로 젊은 여성들을 시청자층으로 추가 확보하기 위한 뉴스 콘텐츠가 필요했고, 이런 필요가 뉴스의 연성화를 촉진했다는 것이다. 앞으로 종편이 시청자층의 외연을 확대하려면 보다 면밀한 검토를 해야 한다.
質과 시청률, 두 마리 토끼
종편에는 뉴스의 질을 한 차원 격상시키면서 시청률도 더 높여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주어졌다. 대선 기간 종편의 모든 노력은 ‘시청률 높이기’에 맞춰졌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시청률만 올릴 수 있다면 어떤 깜짝쇼라도 할 기세였다.
장안의 화제를 모았던 채널A의 ‘박종진의 쾌도난마’는 효자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고 윤창중 대통령직인수위 대변인이라는 스타를 배출하기도 했지만 비판도 적지 않았다. 박종진 앵커는 특유의 입담으로 인기를 얻었지만 거친 언사로 종종 구설에 올랐다. 선거 당일에는 아직 문재인 후보가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은 시점에서 지상파 예능 프로 ‘세바퀴’를 연상시키는 무대에 10여 명의 정치평론가를 불러놓고 박근혜 당선 특집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앞서 소개한 폭스뉴스의 스타 방송저널리스트 빌 오라일리는 미국 TV방송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에미상 보도부문 최고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다. 또 2010년 미국의 여론조사기관인 PPP(Public Policy Polling)의 조사에 따르면 49%의 미국인이 폭스뉴스를 신뢰한다고 응답해 CNN(39%), NBC(35%), CBS(32%), ABC(31%)를 제치고 가장 신뢰받는 뉴스채널로 선정됐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실 전달에서 오류를 범한 경우도 있었다. 한 종편 뉴스 프로그램은 지난해 10월 11일 대선 후보 지지율을 분석하면서 조사 결과를 거꾸로 보도하는 실수를 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종편의 열악한 제작환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종편채널은 대선 기간 정치나 선거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한 프리랜서 작가들이 기획부터 섭외, 구성안까지 도맡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다보니 구성안이 방송 시작 한두 시간 전에야 나오고, 출연자들이 읽어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방송에 임하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것인지 결정도 안 된 상태에서 전문가 패널이 섭외되고 방송에 들어오는 경우도 허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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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열정적으로 일하는 작가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고, 패널 섭외에서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등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복잡한 정책 관련 이슈를 충분히 이해한 후 시의적절한 주제를 기획하고, 그 주제에 적합한 패널들을 섭외해 전문적인 내용을 뉴스에 녹여내기에는 역부족인 경우도 눈에 띄었다. 이렇다보니 종편 프로그램의 품질은 편차가 극과 극을 달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문제점은 하루빨리 개선돼야 할 것이다.